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혁신의 역설

R&D 세계 1위인데 생산성은 32위 … 한국도 혁신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2017.01.27 01:00   수정 2017.01.27 01:21

혁신을 열심히 하는데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렸지만 개개인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미국 등 선진국의 고민거리인 ‘혁신의 역설(Innovation Paradox)’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로라면 대선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4차 산업혁명’ 구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ICT분야 혁신 정체기 빠져
투자가 성장으로 못 이어져
전기 발명 같은‘강한 혁신’
4차 산업혁명 위해 꼭 필요

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혁신과 제도 개선을 통한 한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6~2010년 5년간 연평균 2.58%에서 2011~2015년 0.97%로 떨어졌다. 노동·자본 투입 증가분을 빼고 경제성장 요인의 기여도를 총합한 총요소생산성(TFP·Total Factor of Productivity)으로 따져 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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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P가 하향하는 사이 경제성장률도 하락했다. 2006~2010년 한국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약 4%. 2011~2015년엔 2.92%였다. 이 기간 한국의 기술 혁신 수준은 외형상 세계 최상위였다. 2015년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4.23%로 세계 1위, 국내 민간 기업의 R&D 투자액은 첫 5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 R&D 예산도 지난해 19조원까지 증가했다. 그중 3조원 이상이 차세대 성장동력인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투자였다. 한국은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17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2017 혁신지수’에서 4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랐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7개 항목에서 점수를 매긴다. 한국은 R&D 지출액 등 3개 항목에서 1위였지만 생산성은 32위였다.


혁신 노력에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가·기업들이 혁신에 자원·역량을 쏟고 있음에도 생산성 향상은 억제되는 ‘혁신의 역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기술의 혁신 강도가 약해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개선의 원동력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단적인 예로 비행기를 들었다. 비행기는 1960년대 이후론 더 빠르게 날고 있지 않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같은 낙관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충분한 기술 혁신으로 미래의 경제성장을 담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로버트 J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지금은 혁신의 정체기”라고 단언한다. 전 세계가 혁신의 역설을 뚫고 과거처럼 폭발적 경제성장을 하려면 전기·비행기를 발명했을 때와 같은 ‘강한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제조업과 최신 ICT 등의 융합으로 경제·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차세대 산업혁명.

“생활·업무·인간관계까지 바꿀 융합 기술혁명 이미 시작”

[중앙일보] 입력 2017.01.27 01:00   수정 2017.01.27 01:09

4차 산업혁명 ‘전도사’ 슈바프 vs ‘회의론자’ 고든 가상 대담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과 물리·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라며 “그 복잡성을 감안하면 기존 1~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했다. [로이터=뉴스1]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과 물리·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라며 “그 복잡성을 감안하면 기존 1~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했다. [로이터=뉴스1]

클라우스 슈바프(78)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WEF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펴낸 저서 『클라우스 슈바프의 제4차 산업혁명』은 칩거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차기 대권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열독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
인터넷 정보 가치, GDP로 측정 안돼
혁신 속도도 성장률로 파악 힘들어
융합 혁신, 디지털 3차 혁명과 달라
모든 산업에 엄청난 파급효과 올 것

로버트 J 고든(76)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기술 회의론자’다. 그는 저서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Growth: The U.S. Standard of Living since the Civil War(미국 경제 성장의 흥망)』 등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이 생각만큼 큰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음을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기에 앞서 ‘혁신의 역설’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믿는 일각에선 그의 분석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4차 산업혁명은 너무 이상적이며 과장된 개념일까, 아니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진정한 혁신의 길일까. 저서와 기고문, 강연 및 주요 외신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본지가 두 석학의 가상 대담(對談)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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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교수=“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담론 열기가 고조됐다. WEF의 기여도가 높았겠다.”

▶슈바프 회장=“과찬이다. 1~3차 산업혁명은 각각 증기기관·전기·인터넷(디지털)으로 생산의 기계화와 대량화·자동화를 가능케 했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과 물리·생물학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적 융합이 특징이다. 인간의 실생활과 업무 방식,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바꿔놓을 기술혁명이다. 그 복잡성을 감안하면 인류가 지금껏 경험했던 산업혁명과는 한 차원 다를 것이다.”

▶고든=“예의 분류에 따르면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중반 시작된 디지털혁명과 궤적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다. 디지털이 일정 부분 실생활 개선에 기여했음은 분명하지만 그 혁신성이 다소 과장되지 않았나 싶다. 1970년 무렵 이후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실생활 개선의 바로미터라 할 경제 성장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예컨대 1920~70년 미국 노동자의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은 연평균 2.82%였지만 1970~2014년엔 1.62%에 그쳤다. 디지털 최강국 미국에서 과거보다 외려 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진 건 디지털 기술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 바가 생각보다 적음을 보여준다.”

