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검찰·법원이 너무 가까운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다

경찰·검찰·법원이 너무 가까운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다[중앙일보] 입력 2012.02.03 00:00 / 수정 2012.02.03 00:00

 
학생들은 그 선생님을 ‘법자(法者)’라고 불렀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별명이 생생하다. 학생주임이셨기 때문이다. 휘하에 지도부 학생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아침마다 교문에 진을 치고 학생들의 교복·머리 상태를 점검했다. 법자가 도사리고 계신 지도부실에 불려가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빠따’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자에게는 원칙과 금도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학교 담을 넘어 막걸리를 마시고 들어온 학생,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걸린 학생들을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고 빠따로 해결했다. 유·무기 정학에 해당하는 교칙 위반도 ‘더 많은 빠따’로 처리했다. 생활기록부에 빨간 줄을 그어 내보낼 수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학생들이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 벌이다 경찰서에 잡혀가면 어떻게 해서든 빼내왔다. 대신 매서운 빠따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기꺼이 승복했다. 요즘도 고교 동창들을 만나면 법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정부가 6일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찰청도 중요한 몫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김숙진 경정에게 전화해 살짝 커닝을 했다. 지금 경찰청에만 설치돼 있는 학교폭력 대책팀을 전국 16개 광역시·도로 확대한다고 한다. 땅이 넓은 경기도는 두 곳을 두어 모두 17개 통합지원센터가 3월 2일 개소식을 열고, 신고 전화번호도 ‘117’로 통일하기로 했다. 경찰에 접수된 학교폭력 신고는 올해 1월에만 616건. 하루 평균 20건이다. 지난해엔 하루 평균 0.8건이었으니 엄청나게 늘었다. 전국의 학교에서 법자는 사라지고 경찰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청소년 폭력은 날로 강도가 세지고 연소화하는 추세다. 인권조례 덕분에 ‘사랑의 매’조차 추방됐으니 더 이상 학교 자체 해결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물론 경찰도 형사 처벌을 능사로 삼지는 않는다. 학교폭력을 처벌대상과 선도대상으로 나눠 처리할 방침이다. 그래도 씁쓸함이 남는다. 학생도 경찰, 선생님도 경찰, 학부모도 경찰을 찾는 세태가 과연 교육적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권위주의 시대에나 통했던 법자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경찰을 부르기 전에 법자 역할을 대신할 다른 권위나 완충장치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경찰은 최악의 경우 등장하는 마지막 처방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경찰서 문턱이 너무 낮으면 결국에는 국민 모두가 손해 보게 되지 않을까. 하긴, 나쁜 의미에서 문턱 낮아진 곳이 어디 경찰뿐인가. 툭하면 고소·고발을 일삼으면서 수틀리면 조롱까지 해대는 법원도 문턱이 엄청 낮아진 셈이다. 경찰·검찰·법원이 너무 만만하고 친근(?)해진 세상은 결코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해외 토픽에 등장할 아침 급식

해외 토픽에 등장할 아침 급식[중앙일보] 입력 2012.02.07 00:00 / 수정 2012.02.07 00:00

– 이상언 런던 특파원
 

오전 8시, 잠이 덜 깬 표정의 학생들이 등교한다. 교실에서는 배식 준비가 한창이다. 학생들은 차례대로 식판을 받아들고 일사불란하게 식사를 한다. 곧이어 1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아침 급식이 이뤄지는 한국의 학교를 상상해 봤다.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들이 제안한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의 모습이다. 외신들은 이 진풍경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자율학습’을 마치고 어둠 속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을 신기하게 봐온 그들은 “이제는 아예 아침 식사까지 단체로 학교에서 한다. 집에 다녀온다는 표현이 더욱 실감난다”고 소개할 것 같다.

 “미국·영국·스웨덴에는 이미 아침 급식이 활성화돼 있다”고 의원들은 주장했다. 살펴보니 ‘활성화’라고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미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이뤄져 왔을 뿐이고, 스웨덴에서는 원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지만 단체 급식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아침 급식이 가장 일반화된 곳은 영국 웨일스 지방이다. 2003년 지방의회 선거 때 노동당 공약으로 채택돼 이듬해 시작됐다. 당초 계획은 2년 안에 1600여 개의 웨일스 지역 전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의 반대, 식사 준비와 배식의 어려움 등으로 난항을 겪어 아직도 1000개가량의 학교에만 도입됐다.

