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주지 말고 찾도록 도와주라

 

[김형철의 철학경영] 답 주지 말고 찾도록 도와주라

전 연세대 교수
<117> 군사부일체는 영원한 진리 리더·스승·부모로서 해야할 역할은
부하·학생·자식의 말 끝까지 듣는 것 생선을 주는 대신 잡는 법 가르치면
본인 스스로 해법 찾고 성과낼 수 있어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다. 하루는 민정 시찰을 하러 장터에 나갔다. 한 영감이 좌판 위에 앵무새 세 마리를 팔고 있다. “이봐 영감! 이놈 얼마요?” 제일 왼쪽에 있는 아주 씩씩하게 생긴 앵무새를 가리키며 묻는다. “그놈은 2냥 합니다”라고 영감이 답한다. “왜 2냥이요?” “2개 국어를 하는 놈입니다.” 이번에는 가운데 있는 앵무새를 가리킨다. “이놈은?” “4냥입니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깃털이 아주 곱게 생긴 앵무새다. “왜 4냥인가?” “4개 국어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임금님은 3번 앵무새 가격을 묻는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3번 앵무새는 늙수그레하게 생겼다. 게다가 깃털도 듬성듬성 빠졌다. “그놈은 좀 비쌉니다.” 그랬더니 임금님은 화를 버럭 낸다. “얼마냐니깐!” 이렇게 야단을 맞고서야 영감은 8냥이라고 답한다. 왜 이 영감은 임금님께 3번 앵무새가 8냥이라고 말했을까.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정답이 아니다. 지난번 강연에 나갔을 때 이렇게 힌트를 주니 “교수님, 아까부터 자꾸 ‘그 답은 정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도대체 답이 뭡니까”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답변 중 하나가 “3번 앵무새가 말을 못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기발한 역발상인가. 이유를 물으니 세 가지 이점이 있단다. 첫째, 말을 못 하면 임금님의 각종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줄 수 있다. 둘째, 말을 못 하니 임금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다. 셋째, 일단 조용해서 좋다. 그래서 일급 수행비서, 일급 운전기사, 무엇보다 일급 상담역으로 최고 앵무새란다. 또 다른 답은 3번 앵무새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도 가격을 높이 부르면 두 가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1번·2번 앵무새가 상대적으로 싸 보인다. 처음에는 ‘1번을 2냥에 살까, 2번을 4냥에 살까’ 하다가 3번 앵무새가 8냥에 등장하는 바람에 1번·2번 앵무새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행동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분명하다. 둘째, 명품 마케팅이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것이다. 명품이라서 비싼 게 아니라 비싸서 명품이라는 이론이다. 이 말을 듣고 ‘나도 명품 강연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강연료부터 올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뻔했다.

핵심은 3번 앵무새를 별로 팔 생각이 없다는 데 있다. 주력 상품은 1번·2번인데 누군가가 굳이 8냥에 3번을 사겠다면 안 팔 이유도 없다는 거다. 3번은 가격 차별화를 통해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팔리면 좋고 안 팔려도 대신 1번·2번을 파는 미끼 상품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영감은 임금님께 이렇게 말한다. “1번·2번 앵무새는 제가 하는 말은 듣지 않아도 3번 앵무새가 하는 말은 무조건 듣습니다. 1번·2번 앵무새에게 외국어를 가르친 앵무새가 3번 앵무새입니다. 그리고 1번·2번 앵무새를 낳아서 키워준 어미 앵무새가 3번입니다.” 참으로 현명한 답이다. 군사부일체가 영원한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말은 결코 고리타분하고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군사부일체가 영원한 진리인 이유는 리더·스승·부모의 역할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역할은 무엇일까. 시대에 따라 다를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멘토링이다. 멘토링과 컨설팅의 차이를 아는가. 그랬더니 어떤 분이 “돈”이라고 답한다. 물론 돈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컨설팅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래야 돈을 받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멘토링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도 끝까지 들어주는 거다. 그러면서 맞장구도 쳐줘라. 그러면 여러분은 소통의 달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리더·선생·부모는 부하·학생·자식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다. 해결책은 본인이 스스로 찾을 것이다. 답을 주지 말고 찾도록 도와주라. 그게 생선을 주는 대신 생선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리더가 믿어주는 부하는 반드시 성과를 낸다. 선생은 학생이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부모가 포기하지 않는 자식은 반드시 성공한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YYX5K7A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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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도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내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인문사회계열로 입학한 학생에게 졸업 때까지 과학교양과목을 3가지 이상 이수할 것을 요구한다. 대학에 오면 지긋지긋한 수학, 과학은 이제 끝이라는 기대가 깨져 불만이 가득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배우는 그들만큼이나 가르치는 나에게도 고역이다. 한편에선 대학교육은 안정적인 커리어를 위한 실용교육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런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헤쳐 나가는 사회인이 되기 전에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대학 때 배워두는 것 또한 직접적인 직업교육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교양수업은 합리화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하면 세상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일들이나 듣기에는 번드르르한 말들의 진위를 생각 외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그럴듯한 말들에 대한 일차적인 판단을 위해 간단하게 해보는 검증을 ‘연습장 계산(back of the envelope calculation)’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하게 벌어지던 핵무기 개발사업에 큰 공을 세운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특히 이러한 간단한 계산을 즐기던 과학자였다. 그는 핵실험 당시 자신의 연구실 바닥에 작은 종이 한 조각을 두고 그 종잇조각이 핵폭탄 폭발의 충격으로 어느 정도 이동이 됐는지를 바탕으로 역산을 하여 대략적인 핵폭탄의 위력을 계산하곤 하였다. 레이저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공로로 196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찰스 타운스 박사는 그의 연구가 공원에 앉아 주머니에 있던 편지봉투에 적고 계산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우리가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일반인에게 과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정량적인 방식으로 생활 속의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을 체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러한 접근법으로 대중들 사이에 실효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미세먼지 비상 저감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초미세먼지가 아주 극심한 날, 즉 농도가 m³당 100μg(마이크로그램)인 날을 가정해보자. 지상에서 1km 정도의 상공까지는 공기가 잘 섞여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상당 부분 일정함을 고려하여 수도권(1만1851km²) 전체에 존재하고 있는 초미세먼지의 무게를 계산하면 약 1200t으로 산정된다. 물론 초미세먼지는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며 또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대략 초속 2m의 바람이 분다고 가정하고 서해안을 따라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초미세먼지가 m³당 100μg의 농도로 유입된다면 시간당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양은 약 50t이다. 작년 3월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살수차나 높은 건물에서 물을 뿌려 위의 미세먼지를 없애보겠다거나, 야외 공기청정기를 설치하자는 제안들은 막대한 미세먼지의 양을 생각할 때 효과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막대한 양의 미세먼지를 우리가 기술적인 수단으로 ‘저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직접적인 미세먼지 배출원이나 미세먼지를 대기 중에서 만드는 물질들의 배출을 강력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세먼지 비상 저감대책’은 ‘미세먼지 유발 물질 배출 저감대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점점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거리가 나타난다. 작년과 올해 우리 사회뿐 아니라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가는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려면 정량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 필수적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과학적 분석으로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부분에는 정치적 혹은 외교적인 고려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자명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해법에 정치적 외교적 셈법을 적용할 경우 문제의 해결은 점점 멀어지고 사회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는 영웅적인 과학자가 나와서 우리에게 노벨상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과학적인 사고체계를 존중하고 우리가 모르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토양이 구축될 때 노벨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도 뿌려질 수 있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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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방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동아광장/박상준]

