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의 지혜

우리 안에 쌓인 138억 년 우주 나이테.. 매 순간이 귀하지 않나

 

우주를 보면 인간이 보인다.

-저 멀리 별롸 내 몸 성분은 같아 ‘세상은 별것 아니야’ 깨닫게 돼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인생에 중요한 건 희망(가치있는 간절한 희망)

-안 될 것 같아도 기다리는 게 희망, 간절한 의지는 우주를 관통하더라 그걸 아니까 치열하게 살 수 밖에 없다.

 

               -홍승수 서울대 명예 교수

“배움이 거래가 된 지금 … ” vs “인성도 학원에 맡길텐가”

“배움이 거래가 된 지금 … ” vs “인성도 학원에 맡길텐가”

[중앙일보] 입력 2013.09.25 00:44 / 수정 2013.09.25
01:30

스승이 되고 싶은 최 교사
“성적순으로 학생 차별 안 해
자주 만나 대화 … 마음
열어”

직업인으로 사는 김 교사
“인성교육 현실
모르는 소리 나조차도 바르게 못 사는데”

“인성교육? 웃기고 있네.”

 김 교사는 참고서를 펼치며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성적보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어이 오늘 아침 교무회의에서 다음 주부터 아침 조회시간에
명상시간을 갖자고 한다.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 평온한 학교를 또 휘저을 모양이다. 학부모한테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항의전화를 받거나,
아이들한테 ‘선생님, 빨리 끝내주세요. 학원 가야 해요’라는 면박을 당해 봐야 현실을 깨닫게 될 거다.

 인성을
강조하지 않은 시대도 없지만, 인성을 제대로 교육한 적도 없다. 이런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늘 떠들썩하게 장이 서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유행처럼 왔다가 곧 사그라질 거품 같은 거다. 이유는 뻔하다. 좋은 고등학교 가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얻는 게 최고라고 외치는
사회여서다.

 교장이 시켜서 조사해 봤더니 반 애들 중에서 매일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이 열에 하나다. 밥상 앞에서 나누는
얘기도 ‘공부 잘하고 있느냐’가 주요 주제다. 심각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뒤처지면 도태되고 꼭대기 한 자리를 빼면 다 패자로 몰리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질주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이미 적당한 거리 유지가 세상살이에서 최고의 처세술이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화가 나면
게임으로 풀고, 자기한테 주어진 일만 하고 타인의 일엔 무심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서기 위해 보습학원, 영재학원,
영어학원, 논술학원을 전전했던 아이들이다.

 오늘도 교문 밖엔 학원버스가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학생들을 빨리 넘기라고 윽박지르는
듯하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살풍경이다. 어젯밤엔 집에 가다가 학원 앞에서 전교 1등 하는 영민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학원은 더 이상
부끄럽거나 몰래 가는 곳이 아니다. 학교와 학원은 이제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관계가 됐다. 오후 수업 들어가려는데 영민이 엄마한테서 학원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숙제를 그렇게 많이 내주면 어떡하느냐는 전화를 받은 게 겹쳤다. 영민이의 1등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 만들어주는
거였다.

 

 김 교사도 대학 시절, 그 누구한테서도 배움의 스승이 되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정의를 위한
실천을 해본 적도 없고 정직한 행동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모나지 않은 처신과 적절한 시간 배분이 생존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기간제 교사로
전전하지 않기 위해 1학년 때부터 한눈 안 팔고 임용시험 준비만 했다.

 그 어디에서도 ‘남을 도와라’ ‘정의롭게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하지 않았다. ‘남을 이기라’가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 아닌가? 그런 현실을 모른 체하고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웃기는 소리다. 실력이 없으면 정직도 없다. 생존하지 못하면서 예의나 염치는 호사일 뿐이다.

 이제
‘배움’은 교사가 지식을 제공하고 학생이 대가를 지불해 성립되는 ‘거래’가 됐다. 자판기처럼 동전만 넣으면 ‘성적’과 ‘졸업장’이 튀어나온다.
학원 자판기가 제공하는 지식이 학교 자판기보다 맛있다면 거기에 동전을 넣는 게 당연하다. 교사도 바르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학생을 위하는 길인가? 오늘도 김 교사는 교과서와 출석부를 챙겨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간다.