 

 웨일스 의회 노동당 의원들의 취지는 ‘불평등 해소’였다. 논리는 이랬다. “가난한 집 자녀 상당수가 아침을 거른다. 그래서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다. 식사를 건너뛰니 몸이 허약해져 결석도 잦다. 결국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된다. 그렇다고 저소득층 아이에게만 아침식사를 주면 ‘낙인’이 된다. 따라서 부모가 거부하는 집을 빼고는 모두에게 아침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급식 실시 뒤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가 여러 편 나왔다. 아침을 거르는 비율은 분명히 낮아졌다. 과일 섭취 등으로 학생들의 영양 상태도 다소 좋아졌다.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의 수업 태도 개선이나 학업 성적 향상은 입증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용 대비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는다. 교사 단체도 “차라리 그 돈으로 수업에 뒤처지는 학생을 별도로 지도할 교사를 충당하자”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아침을 거르는 초·중·고 학생이 37%다. 그중에는 가난하거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못 먹는’ 학생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1분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 속에서 버티다 허둥지둥 뛰어나가는 학생일 것이다. 의원들은 아침 급식이 “국가 교육경쟁력 차원에서의 대책”이라고 말했다. “밥 먹여서 공부 더 잘하게 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학원 때문에, 부모의 늦은 귀가 때문에 한국에선 그나마 아침이 가족이 마주할 수 있는 때다. 그 시간마저 ‘경쟁력’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무리 급조된 공약이라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하루 3시간 쉬는 서울 초등생 `사실상 고딩’

하루 3시간 쉬는 서울 초등생 `사실상 고딩’

  • 연합뉴스
  • 입력 : 2012.02.05 13:20 | 수정 : 2012.02.05 15:20

    “맞벌이 가정 늘고 학부모 조기학습 열망 탓”
    운동시간 태부족…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서울지역 초등학생의 평일 여가가 고등학생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2학기 서울지역 초중고생 1천745명을 조사한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의 체육활동 참여 실태연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평일 평균 여가는 195.6분으로 고등학교 평균(195.2분)과 사실상 같았다.

    초등학생은 고등학생보다 정규수업 시간이 적지만 그만큼 학원, 방과후학습 등 과외 활동이 많아 대학입시 준비생만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중학생의 평일 평균 여가는 241.2분으로 초등학생보다 오히려 45분가량 많아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자유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휴일 평균 여가는 중학생이 487.3분, 초등학생 442.5분, 고등학생 405.1분 순이었다.

    여가는 가정의 소득 수준에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소득층 학생의 평일 평균 여가는 평균 229.2분으로 일반 가정의 학생보다 약 15분가량 긴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말에는 반대로 일반학생의 여가(451.5분)가 저소득층 학생(445.9분)보다 더 길었다.

    대부분의 여가는 학급을 불문하고 운동이나 취미활동이 아닌 공부를 위해 재투자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초등학생들은 하루 평균 208.1분의 여가를 공부를 위해 사용한다고 답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여가 중 공부시간도 각각 평균 196분, 193분으로 집계됐다.

    반면 여가 중 학생들의 운동시간은 공부시간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운동시간은 69.9분이었으며 중학생(51.1분)과 고등학생(43.3분)은 그보다 낮았다.

    여가 중 게임시간은 초등학생이 84.4분,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각각 81.1분, 68.3분으로 운동시간보다 조금 길었다.

    이처럼 서울지역 초등학생들이 바쁜 일상에 쫓기는 데에는 조기학습에 대한 부모들의 과도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면서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원을 전전하며 생긴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부족해진 현실에 지나친 사교육 열망이 더해져 나타난 결과”라며 “이는 전인교육이 박탈당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대안교육연대 관계자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기초학력을 위한 인지학습이 전부가 돼야 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라며 “초등학생은 뛰어노는 것만으로 충분히 ‘앎’의 과정을 이행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했다.

