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공부-[재미있는 잠의 비밀] 잠을 자야 기억력 좋아진다

<자료출처>http://www.ktcunews.com/sub04/article.jsp?cid=16535

 

[재미있는 잠의 비밀] 잠을 자야 기억력 좋아진다

수면 중
단기기억이 대뇌로 이동
신경연결 생겨 창조적 아이디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기억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잘 기억나지 않던 것이 자고 난 다음 날에는 잘 조합되어 머릿속에
떠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잠을 자고 나서 오히려 기억이 더 좋아진다니 참으로 이상하다.” 로마
시대의 교육자인 퀸틸리아누스가 한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어떤 문제로 고민하다가 자고 난 후에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는 동안 우리 뇌가 휴식을 취해서 더 똑똑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국제수면학회에 참석해보면, 수면과 인지기능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가 봇물을 이룬다. 사이언스, 네이처 신경과학 파트에도 이런
연구 결과가 다수 실리고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기간과 평상시의 꿈의 밀도를 비교해보니 시험기간에 꿈을 더 많이 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부를 많이 하면 그만큼 꿈수면도 늘어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쥐가 낮에 미로를 통해서 먹이를 찾아가는 실험을 할 때의 뇌파를 측정한 후,
잠을 잘 때 뇌파와 비교해보니 낮 동안 나타났던 뇌파가 ‘재생’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잠을 방해하면 그 다음 날 먹이를 찾아가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도 관찰했다. 수면 중에 낮에 경험한 것이 뇌에서 재생되면서 정리되고 저장되어 기억으로 남는데, 이런 과정을 방해하면
기억 즉 학습이 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다.

사람 뇌에는 ‘해마’라는 단기기억 저장소가 있다. 낮에 공부한 것이 일단 여기에
저장된다. 해마에 있던 정보는 자는 동안 대뇌의 여러 부분으로 옮겨지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신경연결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 단단해지고
기존 지식과 연결되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생긴다.
잠을 자지 못하면 해마에 저장된 기억들이 대뇌로 이전되지 못하고, 다음날
새로 경험한 사건들이 들어오면 밀려나서 없어진다. 시험 전날 밤,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던 것이 며칠 후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잠을 줄여서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학습이 완성되지 않는다. 성인은
하루 7시간 이상, 청소년은 8~9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당신은 충분히 자고 있습니까?

신홍범
수면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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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의 3분의 1 가까이 잠으로 보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잠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불면증, 코골이,
잠꼬대, 낮 시간 졸음 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잠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얼마나 자야 하나?’, ‘코골이는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은가?’,
‘자도 자도 졸리는 이유는 무얼까’ 등.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잠’의 비밀을 연재합니다.

융합형 교육에 대한 세 가지 미신

융합형 교육에 대한 세 가지 미신[중앙일보] 입력 2014.02.28 00:01 / 수정 2014.02.28
00:01

강홍준 논설위원
 

교육에서 말하는 융합이란 칸칸이 나눠놓은
학문 간 장벽을 트는 작업이다. 전공이나 학과가 각개약진하듯 가르치는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기르겠다는 게
융합형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목표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일, 문제는 복합적인 것이어서 이를 풀어내는 대안을 찾기 위해선
하나의 학문 분야만의 지식으론 부족하다.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 과학이나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을
키우겠다는 실용적인 목적이 융합형 교육과정에 담겨 있다.

 정부가 올해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는 융합형 교육과정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 이하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1학년도부터 문·이과 통합 수능을 도입하기로 한
것도 융합형 교육과정에 따른 것이다. 모든 학생이 문·이과로 구분되지 않는 교과서를 가지고 배운다. 수학 과목 하나만 보더라도 반복적인 문제풀이
위주의 교육보다는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스토리텔링 교육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까지 보면 융합의 취지는 썩 괜찮아 보인다. 문·이과로 나눠 가르치는 나라가 선진국 중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것도 융합형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학문 간 벽을 무너뜨리는 연구로 잘 알려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미디어랩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융합이란 그럴싸한 외피(外皮)만 보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 건너온 융합형 교육엔 몇 가지 미신이 깔려
있다.