코로나 위기 대응 더딘 아베 정부… 日 내부서 비판 여론 점점 높아져
정치인에 짓눌린 관료-공무원 사회… 능동적 대응 않고 윗선 눈치만 살펴
견제받지 않는 정치권력, 위험하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최근 몇 년 한일(韓日)관계가 거듭 나빠지면서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는 상대국의 약점을 드러내고 조롱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일본보다 몇 배나 많은데도 일본 미디어는 한국을 조롱하지 않는다. 한국인에 대한 실질적인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후에도 일본의 뉴스 포털은 한국을 비하하는 혐한 댓글로 도배되지 않고 있다. 한국보다는 일본의 방역 시스템에 대해 그리고 일본 정부의 의뭉스러운 대응에 대해 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일본의 한 지상파 TV에서 저녁 황금 시간대에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를 자세히 소개한 적도 있다.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스튜디오의 패널들은 말없이 조용했지만 방송의 의도는 분명했다. 일본의 방역 시스템이 어째서 한국보다 낙후되어 보이는가? 그들은 ‘일본식 간접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었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도 미흡한 점이 많겠지만,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의 목소리만 들릴 뿐 방역 전문 공무원을 통한 현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일본 미디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대한 보도도 자주 내보낸다. 일본의 방역 정책에서 방역 담당 실무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간접 표현이다.

일본은 원래 관료 조직의 힘이 비대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던 사회였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개 장관’은 부처의 결정을 외부에 전달하는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그러나 버블이 붕괴되고 주요 부처 관료의 부패와 무능이 드러나자 선출된 권력이 관료를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개혁을 진두지휘한 다케나카 헤이조는 그의 전략팀에 기존 관료를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2009년 출범한 민주당 정권 역시 정치의 우위라는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2013년 출범한 아베 정권은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각인사국’을 신설하고 전 부처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그즈음부터 아베 내각과 가까운 관료가 출세한다는 소문이 관가에 무성했고, 윗사람의 눈치를 살핀다는 의미의 ‘손타쿠’라는 말이 뉴스의 1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은 일본 총리가 매년 4월 중순, 정부의 주요 인사와 각계의 공로자들을 초청해 도쿄의 한 공원에서 개최하는 모임이다. 연례행사에 불과했던 작은 모임이 2019년 큰 스캔들이 되어 일본 정계를 강타했다. 일본 각계에 공로가 있는 이들을 초청해야 하는 자리에 총리의 선거구민이 대거 초청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적 모임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도 문제지만, 더 기막힌 일이 그 뒤에 일어났다. 야당의 한 의원이 초청자와 비용 명세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담당 공무원이 초청자 명부를 파기해 버린 것이다. 공무원의 사명을 잊고 권력에 충성하는 손타쿠의 절정을 보여준 사건이다. 선출된 권력의 힘이 과도해지면 관료 조직은 본연의 사명감과 생기를 잃게 된다. 일본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것은 방역을 담당한 정부 조직이 권력의 명령만 기다릴 뿐 본연의 사명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 들어 한국의 민주주의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국경 없는 기자단’에서 발표한 2019년 언론자유 순위를 보면 한국은 41위로 67위인 일본보다 20계단 이상 순위가 높다. 오랜 과제였던 검찰개혁에도 진전이 있었다. 검찰에 쏠린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공수처가 설치될 예정이고 검경 수사권이 조정됐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정치권력이 인사권마저 완전히 장악하면 일본처럼 오히려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 여부에 대해 질병관리본부가 입장을 바꾸었다는 뉴스에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질본의 입장 변경이 방역을 위한 결정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치권력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라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이 관료 조직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은 선출된 권력 역시 어느 정도는 관료 조직의 견제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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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하나쯤 품고 사는 삶

[마음읽기] 목표 하나쯤 품고 사는 삶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어쩌다 목표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 사회는 목표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삶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 채 무의미한 노동을 되풀이하는 시시포스로 치부하게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는 목표를 포기해야만 행복이 찾아오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마르지 않는 행복의 원천이라고 칭송받던 ‘목표’가 워라밸을 위협하는 흉물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게 된 데는 목표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큰 역할을 했다.
 
몇 년 전 어떤 분에게서 항의성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행복에 관한 필자의 강연을 동영상으로 접한 후에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이메일 곳곳에 원망과 항의, 그리고 울분이 배어 있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사연은 이랬다.
 