    美 성적나쁜 학교 예산 깎자, 교사가 점수 조작

    美 성적나쁜 학교 예산 깎자, 교사가 점수 조작

  • 뉴욕=김신영 특파원 (조선일보)
  • 입력 : 2012.01.06 03:19

    美낙오학생 방지법 10년… 교육개혁 실험 왜 실패했나
    공립학교 수학 학력 평가해 기준미달 땐 지원끊는 방식, 음악·미술 시간 축소 부작용… 열등생들은 퇴학시키기도
    “학교평가 필요” 인식은 확산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 있는 한 공립초등학교 교사들은 얼마 전 교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형편없으므로, 교사들은 모두 수학에 집중해주십시오. 올해는 예산 책정에 매우 중요한 해라서 텍사스주 일제고사 수학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곤란합니다.” 이 학교는 수학 시험 준비를 위해 음악·미술·과학 과목 시간을 크게 줄였다.

    미국이 추진한 사상 최대의 교육 개혁 프로젝트로 꼽히는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이 8일로 도입 10년을 맞으면서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1월 8일 서명한 낙오학생방지법은 초·중학교는 매년 1회, 고등학교는 재학 기간 중 1회 주 정부가 마련한 일제 학력시험을 치러 그 결과로 학교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교육 개혁 조치다. 성적이 좋은 학교는 예산 증액 등 특혜를 받지만, 성적이 떨어질 경우 학생에게 전학 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연방정부가 지급하는 예산이 삭감되는 등 징계에 처해진다.

    낙오학생방지법 회의론자들은 ‘인종·소득계층 간 학력 격차를 해소한다’는 이 법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미국 교육통계국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미국 초등학교 4학년 흑인 학생의 수학 성적은 500점 만점에 평균 222점으로 백인 학생보다 26점 낮았다. 이 격차는 2003년과 비교해 단 1점 줄어든 것이다.

    낙오학생방지법은 또 예산 삭감을 두려워한 일부 교사들을 시험 부정행위로 몰아넣었다. 지난해 7월 전모가 드러난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시험 성적 조작에는 44개의 공립학교, 178명의 교사가 연루됐다. 이들은 학생들이 적은 오답을 지우고 정답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학력시험 성적을 올렸고, 일부 학교 교장들은 이를 발설하는 교사를 해고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당시 조지아주가 발표한 감사 보고서는 광범위한 부정행위의 원인을 “낙오학생방지법의 기준에 따라 학력 평가 점수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3년 동안 미국 50개 주 중 30개 주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조작하다가 발각됐다. 2010년 뉴욕시에선 학교 평균 성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학교들이 수천 명의 문제 학생을 학교에서 퇴학시켜 문제가 됐었다.

    시험에 집중하는 교육으로 예술·문학·과학 등 전인교육에 필요한 과목의 수업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이 경우 개인 교습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보다는 저소득층 자녀가 타격을 받게 된다. 지난해 11월 교육 관련 비정부기구 ‘커먼 코어’ 설문 결과 66%의 교사가 “낙오학생방지법 때문에 예체능·과학·사회 과목 수업 시간을 줄였다”고 답했다.

    낙오학생방지법이 ‘학교 평가’라는 개념을 자리 잡게 한 점은 성과로 꼽힌다. 워싱턴DC에 있는 RAND 연구소 로라 해밀턴 박사는 “낙오학생방지법은 공립학교와 교사도 평가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전파했고 각 교육청이 학생들의 탄탄한 학력 관련 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유도했다”고 전했다.

    ‘자유’ 못 가르치는 인권조례

    ‘자유’ 못 가르치는 인권조례

    [중앙일보] 입력 2011년 12월 30일

    문용린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

    학생인권조례안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취임한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그리고 서울특별시에서 마침내 그 안이 통과돼 본격적인 실행을 앞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미숙한 조례안이다. 조례안이 거칠어서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첫째는 학생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 J S 밀은 『자유론』의 절반을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에, 나머지 반은 자유를 제한하고 한정해야 할 이유와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자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한 논의를 병행해야, 실질적인 자유의 보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학생조례안들은 학생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는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으나, 그 자유의 한계와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조례안에 허용된 자유가 남용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함과 손해를 주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재산이나 형사상 책임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가. 형법이나 민법 등 상위법으로는 대다수가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면 학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나. 교사와 학교가 져야 하나.

