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교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중앙일보] 입력 2015.03.26 00:03 / 수정 2015.03.26 00:17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지난주 학부모 총회에 가서 마치 엄마가 초등학생이 된 양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마무리가 될 때쯤 개인 상담 일정을 알려줬다. 그런데 선생님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어머님들 학교 오실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세요. 커피 한 잔도 안 됩니다. 진짜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이날은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이 ‘2015년 불법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한 다음날이었다. 교직원이 촌지 받은 사실을 신고하면 최고 1억원의 보상금을 준다는 초강력 방침을 선생님이나 학부모나 모두 알고 있을 터. 선생님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촌지 없애자는데 간식까지 막는 이유는 뭘까. 학부모 선배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간식 하나에도 생길 수 있는 차별에 대한 가능성을 아예 봉쇄하자는 거다. “누구 엄마가 마트에서 주스를 사 가면 다른 엄마는 백화점에서 100% 과즙을 가져오게 되죠. 그러면 선생님도 사람인데, 더 맛난 걸 좋아하지 않겠어요.”

 맞다. 선생님도 좋은 게 뭔지 아는 보통 사람이다. 도덕성 면에서도 보통 사람일 확률이 높다. 듀크대 행동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세상 98%는 절대 성자도 절대 악인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다. 스스로를 ‘대체로 착하다’고 자평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악행을 저지른다(『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

 악행이라고 해서 별게 아니다. 가령 MIT 기숙사에서 공용 냉장고에 1달러짜리 6장을 넣어놓으니 학생들이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하지만 가격으로 따지면 이와 비슷할 콜라 6개들이 한 팩을 넣어놓았더니 결과가 달라진다. 그건 72시간 안에 모두 사라진다. 말하자면 돈의 추상성이 강해질수록 부정행위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현금은 좀 그렇지만 문화상품권은 받게 되더라”던 교사 친구의 고백도 연장선상에 있다.

 또 보통 사람의 가장 큰 맹점은 한 번 사소한 비행을 저지르면 무뎌지기 쉽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다이어트를 한 뒤 저녁에 쿠키 한 조각을 먹고 나면 폭식으로 이어지는 경우라거나, 문제집을 풀다 답안지를 들추게 되면 멈추지 못하는 때도 그렇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라는 심리다.

 촌지는 학부모와 교사를 떠나 평범한 한 인간을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일이다. ‘달라니까 준다’는 카더라식 경험담만큼이나 ‘주면 받더라’는 사례도 아직은 심심찮게 들린다. 전자라면 고민이 깊겠지만 적어도 보험 들 듯 건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 받으면 그만 아니냐”는 학부모는 무책임하다. 같은 논리라면 “안 주면 그만” 아닌가.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교육은 따뜻해야 합니다-선물과 촌지의 의미

[분수대] 교육은 따뜻해야 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5.03.23 00:03 / 수정 2015.03.23 00:05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촌지 동영상’이라는 검색어가 떴다. 학교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증거 영상? 아니면 작정하고 찍은 몰래카메라? 클릭해 보니 서울시교육청이 ‘청렴 무결점 운동’을 펼치며 제작한 캠페인이다. 주제는 분명했으나 구성은 취약했다.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성과는 충분하지 않았다.

 성우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우리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교육은 따뜻해야 합니다.” 하지만 표현방법은 따뜻하지 않았다. 화면 속 아이는 혼자 우는데 촌지를 주고받는 교사와 학부모는 크게 웃는다. 카메라에 현장이 잡히고는 화들짝 놀란다. 놀라는 배우의 표정이 누군가를 놀리는 듯하다. 어색한 상황이 복도·교실·주차장 등 장소를 달리하며 반복된다.

 영상을 본 교사들 반응은 어땠을까. 대부분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기자는 전한다. 부끄러워서? 교사들은 뭐가 부끄러웠을까? “아직도 동료 교사 중에 저런 사람이 있다니….” 그것보다는 “이런 모욕감을 느끼려고 내가 교직을 택했던가?” 이 점이 더 아프지 않았을까? 교사 출신인 내가 봐도 반성보다는 반발의 감정이 앞섰을 것 같다. 교사의 자존감을 꼭 저런 식으로 짓뭉개야 했나? 교사의 사(師)는 박사의 사(士)나 판검사의 사(事)와는 다르다.

 촌지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자식을 맡아 키워주는 선생님께 조그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게 뭐가 나쁜가? 많이 나쁘다. 봉투 속에 감사가 아니라 청탁이 담겼기에 나쁘다. 공평하지 않아서 나쁘다. “내 아이를 잘 봐주세요”가 아니라 “내 아이만 특별히 잘 봐주세요”이기에 나쁘다.

 촌지가 아름다우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국어선생님(고3 때는 담임까지 맡으셨다)을 나는 평생 가슴에 안고 산다. 스승의 날마다 ‘촌지를 들고’ 찾아뵙는다. 재학 중엔 촌지를 드릴 형편이 못 됐다. 드린다고 받으실 분도 아니었다. 그분을 나는 로댕에 비유한 적이 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나는 구리와 주석에 불과했다. 그분의 숨결과 손길이 닿아서 나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고맙기 그지없는 분이다. 그분께 드리는 촌지는 그야말로 은혜의 정표다.