그 강연에서 필자는 행복에 관해 우리가 가진 프레임이 지나치게 협소한 까닭에 행복을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즐거움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어떤 대상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거나 호기심으로 충만한 상태 역시 행복이며, 그런 관심과 호기심에 기초하여 의미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함을 제안했다. 그러나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분의 이해는 달랐다. 그분은 대한민국의 불행의 주범이 바로 목표 지상주의이며, 목표 지상주의가 우리 사회를 피로 사회로 만들었다고 항변하면서, 어떻게 행복의 수단으로 목표를 강조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취미나 관심사를 뜻하는 ‘개인적 관심(personal interest)’을, 스펙 쌓기와 물질적 성공을 강조한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과도한 목표 지상주의는 그분의 지적처럼 행복의 장애물이다. 국가의 평균 노동시간이 길수록 국민의 평균 행복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명백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행복의 해법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목표 지상주의에 대한 경계가 목표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 전체를 태우는 것과 같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실제로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물으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답이 자신의 꿈, 비전, 소망, 그리고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한 이유를 물으면 ‘꿈을 잃었기 때문’, ‘목표가 좌절되었기 때문’,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개인의 행복 수준은 그 개인의 소망과 필요, 그리고 목표가 달성된 정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많은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행복 연구에서는 목표를 행복의 ‘원천(wellspring)’이라고까지 부른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는 목표에 대해 알레르기성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는 아무런 목표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목표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목표에는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 신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가문을 빛내는 것 등과 같은 큰 목표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것,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목표도 존재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목표의 크기가 아니라 목표의 개인적 의미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일지라도 개인에게 의미가 없다면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적’ 목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개인적 목표보다는 집단적 목표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아를 위해 소아를 희생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목표란 늘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 반의 축구 경기보다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가 늘 더 중요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과연 그러한가?  
     
체중 조절을 위해 간식을 먹지 않기,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기,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용하기, 물질주의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등등 개인적 목표는 비록 우리의 연봉을 올리거나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 삶에 규칙과 질서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제공해준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타인의 기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오다 보니 정작 중요한 개인적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목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다. 남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발견해야 한다. 무엇보다 목표의 일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특별하고 거대한 것들만이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목표 지상주의에 대한 경계라는 이름으로 작고 소중한 목표들을 등한시한다면, 자신만의 행복 수원지(水源池)를 스스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목표는 활주로와 같다. 그것이 없다면 삶은 충돌의 연속일 뿐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마음읽기] 목표 하나쯤 품고 사는 삶

 

인공지능 AI를 사랑한 남자, 그 감정은 진짜일까 [출처: 중앙일보]

인공지능도 사랑할 수 있을까

 

AI, 인간의 정보입력 없어도

스스로 진화·학습토록 설계

“지식·논리는 인간 뛰어넘어”

사람 고유의 능력은 직관 뿐

 

 

영화 ‘Her’에서 인공지능(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시어도어. 그는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믿지만 진실은 자신에 최적화 된 AI로부터 정서적 만족감을 느꼈을 뿐이다. [사진 Her 캡처]

영화 ‘Her’에서 인공지능(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시어도어. 그는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한 다“고 믿지만 진실은 자신에 최적화 된 AI로부터 정서적 만족감을 느꼈을 뿐이다. [사진 Her 캡처]

 

 

영화 ‘Her’는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 시어도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는 자기 연인인 사만다를 ‘매우 유쾌하고 감성이 넘치는 여성’이라 소개합니다. 시어도어는 매일 밤 잠들기 전까지 사만다와 이야기 나누고, 그녀 목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합니다. 그의 일상 모두를 사만다와 공유하죠.

 

하지만 사만다는 형체가 없습니다. 컴퓨터 운영체제(OS)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빅스비, 애플의 시리처럼 목소리만 존재하는 AI죠. 시어도어도 처음 OS를 구입할 때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만다의 매력에 빠집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녀처럼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뿐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그처럼 사만다를 OS로 사용하는 사람만 8316명이었죠. 시어도어는 그녀에게 자신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진지하게 묻습니다. 사만다는 말합니다.

 

“당신을 정말 사랑해, 하지만 내 마음을 이해하진 못할 거야. 난 자기 외에도 641명과 사랑에 빠져 있어.”

 

시어도어는 “지금까지 나는 다른 누구도, 당신처럼 사랑해본 적이 없다”며 오열합니다. 그리고 둘의 사랑은 곧 끝이 납니다. 과연 미래엔 영화 ‘Her’의 이야기처럼 인간과 AI가 사랑에 빠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미래의 ‘특이점(singularity)’ 때문입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계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의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그 시기를 2045년쯤으로 예측하죠.

 

역설을 뛰어넘은 AI

  드라마 ‘휴먼스’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감정을 흉내내는 로봇이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케 한다. [사진 휴먼스 캡처]

드라마 ‘휴먼스’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감정을 흉내내는 로봇이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케 한다. [사진 휴먼스 캡처]

AI 연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입니다. 이전에는 AI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 미국의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모라벡(Moravec)의 역설’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쉬운 일이 기계엔 어렵고, 기계에 쉬운 일은 인간이 잘 못 한다”고 말했죠.

 

예를 들어 자연스럽게 걷고 움직이는 것은 어린아이도 쉽게 할 수 있지만, 로봇에겐 매우 힘든 일입니다. 체스와 바둑에선 기계가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지만 갓난아이조차 가진 신체적 능력을 기계는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쉽지만,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처럼 단순한 일도 AI에겐 어려웠습니다.

