전면 주5일 수업, 부작용 최소화하려면

 주5일 수업, 부작용 최소화하려면[중앙일보] 입력 2011.04.21 00:29 / 수정 2011.04.21 01:15

올 7월부터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5일제를 시행하는 것에 맞추어 학교도 주5일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정부도 주5일제 수업 전면 실시에 따른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을 때 대두될 문제는 학교·가정·사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교교육과 관련해선 교육과정 파행 운영 가능성 증가, 이틀간의 공백으로 인한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 증가, 수업일수 감소에 따른 전반적인 학력 하락 등을 들 수 있다. 수업일수가 줄어들 경우 학교는 눈에 드러나는 학력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주지(主旨) 교과가 아닌 다른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게 될 것이다. 이틀간 학교를 떠나 있다가 돌아오게 되면 학생들의 학교생활 적응력이 떨어지면서 생활지도 및 학습지도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또한 그동안 국제사회에서는 한국학생들의 학력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로 수업일수가 많은 것을 들고 있었던 것에 비추어볼 때 장기적으론 전반적인 학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가정과 관련해서는 사교육비 증가, 방치되는 아이들 증가 등의 문제가 커질 것이다. 주 5일제를 하기 어려운 5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가 전체 임금 노동자의 18%에 달하고, 환경이 열악한 자영업자가 총 근로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은 상황에 비추어볼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집에 방치될 아이들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가정배경에 따른 교육 양극화 심화, 토요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교육예산 증가 등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완화시키면서 주5일 수업 전면 실시가 우리 아이들 교육에, 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선 이미 논의되고 있는 온종일 돌봄교실 확대, 지자체 대체 프로그램 개설 방안과 함께 몇 가지 대책이 요구된다.

 우선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체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조직이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높여 사회 전체 성인들의 교육역량을 향상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각 기관들이 토요일 프로그램을 마련해 제공하고, 개인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활동을 할 때 교육봉사활동을 교육기부로 간주해 개인과 조직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준다면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도 높아질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토요일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사람이 많고, 여가 시간 증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따분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이들이 여가 시간을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주5일제가 정착되는 상황에서 부모가 자기 자녀만 개별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대신 학부모가 학교의 프로그램을 도우면서 자녀를 함께 참여시킬 수 있도록 교육봉사 세금감면 혜택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는 체험활동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더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지적·정서적 성장에도 더 도움이 된다.

 물론 토요일 프로그램 운영의 주체는 학교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토요일은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하도록 제도화하고 필요한 유인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부분적인 주5일제 수업 실시 경험과 외국의 사례를 토대로 문제점을 분석하여 철저히 대비함으로써 이 제도 도입이 교사의 근무 여건 개선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지적·정서적 성장,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적인 행복지수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

교육의 어려움… 교육자의 고민.. ‘빈곤한 철학’이 만든 괴물 서남표, 그도 희생양이다!”

‘빈곤한 철학’이 만든 괴물 서남표, 그도 희생양이다!”

서남표 그는 성공한 분이다. 과학자로서 그리고 과학 정책 조언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분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그는 1936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1954년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마치고 1955년에 MIT에 입학한다. 1963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70년 MIT 기계공학과 부교수로 부임하여 같은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석좌교수를 거쳤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산업계와 정부에서도 일하였다. 여러 회사이사이며, 회사도 설립했다. 특히 1984년에서 1988년까지 미국과학재단(NSF)의 공학 담당 부총재(대통령 추천 및 상원 인준으로 임명)를 역임하면서 미국 정부의 공학 담당 연구 개발의 총책임을 맡았다.

그것으로 족하다. 그는 훌륭한 교육자는 아니다. 교육은 과학기술과 달리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교육은 전문 분야이기 이전에 가장 일반적인 분야이다. 그는 이런 일반적인 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교육 철학에 우려가 있다.

또 그는 빈곤한 시대에 혼자 성공한 분의 장단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빈곤하기 때문에 포괄적인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성공이라는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그 목적을 향해 일로매진한 사람들은 소통과 교양에서 심각한 결함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가 외친 성공의 철학은 ‘철학의 빈곤’을 보여준다. 그가 생각한 꿈은 일종의 잘못된 환상이다. 이 환상이 카이스트 구성원들에게는 일종의 폭력이었다.

그의 환상은 1950년대에 전쟁을 방금 치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출신으로서 미국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는 영어 때문에 고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면 자기처럼 더 많은 성공을 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솔직한 편이다. 그러나 포괄적 비전과 적극적인 소통 없는 솔직함은 교육 책임자로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이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그 환상의 피해자임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는 빈곤한 나라에서 자란 그의 빈곤한 철학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성공의 철학이다. 세계 대학의 순위표에서 등수를 올리는 것이다. 이를 대학 경쟁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글로벌화를 꿈꾼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은 제국의 대학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를 겪었다. 인도필리핀영국 식민지였다.

우리는 인도가 부러운가? 우리는 필리핀이 부러운가? 그들에게 영어는 식민지 유산이다. 그 유산이 뭐가 부러운가?

영어가 과연 경쟁력의 원천인가? 경쟁력이라는 말도 일종의 환상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영어 모른다고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입시와 고시, 취직이나 승진에 필요하긴 하다. 영어가 필요만 사람들만 잘하면 되고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을 잘 갖추면 된다.

영어가 뭐가 문제인가? 우리는 영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영어 필요하면 그냥 하면 된다. 영어를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기관을 각 지역마다 만들어 줘서 사교육 받지 않고도 영어 공부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영어로 소통이나 번역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만들어 혜택을 주면 되지 않은가? 건강이 필요하다고 해서 모두의학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듯이.

대학이나 기업이 영어에 광분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정부까지 난리이다. 그런데 왜 자유무역협정(FTA) 번역은 틀리는지…. 번역 전문가에게 맡기면 됐을 것인데.

왜 우리는 영어에 광분하는가? 영어가 우리 모국어가 아니듯이 우리 대학의 모델은 MIT나 하버드가 될 수 없다. 그 대학들이 참고 사항은 될 수 있다. 좋은 것은 벤치마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학을 그대로 따라하겠다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식민지에서 독립된 이후에도 제국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제국을 그리워하고 닮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으로 일종의 심리적 질병이다. 우리의 오리엔탈리즘은 영어과 미국화로 표출되고 있다. 서남표 총장이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는 MIT가 특정 언어에 광분하는가?

MIT의 사명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영어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영어로 인용해 본다.

