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iF(Twitter·Google·iPhone·Facebook) 시대’ 해부한다(앱 개발업체CEO들이 본 아이폰 성공비결)

‘TGiF(Twitter·Google·iPhone·Facebook) 시대’ 해부한다 [3]아이폰

앱 개발업체CEO들이 본 아이폰 성공비결

아이폰용 앱업체 1위 ‘태퓰러스’ 바트 데크렘

“美, 스마트폰으로 IT강국인 한국 추월…
비록 작은 가능성이라도 대박 낼 기회에 투자하는 실리콘밸리 문화 덕이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 세계인의 일상생활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주변의 맛집 정보를 검색하는 일, 조금만 짬이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휴대폰과 이동통신 업계는 좀 더 본질적인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경영학자 게리 해멀(Hamel)의 표현대로, 애플이 모바일 기술의 ‘닫힌 정원(walled garden)’을 ‘열린 정원(open garden)’으로 바꾸면서, 과거 이통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갇혀 있던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이 밝은 무대위로 나왔다. 이들은 이제 장터(앱스토어)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거래한다. 더 이상 이통사의 ‘을’이 아니다. 무엇이 변화를 가져왔을까? 스마트폰이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면서, 모바일 시장에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시가총액이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친 사건은 상징적이다. PC와 인터넷 웹브라우저 시대를 대표하는 MS가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 시대를 대표하는 애플에 추월당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이 웹사이트가 아닌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꾼 장본인이자 바뀐 세상의 최대 수혜자이다.

세상을 바꾸는 TGiF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은 ‘i’로 대변되는 애플의 아이폰(iPhone), 나아가 범(凡) 스마트폰 시장이다. Weekly BIZ는 새로운 각도에서 이 주제를 다뤄보려 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의 CEO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애플의 기업 가치가 MS를 넘어서고, 사람들이 웹사이트가 아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터넷을 만나는 세상. 이 모든 변화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하고 경험해 온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스마트폰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한국 업체들이 애플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벨기에 출신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바트 데크렘(Decrem·41·사진)은 지난 2002년 한국의 한 IT벤처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미국과 달리 휴대폰을 너무나 잘 활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휴대폰으로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메신저도 하고.

그는 ‘휴대폰이 곧 컴퓨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대폰의 보급률은 PC보다 훨씬 높지 않은가. 중국에선 자기 PC를 가진 사람은 드물어도 휴대폰 없는 사람은 없다. 모바일이야말로 엄청난 잠재 시장이다.

그러다가 2007년 6월, 애플의 아이폰이 나왔다. “바로 이거다!” 실리콘밸리에 창업한 회사에서 웹브라우저를 개발하던 그의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메일·사진 촬영·음악 듣기 등 안 되는 게 없는데다, 사용이 쉽고, 먹통이 되지도 않았다. 아이폰은 그 자체가 훌륭한 컴퓨터였다.

바트 데크렘(Decrem·41).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중요한 것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기존 휴대폰 사용자들보다 수백 배 이상 더 많이 인터넷을 쓴다는 점이다. 출시 두 달 후, 구글이 통계를 내보니 전 세계에 깔린 수억대의 노키아 폰을 통해 들어온 검색 요청보다 200만대가 채 안 되는 아이폰을 통해 들어온 검색 요청이 더 많았다. 훌륭한 하드웨어에, 수많은 소프트웨어가 있고, 열광적인 사용자들이 있다. 아이폰의 성공은 뻔해 보였다.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아이폰이 등장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아이폰용 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엔 애플이 앱을 거래하는 장터(앱스토어)를 개설하기도 전이었지만, 시장에서 음성적으로 아이폰용 앱이 개발돼 거래되기 시작했다.

데크램 역시 아이폰용 앱을 개발하는 데 사업 생명을 걸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앱을 개발하기보다 시장에 나와 있는 앱을 사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2008년 1월, 총 30여개의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가지고 태퓰러스(Tapulous)란 회사를 창업했다. 지금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업계에서 가장 큰 업체다. 이 회사의 대표 소프트웨어인 음악 게임 ‘탭탭 리벤지(Tap Tap Revenge)’ 시리즈는 2008년 첫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통산 2500만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매달 1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다 주고 있다.

■아이폰의 성공 비결은 실리콘밸리 문화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그는 금발 곱슬머리에 파란색 남방과 검은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키드 스타일이었다. 그는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변했다”고 말했다.

“정말 웃기는 것은 휴대전화 분야에서 한국보다 엄청나게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이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세계적인 리더 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한국이 원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단순히 아이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2년 전에, 소셜 네트워크 게임이나 가상 재화(virtual goods·게임 아이템 같은 것들)를 봐도 미국은 한참 뒤떨어져 있었어요. 그런 것들은 모두 한국이 원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데 지금은 이 분야에서도 실리콘밸리가 세계적인 리더가 됐어요.”

―미국이 한국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

“실리콘밸리가 아주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리스크를 기꺼이 떠안고,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하는 것이다. 이게 미국 문화의 특성이자 미국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을 예로 들어 보자.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원조는 한국의 싸이월드이다. 그런데 싸이월드가 자기만의 폐쇄적 서비스에 머문 반면,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페이스북과 연동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과감히 오픈했다. 페이스북은 이를 통해 인터넷상의 ‘소셜 운영체제(OS)’이자, 세계인들을 연결하는 ‘소셜 플랫폼’이 됐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SNS가 됐다. 실리콘밸리에선 매사가 이런 식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뒤집는다.

애플도 이와 비슷하게 휴대폰 시장의 판을 뒤집었다. 실리콘 밸리에는 비록 작은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이른바 대박을 낼 기회에 투자하려는 기업가들의 세상이 있다. 파이오니어적인 세계 말이다. 이는 공격적이고, 장기적인 리스크 테이킹을 장려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페이스북이나 아이폰 같은 것이 나온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짧은 안목으로 비즈니스를 보고, 당장의 수익에 연연한다. 그러다 비즈니스의 룰이 바뀔 때 큰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폰이 뒤집은 이전의 판이란?