 문·이과로 나누어진 과목들을 한꺼번에 모아 가르치면 교습자의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융합이 된다는 미신이 첫 번째다.
음식점이 한·중·일식을 뷔페식으로 골고루 제공하면 먹는 사람이 알아서 섞어 먹을 것이라는 미신 말이다. 우리나라 몇몇 대학이나 중·고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융합교육과정은 다양한 전공 교수, 또는 다양한 교과 교사들의 강의를 접하게 한다. 여기엔 여러 분야의 학문을 한꺼번에 배운다는
장점은 물론 있다. 하지만 학과 벽을 터놓고 다양한 전공자들을 모아놨을 뿐이다. 융합형 교육과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가르치는 교수 또는 교사들이
서로 치열한 토론을 해 학생에게 뭘,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고민했어야 하나, 그런 과정이 생략돼 있다. 그냥 다양한 강의를 나열했다는 정도인
게 우리의 융합형 교육과정이다. 융합의 몫이 철저히 학생에게 있다.

 융합형 교육은 기존의 교수나 교사에게 맡겨놔도 가능하다는
미신도 있다. 연구와 교육을 함께 하는 대학에선 이게 가능할지 모른다. 외부 과제를 따와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다양한 전공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대학에선 흔하다. 하지만 중·고교는 그렇지 못하다. 중·고교 교사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이들은 새롭게 도입되는
융합형 교육과정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인 데다 단순히 몇 시간 동안 연수받아서 때우기엔 한계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욕 있는 젊은 교사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교사가 되기 위해 철저히 학과별로 나누어진 교원임용시험을 수년 간 준비한
사람들이다.

 마지막 미신은 융합형 교육이 창의력 있는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게 가장 강력하다. 아주 우수한 학생은
그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학습수준이 천차만별인
학교에 융합형 교육과정을 적용할 때는 다른 문제가 벌어진다. 보통의 학생들은 우선 배워야 할 범위가 확 늘어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학문 분야별로 나누어져 있을 때 교사가 줄 수 있었던 최소한의 지식마저 융합형 교육에 휩쓸려 실종될까 걱정스럽다. 어찌 보면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융합형 인재가 공교육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의 전기를 읽어봐도 그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의 수혜자는
아니었다.

 

 단순히 교과의 벽을 부수는 게 융합형 교육은 아니다. 벽을 무너뜨린 빈터에 무엇을 지을지
철학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강홍준 논설위원

진도만 나가는 ‘진돗개 선생님’, 뷔페처럼 금세 질리는 교육… “낡은 수업 리모델링”… 머리 맞댄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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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만 나가는 ‘진돗개 선생님’, 뷔페처럼 금세 질리는 교육… “낡은 수업 리모델링”… 머리 맞댄
교사들


곽수근 기자



입력 : 2014.02.19 03:01



 

현직 500명 아이디어 나눠



“아직도 교과서와 백묵(분필) 하나로 수업 진도만 나가는 교사가 많습니다. ‘진돗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분들입니다. 교실의 각종 첨단 기기도 이분들에겐 무용지물이죠.”(안산 성호중 이원춘 수석교사)

“먹고 나면 금세 질리고 소화도 안 되는 ‘뷔페 음식’, 이게 바로 우리 수업의 모습 아니었나요?”(인천 장도초 여정민 교사)

18일 한국교총 새교육개혁포럼과 한국교원대가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신학기, 수업을 바꾸자’라는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교사 500여명이 몰려 새로운 수업 방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생이 되는 2018학년도부터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교과서뿐 아니라 기존의 수업 방식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변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그동안의 수업이 ‘듣고 외우고 시험 보고 잊어버리고’의 반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이 스스로 원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지 않고, 단편적인 지식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보내는 기계적인 주입식 작업을 해왔다”는 반성이 나왔다.

이날 포럼에선 기존 강의식 수업의 대안으로 ‘플립트 클래스룸(Flipped Classroom)’을 채택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공부는 학교에서, 숙제는 집에서 하는 것’이라는 종래의 생각을 뒤집는다는 뜻에서 ‘거꾸로 교실’ 또는 ‘교실 뒤집기’ 수업으로도 불리는 이 방식은 교실에서의 강의식 수업은 인터넷을 통한 동영상 강의로 바꿔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 교실 수업 때는 교사와 학생이 묻고 답하고 토론하는 상호작용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문·이과 통합 과정 수능을 치르기 위해선 단순히 교과 과정을 융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따르는 교수법 및 평가법이 개발돼야 진정한 융합 교육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 방식을 학생들에게 좋은 정보를 안내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수업 시간에 교사 강의는 10분으로 줄이고, 나머지 30분은 학생들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고급 정보를 찾고 스스로 지식을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포럼에 참석한 교사들은 “진돗개 교사가 정보 길라잡이로 탈바꿈하는 것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큰 과제”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한국 교육체계, 가장 성공적 사례에 속해”

교육 형평성·교사 임금 및 자질 면에서 뛰어나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한국의 교육 체계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았다.