“The mission of MIT is to advance knowledge and educate students in science, technology, and other areas of scholarship that will best serve the nation and the world in the 21st century. The Institute is committed to generating, disseminating, and preserving knowledge, and to working with others to bring this knowledge to bear on the world’s great challenges. MIT is dedicated to providing its students with an education that combines rigorous academic study and the excitement of discovery with the support and intellectual stimulation of a diverse campus community. We seek to develop in each member of the MIT community the ability and passion to work wisely, creatively, and effectively for the betterment of humankind.”

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 “MIT의 사명은 21세기 국가와 세계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과학, 기술 그리고 다른 학문 분야들에서 지식을 발전시키고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우리대학은 지식을 만들고 퍼뜨리고 보존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과 작업하여 이 지식을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적용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헌신한다. 그 교육이란 다양한 캠퍼스 공동체의 지원과 지적 자극을 함으로써 엄격한 학문적 연구와 발견의 흥미를 혼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대학 공동체의 각 구성원이 인류의 더 나은 상태를 위해 현명하고 창조적이고 효과적으로 작업하는 능력과 열정의 개발을 추구한다.”

MIT의 사명 어디에도 영어 몰입이라는 단어는 없다. 더군다나 그가 사모하는 MIT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풍부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및 예술 분야의 학부도 갖추고 있다.

실제 MIT와 그가 본 MIT와 얼마나 다른가? 이 정도면 마음의 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병이 그만이 걸린 병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층도 걸린 병이라는 것입니다.

오렌지는 “아륀지”로 발음해야 된다고 주장한 전 숙명여대 총장이나 영어 공영화론을 외친 복거일이라는 작가나 영어 몰입 교육을 외친 현 이명박 정부의 사례도 이 병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병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어 병’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에 스스로 갇힌 격이다.

대학은 MIT 사명이 보여주듯이 자유에 기반을 둔 학문적 활동과 미래의 우리 사회의 리더를 키우는 것이다. 리더를 키우는 곳이기에 자율적 행동을 장려해야 한다.

대학은 단순히 이익 지향의 인간형을 키워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대학생은 미래의 리더이기 때문에 공적인 역할도 요구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스폰서 검사는 이런 교육 철학의 빈곤과 한계를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우리나라의 은밀한 모델인 일본의 관료들이 이번 지진 사태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관련해서 얼마나 관료적인지를 잘 보여줬다. 일본의 관료들이 영어를 못해서 이런 사태를 낳은 것인가?

100% 영어 강의를 하지 않은 일본의 대학은 영어도 못하면서도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를 10명 이상 키워냈다. 영어를 잘했으면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타났을까?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과 관련해서 단기 이익 지향적 기업보다는 사회 책임형 윤리적 기업이 21세기의 기업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기업의 리더도 단순히 성과 지향적 리더가 아니라 소통 지향적 리더가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이것이 애플삼성전자의 차이이리라!

대학을 기업화하려는 움직임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일본 대지진 이후 지진 해일보다 더 큰 충격과 고통을 주고 있는 방사능 문제를 일으킨 도교전력의 문제점은 민영화가 주원인이었다. 민영화로 인해 안정성이라는 공익성보다 수익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생겨난 인재(人災)라고 규정할 수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도 이런 큰 문제점을 야기하는데 공기업보다 훨씬 더 공익성을 추구해야 되는 대학의 민영화는 더 큰 문제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서울대 법인화는 이런 면에서 다시 한 번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대학은 그 학문 발전을 위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대학의 지식이 국가와 세계에 기여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자유의 공간이어야 한다.

어떻게 대학의 다채로운 활동이 어떻게 해서 성공/일등 지향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수렴될 수 있는가?

성공한 재미 동포 과학자로서의 서남표가 내세운 카이스트를 MIT로 만들고 싶은 외로운 투쟁은 잘못된 방향을 잡은 투쟁이다. 그의 일류화의 모델은 미국 대학의 짝퉁이다.

과학도 문화적 활동의 일부이다. 과학도 단순히 산업화의 역군이나 국부의 증진 도구만이 아니다. 대학은 더구나 문화적 공간을 창출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학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로부터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대학을 만들면 된다.

괴테는 말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카이스트에 필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교양이다. 우리나라의 미래의 과학기술의 리더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과 사회과학적 현실성을 익히며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더 긴요하고 중차대한 카이스트의 사명이리라.

카이스트에 진정 필요한 것은 통섭이다. 영어라는 눈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보는 눈이 더 필요하다. 카이스트 구성원들에게 현재 벌어지는 있는 일련의 자살은 철학과 교양의 빈곤을 조장한 우리 일부 지도층의 잘못된 환상으로 인한 타살은 아닌지?

 