스승이 되고 싶은 최 교사
“성적순으로 학생 차별 안 해 … 자주 만나 대화 … 마음
열어”

최 교사는 새 학기 처음 만난 학생들에게 ‘실력보다 인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쳇’
‘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자신을 가다듬는 게 왜 필요한지 몰랐다. 생활습관과 자기규율을 익혀 나가는 것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하기가 만만찮았다. 집에서도 배우지 않았고, 마을이 키워주지도 않았고, 학교도 방기했다.

 쉬는 시간에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누워 자는 애, 문제집을 푸는 애, 게임을 하는 애, 거울 보는 애, 주먹과 욕으로 친구를 윽박지르는 애,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먹고 있는 애 등 자기 궤도만을 도는 행성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친구가 없어 점심시간마다 누워 자는 민수를 깨웠다. ‘넌 왜
친구가 없느냐?’고 물으니, ‘흥미가 없다’고 한다. 나와 다르지 않은 너. 궁금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은 타인! 학교는 ‘나와 똑같은 너’가
끝없이 나열돼 있을 뿐이다. ‘학교-학원-집’이라는 쳇바퀴는 민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 지루함을 달래줄 게임의 종목만
달랐다.

 돌이켜보건대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학교는 친구를 사귀고 서로 돕고 함께 놀고 생각을 나누고 갈등을
푸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아직도 학교는 인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목표를 깃발처럼 걸어두기는 한다. 그런데 학교도 공부만 하는
곳으로 자신들을 규정해 왔다. 학교와 학원은 경쟁했고 학원이 승리했다. 교사들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오는 줄 안다.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좀 어려운 과목은 학원에라도 가서 배워 오라고 권한다. 그게 피차 편하다. ‘학원이 인성마저 가르쳐준다’고 광고를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면 입맛이 쓰다.

 최 교사는 그걸 깨고 싶었다. 우선 성적순으로 학생을 차별하지 않았다. 성적대로 앉히거나
성적 순으로 분반을 하지 않았다. 인성교육을 특정한 시간에만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생활로 익히기 위해 아이들을 자주 만났다. 교사보다 바쁜
아이들 상황에 맞게 쉬는 시간이나 청소시간, 학원 안 가는 날을 확인해 대화를 나눴다. 교과 얘기보다는 집안 얘기, 생활 상담, 역할극, 탐방,
자치회의 등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려고 했다.

부모들에게도 호소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으라고, 공부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나눠보라고. 청소년은 공부기계가 아니라 방황, 반항, 우정, 연애로 흔들리는
존재라고.

 아이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부임 초반 교실에 들어갔는데 쓰레기가 바로 옆에 떨어져 있어 좀 주우라고 하면 “내가 안
버렸는데요?” 하며 쳐다보던 아이들이었다. 이제는 자기 공간에 대한 애정이 생겼는지 곧잘 줍는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제법
진지한 얘기도 나눈다. 자기 생활을 자기가 살피고, 자기 기운에 맞는 습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궁금해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세계 앞에 정의롭고자 했다.

 인간에게는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측은함, 자율적
책임감과 의식의 독립, 공동체를 향한 헌신하는 자세. 하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인성을 배우지 못하는 사회에선 이런 것들은 언젠가 휴지 조각처럼
버려질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이 그립다.

◆특별취재팀=성시윤·윤석만·이한길·김혜미·이서준
기자
◆경희대
연구팀=정진영(정치학)·김중백(사회학)·김병찬(교육행정)·성열관(교육과정)·지은림(교육평가)·이문재(현대문학)·김진해(국어학)
교수

[논쟁] 무상급식, 지속 가능한가

[논쟁] 무상급식, 지속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2013.08.24 00:50 / 수정 2013.08.24
00:50