“아이폰 이전의 모바일 시장은 이동통신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객들에게 공급할 휴대폰과 그 휴대폰에 올라갈 애플리케이션, 더 나아가 애플리케이션의 비즈니스 모델까지 결정했다. 당신이 아무리 훌륭한 휴대폰 단말기나 애플리케이션이 있어도, 이통사들이 채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플은 이렇게 이통사가 지배해 온 판을 뒤집었다. 애플은 이통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점에 관한 한 애플은 어떤 타협도 없었다.

아이폰을 직접 써보면 여러모로 우수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휴대폰을 만든 지 3년밖에 안 된 애플의 제품이 20~30년씩 휴대폰을 만든 노키아나 삼성전자의 제품보다 낫다. 애플이 제품 개발에 엄청난 돈을 쓰기 때문이다. 거의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말이다. 애플은 아이폰의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를 했다. 애플은 소비자(end―user)들의 안목을 겨냥해 매우 장기적이고 공격적인 베팅을 했다. 이를 통해 모바일 비즈니스의 플랫폼, 혹은 주도권을 이통사로부터 뺏어왔다. 이는 상당히 미국적이고, 실리콘밸리적인 방식이다.”

―앱 개발업체 관점에서 안드로이드 휴대폰의 경쟁력은?

“안드로이드는 성공 가능성이 큰 플랫폼이다. 관련 기술이 매우 훌륭하고, 단말기 종류도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안드로이드가 이길 거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안드로이드보다 아이폰 시장의 모멘텀이 훨씬 강하다. 현재 애플의 플랫폼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서, 애플 쪽에 초점을 맞추면 내 비즈니스 역시 매우 빨리 성장할 것이 확실하다. 애플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과 기능을 계속 선보인다. 개발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제공해 준다는 얘기다. 이렇게 개발자들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애플은 비즈니스를 아주 잘하고 있다. 예컨대 내가 안드로이드 쪽 사업에 뛰어들까 생각하다가도, 아이패드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아이패드용 앱 개발 쪽에 먼저 투자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안드로이드 진영에 가장 큰 도전이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뒤집는다

―아이폰의 시장 지배력이 얼마나 오래갈 것 같나?

“앞으로 10년간은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아이폰이 다른 어떤 스마트폰보다 앞서 있어서다. 노키아만 봐도 아직 아이폰의 근처에도 못 가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아이폰이 나온 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세계 1위 휴대폰 업체라는 회사가 이 모양이다. 앞으로 애플은 아이폰의 배터리 개선, 하드웨어와 운영체제의 업그레이드, 소셜네트워크 기술의 결합, 모바일 광고 플랫폼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을 통해 강력한 시장 리더십을 구축해 갈 것이다. 또 애플의 다양한 제품군들은 서로 긴밀하게 통합될 것이다. 당신의 아이폰이 아이패드, 노트북 PC, 애플 TV와 모두 연동된다는 얘기다.

향후 10년간 이런 제품들이 통합되면서 애플의 매우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 시장에서는 애플에 유리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대형 제조업체나 유통업체가 미는 제품이 시장을 장악했지만, 점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제품이 시장을 주도해가고 있다. 애플 같은 훌륭한 브랜드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애플은 지금 최고의 제품들을 갖고 있으며, 기존 거대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럼 삼성·LG·노키아 같은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자기들의 고객이 누구인지 제대로 봐야 한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나 노키아 같은 업체들의 고객은 소비자가 아닌, 이통사들이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고객은 SK텔레콤, 노키아의 고객은 T모바일이었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통사에 휴대폰을 공급하는 것에 몰두했고, 휴대폰의 기능이나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는 결국 이통사들이 정했다. 이게 최근까지 모바일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다른 충고가 있다면 ‘딱 한 가지 이야기(only one story)’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형 휴대폰 업체들을 보면 휴대폰 모델이 100개가 넘는다. 디자인이나 운영체제가 제각각인 제품 5개를 한꺼번에 선보이면서 ‘이걸로 아이폰과 경쟁하겠다’고 한다. 그러지 말고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똑같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갖춘 아주 경쟁력 있는 폰을 하나라도 잘 만들어 내놓으면 어떨까 싶다. 쉽게 말해 애플에 맞설 수 있는 딱 하나를 만들어 내놓으란 얘기다. 하나의 대안을 갖고, 이것을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하는 휴대폰 업체를 한군데도 못봤다.”

―왜 삼성이나 노키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1년 전쯤 한 콘퍼런스에 패널로 참여했는데, 어떤 대형 휴대폰 업체 고위 임원이 ‘왜 다들 아이폰에 그토록 열광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었다. 한 참석자가 ‘당신네는 애플 같은 앱스토어가 없지 않냐’고 쏘아붙였는데 그래도 ‘그거 별거 아니다’는 식이더라. 다른 사람이 ‘당신네 휴대폰 하드웨어가 영 별로다’라고 했더니 역시 이해 못 하는 분위기였다. 또 다른 사람이 ‘당신네 휴대폰용 소프트웨어 개발 툴은 영 엉망이라 도대체 쓸 수가 없다’고까지 설명했는데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는 우리가 뭔가 아름답고 쓰기 쉬운 것을 만들면 소비자들의 행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신기술이란 건 정말 대단한 거다. 누군가 뭔가를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뒤집는다.”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유 – 장용성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 교수(미 로체스터대 교수)

현재 미국의 노동 생산성을 100이라 할 때 일본은 78, 한국은 45라고 한다. 같은 양의 노동을 투입해도 우리나라의 최종 생산량이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 근로자들이 일하는 것을 가까이 접해 보면 그들이 우리나라 근로자들보다 딱히 더 우수하거나 더 열심히 일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암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수퍼마켓 계산대의 판매원, 무뚝뚝한 학교 직원, 계좌 하나 개설하는 데 한참씩 걸리는 은행 창구 직원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지 의아하다.

이에 비해 서울 편의점 점원은 나보다도 암산이 빠르고, 우리 학과 사무실이나 은행 창구 여직원들은 훨씬 똑똑하고 상냥하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말단 직원들이 그다지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재들을 말단 자리에 계속 남겨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에선 일단 능력이 확인되면 빠른 시간 내에 발탁되고 승진된다.