/김성우 상지대학교 겸임교수

자료제공 :  프레시안

빌 게이츠-Bill Gates on mosquitos, malaria and education

http://www.ted.com/talks/lang/eng/bill_gates_unplugged.html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사업문제 관련 건으로 워렌 버핏에게 편지를 쓸 일이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씨께서 조언하시더군요. 굴러가는 일 안굴러가는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일년에 한번쯤을 꼭 가져 보라구요. 최근 재단에 관한 저의 화두는 “사람”을 더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이란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시장논리의 한계 때문이랄까요, 시장은 과학자, 철학자, 정부 등등이 “옳은 일”을 하도록 유인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문제들은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 없이는, 열정을 가지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능있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자리에서 저는 두가지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먼저 제가 낙관주의자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결국엔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제 과거가 저한테 그렇게 말해주더군요. 지난 한세기간, 인류의 평균 수명은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또다른 통계가 있는데요, 바로 유아 사망률 통계입니다. 1960년대쯤, 1억1천만명의 어린이들이 태어났고, 5세가 되기 전에 죽은 어린이가 2천만명이었던 것에 비해, 2005년에는 1억3천5백만의 어린이가 태어났고, 1천만명의 어린이가 5세가 되기 전에 죽은 것이죠. 출생은 늘고 사망을 줄었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줄어든 것이죠. 놀라운 현상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목숨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주요한 이유는 소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혁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신의 확산이 그 예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역은 4백만명의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40만 이하죠. 이게 의미하는 것은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다음 목표는 1천만이라는 숫자를 다시 반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20년안에 이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된 사망원인으로 꼽히는 병의 종류는 사실 몇 가지가 안되기 때문이죠. 이질(설사병), 폐렴, 말라리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가지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군요. 첫번째 질문입니다.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을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의 역사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도록 하죠. 수천년간 이 “모기 병”은 인류의 목숨을 위협해 왔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런 모기병에 대해 내성을 갖는 방향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이렇게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에서밖에 없죠. 사망률은 1930년대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5백만을 좀 넘는 숫자였죠. 정말 엄청난 숫자였죠. 전 세계에서 창궐했습니다. 미국,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끔찍한 병이었죠. 사실 사람들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유를 몰랐습니다. 영국의 한 군인이 그게 모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냈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 모기병은 그야말로 사방 천지에 있었죠. 이에대해 두가지 해결책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DDT로 모기를 박멸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키니네라는 약을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대책으로 실제 사망률이 많이 줄어들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벌어진 일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온대지역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이 있는 곳에서 말입니다. 1900년대를 보시면 예외가 없습니다. 어디에나 있죠. 1945년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지역에 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1990년대입니다. 북반구 대부분 지역은 이제 깨끗합니다. 이젠 지구 전체를 통틀어 적도 주위에밖엔 없습니다. 여기가 바로 역설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병이 이제 가난한 나라에만 있으니까요. 충분한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발모제에 들어가는 돈이 말라리아 퇴치에 투입되는 돈보다 많습니다. 네..끔찍하죠. 대머리. 쉽지 않습니다. (웃음) 이제 가진 사람이 고민할 차례입니다. 우선순위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일년에 100만명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감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이 엄청나게 과소평가 되고 있습니다. 2억명이 넘는 인구가 살면서 한번쯤은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습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곳에서는 경제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말라리아가 될일을 안되게 뒤로 잡아 끌기 때문입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입니다. 여기 제가 모기를 좀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겪어보시라고요. 잠깐 좀 풀어놔 보도록 하죠. (웃음) 가난한 사람만 말라리아로 고생하란 법은 없습니다. (웃음)(박수) 지금 제가 푼 모기들은 깨끗하니 걱정 마세요. 그래서 몇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봤습니다. 모기장이죠. 꽤 좋은 도구죠. 엄마와 아이가 밤에 모기장 안에서 자면 모기도 별 수가 없으니까요. 집 안에서 DDT를 뿌리고 모기장을 이용한다면, 사망률을 다시 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이죠. 하지만 안심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말라이아와 기생충도 진화를 하니까요. 지금 먹히는 해결책들도 언젠간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 때가 오는 것이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두가지의 선택입니다. 들어맞는 계획과 수단을 가지고 용감하게 현장에 뛰어들어, 열심히 퇴치 활동을 벌여서 실제로 그 지역에서 말라리아와 “끝장을 보는 것”이 첫째입니다. 사실 이 방식이 말라리아를 지도에서 많이 몰아냈죠. 아니면, 독한 각오 없이 적당한 마음으로 가서 한동안 말라리아로 인한 부담을 줄이는 정도로 만족하다가 다시 사망률이 올라오는 걸 보는 것이 둘째입니다. 같은 대책이 영원히 먹혀들진 않으니까요. 세계는 지금까지 두번째 것을 선택해 왔습니다. 어느정도 적당히 하다가 관둬버린 것이죠. 사망률이 다시 치고 올라옵니다. 모기장 펀드가 있습니다. 신약개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재단은 몇달 안으로 3단계에 실험에 들어가는 백신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있다면 2/3이상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걸 잘 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런 모기병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돈을 끌어모을 사람도 필요하고, 투명성을 제고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나중에 성공담을 얘기하려면 말이죠. 사회과학자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70%라는 지금의 모기장 사용률을 90%까지 올릴 수 있을지 알아내려면 말입니다. 수학자가 필요합니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려면 말입니다. 제약회사들 경험도 중요한 밑천입니다. 부자나라들이 관대함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한 데 모인다면 가능합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라리아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좀 해보죠. 완전히 다른 얘기지만, 똑같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훌륭한 선생님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대단히 많습니다. 또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글쎄요, 사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 보도록 하죠. 여러분중 대부분은 한명쯤 좋은 선생님을 가져 보셨을 겁니다. 대부분이 아주 좋은 교육을 받으셨죠.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기도 하고, 여러분이 대체로 성공하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도 대학중퇴자이지만 성공했죠. 좋은 선생님이 있었으니까요. 사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지금까지 제법 잘 굴러가 왔습니다. 소수의 학교에 국한되긴 하지만, 어쨌든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죠. 그래서 상위 20%의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상위의 20%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죠. 다른 나라의 상위 20%와 비교한다면 말입니다. 이 학생들은 소프트웨어와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혁명을 일구러 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최 선두에 서게 만들었죠. 그런데 이 20%학생들을 가능하게 했던 우리 교육의 강점들이 상대적으로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교육의 균형문제 혹은 양극화 문제도 점차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미 약했던 것들이 더더욱 약해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굴러가는 걸 보세요. 이젠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기회를 갖기조차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동등한 기회를 가질수 있도록 바꿔야 합니다.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면 바꿔야 합니다. 수학과 과학처럼 고등교육이 필요한 분야에서의 우위를 유지하려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통계 자료를 첨 봤을때가 생각나는군요.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해서 꽤 놀랐습니다. 30%가 넘는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동안 말입니다. 통계에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고교 중퇴율이 고3 진학생 숫자와 고3 졸업생 숫자만으로 집계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3이전 중퇴는 통계에서 빠져 있었던 거죠. 실제로 대부분의 중퇴와 낙제는 고3이 되기도 전에 발생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중퇴율 집계가 끝나자마자 숫자를 바꿔야 했습니다. 30%도 넘게 말이죠. 소외계층에서는 50%가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장을 딴다고 하더라도, 소득수준이 낮으면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25%도 안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미국의 저소득층이라면,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딸 획률보다 감옥에 갈 확률이 높습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죠. 그래서 다시, “어떻게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희 재단에서는 지난 9년간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적지 않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골몰하고 있죠. 작은 학교 지원사업도 펼쳤고, 장학사업도 했고, 도서관 사업도 했습니다. 대부분 좋은 결실을 맺었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답이 뻔해지더군요. 좋은 선생님이 관건이라는 게 말입니다. 교육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얘길 해봤습니다. 선생님들간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차이는 또 얼마나 되는지, 한 학교 안에서의 차이는 얼마나 되고 또 여러 학교간에서는 어떤지. 이 격차의 실상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이더군요. 한명의 훌륭한 선생님이 한 학급의 성적을 한명의 훌륭한 선생님이 한 학급의 성적을 단 1년만에 10%나 올립니다. 이게 뭘 의미하죠? 2년동안만 나라 전체가 이런 선생님을 가질 수 있다면 공부 잘하는 아시아와 미국의 격차가 사라져버릴겁니다. 4년이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육 강국이 되겠죠. 간단합니다. 좋은 선생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생각하시겠죠. “좋은 교사들을 잡아두려면 처우를 개선해야하지 않을까” “좋은 교사들이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는지 좀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들은 실제로는 전혀 실천이 안되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 좋은 선생님의 자질은 뭘까? 어떻게 생겼을까? 아마도 경험이 많은 나이 많은 선생님을 떠오르시겠죠. 하지만 답은 “노”입니다. 가르치는 기술이 느는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 첫 3년입니다. 그 이후론 유지죠. 3년차 이후의 차이는 아주아주 작습니다. 그럼 석사학위정도는 있는 교사들이 잘 하는건가? 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가서 교육학 석사학위 받아온 사람들. 이 차트는 교육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네 가지 변수를 보여줍니다. 저기 맨 밑에 있는 것은,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단 뜻입니다. 교육학 석사학위죠. 교사 임금제도를 볼까요? 두가지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경력입니다. 연차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고 연금이 쌓입니다. 두번째는 “교육학 석사학위” 소지여부입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죠. 한마디로 미국교육제도는, 살짝 쓸만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전공자가 수학선생님이 되는 것엔 측정가능한 효과가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한 짬밥이라는게 있으니까요. 어딜가나 그 분야에서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을 잘 활용하지 못했어요. 한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자기가 가진 지식을 교실에 전파해서 평균 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한다거나, 또 그런 시스템에 안착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거죠. 그럼 “좋은 교사는 남고, 나쁜 교사는 떠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조금 좋은 교사”들이 교육계를 떠납니다. 이게 교육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큽니다. 몇군데 안되지만, 진짜 휼륭한 교사들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KIPP라고 하는 차터스쿨(독자운영 공립학교연합)이 그 예가 될 수 있겠군요. KIPP는 “아는것이 힘이다(Kowledge Is Power)”의 약자입니다. 이게 참 엄청난데요. 66개 학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 중학교고, 고등학교도 좀 있습니다. 여기 교육의 질이 아주 좋습니다. 최고 가난한 학생들을 뽑아다가, 그중 96%를 4년제 대학에 보냅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교의 정신과 태도가 다른 일반 공립학교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팀티칭을 해요. 계속해서 선생님의 질을 향상시키죠. 시험성적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모아다, 교사에게 피드백을 주는거죠. “선생님, 성과가 이만큼 좋아졌네요.” 선생님들은 강의의 질을 높이는데 더 열중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실제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면 첨엔 조금 황당할겁니다. 저도 교실에 앉아서는 생각했습니다. “뭐지??” 선생님들이 교실 안에서 뛰어다니질않나, 교실치고는 너무 활기에 넘쳤죠. 이건 뭐 이어달리기도 아니고.. 뭐야 이거? 했죠. 선생님들은 돌아다니면서 애들이 집중하고 있는지, 지겨워하고 있진 않은지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애들 이름을 계속 부르고, 칠판에 뭔가 쓰고 하면서 말이죠. 교실이 대단히 다이내믹 하더군요. 특히 중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애들에게 계속해서 참여를 유도하고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중요한거죠. 그런 분위기에 냉소하거나, 교실에 더이상 있기 싫은 아이들이 안 생기도록 말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다 참여해야 된단 겁니다. 이게 KIPP가 하는 일입니다. 다른 일반적인 학교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일반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피드백을 거의 못받습니다. 데이터가 없으니까요. 교사 고용 계약서를 보면, 교장이 교실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있어습니다. 일년에 한번 내지 몇번 쯤으로요. 그것도 교장이 미리 통지를 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공장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여러분이 공장장이고, 일꾼이 있는데 그중 일부가 일을 제대로 안합니다. 일꾼이 관리자에게 말합니다. “당신 여기 1년에 한 번 밖에 못 오는거 알죠?, 또 오려면 미리 알려주셔야 해요.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알고, 그 잠시동안 열심히 하는 척 할 수 있으니까” 좋은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점수 등등 데이터가 없으니까요. 선생님이 정보를 좀 봐야겠는데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이 너무 많은거죠. 예를들어 뉴욕에서 법안이 하나 통과되었는데요 교사들의 실적이 공개되어, 이게 종신재직권(테뉴어) 심사에 근거로 쓰여선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반대로 가는 거죠. 하지만 전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첫째, 교사들의 퍼포먼스를 측적할 수 있는 시험을 늘려서 우리의 현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잘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불러내다가 교수방법을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하도록 하는거죠. 이제 동영상 하나쯤 만드는덴 돈도 안듭니다. 교실에 카메라 몇 대 설치하고 수업을 녹화하는 것을 정규화 하는 거죠. 대다수의 공립학교에 아주 유용한 방안이 될겁니다. 아마 몇주에 한번쯤 하는 식으로 선생님들이 모임을 가질 수도 있겠죠. “제가 이렇게 가르쳐보니까 아주 잘 먹히던데요” “이렇게 하니까 하나도 안먹히더군요” “애들이 이럴땐 어떻게 하시나요?” 하는 식으로,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노하우와 테크닉을 공유할 수 있는 겁니다. 분야별로 최고의 선생님들의 노하우를 동영상 등 기록물로 만들면 모두가 보고 누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수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는거죠. 애들도 물리학 강의가 듣고 싶으면 최고라 소문난 수업을 그냥 비디오로 보는겁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조금 뒤쳐진다면 아마 그 동영상을 보면서 개념을 복습하도록 시킬 수 있을겁니다. 그분야 최고의 선생 최고의 강의를 비단 인터넷뿐이 아니라 DVD플레이어가 있는 곳에서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도록 DVD로 구워다 배급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개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걸 지금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습니다. KIPP 이런 일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책도 이미 나왔습니다. 제이 매튜스라는 리포터가 쓴 <열심이 일하고 착하게 살아라>라는 책이죠. 정말 훌륭하더군요. 좋은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인지를 알려줍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공짜로 한권씩 드리도록 하죠. (박수) 우리는 이미 교육에 아주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로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게 있습니다. 돈이 투입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교사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예산안이 있었는데, 의회에서 물려버렸습니다. 이 안으로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도 낙관합니다. 사람들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눈치 채 가고 있으니까요. 이 일이 제대로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이 두 문제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써왔습니다. 이 비슷한 문제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에이즈, 폐렴 등등. 여러분들이 이런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귀가 쫑긋 서는 것이 제 눈에 보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레 해결되는 그런 부류의 문제가 아니죠. 정부의 힘만으로는 적절한 자원을 적절한 장소에 배치할 수 없습니다. 경제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민간 부문도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여러분과 같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더 많은 사람을 끌여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뭔가 아주 훌륭한 결과가 나타나리라 맏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아침논단] “바보야,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권이야!”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학교 교육은 부실하고 사교육비에 허리 휘는데
전교조와 非전교조 학교 학생·학부모에 선택권 주고
학생 수에 따라 예산 지원해 경쟁 유도하면 어떨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면 곧잘 한국을 모범 사례로 소개한다. 최근에도 지난 1월의 국정연설 등에서 “한국에선 교사가 국가 건설자로 알려져 있다”며 우수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제 한국의 우수 교사는 공교육을 떠나 사교육시장으로 갔다는 것을.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의 공교육은 체벌(體罰) 금지 때문에 더욱 부실해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새뮤얼 크레이머(Kramer) 교수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Sumer)에서 시작되었다’를 보면 체벌의 역사는 오래됐다. 4000여년 전 수메르의 한 학생이 학교에서 회초리로 맞았다고 기록한 점토판이 발견됐다니 말이다. 그랬던 체벌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여기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같은 좌파 교육자들의 공헌이 크다. 그렇다면 체벌이 사라진 우리의 교육 현장은 학생들의 천국이 됐을까? 그래서 학부모들은 행복할까?