▶슈바프=“스마트폰의 경우만 봐도 ICT가 우리 실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꿨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세계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공유경제 플랫폼 등은 스마트폰과 가입자들, 정보 제공자, 데이터를 통해 제품·서비스의 소비 과정을 재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고든=“스마트폰은 인간 활동 중 유흥이나 통신·정보의 수집과 처리라는 제한된 영역에서만 혁신적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과거 전기나 자동차·비행기 같은 발명만큼 실생활 전반의 개선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은 가져오지 못했다. 2004~2012년만 놓고 보면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고작 1.3%였다. 또 미국 내 하위 90% 계층의 연평균 실질소득증가율이 1948~72년 2.65%에서 1972~2013년 -0.17%로 줄어들 동안 상위 10% 계층은 같은 기간 2.46%에서 1.42%로 변화하는 데 그쳤다. 부자들은 선방한 셈이다. ICT가 정보를 보다 평등하게 공유할 기회를 제공해 부(富)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시킬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슈바프=“미래는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공저한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 논설위원은 ‘세계 경제 규모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 전반에서 노동 생산성의 연평균 성장률 2% 달성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고 했다. 경제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쪽을 살펴봐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고 밝혀진 산업 부문의 GDP 대비 비중은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노동 생산성이 급성장하는 부문의 비중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의 함정’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 부의 불평등 심화로 흐를 가능성은 경계해야겠다.”
 

“ICT, 전기 발명만큼 큰 경제효과 없어 … 더 강한 혁신 필요”

로버트 고든 교수
디지털 기술 발전, 혁신성 과장돼
생산성 증가율은 도리어 낮아져
1970년 이후 사실상 혁신 정체기
AI ‘21세기의 전기’ 등극할지 주목

로버트 J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에도 생산성 증가율은 떨어지는 등 기대만큼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지 못했다”며 “1970년 무렵 이후 혁신은 정체됐으며 계속 이 수준에 머물면 향후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 TED.com]

로버트 J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에도 생산성 증가율은 떨어지는 등 기대만큼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지 못했다”며 “1970년 무렵 이후 혁신은 정체됐으며 계속 이 수준에 머물면 향후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 TED.com]

▶고든=“어제는 내일을 바라보는 거울일 수밖에 없다(E H 카). 전기는 밤에도 생산활동이 가능케 했다. 전기세탁기와 냉장고는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다. 자동차는 도시화로, 비행기는 전 세계적인 비즈니스 기회 제공으로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이에 비해 TV나 인터넷·스마트폰은 작은 혁신에 불과하다. 지금은 ‘혁신의 정체기’다. 1970년 이후 사실상 혁신이 정체됐다고 봐야 한다.”

▶슈바프=“『제2의 기계 시대』의 저자 에릭 브리뇰프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료 정보의 크나큰 가치가 숫자로 측정되지 않으며, GDP 통계 같은 데서도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여기에도 동의한다. GDP 측정은 종종 무형의 자산에 대한 투자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로 이어지곤 한다. 교수께서 함께 논쟁을 벌였던 조엘 모키르 노스웨스턴대 교수 역시 ‘기술의 혁신 속도는 GDP 성장률 추이만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다. 혁신의 가속도와 파괴의 속도는 이해하기도,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고든=“미국 ICT 가격지수(price index)의 연간 변동률을 보면 73년 -1%대에서 2000년 무렵까지는 점차 낮아져 -13%대가 되기도 했다. PC 보급의 활성화로 관련 가격지수도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약 13년간은 급격히 반등해 2013년엔 40년 전인 73년 수준으로 회귀해 버렸다. 가격지수는 실생활 개선의 정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3차 산업혁명의 파급 효과가 과장된 건 아닐까. ICT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얼마나 다를지 궁금하다.”