그러나 한국처럼 연공서열에 의존하거나 혈연, 지연, 학연 등 능력 이외의 요인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인적 자원의 재배치가 훨씬 더디게 되고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리더의 능력은 조직원 모두의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말단 직원의 실수로 말미암은 손실은 지엽적인 수준에 그치지만, 상급자가 무능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 여러 사람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승진 방식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연공서열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젊은 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나이가 차면 무조건 은퇴하게 하거나, 나이 어린 사람이 윗자리에 부임하면 자동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도 매우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다. 형평성과 안일한 획일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경륜이 풍부하고 존경받아야 할 분들을, 장유유서(長幼有序)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소홀히 대접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존칭을 붙이지 않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미국이 웃어른을 제대로 모시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존경심을 표현하는 풍습이 다를 뿐이다. 능력과 인품을 갖춘 분들은 형식적인 예의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고, 회사나 대학에서도 최대한 오래 모시려 노력한다. 젊은이들도 이런 분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투영하며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미국은 지방 자치의 전통에 따라 지역별로 연방은행이 12곳 있는데,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스카우트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필자가 잠시 근무했던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는 그린스펀 의장에 번번이 반대하며 소수 의견을 제기한 고집스러운 분이다. 연구 담당 부총재 겸 조사국장으로 근무 중 50대 초반에 총재로 발탁됐다.

연방은행의 총재들이 금융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연방은행 공개시장회의(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가 6주마다 열리는데, 회의 1주일 전쯤 총재는 발언 내용도 조율할 겸, 예행연습으로 은행의 경제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이 토론에 임하는 총재의 모습은 마치 학생 같았다. 참신한 주장이 나오면 열심히 메모를 하고 때로는 몸소 젊은 경제학자들의 사무실을 방문해 다시 가르쳐 달라며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했다. 이 회의를 두고 경제학자들은 총재 공부시키는 시간이라고 농담했다. 이처럼 젊은 스태프가 의견을 개진하고 잘못을 지적해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윗사람이 있으면 아랫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연방은행 총재는 자신의 견해를 비판하는 경제학자들을 불편해하고 언짢아했다. 결국 유능한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나고 인재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일본의 종합상사 M 그룹 회장이 유능한 사원을 발탁해 사위로 삼고 나아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놀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들은 내 맘대로 고를 수 없지만, 사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들의 맘은 어땠을까마는 효율적인 회사 경영을 위해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칭기즈칸의 오른팔로 제국을 함께 건설했던 야율초재도 몽고족의 철천지원수였던 거란족 출신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IQ는 홍콩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 중고생은 과학 학습능력 평가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우리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결코 인재풀(pool)이 나빠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같은 인재풀을 가지고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충분히 더 높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위원회도 만들고 백방으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법 개정, 규제 철폐, 성장 동력 산업 지원 등 모두 매우 중요한 사안들이고 지속적으로 해가야 할 일들이다.

하지만 이런 큰 사업에 앞서 혈연, 지연, 학연, 성별을 이유로 배제된 재능 있는 동료나 선후배는 없는지 우리 주변부터 살펴보면 어떨까.

[weekly chosun] 교사 잡는 일본 학부모 ‘몬스터 페어런트’

도쿄 신주쿠구립초등학교 신임 여교사 A(23)씨.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온 교사가 된 그녀는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일본 교육계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한 달에 근무 외 시간만 100시간에 이르는 과중한 업무량도 힘들었지만 극성스런 학부모가 더 문제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심야 시간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뭔가를 항의했고 알림장을 통해 인신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그녀를 보호해 주지 않자 결국 그녀는 우울증에 걸려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교단에 선지 불과 2개월 만인 2006년 6월의 일이었다. 사후 두 달이 지나 발견된 유서엔 “무책임한 저를 용서하세요. 모두 제가 무능력해서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해 12월 니시도쿄 시립초등학교에서도 젊은 여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여교사 역시 이기적이고 극성스런 학부모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려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일본에선 교사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이런 학부모들을 가리켜 ‘몬스터 페어런트(monster parent)’라 부른다. 2007년 일본의 10대어(語)에 오르기도 한 몬스터 페어런트는 올해 일본 KTV의 드라마 소재로도 등장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일본 사회에 지속적인 충격을 던지고 있는 괴물 같은 학부모는 왜 꾸준히 생겨나고 있는 것일까.









▲ 2006년 6월 몬스터 페어런트에 시달리던 여교사가 자살한 도쿄 신주쿠 구립 초등학교
일본의 몬스터 페어런트는 한국의 일부 문제 학부모처럼 교사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어떤 일본인은 “차라리 한국 학부모처럼 교사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는 수준에서 끝난다면 뒷감정은 덜하겠다. 몬스터 페어런트는 수법이 비공개적이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음침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성적 만능 교육세대였던 30~40대가 대부분
황폐했던 학창시절이 교육에 대한 불신 불러


일본에서 몬스터 페어런트의 불만은 ‘클레임(claim)’이라 불린다. 원래 영어의 클레임이 ‘타당한 불만사항’을 일컫는 용어인 반면, 몬스터 페어런트의 클레임은 ‘너 때문에 내가 피해를 받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는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피해의식이 깔려있다. 그래서 이들에겐 배려나 양보는 고사하고 타협도 찾아보기 힘들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연령층은 30~40대가 압도적이다. 대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몬스터 페어런트 역시 일본 교육제도의 피해자”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쓰쿠바학원 대학학장인 가도와키 아츠시(門脇 厚司)는 2007년 6월호 ‘아동심리’에서 “학교 클레임의 주역이 된 젊은 학부모의 큰 문제점은 교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라고 발표했다.







▲ 도쿄의 한 초등학교 교실

몬스터 페어런트 세대가 청소년 시기를 보낸 학교는 비인간적인 황폐한 공간, 그 자체였다. 일본사를 통틀어 소년 범죄가 특히 심각했던 시기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30대 중반~40대 전반에 이르는 연령대의 학부모가 ‘황폐한’ 초·중학교 시절을 보낸 시기라는 설명이다.
  
이 시절에는 성적만이 유일한 가치평가 기준이었고 적절한 놀이가 인정되지 않는 과정에서 교내폭력이 빈번히 발생했다.

학교 측에선 학생들을 제압하기 위해 엄격한 교칙과 체벌을 만들어내기 바빴고 교사집단은 강압적으로 학생들을 억눌렀다.

그 속에서 교사의 눈을 교묘히 따돌리며 스트레스 발산으로 야기된 것이 학생들끼리의 음험한 이지메였다.