 

유네스코는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세계 각국의 교육 현실을 비교한 가운데 한국 교사의 교육수준과 임금체계, 교육 형평성 등을 호평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교육 체계는 가장 성공적인 제도 중 하나”라며 “한국의 학습 성과가 좋고 공평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취약계층이라도 질 좋고 경험 많은 교사와 만날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농촌 지역에 근무하는 교사의 75%가 학사 학위를 갖추고 있으며, 교사의 45%가 20년 이상의 경험이 있어 도시지역 교사보다 교육이나 경험 면에서 앞선다고 강조했다.

 

교사의 임금 수준이 높고 경력에 따라 임금 상승폭이 큰 것도 장점이라고 언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학교 교사의 임금은 전문직보다 20% 더 높으며, 초임은 영국과 비슷한 3만2천 달러(약 3천428만원) 수준이지만 경력이 쌓이면 연봉이 초임의 2배 이상에 이른다.

 

또 한국이 수준 높은 교사를 양성하고 교육 형평성을 높인 것은 국가 경제발전에 영향을 줬다고 풀이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필리핀보다 50% 빠르게 교육 불평등을 해소했으며, 필리핀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5%에 그치는 동안 한국의 성장률은 5.9%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부실한 교육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연간 1천290억 달러(약 137조9천655억원) 규모의 교육비가 낭비된다는 점도 지적됐다.

 

조사결과 매년 2억5천명의 아동이 교육을 받고도 기초적인 읽기나 산수를 익히지 못했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전 세계 초등 교육비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1천290억 달러에 달했다.

 

또 전 세계 국가 3곳 중 1곳은 국가 기준에 맞게 교육받은 초등학교 교사가 전체의 75%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 집필을 총괄한 폴린 로즈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수년간 다니고도 필요한 기술을 하나도 익히지 못한다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지적했다.

 

‘넌 특별한 아이’라는 위험한 주문

‘넌 특별한 아이’라는 위험한 주문

자료출처 : [중앙일보] 입력 2014년 01월 25일

양성희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고가 마케팅 전략이 잘 먹히는 곳 중 하나가 유아용품 시장이다. 100만원대 수입 유모차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최근에는 보통 물티슈보다 열 배 비싼 ‘청담동 물티슈’도 등장했다. 영국 왕가에서 사용하는 ‘로열베이비’ 제품들도 인기란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VIB(Very Important Baby)’ 마케팅 제품들이다.
굳이 명품이 아니어도 유아용품 광고는 대부분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믿음을 파고든다. 저출산 시대, 하나 둘뿐인 아이가 소중하고 특별하지 않을 리 없다. 부모는 명품 인생 아니라도 자식은 명품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 욕심에 허리끈을 졸라맨다.

마케팅만의 문제도 아니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 양육관과도 통한다. 늘 ‘넌 특별한 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부모의 긍정적 지지야말로 최고의 양육 태도란 확신과 함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캐럴 드웩 교수는 ‘칭찬의 역효과’에 주목한다. 물론 모든 칭찬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넌 똑똑해. 넌 재능 있어. 넌 머리 좋아” 같은 칭찬이 문제다. 타고난 재능을 칭찬하면 아이는 오히려 그런 주변의 기대를 강박으로 느끼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데서 좌절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지능과 재능을 칭찬받으면 ‘능력은 태어날 때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에 도전정신이나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줄어들어 결국 능력이 저하된다는 분석이다. 아마 ‘넌 특별하다’고 주문처럼 되뇌는 것도 비슷할 것이다.
반면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는 방식은 도움이 된다. 그런 칭찬을 받으면 아이는 ‘노력하면 능력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실제로도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해냈다.
 사실 현대 부모에게 일반화된 ‘넌 특별한 아이’라는 양육 이데올로기의 더 큰 문제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삶을 아주 하찮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가능성이다. 부모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며, 아마도 아이가 장성해 십중팔구 그렇게 살아갈 평범한 삶 말이다.
 나 역시 누군가를 가르키며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밖에 못 된다”며 아이를 ‘협박’한 적이 있다. “넌 특별하고 똑똑하고 재능 있고 머리 좋으니 나중에 잘될 거라 믿는다”는 말을 격려랍시고 매일 해대기도 했다.
 어찌 보면 부모의 삶이란 특별할 줄 알았던 제 아이의 평범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수 있지만, 모두가 특별하게 되는 것보다 특별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평범성을 하찮지 않게 여기는 세상이 훨씬 더 좋은 것 아닌가. 그게 아마도 진짜 특별한 삶, 진짜 특별한 세상 아닌가 한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PISA 2012 결과 뒤집어보기