▶슈바프=“스마트폰이 처음 나온 2007년 6월 이전엔 어떤 부유층도 그걸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니 그 가격은 무한했다고 봐야 한다. 무한했던 가격에서 정해진 가격으로 내려가는 건 가격지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은 ICT나 제조 어느 한 분야만의 혁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종 기술의 융합·조화에 기반을 두는 혁신이다. 디지털화만을 의미했던 3차 산업혁명과는 다르다. ICT와 제조·서비스업이 결합된 온라인 투 오프라인(O2O) 서비스나 웨어러블 기기가 예다. 새로운 기술 플랫폼은 진입장벽을 낮춰 개인이 부를 창출하도록 하고 근로자의 삶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유전공학처럼 4차 산업혁명의 토대가 될 신기술이 더 많은 실생활 개선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이끌어내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몰고 올 것이란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고든=“결국 관건은 전기 등처럼 경제성장까지 주도할 만한 큰 혁신의 재등장이다. 오늘날 인류가 맞닥뜨린 인구 문제나 부의 불평등은 경제 성장률을 반 토막 낼 만큼 강한 영향력을 지녔다. 이를 상쇄하려면 강한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이 지금 수준에 머무른다면 향후 150년간 경제성장이 반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AI 같은 신기술이 세간의 기대처럼 ‘21세기의 전기’로 등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슈바프=“AI 등을 통한 강한 혁신이 미래에 ‘아이언맨’ 같은 증강인간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성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전 세계에 르네상스를 불러올 대전환기는 이미 시작됐다. 미래를 기대해 보자.”
 

클라우스 슈바프

1938년 독일 출생
스위스 연방공과대 공학 박사
프리부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 유엔개발계획(UNDP) 부의장
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로버트 J 고든

1940년 미국 출생
미국 MIT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 미국 보스킨위원회 멤버
현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적게 일하고 더 잘살게 될 것” vs “부의 불평등 더 심화될 것”

[중앙일보] 입력 2017.01.27 01:00   수정 2017.01.27 01:00

4차 산업혁명은 각종 신기술뿐 아니라 수많은 담론도 양산하고 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강연과 저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담론에 뛰어들어 ‘별들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MIT의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와 앤드루 맥아피 디지털경제연구소 공동창립자는 낙관론자다. 공저한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과거 증기기관을 통한 1차 산업혁명이 인류를 고된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듯 이젠 디지털기술이 정신노동을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이들은 미래의 후손들이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더 적은 시간 일하면서 더 잘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왼쪽부터 에릭 브리뇰프슨, 레이 커즈와일, 누리엘 루비니, 피오나 모턴.

왼쪽부터 에릭 브리뇰프슨, 레이 커즈와일, 누리엘 루비니, 피오나 모턴.

조엘 모키르 노스웨스턴대 교수도 " 원리 이해를 위한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기술 혁신은 지금까지의 어떤 혁신과도 질적으로 다르며,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문제를 해결해 줄 열쇠”라고 했다. 괴짜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는 낙관론자를 넘어 신봉론자에 가깝다. 그는 『특이점이 온다』에서 “놀라운 기술 혁신 속도를 감안하면 2045년께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 모두는 신기술이 강한 혁신의 산물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확신한다.

신중론자 혹은 비판론자들은 이 같은 얘기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전과 비교할 때 기술 혁신 수준에 물음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기술 혁신이 기대한 만큼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피오나 모턴 예일대 교수도 “혁신에 몰두하는 기업도 생산성 유지엔 어려움을 겪는다”며 “초기 혁신으로 일단 지배적인 기업이 되고 나면 혁신에 소홀해져도 고객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혁신 기업의 생산성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낙관론 이면에서 신중·비판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과대평가가 미래 사회를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지면서 경제·사회적 실패를 유발할 수 있어서다. 정보의 비대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공로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공저 『4차 산업혁명의 충격』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미래에는 일반적인 노동·자본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혁신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치 있고 희소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일과 보수는 더 불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이루려면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부의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으니 인재들의 창의적 역량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미래 지향적인 교육 등으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낙관론자(브리뇰프슨, 맥아피)도 이와 의견을 같이한다.

브리뇰프슨·커즈와일 낙관론
“기술 혁신이 저성장 해결할 열쇠
디지털기술이 정신노동 대체할 것”

루비니·스펜스 신중론
“기술 혁신, 생산성 향상 연결 안돼”
“노동자 대신 혁신가 몸값만 오를 것”

‘혁신의 역설’을 문제 제기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난달 보도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WSJ는 기사에서 스탠퍼드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지금보다 많은 수의 연구자가 과거와 동등하게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만한 혁신을 창출해야 한다. 미래 사회가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이제부터) 연구개발(R&D)에 인력과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결국 기술 혁신의 현 수준을 과대평가하면서 안주하기보다는 지금보다 ‘강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계속 주문함으로써 세계 각국이 보다 발전적인 미래 전략을 세우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시선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기술만 개발하고 사업화 지지부진 … 한국, 실속 없는 R&D 강국

[중앙일보] 입력 2017.01.27 01:00

2015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4.23%로 이스라엘(4.11%), 일본(3.59%)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였다. 20여 년 전인 1996년 ‘R&D 투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상대다. 경제활동 인구 1000명당 연구자 수도 13.2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이에 힘입어 블룸버그 등의 최근 주요 혁신지수 발표에서 수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