이처럼 일그러진 학창 시절을 보낸 대다수 청춘들이 훗날 성장해 교육제도에 강한 불신을 품게 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문제가 문제를 낳는 악순환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일본에서 교권은 심각하게 실추된 지 오래다. “교사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쉰내 나는 사어(死語)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TV드라마에 고등학생들이 여교사를 강간하려는 암시 장면이 있을 정도다. 



“내 아이가 최고” 극단적 자기중심 사고
 극렬 항의… 불만이 뭔지도 알 수 없어



물론 황폐한 학창시절을 보낸 청춘들이 모두 몬스퍼 페어런트로 둔갑하는 건 아니다. 몸에 밴 자기중심적 사고와 내 아이 위주의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이들에겐 전통적 일본 교육관의 뿌리인 ‘메이와쿠(迷惑·민폐)’도 의미 없는 단어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메이와쿠를 끼치지 말라’는 전통적 가르침도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고 한 치의 양보도 허락 못하는 몬스터 페어런트의 이기심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간혹 배타적 시각에서 비롯된 특이한 몬스터 페어런트도 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국제 교류차 와 있는 아시아계 유학생이 자신에게 연하장을 보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주소를 알려준 일이 있었다. 그러자 학부모로부터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개인정보인 주소를 가르쳐주다니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유학생이 주소를 알려줘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소가 적힌 연하장이 외국인한테 전해지는 게 불안하고 못마땅했던 것이다. 근거 없는 편견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몬스터 페어런트는 대체 뭐가 불만인지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경우이다.

이들이 위험한 이유는 집요하고 유치하게 교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중상모략을 퍼뜨리거나 한 달 이상 매일 교실로 찾아와 말없이 수업을 경청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 및 학교를 노이로제 상태로 몰아가는 게 이들의 전형적 수법이다.

2003년 후쿠오카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후쿠오카 살인교사 사건’은 이 같은 병적인 몬스터 페어런트가 원인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후쿠오카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교사 B씨가 한 남학생을 혼혈이라는 이유로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수시로 가했다고 보도했다. ‘혼혈은 더럽다’ ‘너 같은 건 뛰어내려서 죽어버려’라는 폭언까지 일삼았다는 게 주된 보도 내용이었다. 분개한 남학생 부모는 B를 고소, 위자료를 요구했고 사건은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논픽션 작가인 후쿠다 마스미가 이 사건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 언론 보도 내용은 한 몬스터 페어런트의 날조였다는 놀랄 만한 사실들이 드러났고 결국 사건은 피고인인 교사 측의 승소로 마무리되었다.

교사 출신의 저명한 교육 관련 저자인 기이레 가츠미(喜入 克)는 몬스터 페어런트가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학부모의 소비자 의식’을 꼽기도 한다. 학교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 인식하는 학부모들이 내 아이 담임 교사의 경력, 학벌, 평판 등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는 것을 용납 못한다는 얘기다.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후유증도 원인
사회에 대한 불만을 교사에게 집중 표출



버블경제의 붕괴 후유증도 학부모의 소비자 의식을 몰고 온 한 원인이 됐다. 1990년대 들어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승자(살아남은 자)와 패자(퇴출당한 자)의 구분이 뚜렷해지자 내쫓긴 패배자들의 불만이나 분노는 국민세금으로 운용되는 공공기관 및 공무원을 향했다. 특히 직접 대면하기 쉬운 교사가 이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됐다. 성실한 납세자를 자부하는 학부모들은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인데 왜 급식비를 지불해야 하느냐”는 항의까지 거침없이 했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교사와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은 구체적 몬스터 페어런트 대책안이나 ‘교직원을 위한 학부모클레임 대응 매뉴얼’ 등을 내놓고 있다.

대형보험회사의 ‘교직원을 위한 소송비용 보험’도 몬스터 페어런트를 대비한 강력한 방어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불법행위를 한 학부모에 대한 개인배상책임과 더불어 만에 하나 교사가 소송에 휘말릴 경우 일체의 비용을 부담해주는 보험상품이다.

작년 7월 12일자 마이니치신문에 의하면 도쿄의 교사들 중 이 보험의 가입자 수는 2000년 1300여명에서 2007년 2만1800명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도쿄에는 노이로제에 걸린 교사를 위한 전문정신치료클리닉마저 존재한다. 사이타마현의 보육소장이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분신 자살한 사건 이후 올해 1월부터 우울증은 산재로 인정되고 있다. 

40여년을 교육계에 종사해 온 야타가이(65)씨는 날로 힘들어지는 교사들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옛날엔 교사들의 재충전이자 연구기간으로 방학이 활용되었는데 요새는 그것마저 이해 못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월급을 받으면서 왜 쉬느냐’고 토를 단다.

그래서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방학 중에 출근하는 교사들이 있다. 교사회의도 사라져가는 추세다. 교장이나 더 높은 곳에서 지시하는 대로만 교사들이 움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부모로부터 말이 나올까 봐 운동회 때 실력이 비슷한 애들끼리 조를 지어서 달리게 하고 똑같은 상품을 준다. 차별 없는 교육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런 게 평등일까. 불만이 쌓여도 일개 교사들은 의견 제시는커녕 그냥 따를 수밖에 없으니 문제다.”



일본 교사들이 지적한 몬스터 페어런트 사례
-담임을 좀더 미인으로 바꿔달라고 요구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므로 급식비를 낼 수 없다고 주장
-경비원 태도가 불쾌하다며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청)에 불만 접수
-매일 학교에 찾아와 자녀와 싸운 애를 내놓으라고 행패
-심야에 술 취해 불만 전화
-학교 때문에 경제적 타격을 입었으니 생활비를 지불하라고 요구
-자녀 말만 듣고 공적 모임에서 교사의 수준을 비하
-자녀가 자격증 시험을 보는 날과 학교 행사가 겹치니 학교 측에서 날짜를 변경하라고 요구 
-애가 학교에서 다쳤으니 나을 때까지 통학 택시비를 지불하라고 요구
-우리 애를 유급시키면 국회의원이나 교육위원회에 알리겠다고 협박