경기도가 최근 내년도 예산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로 하고 일부 지자체가 동조하면서 무상급식 논란이 2년 만에
재연됐다. 당시엔 “무상급식을 하자”는 쪽이 주도권을 쥐었다면 지금은 “재정이 감당키 어렵다”는 쪽이 공세적이다. 이에 대해 “무상급식은 미래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윤리적 투자”란 주장과 “보편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만큼 재검토해야 한다”는 반박이 엇갈린다.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부양 의무 질 미래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무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경기도가 재정난을 이유로
내년도 예산에서 무상급식 비용을 전액 삭감한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인천시는 올해 수준으로 무상급식 예산을 배정할 입장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마침
양쪽 광역단체장이 여야로 나뉘어 있기에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할 조짐도 없지 않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측의
주된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다른 하나는 윤리적 문제다. 무상급식 소요 예산이 지자체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다른 부문의 생산적
투자를 위축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지역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경제적 문제다. 무상급식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공짜 심리를 조장해 장차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기에 비교육적인 정책이라는 것이 윤리적 문제다. 덧붙여 초·중등 교육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소산이라는 정치적 주장도 있다.

 이런 반대 논리가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무상급식을 시행하자는 이유 역시 경제적, 윤리적, 사회적 견지에서 제시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무상급식이
친환경 유기농의 로컬푸드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소비시장에서의 기능을 빼놓을 수 없다. 무상급식은 또 가계소득의 간접적 증대 효과로 인한
새로운 구매력 창출뿐 아니라 식자재 생산 및 식품안전성과 관련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낳는다.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무상급식은
기성세대의 책무에 해당한다. 누구를 위한 경제발전이며 미래 투자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를 넘어 이제는 국민 행복을 얘기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경제가 얼마나 더 성장해야 자라나는 세대에게 기꺼이 무상급식을 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어쨌든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사실 2040년대에 이르면 경제활동인구 4인이 은퇴한 노령층 인구 1인을 부양해야 하는데 그 부담에 대한 고마움을 미리 앞당겨 표시하는 것이
무상급식일 수 있다. 무상급식이야말로 기성세대의 미래세대에 대한 윤리적인 투자인 셈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든 찬성하든 양측 모두
국가 장래를 걱정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무상급식 찬반 논쟁은 궁극적으로 세금을 어느 정도 내고 그 세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예컨대 4대 강의 홍수 조절과 수질 개선, 아니면 저출산 문제 완화와 인재 양성을 놓고
볼 때 과연 어느 것이 급선무일까?

 사회 양극화 문제가 사회 갈등을 야기한다는 진단은 이미 나와 있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편이
못사는 집단이거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쪽이 잘사는 집단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다. 지금의 무상급식 찬반론은 세대간·지역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정치적 견해 차이에 지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앞으로의 정치적 차이, 그것이 무상급식 찬반보다는 정책 우선순위 결정과 그 예산
집행의 감시를 통해 존재 의의를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무상급식 논쟁, 그건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다. 정책 대상이기 이전에
철학 가치의 영역이기에 무상급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지자체들 수정 검토 …
무상≠공짜 드러나

임동욱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2011년 8월 24일 서울시는 무상급식 실시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자리를 걸었다. 투표 결과는 오 전 시장에게 참혹했다. 투표율이 개표 기준인 33.3%에 못 미쳐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못했다. 그는 퇴임했다. 평가는 초연·용기와 집착·만용으로 엇갈렸다. 주민투표 이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무상급식이 당연해졌다. 현재 학교
기준으로 전국 초등학교의 94.6%, 중학교의 75%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는 돈이 없어서 무상급식을 못하겠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경남·대구·경북 등은 재정 부담으로 정책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저마다 무상급식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무상복지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다시 대두된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 공약 이행 논란과 함께 무상급식은 불과 2년 만에 복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사람들은 2011년과 지금의 무상급식 논란을 다른 차원에서 본다. 2011년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지금은 방법의
문제라는 인식이 대표적 예이다. 2011년에는 프레임에 갇혀서 전면 시행에 반대하면 무상급식을 하지 말자는 것으로 보였다.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공직을 내려놓은 결과 때문에 단계적 시행이라는 진실이 가려졌다. 2011년 8월과 지금의 무상급식은 다른 듯이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2011년
8월에도 무상급식 시행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전면 무상이냐 단계적 무상이냐가 문제였을 뿐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겨우 2년 전에
겪은 진통을 되풀이하는 원인은 간단하다. 복지철학이 안일하고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무상을 공짜로 생각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다.
무상의 이면에는 나와 누군가의 부담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 무상급식 주장은 이 무서운 진실을 덮고 있었다. 지자체의 무상급식 관련 예산파동이
전하는 메시지는 ‘세금 없는 보편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진리다. 차제에 무상이라는 말이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세금급식이나 의무급식이
무상급식보다 의미 전달이 명확하다.