     법적으로는 친권자(특히 14세 미만인 경우)가 책임을 지게 돼 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학부모가 순순히 책임을 떠안을 리 없다. 결국 학부모와 교사, 학교 사이에 끝없는 시비가 벌어질 것이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일을 벌여놓고는, 막상 책임질 일이 생기면, 말리지 않은 교사와 학교 탓을 하게 될 것이다. 교사와 학교는 학생을 막고 제지할 권한도 없어서, ‘그내두’(그냥 내버려 두는) 교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결국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고, 이렇게 교사-학생-학부모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교사와 학교의 손발은 묶어 놓고, 학생의 자유만 확대한 이 조례안의 미숙성 때문에 곧 벌어질 일들이다.

     두 번째는 학생의 자유에 대한 교육학적 성찰이 부족하다. 유사 이래 자유를 다룬 어떤 사상과 철학도 성인(成人)의 자유와 어린이, 청소년 등 미성년자의 자유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두 가지 격률(格律)이 있다. 하나는 ‘타인의 자유와 안전을 해치는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안전을 해치는 자유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격률이 지켜지려면 최소한의 정신적 성숙과 판단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J S 밀도 미성년자에 대한 자유 제한을 이야기했고, 우리 민법(4, 5조)도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미숙하다고 규정해, 행위무능력자로 간주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두 가지 격률을 지키면서 자유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생들은 현재의 자유도 누려야 하지만, 미래에 자유를 올바르게 향유할 능력과 품성을 훈련 받고 연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생조례안의 미숙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의 현재적 자유 확대에만 집착하다가,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할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교육의 본질은 외면하고 만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주형과 파형의 역설에 있다. 자유를 준다고 자유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규율 있는 제한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배운다. 이 조례안들은 학생들의 자유 확대만 이야기했지, 이 자유를 옳고 바르게 훈육하고 주형시킬 교사와 학교의 자유와 책임과 열정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이 조례안이 교육의 본질을 비껴가고 있는 부분이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

    우리 교육, 우리 아이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아파트 투신자살 김모군의 유서 全文

    /뉴시스

    같은 반 학생들의 시달림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학생 김모(14·대구 수성구)군이 남기고 간 편지에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절절히 묻어났다.

    아래는 유서 전문.

    ◇유서 전문

    제가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하고 ○○○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나, 용가리, 만두, 스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3월 중순에 ○○○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키우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에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제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친구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한테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빡지까지 써줬어요. 게다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때리고 나중에는 ○○○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때리는 양도 늘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문제 다 찍고, 돈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때리고, 우리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또 밀레 옷을 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져가고, 매일 나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하고, 말도 안 듣고 뭘 사달라는 등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또 요즘 들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는 전화를 했을 거예요.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저, 진짜 죄송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남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협박을 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쯤에 ○○○이나 ○○○이란 애들이 자세하게 설명해줄 거예요.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매일 화내시지만 마음씨 착한 우리아빠, 나에게 베푸는 건 아낌도 없는 우리엄마, 나에게 잘 대해주는 우리 형을 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에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든 척 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번도 안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12월 19일 전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저로서는 억울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그날 짜증난다며 제 영어자습서를 찢고 3학년 때 수업하지 말라고 ○○○은 한문, ○○○는 수학책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5시 20분쯤부터는 아까 한 이야기와 똑같아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죄송해서 자살도 하지 않았어요. 어제(12월 19일) 혼날 때의 엄마의 모습은 절 혼내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대부분의 학교친구들은 저에게 잘 대해줬어요. 예를 들면 ○○○, ○○○, ○○○, ○○○, ○○○, ○○○, ○○○, ○○○, ○○○, ○○○, ○○○, ○○○, ○○○, ○○○, ○○○, ○○○ 등 솔직히 거의 모두가 저에게 잘해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주고, 나에게 잘해주던 우리 형, 고마워.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학교에서 잘하는 게 없던 저를 잘 격려해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걸 먹게 해준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형.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나게 했지? 미안해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갈 거 같지만 우리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감사와 감동’을 가르치지 않는 무상 교육