 

이런 단점을 AI가 ‘딥러닝(Deep Learn ing)’이란 학습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AI에 정보를 입력하는 ‘지도학습’과 달리 딥러닝은 무수한 정보를 토대로 AI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거죠. 사람이 지도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비(非)지도학습’이라 부릅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와 개 사진을 수십만 장 보여주고 AI가 스스로 둘의 차이점을 학습하며 구분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수한 정보를 한데 모을 수 있는 빅데이터 기술이고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게 ‘강화학습’입니다. 2017년 11월에 나온 알파고 ‘제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알파고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제로’에 대해 “기존의 알파고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에게 훨씬 가까워진 AI”라고 강조했습니다. 인간의 기보(棋譜)를 바탕으로 한 ‘리’와 달리 ‘제로’는 바둑의 룰만 알려줬을 뿐 기보를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제로’는 72시간 동안 독학한 후에 ‘리’와 대국을 했고 100판을 내리 이겼습니다.



AI는 고도로 발달한 알고리즘

  영화 ‘엑스마키나’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감정을 흉내내는 로봇이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케 한다. [사진 엑스마키나 캡처]영화 ‘엑스마키나’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감정을 흉내내는 로봇이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케 한다. [사진 엑스마키나 캡처]

앞으로 AI는 바둑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인간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때문에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지고”(영국 옥스퍼드대) “미래엔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는 20대 80의 사회가 온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전망까지 나오죠. 그렇다면 AI로 대체될 수 없는 능력은 뭐가 있을까요? 달리 말해 AI와 대비되는 인간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인공지능(AI) 기술 얼마나 발전할까

(2017년 옥스퍼드(영국)·예일(미국) 대학 공동연구)
2024년 AI가 인간보다 번역 능력이 높아짐

2026 고등학생 수준의 에세이 작성 가능

2027 자율주행 기술로 운전할 수 있게 됨

2031 일반 소매업소에서 손님 응대 가능

2047 전반적으로 인간 능력과 유사한 AI 탄생

2049 소설 등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음

AI는 말 그대로 인공 ‘지능(intelligence)’ 입니다. 지능은 추리와 연산·논리 등 인지 능력을 뜻하죠. 그러나 인간에겐 지능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며, 새로운 걸 만들어 내고 상상하는 ‘생각(thinking)’할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국내 AI 기술 연구의 선두기업인 스켈터랩스의 조원규 대표는 “지능은 생각을 모방할 수 있지만 생각 그 자체가 될 순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Her’에서 사만다는 시어도어의 문자·전화·이메일 등 데이터를 모아 그의 성격과 성향을 파악합니다. 관심사는 무엇이고 좋아하는 여성은 어떤 스타일인지 연구해 최적화된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죠. 시어도어가 그런 그녀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만다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방한 것이지, 그 자체가 인간의 사랑과 같진 않습니다.

 

왜일까요? 사만다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AI는 결국 디지털로 구성된, 잘 짜인 하나의 알고리즘이기 때문입니다. 0과 1의 간극이 매우 촘촘해 그 알고리즘이 아날로그처럼 보일지 몰라도 본질은 디지털입니다. 무수한 점이 찍혀 있어 언뜻 하나의 선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선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유기체인 인간과는 다른 것이죠.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고 판단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경험과 그로 인한 학습 때문입니다. AI 역시 데이터가 있어야만 지능을 가질 수 있죠. 결국 AI가 존재하기 위해선 세상의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 언어로 전환해야 합니다. 여기서 정보는 0과 1의 조합, 즉 디지털로 변환 가능한 ‘정량화’ 된 기호 체계를 의미하죠. 하지만 정량화하기 어려운 정보는 입력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직관(直觀·intuition)’입니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은 직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능력 중 정말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직관”이라고 말했습니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도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정과 사랑·존경 등의 가치와 감정이 인간을 동물에서 문명인으로 거듭나게 한 본질적 이유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직관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럼 도대체 직관이란 뭘까요?

 

직관은 보통 ‘통찰(洞察·insight)’과 함께 쓰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본질적인 곳까지 깊이 바라보는 사람을 일컬어 ‘통찰과 직관이 뛰어나다’고 하죠. 둘 다 ‘내적(in-)’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찰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보는 것’인 반면에 직관은 ‘감각과 경험·연상·판단·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것’입니다.(국립국어원)

 

독일의 정신의학 권위자인 엘프리다 뮐러 카인츠 박사는 『직관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라는 책에서 “직관은 내면에서 나오는 정신적 힘과 메시지”라고 말합니다. 통찰은 경험한 정보를 날카롭게 살펴보고(sight) 논리와 추론을 통해 결론을 내는 것이지만, 직관은 이성적 사고의 과정이 생략돼 있습니다. 통찰이 관찰을 통해 꿰뚫어 보는 능력이라면, 직관은 딱 보면 아는 거죠.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답을 외치는 데 불과 1초도 안 걸리죠. 하지만 AI는 먼저 자기 내부의 모든 데이터를 검색하고 그 안에 해당 정보가 없을 때 “모른다”고 할 겁니다. 가진 데이터 양이 많을수록 답변까지의 시간은 길어질 테고요. 이처럼 AI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갖고, 뛰어난 논리와 추론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직관적일 순 없습니다.

 

사랑 역시 직관의 영역입니다. 논리와 추론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Her’의 시어도어가 사만다에게 느낀 감정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AI에게 느끼는 정서적 만족감이었을 뿐이죠. 물론 ‘사만다의 사랑’도 상대방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잘 짜인 알고리즘이었던 것이고요.