서울 서래초등학교 김영화 교사의 현장 증언을 들어보자. “6학년 한 반에 문제학생들은 10% 정도다. 교사가 보는 앞에서 친구를 때리고, 교사에게 욕설을 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체벌이 금기시되기 때문에 교사들이 문제학생을 그냥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나머지 학생들도 나쁜 쪽으로 변해간다.” 좌파 교육감과 전교조의 희망과는 달리 체벌 금지가 ‘교실 붕괴’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10% 문제학생들이 나머지 90%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경제학에서는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ies)’라고 부른다. 이 부정적 외부효과 때문에 90% 학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이처럼 부실해지니 학부모들은 그 대체재(substitutes)인 사교육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학생들의 부정적 외부효과를 바로잡는 수단으로 전교조 교사들은 ‘인성(人性)교육 강화’를, 비(非)전교조 교사들은 ‘체벌 재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들 중에서 선택할 자유가 없다. 좌파 교육감이 관할하는 지역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문제학생들이 인성 교육에 감화돼 부정적 외부효과 발생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 고통받는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줘야 한다. 기존의 학교들을 전교조 교사 중심의 가칭 ‘사랑의 학교’와 비전교조 교사 중심의 ‘정의의 학교’로 재편해 교육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 방법이다. 두 종류 학교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려면 정부 예산을 재학생 수에 비례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학교든 학생이 줄어들면 그만큼 예산 지원을 축소해 교사 숫자를 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전제하에서라면 곽노현 교육감 뜻대로 전교조 교사 중심의 ‘사랑의 학교'(또는 ‘혁신학교’)를 설립해 체벌을 금지하고 교원 평가를 거부해도 좋다.