    [편집자에게] ‘감사와 감동’을 가르치지 않는 무상 교육

    • 손지명 영상음악인
      일 때문에 초등학생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지 못할 때가 많다. 엄마로서 늘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 날 아침을 못 먹은 아이가 점심시간까지 얼마나 배고플지 생각하니 너무 측은해서 2교시 후 쉬는 시간에라도 먹게 하려고 간식을 사가지고 학교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물론 내 아이만 먹여서는 안 되겠기에 반 아이들 전체에게 나눠줄 분량으로 파이와 요구르트를 준비해 갔다. 담임선생님께 먼저 갑작스레 온 무례를 사과하고, 우리 아이처럼 아침을 굶고 온 아이들이 있을 테니 2교시 쉬는 시간에 나눠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선생님의 반응은 좀 차가웠다. 빈말이라도 감사하다는 말은 없었고, 오히려 “이렇게 나오시면 없는 집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하셨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누가 사왔는지 말하지 않고 나눠주는 것으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교 후 집에 온 아이에게 간식을 잘 먹었는지 물어보니, 오후에 선생님이 나눠주셨다고 했다. 아이들 모두 맛있게 먹기는 했는데 오늘따라 왜 주셨는지 생각은 안 해봤단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감사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 얼마나 큰 것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밤새 직장 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온 엄마가 토막잠도 마다하고 준비해 온 사랑의 간식임을 아이들은 알 길이 없었다. 간식을 먹었다는 포만감 외에 아이들이 가슴으로 느낄 사랑의 감동과 감사는 없던 일이 되었다. 아이들을 잘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작은 호의에도 감사할 줄 알고, 또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나 평소 거저 받는 일에 익숙해져 감사함을 모르고 자라난 아이들에게서 이런 성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무상으로 지급되는 것에 익숙한 공산국가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말이 바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개인적인 친절과 호의에도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아무튼 ‘먹는 것’으로 포장된 ‘평등지향의 교육’은 아이들이 장차 작은 일에도 감사를 느끼며 따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보다, 남만큼 갖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망과 분노를 갖고 사는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먹는 일보다 진정한 사람됨에 매진하는 우리의 교육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삶의 향기] 나는 교사다

    [삶의 향기] 나는 교사다

    [중앙일보] 입력 2011.06.23 00:19 / 수정 2011.06.23 00:19

    생활기록부에 ‘온순’이란 글자가 빠지지 않던 나에게도 폭력으로 얼룩진(?) 시절이 있었다. 청년문화와 군사문화가 동거하던 1970년대 말.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모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했다.

     교단에서 보니 교실은 동물원이었다. 순한 양도 있었지만 늑대, 기린, 사자도 보였다. 제자들도 내가 어떤 동물인지 간파했을 것이다. “침묵을 강요할 순 없다. 다만 각자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조련하리라.”

     착한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내를 시험할 심산인지 꾸준히 재잘대는 아이들이 있었던 거다. 매를 들었다. 뺨 한 대 때리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효과도 있었다. “이건 사랑의 매야.”

     현실은 영화와 닮아간다. 삐딱한 자세로 일관했던 아이에게 일격을 가했는데 그의 입에서 불량언어가 튀어나왔다. 이럴 때 밀리면 끝장이라는 건 상식. 난 거칠게 몰아쳤고 급기야 녀석은 가방을 들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업은 엉망이 됐고.

     문제는 종례시간에 터졌다. 반장이 담임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슬며시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은 아이는 교무실로 떠밀려 내려왔다. 담임은 내가 중학교 때 수업을 들었던 은사였다. 별명은 메뚜기였지만 강직하기로 소문난 분. “무릎 꿇어.” 매질이 시작됐다. 사고가 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내가 선생님의 몽둥이를 빼앗았다. 아이가 울면서 사과했다. “잘못…했….” 하지만 그 눈물의 성분은 반성이 아니라 반발이었음을 나는 안다.

     며칠 후 수업에서 녀석은 나의 눈을 피했다. 똑바로 앉았지만 마음은 삐뚤어져 있었다. 학기말이 가까울 무렵 운동장 한쪽에서 내가 먼저 사과를 했다. “아직도 미워?”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새나왔다. “처음엔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런 말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눈길 한번 안 주셨잖아요.”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건넨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그가 받는 그것이 사랑이로구나.