 우리를 위해서 나도 부담을 안고 때로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복지의 선택지가 구체적으로
펼쳐지면 논쟁은 시작된다. 증세 또는 세출 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때는 모두 이기적이 된다. 내 이익이 최우선 기준이다. 내가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고 고통은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가 결정의 잣대이다. 개인의 이해가 첨예하게 표출될 때 사회적 합의가 중요해진다. 합의는 갈등과 문제를
극복해내는 힘이다. 너와 나를 함께 아우르는 참 우리를 찾아내는 동력이다. ‘기꺼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저항 없는’ 납세는 사회적 합의를
상징한다.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복지라야 생명력이 있고 지속 가능하다.

 숙의민주주의의 정신은 합의 도출에 효과가 있다. 그 정신은
지속 가능한 복지를 구현하는 단초가 된다. 진정성 있는 납득 과정은 조세저항을 최소화시킨다. 복지가 재정 여건과 경제 전망에 기초하니
재정건전성이 담보된다. 초고령 사회와 통일·안보비용 등 복지 환경을 고려하면서 복지의 수준과 질이 결정된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버티고 있으니
‘전면 시행’이나 ‘무상 시리즈’ 같은 광풍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끊임없이 더 분명하게 부담하고 혜택을 받으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그런 복지가
그립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ESSAY] ‘무상 급식’에 대한 한 정신분석

새끼들 먹이며 사랑 전하는 포유류… 누가 먹여 키웠나 정체성에 큰 영향
무상급식 먹고 자란 아이들, 부모 생각하는 마음 예전
같을까
식중독 무서워 ‘튀김’ 선호한다는데 우리 아이들 성인병은 어쩌나

김석대 신경전신과 전문의

개를 키우는
친구네 집에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어 주인의 가슴팍을 치더니 물고 핥고 난리법석이다. 요즘
사람들 마누라 자랑이나 자식 자랑은 눈치를 보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 자랑에는 염치도 체면도 없나 보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랑을 시작한다.
아무래도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너무 크다 싶은, 털이 북슬북슬한 그 짐승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참 잘도 했다. 악수를 하고 앉고 구르고 눕고
엎드리고 별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친구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라며 내게 소시지 한 조각을 주면서 개에게 먹여보란다. 개는 내가 주는 소시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주인이 주니까 덥석 받아먹는다. 친구의 얘기인즉 훈련이 잘된 개는 남이 주는 음식은 절대로 받아먹지 않는단다.
그럴듯하게 들렸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삼라만상은 다 먹는다. 어미는 새끼를 먹여 기르고, 새끼는 먹여주는 어미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그렇게 배운 사랑을 다시 자기 새끼에게 쏟아 베풀면서 어미가 된다.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동물은 물론이고, 젖이 없는 새나
물고기도 먹이를 날라다 새끼를 먹인다. 먹이를 주는 것은 모든 어미의 특권이고, 새끼는 먹여주는 어미에게 감사하며 어미를 사랑하게 된다. 짐승은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가장 따른다. 자식을 먹여 기르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자식으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받을 특권이 있다. 이
특권을 누리려면 자식을 직접 먹이고 입혀 키워야 한다.