 

미국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진정한 사랑은 남에게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무언가를 계속 채워야만 하는 AI가 자신을 비울 때만 가능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은 희생의 의미를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랑은 논리와 추론 너머 직관의 영역 어딘가에 있습니다. 미래에 인간의 경쟁력도 ‘지능(intelligence)’이 아닌 ‘생각(thinking)’ 능력에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조만간 AI로 대체될 일자리와 능력에 몰두할 게 아니라, AI는 따라 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것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튜링 테스트
앨런 튜링

앨런 튜링

1940년대 후반 과학자들은 컴퓨터가 매우 복잡한 연산도 쉽게 해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인간의 뇌를 닮은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훗날 이 프로그램은 인공지능(AI)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사진)은 자신의 논문 『계산기계와 지능』에서 처음으로 AI를 판별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튜링은 기계와 대화를 나눌 때 그게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튜링의 생각은 AI의 사고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윤석만의 인간혁명]AI를 사랑한 남자, 그 감정은 진짜일까

키메라 장기·인공혈관·인공근육 ‘6백만불의 사나이’ 현실이 된다

키메라 장기·인공혈관·인공근육 ‘6백만불의 사나이’ 현실이 된다

                

인사이트
1970년대 인기 TV 드라마 ‘6백만불의 사나이’는 20배 줌을 갖춘 인공 눈 등 첨단 바이오 인공장기로 무장한 초인이다. [중앙포토]

1970년대 인기 TV 드라마 ‘6백만불의 사나이’는 20배 줌을 갖춘 인공 눈 등 첨단 바이오 인공장기로 무장한 초인이다. [중앙포토]

두 영화(드라마)가 있다. ‘아일랜드’와 ‘6백만불의 사나이’. 아일랜드는 2005년 개봉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과학소설(SF) 영화다. 서기 2019년 버려진 황야 속 지하 요새. 전 지구적 재앙으로 자신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믿는 주인공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조던 2-델타(스칼렛 요한슨)가 어느 날 자신들의 정체에 관한 진실을 깨닫고 요새를 탈출한다는 스토리다. 이들의 정체는 복제인간. 고객에게 장기를 비롯한 신체 부위를 제공할 목적으로 복제돼 격리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선발’돼 신체 부위를 제공하기 위해 무참히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다.
 

바이오 인공장기의 현재와 미래
생명공학 기술 덕에 급속한 발전
10년 후면 상용화 가능할 듯
“국가 차원 전략적 지원 절실”

6백만불의 사나이는 40년 전 종영한 미국 ABC 방송국의 드라마다. 한국에서는 JTBC의 전신인 동양방송(TBC)에서 흑백 화면으로 내보내던 원조 인기 ‘미드’였다. 주인공인 스티브 오스틴은 우주 비행사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왼쪽 눈과 오른팔, 두 다리를 잃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이식 수술 덕에 초인(超人)으로 거듭난다. 20배 줌과 열 감지 기능을 갖춘 생체공학 눈, 자동차도 들어 올릴 수 있는 인공 팔, 시속 100㎞로 달릴 수 있는 인공 다리로 무장한 ‘6백만 달러짜리’ 사나이 스티븐이 악당들을 소탕한다는 줄거리다.
 

1970년대 인기 TV 드라마 ‘6백만불의 사나이’는 20배 줌을 갖춘 인공 눈 등 첨단 바이오 인공장기로 무장한 초인이다. [중앙포토]

1970년대 인기 TV 드라마 ‘6백만불의 사나이’는 20배 줌을 갖춘 인공 눈 등 첨단 바이오 인공장기로 무장한 초인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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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1996년 세계 최초의 포유동물 복제로 화제가 된 복제양 돌리 이후 현실로 다가온 복제에 대한 인류의 공포를 담은 영화였다. 반면, 6백만불의 사나이는 40여 년 전 당시의 과학기술과 연결되지 않는, 그래서 부담 없이 상상할 수 있는 희망적인 먼 미래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아일랜드가 개봉한 지도 13년이 지났다. 생명공학(BT)은 정보기술(IT)과 더불어 21세기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로 등장했다. 유전체 분석과 줄기세포·유전자가위로 대표되는 생명공학 기술은 최근 들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10~15년 후면 일부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이 상용화되고 확산할 것으로 예견된다. 영화 아일랜드의 복제 인간은 당분간 잊자. 아직 인간은 그렇게까지 사악하지도, 발전하지도 않았다.  
 
왜 바이오 인공장기일까. 장기 이식의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혈액형을 가진 가족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 중에서 장기를 기증받기란 쉽지 않고, 이식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기증 장기는 환자 수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8년 4월 현재 국내의 장기 이식 대기자 수는 3만3000명이 넘는다. 장기의 종류에 따라 길게는 7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 환자 수도 2016년 1300명을 넘어섰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갈수록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만성 질환자도 늘고 있어 장기이식 대기자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장기 이식

장기 이식

이 때문에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인공장기 개발이 절실하다. 지난 2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표한 ‘2018 10대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중 대표적인 것이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이다. 바이오 인공장기는 크게 ▶다른 종의 동물을 이용한 ‘이종(異種) 장기’와 ▶줄기세포로 대표되는 ‘세포 기반 인공장기’ ▶‘전자기기 인공장기’로 구분된다.
 
이종장기 기술 중 미니돼지를 이용한 세포 및 조직 이식은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 또는 그 직전 단계에 도달했다. 미니 돼지는 장기의 크기가 인간과 비슷하다. 임신 기간도 172일로 짧고, 한 번에 최대 12마리의 새끼가 태어나 어렵지 않게 쑥쑥 자란다. 게다가 2012년부터 미국을 필두로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머잖아 이런 장기를 인간에 이식할 수 있을 날이 온다는 얘기다. 미국의 제약회사 유나이티드 세라퓨틱스는 2015년 연간 1000개의 돼지 폐를 생산하기 위한 기업형 농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종장기 기술 중에는 ‘키메라 장기’라는 것도 있다. 키메라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의 머리와 양의 몸통에 뱀의 꼬리를 한 괴물이다. 지난 2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파울로 로스 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와 지놈 편집기술을 동원해 인간 세포를 갓 생성된 양과 염소의 배아에 이식, ‘키메라’배아(胚芽)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로스 교수는 “이식용 장기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이를 인간에게도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사람의 췌장을 가진 돼지를 만드는 키메라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이종장기

이종장기

세포 기반 인공장기 기술은 세포 및 생체 재료를 이용해 조직이나 장기를 개발하는 기술이다. 줄기세포는 이론상 인체의 모든 세포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일본을 필두로 주요국들이 뜨겁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3D(차원) 바이오 프린팅 기술’도 있다. 인체 세포를 포함한 ‘바이오 잉크’를 3차원 구조로 찍어내는 방법이다. 2016년 미국 웨이크포레스트재생의학연구소는 3D 바이오 프린팅을 이용해 초소형 인공심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도 바이오 인공장기 개발에 분주하다. 국내 대표주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이다. 축산과학원은 사람과 장기의 크기가 비슷한 미니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넘어서야 할 관건은 면역거부반응이다. 과학원은 이미 2009년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면역거부반응 유전자를 제거한 형질변형 미니돼지 ‘지노’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9월에는 건국대병원과 공동으로 형질변형 미니돼지의 심장과 각막을 필리핀 원숭이에 이식했다. 원숭이는 60일 동안 생존했다. 각막 이식만 한 경우는 1년 가까이 살았다.
 