‘혁신의 역설’ 극복하려면
95% 쏠린 기술개발 투자 분산해
SW 인적·물적 투자 대폭 늘려야
과거 성공 버리고 ‘퍼스트 무버’를

그러나 내실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5년 국내 기업의 전년 대비 R&D 투자 증가율은 2.6%로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저치였다. 믿었던 대기업들의 R&D 규모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같은 해 글로벌 2500대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이 6.6%였던 것과 대조된다. 중소기업 쪽은 사정이 더 안 좋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3년간 기술 혁신으로 신제품이나 크게 개선된 제품을 출시한 중소기업 비중은 전체의 17.1%에 불과했다.

양현봉 KIET 연구위원은 “정부의 R&D 투자가 개발에만 과도하게 집중돼 기업들의 기술 사업화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 R&D 예산의 약 95%가 기술 개발에 집중될 동안 기획·사업화에는 5% 정도만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이 소비자의 실생활 개선과 노동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려면 사업화가 필수지만 다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연구자 1인당 R&D 비용 역시 1억8504만원으로 선진국 대비 하위권에 머물렀다.

혁신의 효율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의 R&D 효율성은 여전히 OECD 내 중위권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OECD도 보고서에서 “한국의 R&D 시스템은 ‘국산화’와 ‘한국형’ 사업에 집착해 비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 뒤떨어지는 R&D 효율성은 ‘혁신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단기 실적 내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기존에 잘하던 부문에만 R&D 역량을 집중시키면서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스마트폰·반도체·모니터 등 3대 부문의 수출액이 전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수출에서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R&D와 생산이 일부 하드웨어에 편중됐다.

반면 ICT 중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될 소프트웨어(SW) 부문에 대한 인적·물적 투자는 미미하다. 국내 SW 전문 인력은 2014년 20만 명에 불과했고, R&D 투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R&D 투자액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이래서는 반쪽짜리 혁신일 수밖에 없다. 혁신의 역설을 극복할 만큼의 강한 혁신을 한국이 이뤄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처럼 수동적 ‘패스트 팔로어’ 양산에 머물거나, ICT 분야 접목으로 침체된 기성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데 R&D 투자의 초점이 맞춰진다면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지금보다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한국에선 현실로 나타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기업이 구글·아마존·페이스북을 따라하는 데 급급해 생산성 면에서 뒤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만 앞선 R&D 투자를 할 것이 아니라 나아갈 방향부터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 간 융합과 조화를 목표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김준연 SW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초기 단계라 새로운 혁신이 언제 어디서 출현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최대한 다양한 영역에 뛰어들어 과감한 탐색과 R&D로 신기술을 빠르게 상용화할 때 승산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위해선 기초체력 확보가 필수다. 정부가 미래형 기술 인력 양성과 지적재산권 보호, 글로벌 교류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분석이다. 각종 담론을 토대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보다 거시·장기적인 관점을 형성하고 미래 전략을 세울 때다.

인간의 모든 행위 중에 정치와 교육이 가장 어렵다고 언명한다

근대 최고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아예 인간의 모든 행위 중에 정치와 교육이 가장 어렵다고 언명한다. 둘 모두 ‘한 사회’ ‘한 인간’ 전체를 감당해야 하는 본질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전 생애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삶은 전 생애로 평가받는다. 특별히 삶의 마지막 선택과 모습은 후대에게 가장 길고 강한 그림자를 남긴다.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수 있기에, 노년의 선택이 더 어려운 까닭이다.-박명림 연세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선택과 대한민국

일자리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 내 직업은 괜찮을까

일자리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 내 직업은 괜찮을까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오프라인 산업 현장에 적용되면서 일어난 혁신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대신 인공지능, 로봇의 기술로 업무들이 자동화 되면 위협받는 일자리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화 대체 확률이 높은 직업으로 콘크리트공, 정육원, 행정사무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대로 화가, 사진작가, 지휘자 등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직업은 자동화에 의한 대체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입력 : 2017.01.25 15:10