엄마가 되었다고 그날부터 음식 솜씨가 요술처럼 별안간 좋아지는 법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엄마의 손맛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신기한 것은 내 어머니의 음식 맛과 아내의 음식 맛이 전혀 다른데, 아내의
손맛과 어머니의 손맛이 똑같이 맛있다. 내게는 그 맛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가끔 여행 중에는 전문 요리사들이 요리한 음식들만 먹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내 질리고, 아내가 싸준 고추장이 산해진미를 뺨친다. 음식에는 재료와 양념 이상의 맛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에세이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꽤 오랫동안 ‘무상 급식’을 둘러싼 사회적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각 가정에서 부모들이
먹이고 길러야 할 아이들을 나라가 차별 없이 똑같이 돈 안 받고 먹여주겠다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도 나랏돈으로 먹일 필요가 있느냐부터 재정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정치권이 선심성 정책에만 매달렸다는 비판들까지 나온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다. 어쩌다가 나라와 부모가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상 급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부모를 버리고 나라 편에 서지는 않을까.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은 물지 않는 법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심심풀이로 골탕먹이는 심술궂은 주인집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벼르면서 기회를 노리던 강아지가
아이에게 대들어 물고 할퀴었다. 집안 식구 누구도 잇몸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강아지를 말릴 재간이 없다. 이때 부엌에서 일하던 가정부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강아지가 조용해진다. 강아지는 주인보다 밥 주는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다.

사람이 짐승과 같을 리야 만무하지만, 과거
중국 문화혁명 시절의 ‘홍위병’을 생각해보면 오싹하다. 나라가 직접 먹이고 입혀 키운 어린 중학생들이 홍위병이 되어 부모를 고발하고 총칼을
겨누지 않았던가. 그 어린 학생들이 꼭 마오쩌둥 사상에 투철해서 그랬을까. 그만큼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누가 자기들을 먹이고 키우고
입혔는지는 중요한 것이다. 먹고 입고 자는(衣食住) 기본적인 일은 본래 가정의 영역에 속한다. 이를 나라에서 다 해주겠다고 하면 그건 결코
고마운 일도 아니다. 이를 현실에서 실현해보려 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험’도 이미 실패로 끝난지 오래다.

사실 학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아이들 밥을 공짜로 먹여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부모라면 내 자식 먹이는 일에 누가 돈을 아끼겠는가.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보리죽이라도 내가 벌어 먹이겠다”는 오기는 가져야 한다. 아이들을 먹이는 책임과 권리는 부모에게 돌려주고, 나라는 효율적인
경제정책을 세워 모든 가정이 의식주를 해결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도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먹이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밥 먹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는 정답을 가르쳐 줄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교장선생님들은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집단 식중독 때문에 주말이나 되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한다. 영양학이나 조리학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데, 식중독이
생기면 책임은 몽땅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든 튀겨내는 조리법이라고 한다. 끓는 기름 가마에서 살아남을 세균은
없을 것이고, 튀긴 음식은 아이들이 좋아하니 궁여지책치고는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튀김기름의 트랜스지방인가 하는 것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생기는 성인병들은 어이할거나.

조선일보-사외칼럼

위기의 중학생 왜, 전문가 진단

위기의 중학생 왜, 전문가 진단

[중앙일보] 입력 2013.09.23 01:11 / 수정 2013.09.23
02:18

[대한민국 중학생 리포트 ①] 도덕성·사회성 무너지는 교실  부모 세대 ‘무한경쟁 가치관’ 주입한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중학생들의 인성 수준이 낮은 것은 왜일까.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이식된 탓이 크다.

 한강의 기적과 경제위기를 모두 겪은 한국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 체제에 길들여져 있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과정보다 결과로 이뤄진다. 학생의 능력도 곧 성적으로 쉽게 등치된다. 청소년들의 사회화 기관인 학교와 가정에서 사람됨을
가르치는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소년 자식을 둔 현재의 부모세대는 대부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사회
초년생이었다. 고속성장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증유의 경제위기에서 삶의 가치관과 목적의식에 큰 혼란을 경험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전근대적 교육을 받았지만 세계화와 정보화로 야기되는 무한경쟁 시대에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또한 부모와 수직적
관계를 맺고 성장해 자녀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고 이에 따른 의사소통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 결과 생존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자식들에게 과거의 억압적 방법으로 강요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보다는 살아남는 법을 주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에서
인성교육은 부모들의 관심 밖이 되기 십상이다.

 매스컴을 통해 아이들이 학습하는 성공의 공식도 다르지 않다. 양파 껍질 벗기듯
드러나는 사회지도층의 온갖 불법과 비리.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공방을 벌이는 각종 사회 이슈들. 아이들은 손쉽게 온갖
부정과 불법·편법을 접하고 이를 배우게 된다. 인성은 교과서만으로 배울 수 없다. 일상 속에서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따라 배운다. ‘어른이
아이의 거울이 된다’는 진부한 옛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깊이 되새겨야 할 경구다.