<월요논단> PISA 2012 결과 뒤집어보기

 
2012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2012) 결과 OECD 국가 중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았던 핀란드 학생이 성적만 크게 하락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학생 비율 또한 바닥권으로 나타나 핀란드 교육계가 비상이다. 핀란드 언론은 심지어 ‘핀란드 교육의 황금기는 끝났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일본 학생이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크게 학력이 저하돼 일본 역시 충격에 빠졌고 결국 ‘유도리 교육’을 포기하고 교육개혁의 방향을 바꿨다.

최고 성과에도 비판받는 교육

이제 OECD가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를 실시한 이래 계속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국가는 우리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언론은 학생의 학교 흥미도가 조사 국가 중에서 꼴찌라 우리 교육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제는 학생이 행복한 교육, 입시가 아닌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 인성을 아우르는 전인교육 등이 나가야 할 방향이란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은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창의·인성교육이 꽃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말 그대로 모두가 도달하고자 하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교육 유토피아다.

언제나 지금처럼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좋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요즘같이 학생 행복과 인권, 창의력과 인성 중시 교육을 강조하다 보면 일본이나 핀란드처럼 학생 학업성취도의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더구나 최근 정부는 초?중등 교육에 대한 공교육비 지원을 줄이는 추세니 학생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날은 더 빨리 올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교육계는 일본이나 핀란드 교육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비난과 수모를 겪게 될 것이다. 최고 학업성취도는 의미가 없다고 하던 언론들이 가장 앞장서서 한국교육에 대해 조사(弔辭)를 읊어댈 것이다.

물론 지나친 경쟁위주의 입시교육은 문제다. 하지만 뛰어난 수재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즉,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이끄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 지적하듯 학령기 학생이 꿈꿀 시간마저 주지 않는 극단적 상황이 문제다.

2013년 타임즈의 베스트셀러로 꼽힌 아만다 리플리(Amanda Ripley)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이라는 그녀의 저서에서 한국 교육에 대한 한국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 학교가 학생에게 어려움과 지겨움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인내력(endurance)과 주어진 과제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강인한 추진력과 투지(perseverance) 등을 성공적으로 길러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점 살리면서 탈출구 찾아야

미국, 대만, 일본 등 소득 2만 불을 넘어선 국가의 학생 상당수는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 풍족한 그들은 게임을 통한 재미 추구, 컴퓨터를 통한 자료 획득의 즉시성과 편리성에 젖어 있다. 그러다보니 졸업 후 자기 입맛에 맞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고, 찾더라도 자신들이 생각한 것처럼 즐겁거나 쉽지 않아 아예 그만두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만일 행복한 학교, 창의력과 인성을 기르는 교육을 실시하면서 그동안 우리 교육이 학생들에게 길러주었던 덕목은 소홀히 한다면 학생들의 성적 추락의 날은 더 빨리 다가오게 될 것임을 핀란드와 일본 교육은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교육이 잘 해왔던 것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 그 강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PISA 결과를 통해 우리 교육계가 얻어야 할 시사점이다.

“배움이 거래가 된 지금 … ” vs “인성도 학원에 맡길텐가”

“배움이 거래가 된 지금 … ” vs “인성도 학원에 맡길텐가”

[중앙일보] 입력 2013.09.25 00:44 / 수정 2013.09.25
01:30

스승이 되고 싶은 최 교사
“성적순으로 학생 차별 안 해
자주 만나 대화 … 마음
열어”

직업인으로 사는 김 교사
“인성교육 현실
모르는 소리 나조차도 바르게 못 사는데”

“인성교육? 웃기고 있네.”

 김 교사는 참고서를 펼치며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성적보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어이 오늘 아침 교무회의에서 다음 주부터 아침 조회시간에
명상시간을 갖자고 한다.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 평온한 학교를 또 휘저을 모양이다. 학부모한테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항의전화를 받거나,
아이들한테 ‘선생님, 빨리 끝내주세요. 학원 가야 해요’라는 면박을 당해 봐야 현실을 깨닫게 될 거다.