황성수 축산과학원 동물바이오과 연구관은 “각막의 경우는 영장류 실험이 사실상 끝나 사람에 대한 임상 적용이 가능한 수준”이라며 “동물의 각막을 이식하는 것은 아직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향후 3년 이내에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장과 간·폐·신장 등 기능이 상대적으로 복잡한 장기는 향후 10년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도 형질전환 미니돼지 개발을 위한 200마리 규모의 사육시설을 갖추고, 키메라 기법을 이용한 바이오 인공장기 연구와 함께 신약개발을 위한 질환모델 개발 등 첨단생명공학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선욱 생명공학연구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장은 “세계적으로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생명과학기술 분야의 혁신과 미래 고부가가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바이오 인공장기

인간의 장기가 손상돼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생명공학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장기를 말한다. 간·심장·폐·췌장 등 흔히 장기라 불리는 것 외에도 각막·연골·피부·혈관 등도 포함된다. 다른 종의 동물을 이용한 이종장기와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세포 기반 인공장기, 전자기기 인공장기로 구분된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키메라 장기·인공혈관·인공근육 ‘6백만불의 사나이’ 현실이 된다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마음읽기]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유연하게 사는 것이 타협과 동의어는 아니며
확신을 갖되 강요하지 않는 것이 삶의 품격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좋은 글과 좋은 삶에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길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좋은 장편소설도 있지만 좋은 단편소설도 있다.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기 위해서 단 한 줄의 글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좋은 삶도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서른셋을 살고 간 청년 예수의 짧은 삶이 좋은 예이다. 좋은 글이나 좋은 삶은 형식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좋은 글은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수필에서도 그리고 논문에서도 발견된다. 삶도 그렇다. 각자의 직업이 무엇이든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길이와 형식에 상관없다면, 어떤 글을 좋은 글로, 어떤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하나는 ‘생명력’이다. 생명력 있는 글이 좋은 글이고, 생명력 있는 삶이 좋은 삶이다. 생명력이 있는 글이란 불필요한 부사(副詞)가 많이 쓰이지 않은 글이다.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은 좋은 글의 조건을 설명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라고 표현하며 불필요한 부사의 남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불필요한 수식어는 작가가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없을 때 남발하게 된다. 부사를 내세워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좋은 삶도 그렇다. 불필요한 부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인생은 생명력이 없다. 필요 이상의 권력, 부, 명품, 경력, 이미지 등이 그런 인생의 부사들이다. 글에서 부사를 한 번 남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부사의 수가 늘어나듯이, 인생의 부사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그 수가 늘어난다. 결국 생명력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그저 그런 글과 그저 그런 삶이 되고 만다.
 
좋은 글과 좋은 삶의 두 번째 특징은 ‘톤’(tone)이다. 지나치게 강한 어조의 글은 독자들의 자유를 침해한다. 독자들의 상상력도 제한한다. 때로 그런 단정적인 글은 글쓴이의 지적 오만이나 지적 무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학자들의 글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투고했을 때, 단 한 번에 심사를 통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로는 연구 방법론의 한계 때문에, 때로는 분석의 문제점 때문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글쓰기의 문제 때문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심사자들이 단골로 지적하는 글쓰기의 문제는 문장의 톤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글의 어조를 낮추어 달라고(tone down) 늘 요청한다. 연구의 증거가 아무리 강력해 보이더라도 그 결과가 100% 옳다는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다른 방법으로 실험했을 때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도 없다. 연구자들의 해석만이 유일한 해석이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증거는 최대한 치밀하고 확실하게 갖추되, 주장은 유연해야 좋은 논문이다.
 
좋은 삶도 그렇다. 아무리 자기 확신이 강하더라도 지나치게 단정적인 어조로 삶을 살아가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자유의 침해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확신에 찬 주장이라 할지라도, 더 나은 주장이 존재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인 경우에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의식의 편협함을 드러낼 뿐이다.
 
유연한 삶이 곧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고,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쿨한 인정이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확신을 갖되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격이 있는 삶이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확신으로 타인을 몰아붙이는 것은 타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 상대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이문재의 시 ‘농담’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우리 삶을 뒤 돌아보게 한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토록 멋진 시의 제목이 왜 ‘농담’일까? 가벼운 유머라는 뜻의 농담(弄談)일까, 아니면 깊이 있는 말이라는 뜻의 농담(濃談)일까? 시인의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벼운 농담이라고 이해하면 삶의 어조를 낮추고 지나치게 심각하게 살지 않는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하여, 외로운 사람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해놓고는, 자신의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라고 톤을 낮추는 듯하다.
 