 인성지수는 이러한 구체적 실천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인성을 이루는 여러 덕목 중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점검하고 미흡한 점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가정과 학교·사회는 아이들의
미래를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물질적 성공만 주입시킬 게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제는 생각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좋은 수학 수업-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쓰는 수업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쓰는 수업

 

6학년 1학기, 분수의 나눗셈 단원을 지도하는 시간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덜어 내는 나눗셈’과 ‘똑같게 나누는 나눗셈’에 대한 개념을 지도하기 위해 쌓기나무를 활용한 조작활동을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교사 : 선생님이 나누어 준 쌓기나무를 가지고 2나누기 1/4 의 정답을 구하여 봅시다.

 

그러나 학생들은 쌓기나무를 가지고 장난을 할 뿐, 조작활동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불평 섞인 푸념을 늘어 놓습니다.

 

학생 : 그냥 뒤집어서 곱하면 되는데…..

 

위의 내용은 초등학교 6학년 분수의 나눗셈 단원을 지도할 때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교실상황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선행학습을 통하여 분수의 나눗셈은 역수로 곱하여 해결하는 것으로 암기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모든 계산 문제의 정답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학생들은 수학과 교육과정에서 분수의 나눗셈 단원의 학습 이유로 제시한 포함제(동수누감)의 개념이나 통분의 과정을 거쳐 분수의 곱셈 형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수학교육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관찰하고 조직하는 경험과 수학의 기초적인 개념, 원리, 법칙을 이해하는 능력을 통하여,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의사소통하며, 수하게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수학의 가치를 이해하며, 수학에 대한 긍정적 태도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초등학교 수학교육은 탐구과정 및 사고과정은 뒤로 한 채 정답을 구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 상호간, 교사와 학생, 교사와 전체 학급 학생과의 의사소통 보다는 일방적인 설명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구하는 수학에서 벗어나, 모둠별로 토의 과정을 통하여 서로의 생각을 듣고 문제 해결 방법을 공유하며 이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보다 능동적인 수학 수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수학 수업을 위해 우리 교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첫째, 매일 아침 자습 시간에 수학 도서 읽기 활동을 합니다. 시중에 출판된 수학도서 중에는 초등학생이 흥미를 갖기에 충분한 재미있는 수학 도서가 많이 발간되어 있습니다. 수학 도서 중에는 초등학생이 흥미를 갖기에 충분한 재미있는 수학 도서가 많이 발간되어 있습니다. 수학 도서 읽기를 위해 학기 초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을 통하여 선정하고 이를 구입하여 학급 전체 학생이 윤독을 하는 방법으로 적어도 일년 동안 수학 도서를 30여 권 가까이 읽게 됩니다. 핵을 읽은 후에는 서평 쓰기를 통해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친구에게 소개하는 활동을 합니다.

둘째, 각 단원의 첫 시간 수업에 수학사를 도입합니다. 단원의 내용과 관련된 수학자, 수학이론, 수학의 역사 등을 이야기로 안내하여 배울 내용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여 수학을 배우는 이유에 대하여 인지하도록 합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수학일지를 작성하게 하여 수학의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셋째, ‘내가 만드는 수학교과서’ 라는 또 한 권의 교과서를 작성합니다. 교육과정에 제시된 수학의 약속 및 용어를 자신의 말로 만들어 정리하는 공책입니다. 이러한 수업을 위해 교사는 약속 및 용어에 필요한 몇 가지 단서를 제시하고, 학생들은 개별활동 및 모둠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사전지식 및 아이디어를 나누는 토의과정을 통하여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의 신장시킬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수학교과서는 ‘생각 열기’ ,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확인하고 다지기’, ‘탐구 활동’ 등 학생들의 적극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활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은 문제를 풀고 정답을 구하는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수학 교육에서 벗어나 수학적 사고력 및 문제해결력, 수학의 가치를 이해하는 수업을 위해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쓰는 수학 수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