다음으로 ‘정의의 학교’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체벌 규정집’을 만들어야 한다. 규정집은 친구를 때리면 회초리 몇 대, 선생님께 욕하면 몇 대 등 체벌 수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그리고 체벌은 반드시 학교 내 상벌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실시한다. 그래야 “손바닥으로 맞으면 학생들이 장풍(掌風)을 맞은 듯 나가떨어진다”고 해서 ‘오장풍’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런 폭력 교사에 의한 ‘감정의 매’를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교원 평가를 실시하고 그에 따라 교사의 연봉 수준과 재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에릭 하누셰크(Hanushek) 교수는 미국 초·중·고의 바닥권 교사 5∼8%를 평균적 교사로만 대체해도 현재 OECD 하위권인 미국 학생들의 수학·과학 국제 순위가 최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최근 연구에서 밝혔다. 그만큼 교사의 질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교원 평가를 제도화해서 무능 교사를 퇴출시킨다면 공교육만으로도 현재 상위권인 수학·과학 국제 순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교원 평가 도입 시늉만 내며 전교조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부모들은 교실 붕괴로 인한 공교육 부실화와 그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패러디해 우리 학부모들의 심정을 표현해보자. “바보야,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이야!”

 

  •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조선일보)

[기고] 한국교사 실력에 감탄하는 오바마 교육 참모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교육 칭찬은 늘 우리에게 화제다. 여러 번 반복돼서도 그렇고, 우리의 불만 대상이 바깥의 칭찬거리가 돼서도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나라 중에서 왜 하필 한국의 교육과 학교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스탠퍼드대의 린다 달링-해먼드(Darling Hammond) 교수이다. 한국 교육계에도 친숙한 그녀는 오바마 선거 캠프에서 자문단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오바마가 당선되자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교육부 장관 후보로 보도했다. 장관은 안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오바마 대통령의 실질적 교육참모로서 국가 교육플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진보 교육학자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적 교육 시스템에 대해 강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여간해서는 외국 교육의 사례를 ‘성공’이라고 칭찬하지 않는다. 그런데 진보 교육학자인 달링-해먼드 교수가 그 금기를 깨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외국 교육의 성공사례로 핀란드, 싱가포르, 한국을 꼽았다.

그렇다면 세 나라 중에서도 왜 한국일까? 핀란드는 넓은 국토에 적은 인구가 산재(散在)하며 도시화도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참고할 나라로 꼽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싱가포르의 교육은 미국의 경제력이 우수한 도시나 학군의 모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민주당 대통령이 부유층을 위해 싱가포르식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꺼림칙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뉴욕·LA·시카고와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들과 농어촌이 함께 존재하는 한국이 선택권에 들어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미국 국민의 학력신장이다.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인력으로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 이상의 학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달링-해먼드 교수는 미국 젊은층의 대학 졸업률이 턱없이 낮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대학 졸업률은 미국의 두 배 이상이라며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한다.

달링-해먼드 교수는 또 한국 교사들의 실력이 월등하다고 칭찬한다. 한때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많은 미국 주(州)들이 교사 수를 늘리기 위해서 교사가 되는 요구조건을 낮추었는데, 한국은 오히려 자격요건을 강화시켜 우수한 교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그녀의 분석이다. 미국 수학교사 중 70%만이 수학과나 수학교육학과 출신이지만, 한국은 95% 이상이 관련 전공 출신이다.

그녀는 또 한국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교무실 구조가 교수 학습자료와 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에 적합하고, 새내기 교사에게는 훈련장이 된다고 칭송한다.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 있고 교사들이 찾아다니는 한국 교실 시스템이 그녀에게는 교사 교육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혁신 아이디어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칭찬하는데, 한국 교육부는 그것을 바꾸려고 야단이다. 과연 우리 교육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국민적 합의를 모아 국가교육의 청사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해볼 수 있는 마지막 큰 일거리이다.