     ‘개그콘서트’의 ‘선생 김봉투’라는 꼭지에 말썽만 부리는 아이(홍인규)가 고정으로 나온 적이 있다. 희한한 일을 도맡아 하다가 교사(김준호)가 야단을 치면 샐쭉한 표정으로 고백한다. “관심 받고 싶어요.” 맞다. 그 아이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다만 서로 관심을 주고받는 방법을 몰랐을 뿐.

     심정적으론 지금도 나는 교사다. 선생님들껜 죄송하지만 교실, 아니 교육을 살리려면 먼저 교사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교사가 바뀌면 아이들도 달라진다. 왜 떠드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가 바로 일생에서 제일 떠들고 싶은 시기라는 것. 조용히 주목하는 한 부류의 아이들은 일찍부터 철든 아이거나 나처럼 겁 많은 아이일 개연성이 크다.

     “교단 떠났다고 입 함부로 놀리는구나.” 전직 교사로서 그래도 이 말만은 하고 싶다. 교실에서도 시청률을 올리자. 재미와 감동이 넘치는 수업을 개발하자. 그러기 위해 사회는 교사에게 인내할 시간보다는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잡무라고 불리는 것들을 과감히 줄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 언제쯤일지 모르지만 그 무렵이면 교실에서 ‘사랑의 매’도 종적을 감출 것이다.

    주철환 jTBC 콘텐트본부장

    [교단에서]주5일수업 전면시행에 앞서

    [교단에서]주5일수업 전면시행에 앞서

    [경향신문] 입력 2011.04.11 19:42

     

    한국 학생들은 핀란드 학생에 비해 공부 시간이 2배가량 많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지만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습노동’에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르면 2012학년도에 주5일제 수업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7월부터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5일제를 시행하는 것과 함께 학교도 주5일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주5일제가 전면 실시되면 우리 아이들은 삶과 학습이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인가.

    주5일제를 전면 실시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교육과정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간 220일을 기준으로 하던 수업일수가 190일 수준으로 축소되면 여기에 적합한 교육과정과 교수방법,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기반 등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은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2009 교육과정을 시행하면서 홍역을 앓고 있다. 교육과정을 학교 단위에서 자율로 20% 증감할 수 있도록 하고 집중 이수로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이 교육과정에 따라 국·영·수 교과의 비중을 늘린 학교가 70%를 넘고 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교육과정의 자율성은 입시교육 강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6년부터 토요일이 ‘놀토’와 ‘갈토’로 바뀌면서 학급회의 시간 등 학생 자치활동 시간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교육과정 개편 없이 주5일제가 전면 실시되면 중학교의 경우 매일 7교시 수업을 받게 될 상황이다. 주당 34시간을 줄이게 될 경우 교과별 시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교과별로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5일제 수업이 추구하는 교육목표’를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 실제 2006년부터 부분적으로 주5일제가 실시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교육과정 개편에 반영됐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 우리의 교과부에 해당하는 중앙교육심의회가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학교 운영에 관한 협력자 회의’ 심의 보고서(1992년 2월20일)를 제출하고, 주5일제 도입에 따른 교육과정 목표를 삶과 여유의 교육과정(유도리 교육과정)으로 규정하면서 10여년의 과정을 거쳐 체계적으로 확대 실시해 왔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도 ‘5홉들이 되에 6홉의 쌀을 담는’ 문제가 생겨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5일제 전면 실시가 소모적인 입시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행복한 질 높은 공교육이 될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5일 시대 교육목표의 정립, 교육과정·교과서·교수방법의 재정립, 가정과 사회 교육 시설이 담당할 수 있는 교육의 수준과 방식 등에 대한 엄밀한 실태조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012년이 주5일제 원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에 대해 교과부와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등을 포함한 범사회적 논의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학벌과 학력구조에 아이들을 내모는 무한경쟁교육 체제를 놔둔 채 주5일제를 도입하면 학원가는 토요일 대비 사교육이 판치게 될 것이다.

    주5일제 논의가 벌어지는 시점에 카이스트(KAIST)에서 올해 들어 네 번째 자살한 학생이 발생하고, 그제서야 징벌적 수업료 제도가 폐지된다고 한다.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적 능력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익히는 교육으로 전환될 때 이러한 비극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한만중 | 개포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