옥스퍼드大의 면접 질문들

옥스퍼드大의 면접 질문들  

본지 신년 특집 ‘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시리즈를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고 또 적으나마 안도했다. 시험 잘 치는 학생보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학생을 길러내는 학교가 21세기 교육의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똑똑한(smart)’ 교육에서 ‘창의적(ingenious)’ 교육으로 넘어갔는데, 우리나라 수업 방식과 시험문제를 보면 여전히 단순 암기식 교육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몇몇 교수의 수업 방식을 보니 우리 교육도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언론재단에서 각 언론사 수습기자를 상대로 글쓰기 강의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른바 좋은 대학 나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사회생활 시작한 청년들에게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답 있는 질문에는 곧잘 대답한다. 그러나 의견이나 생각을 물으면 다들 입을 닫는다. 예를 들어 “남대문시장에 불이 났다. 언제 어디서 왜 불이 났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 다들 고개를 숙인다. “틀려도 된다. 여러분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러 차례 다독여야 간신히 한두 마디씩 하는데, 상당수는 끝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오답에 대한 응징’이 어떤지 너무 잘 학습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도킨스는 늘 “옥스퍼드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해왔다. 생물학자인 그가 셰익스피어와 올더스 헉슬리를 줄줄 외우고, 70세 축하연에서 자작시(自作詩)를 읊고 즉석 세미나를 연 것이 옥스퍼드에서 그가 배우고 또 가르친 교육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말했다. “강의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이라면 책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요즘은 인터넷도 있다. 강의는 생각을 고취하고 자극해야 한다. 훌륭한 강사가 내 눈앞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어떤 생각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가끔은 난데없이 나타난 멋진 생각을 잡아내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이다. … 우리는 이런 모습을 모델로 삼아서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법과 그 주제에 대한 열정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이라는 지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학교는 더 이상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지식을 해석하고 응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킨스는 옥스퍼드 신입생 면접에서 이런 대화를 했다. “학생의 조부모는 몇 명인가?” “네 명입니다.” “증조부모는?” “여덟 명입니다.” “고조부모는?” “열여섯 명이죠.” “그럼 2000년 전 예수 탄생 시점에는 학생 조상이 몇 명이었을 것 같은가?” 그런 기하급수적 계산으로는 당시 세계 인구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되므로, 옥스퍼드 신입생은 인류가 머지않은 과거에 수많은 공통 조상을 갖고 있던 친척들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도킨스는 “이런 질문에 흥미를 갖고 덤비는 학생이라면 옥스퍼드에서 배울 자격이 있다”고 했다.

옥스퍼드 한 철학과 교수의 면접 질문은 이렇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어떻게 압니까?” 골치 아픈 질문이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창의성을 담당하는 뇌 전두엽을 자극하는 질문이다. 한국 교육도 옥스퍼드처럼 전두엽을 두드려야만 미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창의 교육일

도킨스 “생물학적 진화 아닌 문화적 진화, 그게 인류의 미래”

도킨스 “생물학적 진화 아닌 문화적 진화, 그게 인류의 미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첫 내한해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3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도킨스는 22일 세종대에서 강연을 했고, 25일엔 고려대에서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대담을 할 예정이다. [사진 우상조 기자]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첫 내한해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3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도킨스는 22일 세종대에서 강연을 했고, 25일엔 고려대에서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대담을 할 예정이다. [사진 우상조 기자]

종교와 신을 부정하고,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 간주한 현대과학의 문제적 인물 리처드 도킨스(76)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입증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대중의 호응을 끌어낸 진화생물학자다. 종교계 및 동료 과학자와의 치열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은 전투적 무신론자이자 독설가로도 한 시대를 풍미해왔다.

외부 재앙에 인류 멸망 않겠지만
동식물 감소 등 내부 위협이 문제
AI로봇, 인류 파괴할 씨앗 될 수도
인간 뇌 더 이상 커지지는 않을 것

이번 내한에서 그가 꺼낸 화두는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다.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강연에서 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면서도 특유의 통찰력으로 과학기술의 위험을 경고했다.
 

 
인류는 멸종할까

지구의 숱한 생명체가 사라져왔다. 인류라고 과연 예외일까. 인간의 근원적 불안감에 대해 도킨스는 ‘생존 지속’ 쪽에 무게를 뒀다. 그는 공룡을 예로 들며 “6500만 년 전 거대한 운석과의 갑작스러운 충돌로 수백만 개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공룡을 소멸시켰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정 수준의 기술 발전을 이룩한 현존 인류는 그 같은 재앙이 닥쳐도 “땅을 파고 벙커 속으로 들어가 연명하거나, 아예 화성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공룡을 멸종시켰던 유성의 진행 방향을 예측해 “충돌을 미리 방지하거나 로켓 등을 쏘아 궤도 자체를 수정시킬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진정한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도킨스는 “지구촌 생태계 동식물의 다양성 감소가 급격하게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인류는 어떻게 진화할까