 

한준상 연세대 교육과학대학장

‘잘 가르치는 학교’ 100곳 살펴보니… 아침 15분 스스로 책읽기… 점심시간엔 공연(100대 교육과정)

서울사대부설여중… 토론·실습으로 수업 이끌어 음악시간엔 직접 작곡도
인천 작전여고… 월요일 ‘3분 경제뉴스’ 방송 축제때 마켓 운영 경험하기도

서울사대부설여중은 모든 수업의 주인공이 학생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칠판에 필기하면 학생들은 따라가는 일반적인 학교 수업과 달리 이곳에선 학생들이 토론하고 실습하면서 수업을 이끌어 나간다.

많은 여학생에게 ‘비호감’인 수학 시간도 서울사대 부설여중에선 색다르다. 학생들은 모래를 이용해 삼각형의 내심·외심을 계산하는 실험을 하기도 하고, 구·기둥·뿔 모형으로 부피를 계산하는 법을 배우거나 퍼즐을 맞춰 보며 ‘피타고라스 정리’를 익힌다.

잘 가르치는‘베스트 스쿨’에 선정된 대구 관남초등학교는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 15분씩‘아침독서’시간을 갖는다. /교육과학기술부 제공

수학 문제 풀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학생들이 집에서도 복습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들에게 ‘수학시간 일기 예보(10자)’ ‘수학 일기(5줄)’ 등 그날그날 수업의 감상을 기록하도록 해 교사가 학생들이 어떤 부분에 취약한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점도 이 학교의 남다른 수업 방식이다.

서울사대부설여중의 우수 수업 사례는 조선일보교육과학기술부가 공동 주관하는 교육과정 우수 ‘베스트 스쿨(Best School) 100’에 선정됐다. ‘잘 가르치는 학교’들로 선정된 100개 학교들은 저마다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우고 있었다.

인천 작전여고의 자랑거리는 ‘경제 교육’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방송부 학생들이 ‘3분 경제 뉴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더블딥의 의미’ ‘환율이 무엇이기에’ ‘금값이 오르는 이유’ 등 짤막한 경제 관련 뉴스를 알기 쉽게 대화 형식으로 전달하고, 증권박물관이나 한국거래소 등 경제관련 단체에 견학을 가기도 한다.

10명 이하 학생팀이 사업체를 꾸려 사업기획안부터 사업설명서·예산계획서·결산보고서 등을 작성해 보고, 학교 축제 때 마켓을 운영하는 경험도 해 보게 했다.

대구 관남초등학교는 매일 점심 시간에 20~30분씩 학생회 주도로 학생 공연을 열고 있다.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짜고 출연자 섭외를 해서 사회까지 보는 프로그램이다. 음악 시간에 배운 리코더 연주부터 가야금·댄스·연극·태권도 시범 등 학생들 각자가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이동영 연구부장은 “학부모들도 아주 좋아하셔서 자주 관람하러 오신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전 학년이 매일 수업 시작하기 전에 15분씩 책을 읽는다.

 

-조선일보 제공

[송호근 칼럼] 반갑고 심란한 무상복지

 

 경기침체로 혹독한 한파가 몰아쳤던 6년 전 겨울, 독일 뉘른베르크의 고용사무소에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사상 최대를 기록한 500만 명 실업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총선에서 압승한 기민당 당사에는 이런 현수막이 나부꼈다. “슈뢰더 총리, 지구를 떠나시오.” 그래서인지 슈뢰더는 정계를 떠났고 기민당의 메르켈이 등장했다. 메르켈은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그 여인의 실업급여를 대폭 삭감했다. 700유로(약 110만원)를 받아 든 그녀는 울먹였다. 그전엔 1200유로를 받았다.

 몇 년 전 미국에는 의료보험 없이 위태롭게 살아가는 빈곤층이 4000만 명을 헤아렸다. 연금은 언감생심, 실업수당은 기초생계비의 절반도 안 됐다. 편모 가정에 지급되는 가족지원금을 받으려면 위장이혼이라도 해야 했다. 최강국 미국의 모습이 이랬다. 그래서인지 자유시장론자 저격수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의 『진보의 양심』이란 책이 주목을 끌었다. 미국이 진정 제국다운 면모를 갖추려면 사회보험 확대가 급선무라는 것, 그는 뉴딜정신의 완성을 주문했다. 사회보험은 연금, 의료, 실직, 산재보험 같은 기본적 생계안전망이다. 지난해 오바마가 주도한 의료개혁은 그에 대한 작은 답이었다.

 ‘과잉복지’ 독일과 ‘과소복지’ 미국의 개혁정치가 주로 사회보험에 집중되어 있다면, 한국은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가? 자칭 선진국 말고 진정한 품격을 갖추려면 한국은 어떤 복지개혁에 나서야 하는가? 민주당이 야심 차게 빼든 ‘무상복지’는 그 정답인가, 아니면 어렵게 쌓은 우리의 복지제도를 혹시 망가뜨릴 독인가? ‘복지전쟁’을 보면서 국민들이 헷갈리는 질문이다. 이 ‘무상’이란 코드는 분명 내년 초 개막될 대선정국을 달굴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복지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형 정치에 근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민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무상복지 발상에 비판이 쏟아질수록 민주당은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릴 전망이고, 담론이 무성할수록 한국의 복지현실은 조금씩 개선되어 나갈 것이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과거 선진국이 그랬다. 좌파의 무리한 확대 주장과 우파의 좀스러운 비용절감 기조가 격렬하게 충돌했는데, 그 결과는 언제나 복지의 점진적 확대로 마감되었다. ‘복지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민주화 20년 만에 드디어 복지국가의 자랑인 ‘무상복지’ 개념이 한국에 출현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만, 그것도 잠시, 마음이 심란해진다. 부실한 사회보험을 외면하고 부자 국가들의 쟁점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상복지엔 납세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은 ‘평등과 연대’를 내걸고 국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법인세 60%, 소득세 40%에 달하는 세금폭탄을 납세자들은 사회통합을 위해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총 16조원이 소요된다는 민주당의 무상복지안엔 정작 세금 얘기가 빠졌다. 소모성 사업예산을 전용하고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충분하다는 논리인데, 한두 번이야 가능하겠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다. 50조원으로 추정되는 실제비용은 도리 없이 납세자의 몫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무상복지안은 ‘세금 50조원 더 내주실래요?’다. 유럽처럼 납세자들이 의기투합해 표를 주면 논란은 끝난다. 그런데 어림잡아 가구당 400만원, 경제활동인구 1인당 250만원씩을 더 내라면, 물러설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사회보험이 부실한 한국에서 ‘무상’은 여전히 성급한 꿈이다. 공짜 밥은 별로 시급하지 않고, 공짜 의료와 보육은 중요하나 더 절박한 문제가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절대빈곤층 250만 명, 근로빈곤층 410만 명, 저소득층 400만 명, 줄잡아 1000만 명이 가난·질병·실직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 말이다. 인구의 20%,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아 연금은 물론 고용보험, 산재 혜택도 받지 못한다. 국민기본권이 없다. 이들에겐 무상복지보다 사회보험이 더 절실한 것은 물론이다. 1000만 명 빈자(貧者)를 버려두고 부자(富者)에게도 준다는 무상복지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어쩐지 한심스러워 보인다. 반갑지만 심란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무상급식을 주민투표로 결판내야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을지 모르겠다. 좀 우스꽝스럽다. 차라리 의무교육인 중등교육에 등록금을 없애는 게 순서 아닐까? 1조3000억원 적자에 빠진 건강보험에 무상의료를 무작정 떠넘기는 것은 무모하고, 먹고살기에 지친 하위 소득계층에 대학등록금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생뚱맞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인구의 급감 추세를 생각하면 제일 그럴듯한 게 무상보육이다. 무상복지가 산의 9부 능선에 있는 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겨우 3부 능선쯤에서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기왕 복지에 달려들었으니 우리의 처지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 달라.