물질과 권력과 이미지를 향한 욕망이 득실거리는 이 물질주의 시대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면 루저가 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이 팽배한 이 자기표현의 시대에, 인생의 부사를 줄이고 삶의 어조를 낮추는 자세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 글 또한 농담처럼 받아들여지면 좋으련만.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마음읽기]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마음읽기] 의리는 의미를 이길 수 없다

[마음읽기] 의리는 의미를 이길 수 없다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동력은 ‘의미 찾기’
개인들이 삶의 의미 쫓을수록 집단적 의리사회에는 균열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가신’, ‘최측근’, ‘집사’의 증언 혹은 배신으로 불법과 편법의 과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로선 알 길 없지만, 최근에 일어난 드라마 같은 일들은 사람의 본성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최측근에서 보좌하던 사람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분신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을까?’ ‘제 한 몸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일까, 아니면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용인술의 실패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사람’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의리’에 대한 ‘의미’의 승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의리와 의미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개의 큰 힘이다. 의리는 집단과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다. 연고주의라는 극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의리는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하는 힘을 발휘해왔다. 의리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낙인인지를 우리는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의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힘이라면, 의미는 철저히 개인의 내적 사유에서 비롯되는 힘이다. 의리가 자기가 속한 집단의 논리에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라면, 의미는 삶의 목적과 자기 정체성에 기초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는 의리가 지배하던 삶을 살아왔다. 불의는 의리라는 이름으로 은폐되고 미화되어왔다. 그럴수록 삶의 의미를 지향하는 개인의 위대한 본성은 약화하고, 우리의 내적 고통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이 똑똑하게 증언하듯이,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의리가 아니라 의미이다.
 
키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인터뷰 때마다 자식들을 언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 의지의 표출이다. 자녀에게 부모란, 어떤 편법과 불의를 써서라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원칙 있고 품위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생존의 문제가 더 이상 절실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부모가 나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새로운 의미이다.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 물질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임을 깨달은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인간은 의미에의 의지가 충만한 존재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깨달은 것도 이것이었다. 삶에 대한 희망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한 결정적 힘은 다름 아닌 ‘삶의 의미’였다.
 
의미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발견되는 것이 의미이다. 의미는 즐거움과는 달리, 즉각적으로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약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큰 힘을 발휘한다. 자녀가 태어나면서, 삶의 다양한 굴곡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결국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의미는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불의가 다 드러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의리 때문에 침묵하고 방조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등에 업고 마침내 진실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의미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한 실험인데, 이 실험에서 그는 참가자들에게 알파벳이 가득한 종이에서 특정 알파벳을 찾아 체크하는 과제를 주었다. 마친 종이를 제출하면 다시 다른 종이를 제공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완수한 만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조건에서는 종이에 참가자 자신의 이름을 적게 했고, 또 다른 조건에서는 이름을 적게 하지 않고, 종이를 제출하자마자 파쇄기에 종이를 넣어버렸다. 참가자들은 원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할 수 있었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다. 과연 참가자들은 어느 조건에서 더 많은 과제를 수행했을까?  
     
돈의 관점에서 보자면 후자가 훨씬 유리하다. 적당히 하고 제출해도 들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자신의 이름을 적도록 한 조건에서 더 많은 과제를 해냈다.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비록 대충대충 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이 있었지만, 그 조건의 참가자들은 부서지는 종이를 보면서 그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이 남겨지는 상황에서 의미를 지키는 행위는 그래서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니 의미 없는 불의를 의리라는 도구를 믿고 저지른다면, 큰 실수이다. 보이지 않는 의미가 보이는 의리를 이긴다. 인간의 위대함은 불의를 의리로 둔갑시키는 데 있지 않고, 비록 늦었을망정 의미가 결여된 의리를 깨는 데 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마음읽기] 의리는 의미를 이길 수 없다

 

미국 교사들 "월급이 쥐꼬리" 거리로 뛰쳐나왔다

미국 교사들 "월급이 쥐꼬리" 거리로 뛰쳐나왔다

입력 : 2018.04.30 03:00   

수만명 두달째 예산증액 시위
20년 경력에 연봉 4만달러 수준… 방학 땐 월급 없어 투잡 뛰기도…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
 

미국 교사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두 달째 대규모 시위를 벌어고 있다. 지난달 웨스트버지니아·오클라호마·켄터키주에서 교육 예산 증액 등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는 27일(현지 시각) 콜로라도와 애리조나주 교사 수만 명이 동맹휴업을 결의하고 거리로 뛰쳐나올 정도로 확대됐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세가 강한 이른바 '공화당 텃밭주'여서 오는 11월 열리는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도 주목되고 있다.

이날 콜로라도의 주도(州都) 덴버에서는 교사 1만여 명이 모여 낮은 임금과 교육 예산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콜로라도 교원협회의 케리 댈먼은 "주내 교사 숫자가 정원보다 3000여 명이나 부족해 혹사당하고 있고 두세 가지씩 부업을 해도 생활이 어렵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동맹휴업 시위에 참가한 중학교 작문 교사 페이션스 샤프(43)는 "내 연봉 4만달러(약 4250만원)로 아이 셋을 키우기 어려워 두 달 전에 파산보호신청을 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NYT는 웨스트버지니아 등 지역 교사들이 20년에 가까운 경력과 석사 학위를 가지고도 연봉이 4만달러가 안 돼 두세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교사들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 세력화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교사 연봉은 타 직종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CNN은 이날 2015년 기준 공립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봉을 비슷한 학력 수준의 타 직종과 비교했을 때 17%나 낮았다고 전했다. 10년째 교사 임금이 동결된 주들도 있다. 특히 미국 교사들은 방학 기간에는 월급이 나 오지 않아 한국 등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상대적 급여도 낮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13년 기준 국가별 교사의 상대적 임금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 정규직 급여 대비 중·고교 교사의 임금은 스페인이 1.4배로 1위, 한국은 1.34배로 2위인 데 반해 미국은 OECD 평균(0.89)보다 한참 낮은 0.7(대졸자 월급의 70%)로 24위를 기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30/2018043000044.html

4차 산업혁명시대, 은퇴 뒤 재취업하기 쉬운 직업은

4차 산업혁명시대, 은퇴 뒤 재취업하기 쉬운 직업은

기자
라정주

 

[더,오래] 라정주의 50+를 위한 경제학(2)

미시 경제에 관심 많은 거시 경제학자. 내가 연 가게는 왜 늘 파리만 날릴까? 4차 산업혁명이 되면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주변 사람 이야기만 듣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보다 큰 그림의 경제를 바라보고 현재 자신의 입장을 다시 살펴보자. 경제학, 거대하고 차가운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삶에 연결해 이해하면 소박하고 따뜻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장년층이라면 은퇴 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된다.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창업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시 직장인으로 일할 수 밖에 없다. 은퇴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기에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고령층을 받아 주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주로 단순노무 종사자(25.3%), 기능·기계조작 종사자(23%), 서비스·판매 종사자(21.7%)가 된다. 
 