몬스터 페어런트의 특징



-대체 뭐가 불만인지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다.
-교사에 대한 감정이나 평가가 돌변한다. ‘가장 신뢰한다’고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상해서 비하하며 ‘저질교사’라고 평한다.
-학교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육위원회·교육부 등으로 문제를 비화한다.
-치료비·생활비·위자료·손해배상 등 비합법적 청구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나중엔 상대를 바꿔서 계속 전화한다.
-명백한 협박을 한다.(담임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똑같이 갚아주겠다 등)
-교사 간 불신을 조장한다.
-담임이나 교장에 대한 중상모략.(성추행 당했다, 숨겨둔 애가 있다, 불륜 저질렀다 등)
-자신은 절대적으로 올바르며 주장도 모두 타당하다고 확신한다.
-불만 내용이 피해의식과 망상에 가득 차 있다. (담임이 우리 애만 차별한다, 안 보는 데서 폭력을 휘두른다, 우리 애만 급식이 다르다, 담임이 미행·도청하거나 부모 험담을 퍼뜨리고 다닌다 등)
-‘고소하겠다’ ‘매스컴에 퍼뜨리겠다’ ‘내가 아는 국회의원이 있다’ ‘이미 변호사와 상담 중이고 위자료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아는 언론인에게 벌써 얘기해 놨다’ 등의 표현을 잘 쓴다.
출처:‘몬스터 페어런트의 정체’(야마와키 유키코 지음) 중에서



몬스터 페어런트 

일본의 몬스터 페어런트는 미국의 ‘헬리콥터 페어런트’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헬리콥터 페어런트는 자녀의 학교 주위를 마치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자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간섭하는 병적인 학부모를 지칭한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와 좀더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뉘앙스로 변한 게 몬스터 페어런트다. 몬스터 페어런트는 자녀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학교에 대한 자기중심적이고 터무니없는 요구와 항의로 발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헬리콥터 페어런트라는 말에는 ‘자녀를 부모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몬스터 페어런트는 ‘교사와 학교를 상대로 비합리적인 불만을 터뜨린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미국에서 헬리콥터 페어런트가 사회문제시 된 건 1991년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의 몬스터 페어런트가 회자된 건 1990년대 후반부터이며 일반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자료 출처]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14/2008111401084.html

힐러리의 야심과 진심 – 너무 남의 평가 의식하다가 자기 진심 담은 목소리 잃어

미국 대선을 드라마나 스포츠 보듯 열심히 지켜보는 친구들이 있다. 최근 저녁식사에서 화제는 ‘왜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저렇게 밀리는가’였다. 그날 나온 분석은 이랬다.

힐러리가 약점 보완에 너무 치중한 것이 문제였다. 미국 언론은 수년 전부터 힐러리가 넘어야 할 최대 장애물로 ‘여성’과 ‘혐오자들의 극렬한 반대’를 꼽았다. 힐러리는 그 장애물을 넘는 데 주력했다. 퍼스트 레이디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상원 의원에 당선된 후 군사·안보문제를 주로 다뤘다. 강인하고 유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위해서였다.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그러자 기존의 백인 남자 후보들과 다를 게 없어졌다. 그래도 에드워즈 상원 의원 같은 ‘재래식 후보’와 맞섰다면 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흑인 오바마가 나타나자 차별성이 느껴지기는커녕 힐러리에게서 기성세대의 묵은 냄새가 났다.

유능한 대통령이 되는 법을 너무 많이 예습한 것도 약점이었다. 국정 운영에 깊이 관여한 퍼스트 레이디 8년은 분명 유익한 공부였다. 힐러리는 복잡한 대통령직을 세련되게 수행할 준비가 됐음을 과시하곤 했다.

반면 오바마는 대통령직을 효율적인 국정 운영 기술을 넘어서 큰 비전이 필요한 일로 규정했다. 오바마 캠프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유권자를 만나 공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왜 자신이 오바마를 지지하게 됐는지 말하라고 했다. ‘영감을 불어넣는 지도자’를 추구한 것이다. 그러자 힐러리는 대통령이 되는 기술만 익힌 정치인처럼 보였다.

최대의 자산이었던 전직 대통령 남편도 짐이 되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부인 미셸은 남편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클린턴은 늘 부인을 두둔하기만 했다. 힐러리에게서 남편에 의존하는 듯한 허약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힐러리의 눈물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힐러리는 지난달 유권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 직후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다. 몇명은 그땐 약이었지만 이후엔 독이 됐다고 비판했고, 나머진 눈물도 효과적인 전술이라고 지지했다. 그때 누군가 중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목소리’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목소리 연구 학자에 따르면 성공한 여자들일수록 목소리가 낮고 굵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늘고 높은 여성적인 목소리보다 남성적인 목소리에 더 신뢰감을 느끼기 때문에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해 목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총리가 된 후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고 한다.

정치적 야심으로 똘똘 뭉쳤던 힐러리의 목소리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변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눈물이 북받치는 순간 훈련된 목소리 대신 본래의 목소리가 드러났고 그때 스며 나온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힐러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사실 군사문제를 이해하는지 여부, 배우자의 유세 스타일 등은 부수적인 문제다. 안정된 나라에선 대통령이 바뀐다고 정부의 입장이 180도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들은 ‘사람’을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만큼 중요한 경쟁력도 없다.

힐러리는 타인의 비판에 지나치게 귀 기울이고 타인의 성공방식을 너무 열심히 배우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건 야심이고,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다. 이것이 그날 우리가 위기에 처한 힐러리에게 배운 교훈이었다.

                      

▲ 강인선 논설위원(조선일보)

상사-부하관계, ‘가족같기도 원수같기도’

<상사-부하관계, ‘가족같기도 원수같기도’>













[연합뉴스   2007-11-23 09:49:35]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하루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은 언제 상사나 부하직원이 가족같이 혹은 원수같이 느껴질까.


23일 인맥관리사이트 인크루트인맥에 따르면 리서치 전문기관인 엠브레인과 함께 직장인 886명에게 ‘언제 상사가 가족같이 느껴지는가’라고 설문한 결과 ‘경조사 등 가족 걱정까지 신경 써줄 때'(22.3%)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며 먼저 걱정해줄 때'(19.0%), ‘요새 힘들지라며 소주 한 잔 건네줄 때'(12.3%), ‘잘하고 있다며 믿음을 줄 때'(11.2%) 등의 순이었다.