송호근 서울대 교수·

[칼럼] 보편적 복지 논쟁-중앙일보

[칼럼] 보편적 복지 논쟁-[중앙일보] 입력 2010.10.27 00:28

부유층 노인에게도 지하철 무임승차권을 주는 게 옳은가. 최근 이 문제를 제기한 김황식 국무총리의 발언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보편적 복지론자들은 모든 노인에게 무임승차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노인에게만 허용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양측의 논리를 소개한다.

찬>  선택적 복지는 사회를 양분

보편적 복지란 복지제도상의 급여를 소득이나 자산 조사를 거치지 않고 필요한 이에게 지급하는 복지정책의 기조를 말하며 선별적 복지와 대조된다. 그간 우리나라의 저급한 복지제도는 공공부조 영역에서는 물론 사회복지시설 입소를 비롯해 장애인수당, 경로수당, 한부모가정수당, 보육료 등 대다수의 복지지원에서 가구 소득을 우선적으로 따졌다. 그 결과 최저생계비 수준 자체 또는 그 언저리 어딘가를 기준선으로 삼아 그 이상의 소득을 누리는 가구에는 복지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것을 상식으로 삼아왔다. 건강보험이나 연금과 같은 사회보험만이 여기에서 예외되는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소위 중산층으로부터 ‘도대체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했다.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첫째 이유는 바로 중산층이라고 해서 생활상의 위기로부터 예외일 수 없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광풍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우리네 삶은 언제라도 해고와 도산의 위험에 놓여져 있다. 교육과 의료, 주거, 육아를 자신의 소득으로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빈곤계층에 대한 집중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결국은 비용효과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빈곤계층을 가려내기 위해 조사하고, 끊임없이 이들의 자산을 추적하는 과정에 직·간접적 비용이 초래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들을 선별해낸다 해도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존재라는 낙인감을 덧씌우게 돼 이들의 문제조차 근본적으로 풀어내기 어렵게 된다.

 셋째, 선별적 복지로는 ‘받는 자’와 ‘주는 자’로 양분되는 사회를 만들게 되고, 결국 사회통합을 위해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또한 주는 자는 자신을 위한 지불이 아니므로 재원의 조달에 소극적이게 돼 복지재정은 확대되기 어렵고, 가급적 복지대상자를 철저히 선별하도록 주문하게 되며, 그것이 부메랑이 돼 스스로에게 복지 요구가 발생해도 받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의 골을 만들게 된다.

 넷째로 보편적 복지는 예방적·사전적 대응책이라는 측면에서 비용효과적이다. 결국 인간의 삶에 생겨난 생채기는 그 후유증이 깊고 길어 완벽한 치유가 불가하다. 한번 손상된 영혼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전적이고도 예방적인 접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요 비용효과적이며 나아가 사회효과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모든 정책을 보편적 복지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나라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사회에서 가장 중추적인 욕구에 대해서만 보편적 복지로 접근하면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급여를 모두에게 주되, 소득에 따라 차별적으로 급여를 조정할 수도 있다. 또한 재원 걱정도 할 필요 없다. 결국 조세체계가 정상적으로 발동하면 여유 있는 계층에게는 과세를 통해 다시 환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못사는 노인에게 주지 나에게 왜 경로수당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독백하시는 어르신들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 정녕 못사는 동료 노인에게 낙인감을 주지 않게 되고 자신의 것은 세금의 형태로 다시 환수되기 때문이다.

 향후 우리의 아이들이 ‘나는 복지국가의 자식’이라고 고백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그런 모습이 보편적 복지를 통해 가능하길 기대해 본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학교 교수


반>  젊은 세대, 저소득층 오히려 피해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그 중심에 보편적 복지론이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을 내세워 재미를 본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당헌(黨憲)에까지 포함했다. 그러자 정부·여당도 이에 질세라 친(親)서민과 공정사회를 명분으로 빈곤층을 넘어 복지를 확대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어젠다의 영순위가 복지국가 이념인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 같은 복지 범위의 확대는 여러 가지로 걱정스럽다. 복지정책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세금부담을 늘리고 정부 부채의 증가를 부른다. 이는 경제의 침체를 야기하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와 저소득층의 몫으로 남게 된다. 과잉 복지의 폐해는 그동안 이론과 경험이 또렷하게 입증됐다.

 복지이론가들은 보편적 복지의 근거로 사회적 기본권과 사회적 책임론, 공동체주의, 인간의 존엄 등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이런 복지이념의 철학적·윤리적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적 책임론은 인류학적으로 매우 의심스러운 인간을 전제하고 있다. 개인의 경제적 실패를 모두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인간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발전도 사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기본권이란 것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개념을 고안한 의도부터 온당하지 못하다. 정부의 구호 대상이 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니까 이를 떳떳한 일인 것처럼 꾸며서 개인의 존엄과 자긍심의 상실을 막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생산활동에 의존해 사는 것을 당당한 일이라고 믿게 하는 것을 어떻게 건전한 이념이라고 하겠는가. 사회적 기본권만으로는 복지수혜자의 자긍심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게 되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한 개념이 보편적 복지다. 사회구성원 전부를 복지수혜자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복지가 ‘필요 없는’ 사람들도 마치 필요한 것처럼 ‘거짓 행동’을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론적 결함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사회통합이다. 거짓 행동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사회구성원을 복지수혜자와 복지비용부담자(복지 비수혜자)로 구분하면 사회가 분열되니까 사회가 분열하지 않으려면 복지가 필요 없는 사람들도 억지로라도 복지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멋진 개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논리가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온 카드가 공동체주의다. 모든 사람은 노령, 실업, 건강, 빈곤과 같은 위험에 똑같이 노출돼 있으므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주장은 오늘날의 거대한 열린 사회를 폐쇄된 소규모 사회로 착각하는 치명적인 우(遇)를 범하고 있다.