 당신을 만든 로댕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올 스승의 날엔 은퇴한 은사님을 찾아 촌지를 드리자. 누가 막겠는가. 그런 걸 찍은 촌지 동영상이 있다면 진짜로 세상이 따뜻해질 것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여러분 인생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삶의 향기] 여러분 인생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2015.03.17 00:03 / 수정 2015.03.17 00:05

신예리 JTBC 국제부장 밤샘토론 앵커
 
내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아빠에게 배웠다. 술만 드시면 2차로 손님들을 집에 몰고 오는 아빠 덕에 ‘홍동백서(紅東白西)’보다 술상 차리는 법을 먼저 깨쳤다. 오후 9시면 꿈나라행인 엄마 대신 고사리손으로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고, 사각형 치즈는 삼각형 8개로 잘라 얌전히 담아내곤 했다. 첫 술잔을 입에 댄 것도 아빠 앞이었음은 물으나마나다.

 어디 술뿐일까. 시골에서 나고 자라 나무 박사, 꽃 박사인 아빠를 둔 덕분에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로 구박받는 호박꽃이 실은 담박하니 예쁘단 걸 안다. 애기똥풀꽃·며느리밥풀꽃·홀아비바람꽃… 사연처럼 애잔한 들꽃들의 이름을 불러 줄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미팅 자리의 단골 질문이던 “좋아하는 꽃이 뭐예요?”에도 주저 없이 “패랭이꽃!”을 외쳐 남자들 진땀깨나 흘리게 했던 나다.

 요즘은 ‘성교육’으로 대체된 이른바 ‘순결교육’을 시켜 준 것도 아빠다. 갓 중학생이 된 딸에게 무슨 영화 속 대사라며 넌지시 ‘손수건론’을 들려주셨다. 깨끗이 빤 새 손수건은 땀도 조심조심 닦지만 한 번 땀을 닦으면 코도 풀게 되고, 이왕 코까지 푼 뒤엔 구두도 쉬이 문지를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린 마음에도 “절대 코 푼 손수건 신세가 되진 않겠다”며 ‘정조 관념’을 확실히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은 아빠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이만큼 사람 구실하기까지 이끌어 준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천둥벌거숭이 같던 나를 갈고 깎고 다듬어 주셨다. 요컨대 그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정체가 현재의 나인 셈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퍽 대단한 사람인 듯 느껴지는데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낳자마자 걷고 뛰는 다른 짐승들과 달리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미약한 존재로 세상에 온 우리. 이런 우릴 온전한 사람 꼴 나게 만들어 준 이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는 얘기다.

 학교 때 은사들만 해도 그렇다. 학창 시절이라 하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은 일만 떠오른다는 게 남자 동료들의 볼멘소리다. 하지만 한 번 곰곰 생각해 보시라. ‘미친개’‘불곰’이라 불리던 악명 높은 학생 주임들도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한두 마디 안 하셨을 리 없다. 독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약이 되는 가르침도 분명 있었을 터다.

 학원도 과외도 금지된 군부 독재 시절, 내게 영어의 세계를 처음 열어 주신 중학교 1학년 때 영어선생님만 해도 그랬다. 원어민 수준은커녕 ‘억수로’ 진한 경상도 억양의 소유자인 선생님은 ‘아이 엠 톰(I am Tom, 나는 톰이야)’ ‘유 아 제인(You are Jane, 너는 제인이지)’으로 시작되는 교과서를 다짜고짜 달달 외우게 하셨다. 이런 무식한 학습법이 있느냐며 툴툴댔지만 그렇게 웅얼웅얼하다 영어랑 친해졌고, 친해진 김에 대학도 영문과에 들어갔고, 지금도 주로 영어로 된 국제 뉴스를 다루는 일을 맡고 있으니 내겐 먹고살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 아닌가.

 직장 상사도 마찬가지다. 『미생』의 오 과장과 김 대리뿐 아니라 밉살스러운 마 부장도 스승이 될 수 있단 얘기다. 기자 초년병 시절,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내게 “무슨 여자가 부끄럼도 없이 밥을 그리 많이 먹느냐?”고 타박하던 모 부장. 울컥하는 마음에 “아줌마,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추가요”를 외친 뒤 꾸역꾸역 그 밥마저 다 먹어 치웠다. 그걸론 분이 덜 풀려 밥 많이 먹는 여자가 일도 더 잘한다는 걸 보여 주려고 기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성의 취업과 승진을 가로막는 이른바 ‘유리천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단단하다는 한국에서 26년째 한 직장을 무탈하게 다니는 비결이 뭐겠나. 다 그때 품은 오기 덕분이라 여긴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더니 과연 그렇다. 공자님이 어디 괜한 말씀 하실 분인가. 지금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덕분에 인격 수양 잘하고 있다”며 외려 고마워할 일이다. 내친김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 있노라고.

신예리 JTBC 국제부장·밤샘토론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