 인성을
강조하지 않은 시대도 없지만, 인성을 제대로 교육한 적도 없다. 이런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늘 떠들썩하게 장이 서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유행처럼 왔다가 곧 사그라질 거품 같은 거다. 이유는 뻔하다. 좋은 고등학교 가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얻는 게 최고라고 외치는
사회여서다.

 교장이 시켜서 조사해 봤더니 반 애들 중에서 매일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이 열에 하나다. 밥상 앞에서 나누는
얘기도 ‘공부 잘하고 있느냐’가 주요 주제다. 심각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뒤처지면 도태되고 꼭대기 한 자리를 빼면 다 패자로 몰리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질주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이미 적당한 거리 유지가 세상살이에서 최고의 처세술이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화가 나면
게임으로 풀고, 자기한테 주어진 일만 하고 타인의 일엔 무심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서기 위해 보습학원, 영재학원,
영어학원, 논술학원을 전전했던 아이들이다.

 오늘도 교문 밖엔 학원버스가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학생들을 빨리 넘기라고 윽박지르는
듯하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살풍경이다. 어젯밤엔 집에 가다가 학원 앞에서 전교 1등 하는 영민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학원은 더 이상
부끄럽거나 몰래 가는 곳이 아니다. 학교와 학원은 이제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관계가 됐다. 오후 수업 들어가려는데 영민이 엄마한테서 학원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숙제를 그렇게 많이 내주면 어떡하느냐는 전화를 받은 게 겹쳤다. 영민이의 1등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 만들어주는
거였다.

 

 김 교사도 대학 시절, 그 누구한테서도 배움의 스승이 되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정의를 위한
실천을 해본 적도 없고 정직한 행동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모나지 않은 처신과 적절한 시간 배분이 생존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기간제 교사로
전전하지 않기 위해 1학년 때부터 한눈 안 팔고 임용시험 준비만 했다.

 그 어디에서도 ‘남을 도와라’ ‘정의롭게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하지 않았다. ‘남을 이기라’가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 아닌가? 그런 현실을 모른 체하고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웃기는 소리다. 실력이 없으면 정직도 없다. 생존하지 못하면서 예의나 염치는 호사일 뿐이다.

 이제
‘배움’은 교사가 지식을 제공하고 학생이 대가를 지불해 성립되는 ‘거래’가 됐다. 자판기처럼 동전만 넣으면 ‘성적’과 ‘졸업장’이 튀어나온다.
학원 자판기가 제공하는 지식이 학교 자판기보다 맛있다면 거기에 동전을 넣는 게 당연하다. 교사도 바르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학생을 위하는 길인가? 오늘도 김 교사는 교과서와 출석부를 챙겨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간다.

스승이 되고 싶은 최 교사
“성적순으로 학생 차별 안 해 … 자주 만나 대화 … 마음
열어”

최 교사는 새 학기 처음 만난 학생들에게 ‘실력보다 인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쳇’
‘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자신을 가다듬는 게 왜 필요한지 몰랐다. 생활습관과 자기규율을 익혀 나가는 것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하기가 만만찮았다. 집에서도 배우지 않았고, 마을이 키워주지도 않았고, 학교도 방기했다.

 쉬는 시간에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누워 자는 애, 문제집을 푸는 애, 게임을 하는 애, 거울 보는 애, 주먹과 욕으로 친구를 윽박지르는 애,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먹고 있는 애 등 자기 궤도만을 도는 행성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친구가 없어 점심시간마다 누워 자는 민수를 깨웠다. ‘넌 왜
친구가 없느냐?’고 물으니, ‘흥미가 없다’고 한다. 나와 다르지 않은 너. 궁금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은 타인! 학교는 ‘나와 똑같은 너’가
끝없이 나열돼 있을 뿐이다. ‘학교-학원-집’이라는 쳇바퀴는 민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 지루함을 달래줄 게임의 종목만
달랐다.

 돌이켜보건대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학교는 친구를 사귀고 서로 돕고 함께 놀고 생각을 나누고 갈등을
푸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아직도 학교는 인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목표를 깃발처럼 걸어두기는 한다. 그런데 학교도 공부만 하는
곳으로 자신들을 규정해 왔다. 학교와 학원은 경쟁했고 학원이 승리했다. 교사들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오는 줄 안다.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좀 어려운 과목은 학원에라도 가서 배워 오라고 권한다. 그게 피차 편하다. ‘학원이 인성마저 가르쳐준다’고 광고를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면 입맛이 쓰다.