반면 부하직원들이 ‘힘든 일도 군소리 없이 따라줄 때'(12.9%), 음료수나 간식을 챙겨주며 애교부릴 때'(11.3%), ‘사소한 고민을 먼저 털어 놓을 때'(11.1%) 상사들은 이들이 가족 같은 감정이 들었다.


부하직원이 상사가 가장 원수같이 보일 때는 ‘다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면박 줄 때'(13.4%)였으며, 상사의 경우 부하직원이 ‘꼬박꼬박 말대꾸하면서 지시를 무시할 때'(19.4%)였다.

복잡계 네트워크 – 얽히고 설킨 세상 네트워크로 푼다(바라바시)








미래 마케팅은 휴대폰 네트워크 활용이 중요”
네트워크 이론가 바라바시 교수
구글, 정보를 쉽게 찾으려는 네티즌들 요구부터 접근
결국 최강 검색엔진을 무기로‘인터넷 허브’로 등극
기업이 신제품 출시할 때, 입소문 잘내는 고객 찾아
집중적으로 마케팅 활동하면 성공 가능성 훨씬 높아
이제호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김현진 산업부 기자 born@chosun.com












 






마릴린 먼로와 영화배우 신구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

도무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은 놀랍게도 ‘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다. 마릴린 먼로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 둘의 만남은 운명처럼 성사됐을지 모른다.

마릴린 먼로는 ‘왕자와 무희(The Prince and the Showgirl·1957년 작)’에 로렌스 올리비에란 배우와 함께 출연했다. 올리비에는 1981년, 남궁원과 함께 ‘오!인천’이란 작품을 함께 한 사이다. 남궁원과 신구는 ‘황홀(1974년 작)’이란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지구 반대편의 두 배우가, 올리비에와 남궁원을 거치면 생사라는 벽을 훌쩍 뛰어 넘어 만나는 것이다.

세계를 읽는 방법이 변했다. 더 이상 세계는 쪼개진 개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관계로 얽혀진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지구 반대편의 두 사람과 우리 두뇌 속의 두 신경세포, 우리 몸 속의 어떤 두 화학 물질 간에도 연결 경로는 반드시 존재한다.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Alb ert-Laszlo Barabasi) 미(美)노스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는 바로 이 ‘네트워크’의 비밀을 파헤쳐 세계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사람이다.



■ 네트워크로 생각하라

바라바시는 21세기 신개념 과학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스케일 프리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 이론을 새롭게 분석, 죽은 개념에 새로운 날개를 단 혁명적 과학자로도 불린다. 그의 이론을 다룬 저서 ‘링크(Linked)’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스케일 프리 네트워크’란 성장하는 조직을 보면, 반드시 연결이 몰리는 ‘허브’가 존재해 관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평균값에 사람이 많이 몰려있을 것 같은 전통의 관념을 부숴버린 그의 발견은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경제, 인터넷, 세포, 질병까지 바로 이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마케팅을 찾아 골몰하는 마케터라면 바로 고객들의 허브를 공략해야 한다. 그는 기업들에게 허브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의 휴대폰을 파헤치라”고 조언한다. “미래 마케팅의 열쇠는 바로 휴대폰에 있습니다. 휴대폰 고객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구축해 이들의 연결망 자료를 분석하면 아주 손쉽게 허브를 찾아낼 수 있어요. 이 방법은 모두에게 사랑 받는 스타들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죠.”

에이즈가 만연한 아프리카에서도 그의 이론은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한다. 에이즈를 퍼뜨리는 바람둥이 허브를 찾아내 집중치료하면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누가 바람둥이 허브인지 알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스스로 떠들고 다니지 않을 텐데….

“바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에이즈 치료제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 사람에게 이 약을 전달해 투약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사람이라도 치료제를 허브에 전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 백수에게도 그의 이론이 적용될까. 그는 일자리를 찾으려면 매일 보는 친한 사람말고 잘 모르는 ‘약한 유대(weak tie)’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한다. 매일 보는 ‘강한 유대(strong tie)’의 사람들은 비슷한 정보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취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Weekly BIZ는 지난 7일 오전 4시 카이스트 경영대학과 공동으로 바라바시 박사와 화상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카이스트 경영대학 ‘최고 경영자 과정’ 초청강연을 위해 11월말 방한할 예정이다.









▲ 마릴린 먼로와 신구의 네트워크
■ 모든 네트워크의 허브를 찾아라

―경제, 세포, 인터넷 등의 구조가 서로 ‘비슷하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언뜻 들으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경제, 세포, 인터넷은 그 구성요소가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이들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연구한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이 세 가지 요소의 구조적 형태(map)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죠.”

―어떻게 유사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옛날 과학자들은 이들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어요. 1960년대엔 이들이 무작위적(random)으로 연결된 것으로 간주했었죠. 예를 들어, 인터넷의 어떤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연결될 때 일정한 패턴이 없이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떠한 연결 관계를 분석할 때, ‘무작위적으로 연결돼 있다’라고 하는 것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흔히 물리학이나 수학에서 복잡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임시방편적인 가정으로 ‘무작위’란 개념을 도입하거든요.”

―그렇다면 경제, 세포, 인터넷의 구조가 무작위적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갖고 연결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연결망을 ‘수학적’으로 접근해 봤죠. 무작위적 연결망의 경우엔 ‘하나의 구성인자가 몇 개의 다른 구성인자와 연결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분포를 만들 경우, 대충 비슷한 수치로 수렴돼야 합니다. 즉, 모든 구성인자가 전체적으로 비슷한 숫자의 구성인자들과 연결돼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실제 경제, 세포, 인터넷 연결구조 연구결과, 무작위적 연결망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특성을 발견했어요. 대부분의 구성인자는 적은 숫자의 다른 구성인자와 연결된 반면, 소수의 어떤 구성인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다른 구성인자들과 연결돼 있었죠. 이토록 많은 구성인자들과 연결돼 있는 인자들을 일컬어 우리는 그 네트워크의 허브(hub)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다면 허브가 나타나는 네트워크와 무작위적 연결망의 구체적인 차이점은 뭔가요?