도킨스의 원리는 ‘방사진화론’이다. 진화가 일직선상으로 진행되지 않고, 지리적 격리 등으로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결과는 비슷하다는 점에서 패턴화된 진화의 방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상은 어떨까. 도킨스는 뇌에 주목했다. 우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현재까지 300만 년 동안 계속 뇌는 커졌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큰 뇌가 생존과 번식에 더 이상 유효한 도구가 아니란 진단이다. 대신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장려하는 특정 종교에서 보듯 문화적 이유가 진화의 주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문화적·기술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보다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동차·컴퓨터를 보라. 생물학적 진화보다 수백만 배나 빠르다. 문화적 진화에 자연선택 법칙이 적용되긴 어렵다. 서로 영향을 주겠지만 생물학적 진화가 문화적·기술적 진화를 따라갈 것이다. 향후 인간의 진화는 문화적 진화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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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인류를 대체할까

그럼 과학기술의 진화가 과연 장밋빛일까. 도킨스는 인공지능(AI)을 언급하며 “앞으론 로봇이 이 강연장에서 실리콘과 탄소 기반 시대에 대해 논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로봇이 인간의 지위를 위협할 지경이다. 우리는 지금 자기 파괴의 씨를 뿌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낙관적 시선을 놓지 않았다. 도킨스는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확대 등 수세기가 지나 되돌아보면 역사의 바퀴는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과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ichard Dawkins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1941년 케냐 나이로비생. 35세에 쓴 『이기적 유전자』를 필두로 『확장된 표현형』(1982), 『만들어진 신』(2006) 등으로 과학계·종교계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2013년 ‘프로스텍트’지가 전 세계 100여 개국 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 최고 지성’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다

살아남은 유전자 ‘이기적 선택’…명쾌하게 밝히다

[중앙일보] 입력 2017.01.23 01:06   수정 2017.01.23 02:57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은

논쟁과 도발의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21일 처음 방한했다. 『이기적 유전자』 등 베스트셀러로 현대 과학계에 충격을 던진 그의 이론을 정리한다.
 

병아리의 쪼기 행동 관찰로 박사 논문
40여년간 논쟁의 중심에 섰던 진화론자 도킨스. 21일 첫 내한해 강연과 사인회를 열었다. [사진 우상조 기자]

40여년간 논쟁의 중심에 섰던 진화론자 도킨스. 21일 첫 내한해 강연과 사인회를 열었다. [사진 우상조 기자]

리처드 도킨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킨스는 1966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왜 병아리가 특정 색깔의 점을 다른 색깔의 점보다 더 많이 쪼아대는지에 대해 일종의 병아리 ‘심리학적’ 모형을 만들어 설명했다. 병아리의 쪼기 행동이 적당한 제한 조건을 만족하는 특정한 수학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는 마치 경제학에서 합리적 소비자가 제한된 예산 범위 내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구매를 결정한다고 설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생존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긴 팔’
포크레인·우물·댐으로 확장해 설명
이슬람·기독교의 인격화된 신 부정
과학이 도덕사회 만들 수 있다 주장

이처럼 동물행동학은 기본적으로, 동물의 행동이 진화론적으로 유리한 특징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동물행동학은 그 방법론 자체에서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 대한 설명에서 차이를 두지 않는 ‘통섭적’ 특징을 보인다. 이런 방법론적 가정은 사회과학의 근본 전제와 분명한 대립각을 세운다. 사회과학의 출발점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자신이 생각하는 특정한 ‘이유’에서 행동을 하는 주체적 존재라는 것인데, 인간 행동의 양상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적으로 유리한 특징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부분적으로라도) 결정되어 있다면 이를 ‘주체적 인간’의 관점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는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유명한 ‘본성-양육’ 논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 채널4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찰스 다윈의 천재성’ 촬영 중 고릴라를 바라보고 있는 도킨스.

영국 채널4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찰스 다윈의 천재성’ 촬영 중 고릴라를 바라보고 있는 도킨스.

도킨스는 95년 시모니 석좌교수직에 취임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는 동물행동학자로 연구했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그가 진가를 발휘한 점은 76년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 등 일련의 대중과학서를 통해 유전자 중심의 진화생물학적 관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이었다. 시모니 석좌교수 자체가 도킨스의 업적을 인정해 새롭게 설립된 ‘대중의 과학이해’를 전담하는 교수직이었을 정도였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출판사가 제안한 것이고 원래 도킨스는 ‘불멸의 유전자’라는 표현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도킨스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일정한 수명을 갖고 탄생했다 죽음을 맞는 개체가 아니라 여러 개체를 관통해서 복제되어 살아남는 유전자가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데 더 결정적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기적인’ 부분에 주목했고, 이 과정에서 도킨스 스스로도 유감을 밝힌 오독이 발생했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면 ‘마치’ 유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가정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의미의 비유로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비유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의미로 이해됐고, 많은 독자들이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받게 됐던 것이다.
 