 최 교사는 그걸 깨고 싶었다. 우선 성적순으로 학생을 차별하지 않았다. 성적대로 앉히거나
성적 순으로 분반을 하지 않았다. 인성교육을 특정한 시간에만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생활로 익히기 위해 아이들을 자주 만났다. 교사보다 바쁜
아이들 상황에 맞게 쉬는 시간이나 청소시간, 학원 안 가는 날을 확인해 대화를 나눴다. 교과 얘기보다는 집안 얘기, 생활 상담, 역할극, 탐방,
자치회의 등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려고 했다.

부모들에게도 호소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으라고, 공부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나눠보라고. 청소년은 공부기계가 아니라 방황, 반항, 우정, 연애로 흔들리는
존재라고.

 아이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부임 초반 교실에 들어갔는데 쓰레기가 바로 옆에 떨어져 있어 좀 주우라고 하면 “내가 안
버렸는데요?” 하며 쳐다보던 아이들이었다. 이제는 자기 공간에 대한 애정이 생겼는지 곧잘 줍는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제법
진지한 얘기도 나눈다. 자기 생활을 자기가 살피고, 자기 기운에 맞는 습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궁금해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세계 앞에 정의롭고자 했다.

 인간에게는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측은함, 자율적
책임감과 의식의 독립, 공동체를 향한 헌신하는 자세. 하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인성을 배우지 못하는 사회에선 이런 것들은 언젠가 휴지 조각처럼
버려질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이 그립다.

◆특별취재팀=성시윤·윤석만·이한길·김혜미·이서준
기자
◆경희대
연구팀=정진영(정치학)·김중백(사회학)·김병찬(교육행정)·성열관(교육과정)·지은림(교육평가)·이문재(현대문학)·김진해(국어학)
교수

[논쟁] 무상급식, 지속 가능한가

[논쟁] 무상급식, 지속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2013.08.24 00:50 / 수정 2013.08.24
00:50

경기도가 최근 내년도 예산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로 하고 일부 지자체가 동조하면서 무상급식 논란이 2년 만에
재연됐다. 당시엔 “무상급식을 하자”는 쪽이 주도권을 쥐었다면 지금은 “재정이 감당키 어렵다”는 쪽이 공세적이다. 이에 대해 “무상급식은 미래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윤리적 투자”란 주장과 “보편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만큼 재검토해야 한다”는 반박이 엇갈린다.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부양 의무 질 미래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무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경기도가 재정난을 이유로
내년도 예산에서 무상급식 비용을 전액 삭감한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인천시는 올해 수준으로 무상급식 예산을 배정할 입장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마침
양쪽 광역단체장이 여야로 나뉘어 있기에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할 조짐도 없지 않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측의
주된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다른 하나는 윤리적 문제다. 무상급식 소요 예산이 지자체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다른 부문의 생산적
투자를 위축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지역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경제적 문제다. 무상급식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공짜 심리를 조장해 장차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기에 비교육적인 정책이라는 것이 윤리적 문제다. 덧붙여 초·중등 교육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소산이라는 정치적 주장도 있다.

 이런 반대 논리가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무상급식을 시행하자는 이유 역시 경제적, 윤리적, 사회적 견지에서 제시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무상급식이
친환경 유기농의 로컬푸드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소비시장에서의 기능을 빼놓을 수 없다. 무상급식은 또 가계소득의 간접적 증대 효과로 인한
새로운 구매력 창출뿐 아니라 식자재 생산 및 식품안전성과 관련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낳는다.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무상급식은
기성세대의 책무에 해당한다. 누구를 위한 경제발전이며 미래 투자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를 넘어 이제는 국민 행복을 얘기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경제가 얼마나 더 성장해야 자라나는 세대에게 기꺼이 무상급식을 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어쨌든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사실 2040년대에 이르면 경제활동인구 4인이 은퇴한 노령층 인구 1인을 부양해야 하는데 그 부담에 대한 고마움을 미리 앞당겨 표시하는 것이
무상급식일 수 있다. 무상급식이야말로 기성세대의 미래세대에 대한 윤리적인 투자인 셈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든 찬성하든 양측 모두
국가 장래를 걱정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무상급식 찬반 논쟁은 궁극적으로 세금을 어느 정도 내고 그 세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예컨대 4대 강의 홍수 조절과 수질 개선, 아니면 저출산 문제 완화와 인재 양성을 놓고
볼 때 과연 어느 것이 급선무일까?