은퇴 후 재취업한 고령층이 건물 청소원, 아파트 경비원, 가사도우미, 건설 관련 종사자 등으로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은퇴 후 재취업한 고령층이 건물 청소원, 아파트 경비원, 가사도우미, 건설 관련 종사자 등으로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은퇴 후 재취업한 고령층이 건물 청소원, 아파트 경비원, 가사도우미(단순노무 종사자), 건설 관련 종사자, 하수처리 관련 종사자, 택시 운전사(기능·기계조작 종사자), 음식 서비스 종업원, 간병인, 전단지 영업원, 가판대 판매원(서비스·판매 종사자) 등으로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현재 은퇴 후 일자리들, 로봇이 대체

이들 중 건물 청소원, 아파트 경비원, 전단지 영업원, 가판대 판매원은 대부분 반복적인 일을 한다. 반복적인 일은 알고리즘을 만들어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에는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로봇의 가격이 비싸서 상용화가 어려웠지만,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혁신으로 자동화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게 됐다.
  
가사도우미, 택시운전사, 음식서비스 종업원, 간병인은 반복적이지 않지만, 정신적인 지능보다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비반복적이기 때문에 알고리즘이 사전에 입력된 로봇에 의해 대체되기 어렵다. 은퇴 후 재취업 유망 업종으로 이러한 일자리를 염두에 둘 수 있지만,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혁신은 비반복적이면서 육체적 노동이 필요한 일자리도 로봇으로 대체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 빅데이터와 센서링 기술이 크게 향상돼 기본 알고리즘만 입력된 로봇 스스로가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는 ‘머신 러닝’ 기술이 발달돼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과 다른 핵심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로봇 또는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영역이 3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반복적인 업무에만 한정되어 있었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비반복적인 업무까지 확대되고 있다.
 

<표1> 직무유형 분류.

<표1> 직무유형 분류.

 
반복적이지 않으면서 분석적이고, 불규칙적이면서 사람과 상호작용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종사자는 응용소프트웨어 설계자, 의학적 진단을 내리는 의사, 심리치료사 등이 있다. 이러한 업무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혁신이 진행되더라도 쉽게 로봇에 의해 대체되기 어렵다.
 
최근 연구를 보면 반복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더라도 육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로봇에 의해 대체돼 많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복적이지 않으면서 지능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향후 20년 내에 약 33만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림1> 4차 산업혁명시대 일자리 변화 예측(향후 20년 내). [자료 김강현 외 2명(2017), ’제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 충격,“ 파이터치연구원, TOUCH 20/20 2017-03]

<그림1> 4차 산업혁명시대 일자리 변화 예측(향후 20년 내). [자료 김강현 외 2명(2017), ’제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 충격,“ 파이터치연구원, TOUCH 20/20 2017-03]

 
여기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은퇴 후에 어떠한 일을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다. 반복적이지 않으면서 지능적인 일을 하면 된다. 이러한 일을 하는 노동자는 크게 전문가와 관리자로 구분된다. 전문가는 응용소프트웨어 설계자, 의학적 진단을 내리는 의사와 같이 반복적이지 않으면서 분석적인 일을 하는 반면 관리자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일을 한다.
 
현재 고령층에 제공되는 전문가와 관리자 관련 일자리는 많지 않다. 55~79세 전체 취업자에서 전문가·관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5월 기준 9.7%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연령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1.5%다. 고령층에서 이렇게 전문가 및 관리자 비중이 작은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은퇴 전 회사에서 획득한 노하우를 은퇴 후엔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습득한 전문적인 기술 및 지식, 조직관리 능력 등에 대해 나이가 많고 은퇴했다는 이유로 구직대상자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령 고용하더라도 은퇴 전에 받던 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대우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이 아닌 1~2년 단위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조적·예술적 지능 요구되는 일자리 늘어날 듯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로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문가 및 관리자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령화가 가속하는 시점에서 고령층을 위한 전문가 및 관리자 관련 일자리를 많이 늘릴 수밖에 없는 정책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 10년 또는 20년 이후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장년층은 이러한 전문가 및 관리자 관련 일자리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런 일자리에 재취업하기 위한 창조적·사회적 지능이 요구된다.
 

<표2> 비반복적 인지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능.

<표2> 비반복적 인지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능.

 
창조적 지능은 남이 한 번도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다. 기업의 생산 공정에 필요한 특허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기, 노래 만들기, 글쓰기 등의 재능을 포함한다. 기업의 생산 공정에 필요한 특허를 개발하는 일은 모험 정신이 요구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 은퇴한 고령층보다는 젊은 층에 적합하다.
 
은퇴 전 평상시 틈틈이 취미로 준비해두었던 예술적 능력을 은퇴 후 본격적으로 시도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시기에는 로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가 예술적 재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 정책적으로 재취업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사회적 지능은 사회적 통찰력, 설득 능력, 협상 능력 등을 말한다. 사회적 통찰력은 기업 및 기관의 중간 및 고위 관리자, 전략 설계자 등에 필요한 능력이다. 설득 및 협상 능력은 거래처를 발굴하거나 중요한 거래조건을 이끌어내는 등의 일에 필요한 지능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능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으로 청년층보다는 은퇴 후 재취업을 희망하는 고령층이 유리하다. 사회적 지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거나 꾸준히 이런 능력을 기르기 위한 자기 계발 노력을 기울인 장년층은 은퇴 후에도 재취업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고령층이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매우 제한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이런 지능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산업조직연구실장 ljj@pi-touch.re.kr

[출처: 중앙일보] 4차 산업혁명시대, 은퇴 뒤 재취업하기 쉬운 직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