 이처럼 매우 취약한 윤리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보편적 복지가 불러올 결과는 치명적이다. 즉 보편적 복지는 소중한 사회적 자본인 책임 의식과 독립심을 갉아먹고, 국가 지원에 의지해 살아가려는 복지 의존심을 강화한다. 자기 책임감의 상실이야말로 영국병과 독일병으로 불렀던 복지국가의 대표적 병폐다.

 진화이론은 인류가 척박한 원시사회를 극복하고 오늘날 자유와 번영의 열린 사회를 이룰 수 있게 한 것은 사회적 책임을 자기책임으로, 의존심을 독립심으로 대체한 결과라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정치권은 이제 근거도 희박한 보편적 복지의 허상에 매달려 헤매지 말고,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복지 혜택을 집중하는 잔여적 복지가 바른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학


다른 의견>  맞춤·융합의 한국형 복지 새 패러다임을

1960년대 초 이후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주로 일본의 제도를 우리 현실에 맞게 수정·도입하는 형태로 발전돼 왔다. 60년대 영세민을 위한 생활보호사업, 70년대 의료보험제도, 80년대 국민연금제도, 최근의 장기요양보험제도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사회복지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물론 영국·네덜란드·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의 사례가 있으나 이들 국가의 제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하려면 조세 부담비율을 적어도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려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적 사회복지 패러다임은 경제와 복지가 양립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사회복지 패러다임으로 맞춤서비스, 융합서비스 그리고 혁신의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이제까지 우리의 복지 정책은 취약계층에 획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류를 이뤄 왔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생활보호제도가 대표적 사례이고, 대다수의 노인 및 장애인 대책 역시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에는 무료로 제공하는 급식과 보육서비스가 시급하지만 중산층 이상에는 공교육의 질 개선과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질 높은 보육서비스가 보다 중요한 욕구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된 복지 재정을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모두 사용해 공교육과 보육서비스의 질 개선에 사용할 재정이 고갈 난다면 국민 전체의 복지 만족도가 개선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취약계층의 복지수요 역시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사례 관리를 통해 복지 수혜자 각각의 처지에 적합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수혜자의 만족도와 복지 지출의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공급자 위주로 다기화(多岐化)돼 있어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둘째, 각종 복지 시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복지와 의료는 물론 고용 및 교육을 융합하는 사업의 추진으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90년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추진한 ‘workfare’가 바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이를 채택했으나 아직 큰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칸막이 행정’으로 인해 각종 복지사업을 관장하는 부처 및 부서 간 벽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다. 같은 부처에 속한 복지와 보건이 융합되지 못하고 있고, 부서가 다른 복지와 고용 및 교육사업이 완전히 따로 추진되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중앙에서는 총리실과 청와대 차원의 통합조정 노력이 강화돼야 함은 물론이고 복지 정책의 시행 주체를 중앙에서 지방으로 넘겨 지방정부 책임하에 융합적 복지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는 복지 행정체계를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

 사회복지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혁신을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대다수의 경우 국가 또는 특정기관이 독점 또는 과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혁신하려는 노력으로 소비자를 감동시키기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복지 종사자와 관련 공무원들에게 경영마인드를 심어 주는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또 사회복지 분야의 지배구조를 보다 경쟁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아울러 전개돼야 한다. 바우처제도의 도입으로 복지서비스 공급자 간 경쟁을 유도하고, 공공이 공급하던 사회서비스를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대행하게 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인 추진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혁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풍토가 사회복지 분야에도 조성된다면 복지 정책과 재정의 효율성이 제고됨은 물론이고 국민의 복지 만족도 역시 크게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

성과 높이려면 외부 인재 영입보다 내부 출신을 리더로 키우는 게 낫다

성과 높이려면 외부 인재 영입보다 내부 출신을 리더로 키우는 게 낫다

[중앙일보] 입력 2010.10.27 00:06 / 수정 2010.10.27 00:06

브라이디 패닝 보스턴컨설팅그룹 인사담당 수석고문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외부 인력을 끌어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내부 출신을 리더로 키워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외부 영입과 내부 육성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리더 확보 방법일까. 브라이디 패닝(사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인사담당 수석고문은 후자를 강조했다. 25일 방한해 본지와 인터뷰한 자리에서다. 최근에는 좋은 성과를 내는 리더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다 내부 직원을 리더로 키워내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는 20년 이상 제너럴일렉트릭(GE)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인사 전문가다. 그는 BCG와 세계인사관리협회연맹(WFPMA)이 세계 109개국 기업체 임원 5500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종합해 발간한 ‘불확실한 시대의 인사 전략’ 보고서를 바탕으로 리더 양성과 리더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특히 리더 양성과 관련, “매출·영업이익 등 성과가 높은 회사에선 리더의 70%를 내부 출신으로, 성과가 낮은 회사에선 13%를 내부 출신으로 채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그는 “설문 대상 임원 중 56%가 현재 리더의 뒤를 이을 인재가 없다고 답했다”면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숙련된 리더가 부족해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래가 유망한 젊은 직원들이 리더로 클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리더십에 더욱 목마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다른 나라는 ‘인력 관리’를 가장 중요한 인사 관련 이슈로 꼽았지만 한국은 ‘직원의 리더십 개발’이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반면 ‘인건비 관리’ ‘구조조정’ 등은 관심이 약한 이슈로 꼽혔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더를 키우기 위해 많은 회사에서 시행하는 ‘경력 개발 관리 프로그램’은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1년에 한두 차례 상담하는 데 그치는 등 형식적으로 경력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좀 더 자주 상담하고 꼼꼼하게 체크해 직원에게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직원들이 책임지고 일할 수 있도록 활동 영역을 넓히고 ▶성과가 좋은 직원이 고속 승진할 수 있도록 하고 ▶롤모델이 될 만한 리더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리더를 잘 길러내는 회사로 꼽은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직원에게 높은 보상을 해 줄 뿐 아니라 많은 기회를 줍니다. 끊임없이 도전할 만한 과제를 던져줌으로써 직원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죠. 최고경영자(CEO)가 신입사원과 대화하는 등 회사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리더십을 배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김기환 기자(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