유전자의 ‘긴 팔’과 문화의 응축 ‘밈’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 선 도킨스. 이곳에서 의무로 착용해야 하는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 김영사]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 선 도킨스. 이곳에서 의무로 착용해야 하는 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 김영사]

도킨스는 유전자가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유전자만으로 인간을 비롯한 고등 동물의 행동, 특히 문화적 행동과 그 결과물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그의 또 다른 개념인 ‘확장된 표현형’과 ‘밈’이 중요해진다.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비버의 댐(비버는 댐을 만드는 습성을 갖고 있다)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유전자의 ‘긴 팔’을 설명한다. 유전자의 ‘긴 팔’이란 또 다른 은유다. 우리가 물을 마시고 싶어 팔을 뻗어 물컵을 잡는다면 팔은 우리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물을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 포크레인을 동원해 우물을 판다면 포크레인이나 우물도 의지 실현을 위해 몸을 확장한 일종의 ‘긴 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표현형이란 ‘파란 눈’처럼 원래 유전자의 결과물로 나타난 생명체의 특징(형질)을 의미한다. 그런데 동물의 행동을 ‘이기적’ 유전자의 결과로 볼 수 있다면 동물의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 예를 들어 비버의 댐도 일종의 유전자의 ‘긴 팔’의 결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만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과 그 결과물 또한 ‘확장된’ 표현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확장된 표현형’의 개념으로 인간의 문화적 생산물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실상부 유전자의 ‘긴 팔’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만이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특징에까지도 뻗어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 개념을 도입한다. 밈은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는 생각·행동·스타일’을 지칭한다. 즉, 유전자와 유사하게 (하지만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는 문화적 단위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밈은 유행어나 대중가요의 곡조겠지만 좀 추상적으로는 정치적·종교적 원리나 철학적 주장도 해당된다.

도킨스의 밈 개념이 가장 논쟁적으로 활용된 예가 종교다. 도킨스가 보기에 종교적 믿음, 특히 ‘신’ 개념은 가장 나쁜 종류의 밈이다. 도킨스는 아인슈타인의 신 개념처럼 온 우주에 퍼져있는 추상적 원리의 은유로서의 신 개념에는 별 불만이 없다. 도킨스가 문제 삼는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인격신 개념이다. 그는 이런 인격신이 진정으로 존재하는지를 과학적 가설로 간주해서 경험적 판정을 내리자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처럼 부정적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이렇게 분명한 결론이 났음에도 종교적 믿음과 신 개념이 이토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킨스는 이에 대한 설명을 밈이 전파되는 과정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서 찾는다. 종교를 가진 부모 밑에서, 혹은 종교가 사회 전체에서 널리 수용되는 환경에서 자라난 어린이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 밈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도킨스 역시 종교가 우리의 삶에 도덕적·교육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기여가 종교가 아닌 과학을 통해서 더 잘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이 종교적 근본주의자만이 아니라 상당히 온건한 방식으로 종교와 과학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사람들도 불편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도킨스의 ‘전투적 무신론’은 과학지식의 긍정적 힘을 확신하는 21세기의 신계몽주의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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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은 과학자에게도 훌륭한 교양서

도킨스의 영향력은 그의 수많은 책과 강연을 통해 끼친 ‘대중의 과학 이해’ 영역에서 가장 두드러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동물행동학 및 진화생물학 연구가 결코 하찮은 것은 아니지만 대중저술가로서의 그의 유산에 비해 학계에 끼친 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의 ‘대중의 과학 이해’ 영역에서의 업적을 어려운 과학 내용을 ‘쉽게 해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세분화된 연구주제를 탐구하는 것만큼이나 과학적 세계관이 보여주는 전망과 함의를 통합적 시각에서 제시하는 것은 대중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과학자에게도 훌륭한 ‘과학 교양’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전문화된 주제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대 과학자들은 자칫 나무만 보다가 숲은 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도킨스가 저술한 일련의 책들은 이런 과학자를 비롯한 대중들에게 현대 생물학의 세계관과 첨단 학술 연구의 지평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돼야 한다. 비록 그의 구체적인 주장은 논쟁적일 수 있지만, 도킨스 스스로 강조했듯 그 논쟁성 자체가 건강한 과학이 발전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교수·과학철학)

[출처: 중앙일보] 도킨스 “생물학적 진화 아닌 문화적 진화, 그게 인류의 미래”