“모든 구성요소들이 비슷하게 얽혀 있는 무작위적인 연결망을 연결성의 관점에서 ‘평등한 시스템’으로 본다면, 허브가 지배하는 네트워크는 ‘귀족’이 존재하는 불평등한 시스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세포, 경제의 많은 네트워크가 바로 허브가 지배하는, 즉 불평등한 시스템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결국 경제학자 파레토가 주장한 ‘80대20법칙’과 같이 시스템도 양극화(polarization)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꼭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맞아 떨어집니다. 양극화가 생기게 되는 예를 들어보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수의 어떤 사람은 매우 인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반면, 어떤 다른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에서 불평등이 생기는 거죠.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런 시스템에선 작은 구성인자라도, 무언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경우 허브로 등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왕따(Billy no mates)’라고 해서, ‘만년 왕따’가 되란 법은 없으니까요. (웃음)”






▲ 바라바시 박사와의 인터뷰는 7일 새벽 4시(미국 현지시각 6일 오후 2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컨퍼런스룸에서 화상을 통해 한 시간 반 동안 이뤄졌다. 사진 왼쪽부터 카이스트 경영대학 이지환 교수, Weekly BIZ 박종세 에디터, 김현진 기자, 카이스트 경영대학 이제호 교수. /주완중기자 wjjoo@chosun.com
■ 허브가 걸리면,
모두가 걸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속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예를 든다면 어떤 기업이 있을까요?

“구글이 좋은 예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불평등한 네트워크에선, 기본적으로 경쟁에 있어 선발업체가 유리해요. 특히, 진입장벽이 있는 경우엔 후발업체가 선발업체와 경쟁을 하기가 더욱 어렵죠. 선발 업체가 이미 허브가 돼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구글은 ‘검색엔진’이라는 간단한 원리를 통해, 순식간에 네티즌을 자신의 웹 사이트로 끌어들이며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 만들었죠.”

―구글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람들이 왜 인터넷에 접속하나요? 가장 큰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결국 이 부분에서 경쟁우위를 가져야 하겠죠. 구글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는 네티즌들의 특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고 들었어요. 몇몇 단어를 치면 10억 개에 가까운 페이지를 볼 수 있도록 ‘링크해 놓은’ 시스템은 ‘빠르고 쉽게 정보에 접근하고 싶다’는 네티즌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줬어요. 마치 커피숍에 홀로 앉아 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의 명함을 받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시원하게 다리를 놔 준 것과 같은 원리였죠. 구글을 통해 네티즌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들까지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네트워크 이론으로 질병의 확산도 설명할 수 있나요?

“전염병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해서 확산됩니다. 생각해보세요. 감기, 사스(SARS), 에이즈(AIDS)까지…. 이 질병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파된다는 점입니다. 즉, ‘누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 혹은 ‘누구와 자주 접촉하는가’가 전염병의 확산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물론, 단순히 부딪쳐서 전파되는 감기와 사스보다, 에이즈는 훨씬 ‘친밀한’ 관계, 즉 성관계 네트워크를 통해서 확산돼요. 에이즈는 수많은 링커(linker)들이 없으면 전파되기 힘들죠.”

―그렇다면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염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개인들의 상호접촉이 별로 없는 경우 전염병은 확산되지 않고 도태된다’고 주장했어요. 따라서 이들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상호접촉을 ‘차단’하면 전염병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죠. 따라서 감기에 걸리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감기나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했죠. 하지만 놀랍게도 허브가 존재하는 네트워크에선, 이런 방법이 안 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설령 네트워크를 이루는 각 개인 간 접촉을 막는다고 해도, 일단 허브가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되면 무서운 속도로 네트워크를 타고 확산됐기 때문이죠.”

■ “허브가 누군지 몰라도 허브에게로 통하는 길은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뭔가요?

“일단, 왜 루머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지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허브’ 역할을 하는 몇몇 사람이 알게 되면 소문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겠죠. 또, 마케팅이 필요한 기업의 입장에선 허브를 활용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다 빨리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죠. 선진 기업들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미 이를 감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의 네트워크 이론은 이들이 ‘감(感)’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한 것이죠. 다시 말해, 고객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제품에 대한 좋은 소문을 무서운 속도로 퍼트릴 수 있는 허브를 찾아내,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허브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엔 어떻게 허브를 공략할 수 있을까요?

“허브의 신원을 모르고도 허브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아주 흥미롭죠. 에이즈가 심각한 문제인 아프리카의 예를 들면 이해가 쉽게 갈 거예요. 에이즈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이 대륙의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에이즈 치료제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에이즈 치료제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이를 선택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허브에게 치료제를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럴 경우엔 선뜻 아무도 ‘내가 허브야, 내가 여기서 제일 복잡한 성관계를 맺고 있어’라고 나서지 않죠. 따라서 도대체 누가, 성 접촉 네트워크의 허브인지 쉽게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이럴 때 효과적으로 먹힐 수 있는 방법은 이렇죠. 바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에이즈 치료제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 사람에게 이 약을 전달해 투약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사람이라도 치료제를 허브에게 전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허브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의해 지목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죠. 실제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게 바로 허브의 정체를 파악하지 않고도 허브를 공략하는 방법이에요.”

―기업들 입장에서 봤을 때, 허브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품별로 허브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조금 어려운 질문인데요. 일단, 선진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선 각 제품에 대해 누가 허브인지 대충 감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가 우리 제품을 샀을 때,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어요. 정교한 방법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소비자들이 누구를 따라서 제품을 사게 되는지 면밀히 관찰해 왔죠. 하지만 이런 방법만 해도 이젠 ‘전통적인 마케팅 방법’에 속합니다. 이젠 이 분야에서도 아주 획기적인 문이 열리고 있죠.”

■ 고객의 휴대전화 속에 21세기 마케팅 혁명의 비밀이 있다

―획기적인 문이라…. 결국 여기에 뭔가 미래의 마케팅을 이끌어 갈 답이 있을 듯한데요.

“미래 마케팅의 열쇠는 바로 휴대폰에 있습니다! 휴대폰 고객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구축해 이들의 연결망 자료를 분석하면 아주 손쉽게 허브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찾아낸 허브를 마케팅에 활용하는게 스타를 이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죠. 보통 사람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 톰 크루즈 말을 믿을까요, 아니면 내가 신뢰하는 친구의 말을 믿을까요? 톰 크루즈에게 아무리 빠져 있는 팬이라도 자동차를 구입할 땐, 내 옆의 신뢰가 가는 사람을 믿겠죠.”