 사회 양극화 문제가 사회 갈등을 야기한다는 진단은 이미 나와 있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편이
못사는 집단이거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쪽이 잘사는 집단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다. 지금의 무상급식 찬반론은 세대간·지역간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정치적 견해 차이에 지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앞으로의 정치적 차이, 그것이 무상급식 찬반보다는 정책 우선순위 결정과 그 예산
집행의 감시를 통해 존재 의의를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무상급식 논쟁, 그건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다. 정책 대상이기 이전에
철학 가치의 영역이기에 무상급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지자체들 수정 검토 …
무상≠공짜 드러나

임동욱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2011년 8월 24일 서울시는 무상급식 실시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자리를 걸었다. 투표 결과는 오 전 시장에게 참혹했다. 투표율이 개표 기준인 33.3%에 못 미쳐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못했다. 그는 퇴임했다. 평가는 초연·용기와 집착·만용으로 엇갈렸다. 주민투표 이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무상급식이 당연해졌다. 현재 학교
기준으로 전국 초등학교의 94.6%, 중학교의 75%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는 돈이 없어서 무상급식을 못하겠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경남·대구·경북 등은 재정 부담으로 정책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저마다 무상급식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무상복지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다시 대두된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 공약 이행 논란과 함께 무상급식은 불과 2년 만에 복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사람들은 2011년과 지금의 무상급식 논란을 다른 차원에서 본다. 2011년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지금은 방법의
문제라는 인식이 대표적 예이다. 2011년에는 프레임에 갇혀서 전면 시행에 반대하면 무상급식을 하지 말자는 것으로 보였다. 서울시장이라는 엄중한
공직을 내려놓은 결과 때문에 단계적 시행이라는 진실이 가려졌다. 2011년 8월과 지금의 무상급식은 다른 듯이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2011년
8월에도 무상급식 시행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전면 무상이냐 단계적 무상이냐가 문제였을 뿐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겨우 2년 전에
겪은 진통을 되풀이하는 원인은 간단하다. 복지철학이 안일하고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무상을 공짜로 생각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다.
무상의 이면에는 나와 누군가의 부담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 무상급식 주장은 이 무서운 진실을 덮고 있었다. 지자체의 무상급식 관련 예산파동이
전하는 메시지는 ‘세금 없는 보편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진리다. 차제에 무상이라는 말이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세금급식이나 의무급식이
무상급식보다 의미 전달이 명확하다.

 우리를 위해서 나도 부담을 안고 때로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복지의 선택지가 구체적으로
펼쳐지면 논쟁은 시작된다. 증세 또는 세출 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때는 모두 이기적이 된다. 내 이익이 최우선 기준이다. 내가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하고 고통은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가 결정의 잣대이다. 개인의 이해가 첨예하게 표출될 때 사회적 합의가 중요해진다. 합의는 갈등과 문제를
극복해내는 힘이다. 너와 나를 함께 아우르는 참 우리를 찾아내는 동력이다. ‘기꺼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저항 없는’ 납세는 사회적 합의를
상징한다.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복지라야 생명력이 있고 지속 가능하다.

 숙의민주주의의 정신은 합의 도출에 효과가 있다. 그 정신은
지속 가능한 복지를 구현하는 단초가 된다. 진정성 있는 납득 과정은 조세저항을 최소화시킨다. 복지가 재정 여건과 경제 전망에 기초하니
재정건전성이 담보된다. 초고령 사회와 통일·안보비용 등 복지 환경을 고려하면서 복지의 수준과 질이 결정된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버티고 있으니
‘전면 시행’이나 ‘무상 시리즈’ 같은 광풍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끊임없이 더 분명하게 부담하고 혜택을 받으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그런 복지가
그립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ESSAY] ‘무상 급식’에 대한 한 정신분석

새끼들 먹이며 사랑 전하는 포유류… 누가 먹여 키웠나 정체성에 큰 영향
무상급식 먹고 자란 아이들, 부모 생각하는 마음 예전
같을까
식중독 무서워 ‘튀김’ 선호한다는데 우리 아이들 성인병은 어쩌나