앞쪽 뇌 팔팔해야 창의력 쑥쑥… 꿈·목표 세우면 뇌도 깨어난다

앞쪽 뇌 팔팔해야 창의력 쑥쑥… 꿈·목표 세우면 뇌도 깨어난다

입력 : 2017.01.19 03:04

[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8·끝] 창의력의 비밀, 전두엽

인지기능 총괄 뇌 앞쪽 전두엽,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튼튼해져… 독창·혁신적 사고 가능하게 해

– 꿈·목표는 뇌 움직이게 하는 ‘명령’
작은 일도 마무리짓는 습관 들이고 ‘욱’할때 참는 인내·끈기 갖춰야

“창의력을 높이려면 앞쪽 뇌를 키워야 합니다.”

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 나덕렬(신경과 교수) 소장은 “우리 교육은 암기 위주로 해마(海馬) 등 뒤쪽 뇌를 반복해 쓰는 방식”이라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으로 키우려면 전두엽, 즉 앞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나 소장은 인지신경학 전문가로, 전두엽 기능 발달의 중요성을 일깨운 ‘앞쪽형 인간’, 얼굴 관리하듯 평생 뇌를 쓰자는 ‘뇌미인’이라는 책을 냈다.

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 나덕렬 소장이 뇌 모형을 보여주면서“독창성을 키우려면 전두엽, 즉 앞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 나덕렬 소장이 뇌 모형을 보여주면서“독창성을 키우려면 전두엽, 즉 앞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그는 “창의력의 핵심은 기존 것이나 한 가지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건데, 그 기능의 능력은 전두엽 중앙에 있다”고 말했다. 나 소장은 “앞쪽 뇌에 창의·기획, 동기, 충동조절센터 등이 분포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근육을 쓰면 쓸수록 커지듯이 전두엽도 쓰면 쓸수록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나만의 의견 찾는 훈련을”

전두엽은 답을 보지 않고 문제를 풀려고 할 때 크게 활성화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답부터 보면 수학 실력이 안 느는 이치와 같다. 스스로 알려고 끙끙대야 앞쪽 뇌가 커진다. 나 소장은 “결과가 어찌 됐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훈련이 중요하다”며 “그 결과가 잘못되어도 실수를 통해 아이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두엽 외측에 창의와 기획센터가 있다. 이를 활성화하려면 우선 목표가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5000억개의 뇌세포는 ‘목표’라는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달, 올해, 10년 후 등 단기·장기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려 해야 한다. 목표가 없으면 뇌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상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반드시 마무리 짓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루 30분 단어 암기가 안 되면 20분으로 줄이고 이걸 항상 마무리하는 게 좋다. 그러면 자신감과 성취욕이 유발돼 좀 더 큰 일에도 도전하게 된다.

창의력 센터 개발에는 역지사지 토론도 권장된다. 예를 들어 낙태라는 주제를 놓고 한 번은 무조건 낙태에 찬성하는 의견과 논리로 토론에 임하고, 그다음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의견을 펴는 방식이다. 나 교수는 “생각을 일부러 바꿔보는 훈련을 하면 논리성과 유연성이 동시에 좋아진다”고 말했다. 외국어 공부도 앞쪽 뇌 훈련에 효과적이다. 새로운 학습에 다양한 뇌 신경회로를 동원하게 되고, 외국어 공부의 결과로 새롭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추진센터·충동조절센터 키워야

앞쪽 뇌 아래쪽에는 충동조절센터와 사회센터가 있다. 이를 키우려면 화를 참고, 화가 나는 이유를 곰곰이 짚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전두엽 바닥 안쪽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가 있다. 이 기능이 약하면 사소한 것에 충동적으로 끌리거나, 툭하면 화를 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나 소장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전두엽이 약한 불쌍한 사람”이라며 “창조는 단박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충동을 억제하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친구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요구르트 아줌마나 경비 아저씨 등 주변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심성이 사회센터를 강화시킨다. 나 소장은 “전두엽이 손상되면 타인과 끊임없이 싸우고 충돌한다”며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면 풍요 감정도 올라가 충돌 조절 능력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명상·기도·사색 등을 하거나 조용한 공간을 찾아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복잡한 뇌를 재세팅하는 데 좋다.

학생들에게는 선(先)공부 후(後)놀이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 즐거운 일을 앞두고 밀린 숙제나 공부를 해놓는 습관을 들이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도 즐겁게 할 수 있다. 나 소장은 “전두엽 뒷부분은 운동 기능과 실행 의지 센터가 맞물려 있다”며 “이 때문에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면 실행력과 추진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9/20170119001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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