―결국 스타 마케팅이 ‘허브’ 마케팅으로 변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스타가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허브로 하여금 이 제품을 수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게 바로 고객이 구매 결정을 내리는 데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미래의 마케팅 분야엔 휴대폰 네트워크의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을 통해 고객의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겁니다.”

―흥미로운 지적이신데요. 최근 휴대전화 사용자 네트워크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휴대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전형적으로 허브가 지배하는 네트워크입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선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매우 다양해요. 한국의 경우를 한 번 들어보죠. 하루 중 누군가와 의사 소통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거죠! 이 같이 휴대폰이 많이 보급된 선진국에선 누가 누구를 알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를 대변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바로 휴대폰 네트워크입니다. 과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이 네트워크를 분석한다면, 인적 네트워크 구조 역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에서는 허브의 역할이 다른 네트워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나요?

“사실, 인적 네크워크에선 허브의 역할이 다른 분야보다는 덜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유는 허브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허브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물리학 교수를 한 명 소개 받아야 한다고 할 때, 곧바로 대학 총장이나 물리학과 학장을 찾아가 ‘물리학 교수 한 명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죠. 이들이 명백한 허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바쁠 거야’란 생각에 대신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따라서 허브는 이런 대안이 없을 경우, ‘최후의 대안’으로 쓰는 경우 많아요.”

■ 취업 정보를 얻으려면?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가라

―휴대전화 사용자 네트워크에서 ‘약한 유대(weak tie)’의 중요성을 발견하셨는데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1970년대 하버드대 교수 그래노베터(Granovetter)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직을 하게 됐는지 설문조사를 했어요. 놀랍게도 다수의 응답자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고 어쩌다 한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구직과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고 답했죠. 즉 평소에 자주 만나는 강한 유대(strong tie) 관계보다 자주 못 보는 약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도움이 됐다는 거예요. 언뜻 보면 놀랍지만, 이유는 간단해요. 강한 유대의 문제는 평소에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친하긴 해도 정보획득 면에선 도움이 안되죠.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뻔하니까요. 반면 약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은 내가 듣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

―이런 점을 기업의 마케팅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마케팅 입장에서 보면 약한 유대는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단점으로 꼽혀요. 하지만 정보를 좀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휴대전화 사용자 네트워크에서 나타난 실제 인적 네트워크엔 서로 친한 사람들, 즉 강한 유대들이 이루는 그룹들이 무수히 많이 나타났어요. 이 수많은 그룹들은 다시 약한 유대를 통해 서로 연결된 형태를 보였습니다. 마케팅을 하려면, 이 약한 유대에 집중하는 게 매우 중요해집니다. 화장품 기업을 예로 들어 볼까요? 똑같은 마케팅 비용을 들인다고 한다면 한 그룹에 여러 개의 샘플을 뿌리는 것보다, 약한 유대로 연결된 각각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샘플을 하나씩 뿌리는 게 이득이겠죠. 어차피 한 그룹에서 누군가가 샘플을 쓰게 되면,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해당 그룹의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전파되는 건 시간 문제니까요.”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기업들의 예가 있다면?

“구글은 아까 말했듯이,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10억 개에 달하는 웹페이지(web page)들과 연결시켜 주기 때문에 강한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마이스페이스(My Space), 페이스북(Face Book)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평소 자주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사이트들은 개개인이 자신이 속한 그룹을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그게 마력(魔力)이고, 성공 비결이에요.” 









▲ 세계적인 과학자 바라바시의 점심 메뉴는 햄버거와 다이어트 콜라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철저한 시간 관리로 그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늘“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라바시 박사 제공

내가 만난 바라바시 박사



시간관리 철저한 아침형 인간
연구결과 잘 알리는 능력 갖춰



정하웅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학교나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하다 보면 같은 분야의 학자에게 ‘새치기’를 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열심히 연구하고 있던 문제를 다른 학자가 한발 먼저 풀어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일을 당하곤 한다. 필자가 바라바시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그랬다. 1992년 어느 날 필자가 박사과정 중 1년 넘게 열심히 연구하던 프랙탈(fractal) 표면의 연구 주제를 다른 사람이 한발 먼저 논문으로 발표한 것을 발견하곤 망연자실한 적이 있다. 억울한 마음에 어떤 사람인가 뒷조사를 해보니 미국 보스턴 대학의 바라바시라는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다행히 연구주제의 절반만을 푼 것으로 밝혀졌고 필자는 연구를 계속해 1993년 나머지 반쪽을 풀어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인연으로 1998년 여름 바라바시가 조교수로 부임한 미국 노트르담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고, 1999년 네트워크과학에 대한 연구를 함께 시작했다.

내가 아는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올빼미족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바라바시 교수는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었다. 사실 이렇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연구자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은 꽤나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필자가 한밤중에 일한 결과를 새벽에 바라바시에게 전달하고, 바라바시는 아침에 일어나 필자에게 받은 결과를 검토 보완한 후, 오후에 함께 연구실에서 만나 토론했다. 24시간 풀가동 연구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단기간에 5편의 네이처(Nature)지 게재 논문을 포함해 다수의 연구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바라바시는 활동적인 사람이다. 동료교수들은 그런 바라바시교수를 보고 “빠르다(fast)”고 말한다. 연구실의 학생들은 모 건전지광고에 나오는 토끼에 바라바시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연구실 문 앞에 붙여놓곤 했다.

그는 시간관리가 아주 철저하다. 점심은 보통 혼자 카페테리아에서 과학잡지를 읽으며 햄버거와 다이어트 콜라, 또는 샐러드를 주로 먹었다. 또 글솜씨가 뛰어나고, 연구결과를 아주 잘 파는 능력을 갖췄다.

그는 한국사람과 인연이 깊다. 내가 노트르담 대학에 있을 때 바라바시 교수를 포함해 8명의 연구그룹 멤버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는 당시 우스갯소리로 그룹미팅을 한국어로 해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도 2명의 한국인 박사후 과정 학생이 그 그룹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1967년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태생으로, 30대 중반에 이미 노트르담 대학 물리학과에서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