김석대 신경전신과 전문의

개를 키우는
친구네 집에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어 주인의 가슴팍을 치더니 물고 핥고 난리법석이다. 요즘
사람들 마누라 자랑이나 자식 자랑은 눈치를 보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 자랑에는 염치도 체면도 없나 보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랑을 시작한다.
아무래도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너무 크다 싶은, 털이 북슬북슬한 그 짐승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참 잘도 했다. 악수를 하고 앉고 구르고 눕고
엎드리고 별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친구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라며 내게 소시지 한 조각을 주면서 개에게 먹여보란다. 개는 내가 주는 소시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주인이 주니까 덥석 받아먹는다. 친구의 얘기인즉 훈련이 잘된 개는 남이 주는 음식은 절대로 받아먹지 않는단다.
그럴듯하게 들렸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삼라만상은 다 먹는다. 어미는 새끼를 먹여 기르고, 새끼는 먹여주는 어미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그렇게 배운 사랑을 다시 자기 새끼에게 쏟아 베풀면서 어미가 된다.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동물은 물론이고, 젖이 없는 새나
물고기도 먹이를 날라다 새끼를 먹인다. 먹이를 주는 것은 모든 어미의 특권이고, 새끼는 먹여주는 어미에게 감사하며 어미를 사랑하게 된다. 짐승은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을 가장 따른다. 자식을 먹여 기르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자식으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받을 특권이 있다. 이
특권을 누리려면 자식을 직접 먹이고 입혀 키워야 한다.

엄마가 되었다고 그날부터 음식 솜씨가 요술처럼 별안간 좋아지는 법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엄마의 손맛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신기한 것은 내 어머니의 음식 맛과 아내의 음식 맛이 전혀 다른데, 아내의
손맛과 어머니의 손맛이 똑같이 맛있다. 내게는 그 맛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가끔 여행 중에는 전문 요리사들이 요리한 음식들만 먹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내 질리고, 아내가 싸준 고추장이 산해진미를 뺨친다. 음식에는 재료와 양념 이상의 맛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에세이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꽤 오랫동안 ‘무상 급식’을 둘러싼 사회적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각 가정에서 부모들이
먹이고 길러야 할 아이들을 나라가 차별 없이 똑같이 돈 안 받고 먹여주겠다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도 나랏돈으로 먹일 필요가 있느냐부터 재정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정치권이 선심성 정책에만 매달렸다는 비판들까지 나온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다. 어쩌다가 나라와 부모가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상 급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부모를 버리고 나라 편에 서지는 않을까.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은 물지 않는 법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심심풀이로 골탕먹이는 심술궂은 주인집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벼르면서 기회를 노리던 강아지가
아이에게 대들어 물고 할퀴었다. 집안 식구 누구도 잇몸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강아지를 말릴 재간이 없다. 이때 부엌에서 일하던 가정부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강아지가 조용해진다. 강아지는 주인보다 밥 주는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다.

사람이 짐승과 같을 리야 만무하지만, 과거
중국 문화혁명 시절의 ‘홍위병’을 생각해보면 오싹하다. 나라가 직접 먹이고 입혀 키운 어린 중학생들이 홍위병이 되어 부모를 고발하고 총칼을
겨누지 않았던가. 그 어린 학생들이 꼭 마오쩌둥 사상에 투철해서 그랬을까. 그만큼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누가 자기들을 먹이고 키우고
입혔는지는 중요한 것이다. 먹고 입고 자는(衣食住) 기본적인 일은 본래 가정의 영역에 속한다. 이를 나라에서 다 해주겠다고 하면 그건 결코
고마운 일도 아니다. 이를 현실에서 실현해보려 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험’도 이미 실패로 끝난지 오래다.

사실 학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아이들 밥을 공짜로 먹여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부모라면 내 자식 먹이는 일에 누가 돈을 아끼겠는가.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보리죽이라도 내가 벌어 먹이겠다”는 오기는 가져야 한다. 아이들을 먹이는 책임과 권리는 부모에게 돌려주고, 나라는 효율적인
경제정책을 세워 모든 가정이 의식주를 해결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도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먹이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밥 먹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는 정답을 가르쳐 줄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교장선생님들은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집단 식중독 때문에 주말이나 되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한다. 영양학이나 조리학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데, 식중독이
생기면 책임은 몽땅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든 튀겨내는 조리법이라고 한다. 끓는 기름 가마에서 살아남을 세균은
없을 것이고, 튀긴 음식은 아이들이 좋아하니 궁여지책치고는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튀김기름의 트랜스지방인가 하는 것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생기는 성인병들은 어이할거나.

조선일보-사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