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찍을 땐, 꽃에 빛 모으고 아웃 포커스로 배경 날려서

꽃을 찍을 때 쓰이는 접사 촬영 방법을 소개한다. 접사는 피사체를 가까이 두고 찍는 것을 말한다. 접사는 인물·풍경 사진과 달리 피사체를 더욱 집중적이고 세밀하게 담아내는 방법이다.

접사 촬영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용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선 아웃 포커스. 접사 사진을 보면 피사체는 또렷하게 드러나지만 배경은 흐릿하게 보인다. 이때 흐릿하게 보이는 범위를 아웃 포커스라 한다. 접사 사진의 성공 여부는, 또렷이 보이는 초점 범위와 흐릿하게 보이는 아웃 포커스 범위가 얼마나 정확하게 적용됐는지에 따라 판가름 난다.

아웃 포커스를 활용하려면 피사계 심도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용어가 다소 어렵지만 한 번 알아두면 편하다. DSLR로 작업할 때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어서다. 피사계 심도는 피사체에 잡힌 카메라 초점 포인트를 기준으로 초점이 정확하게 맞는 앞면에서 뒷면까지의 범위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 출발점에서 20m 지점을 바라봤을 때 30m까지 또렷하게 보이면 이때 피사계 심도는 20~30m다. 그 거리가 짧을수록 “피사계 심도가 좁다(또는 얕다)”고 표현한다. 피사계 심도가 좁아지면 또렷하게 보이는 범위도 작아진다는 뜻이다. 촬영자와 피사체의 거리가 고정돼 있다고 가정할 때,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조리개를 넓히면 심도가 얕아져 초점이 맞는 범위는 작아지고 흐릿하게 보이는 아웃 포커스의 범위는 커진다.

이제 꽃을 접사로 찍을 때 유의사항을 알아보자. 꽃 사진이 어려운 건 꽃이 빛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촬영 위치가 가장 중요한 이유다. 빛의 방향에 따라 꽃의 느낌을 카메라로 확인한 다음 촬영 위치를 잡아야 한다. 이어 반사판 등을 이용해 꽃에 빛을 집중시키고 아웃 포커스로 주변 배경을 흐릿하거나 어둡게 표현하면 돋보이는 꽃 사진을 잡을 수 있다.

이때 빛이 너무 약하면 ISO(감도 수치) 값을 높이거나 셔터 스피드를 느리게 해 빛을 충분히 받는다. 단 셔터 스피드가 느려지면 삼각대를 이용해야 흔들림을 줄일 수 있다. 일반 렌즈보다 망원 렌즈나 접사 렌즈를 쓰면 손쉽게 촬영할 수 있지만 특수 렌즈는 워낙 비싸다. 이럴 때 접사 필터를 활용하면 부담 없이 접사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손민호 기자
자료 제공: 픽스딕스

이념 없는 사회, 신념 없는 개인 [중앙일보]

 


이념 없는 사회, 신념 없는 개인 [중앙일보]


요사이 부쩍 TV나 신문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가 있다. 이념 논쟁, 이념 초월, 이념 분열, 이념 잣대…. 언론사나 노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념’에 관한 논쟁이 한창인 듯싶다. 꽃피는 춘삼월이건만 아직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동장군같이, ‘이념’이란 단어는 국민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념’을 언급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인지 언론에서 자주 보고 들음에도 불구하고 친근감이 생기기는커녕 심리적 거리감만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대통령은 3·1절 기념 축사에서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지양하고 민생 향상을 위해 생산적인 실천방법을 찾는 중도실용주의를 강조했고, 야당 대표는 “진보·보수 좌우의 이념논쟁을 초월해 국민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면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월례회의에서는 정치권을 향해 “이념 대결의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정책 대결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 나왔다. 얼마 전에는 정치적·이념적 투쟁을 접고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탈(脫)이념’을 주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이념 논쟁, 투쟁, 갈등에 대해 국민들이 식상해 하고 짜증내고 있다고 생각한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태도와 무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외치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혹은, 하나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어떤 주장이 다른 견해와 충돌하고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 사회 발전에 무익하거나 위해가 된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근거로 ‘탈이념’을 주장하든 그 내용에 동의하기 힘들다.

이념을 기반으로 한 논쟁과 그로 인해 유발된 갈등, 그리고 해결 등 일련의 과정 자체를 국민들이 식상해 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이 바로 ‘정치’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국가의 앞날에 영향을 줄 정책 결정에 있어, 그 타당성이나 논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없이 선무당이 사람 잡듯 얼렁뚱땅 결정함으로써 야기될 손해를 반길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국민들이 혐오하는 것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분노와 공격성 같은 집단정서를 교묘히 이념과 정책으로 포장하는 정치행위다. 서로 앙숙으로 유명한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소속 정당의 이념을 주장하는 듯싶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적 분노, 좌절 그리고 공격성이 숨겨져 있는 경우를 TV 토론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논제에 대한 찬성·반대가 너무나 분명해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토론 내내 자신의 생각만을 되풀이하는 이념주의자들이 싫을 뿐이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타인과 어울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 세상과 사회가 어떤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적절한지, 또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공존할지 등에 관해 개개인이 갖는 신념과 가치관을 조합한 것이 한 사회의 이념이다. 의식을 하든 못 하든 일상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과 행동은 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기초로 하는 것이며, 한 사회의 정책과 제도에는 이념이 배태(胚胎)되어 있다. 즉, 신념이나 이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질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념논쟁이 빈번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 문제라기보다는, 이념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의견이 문제다. 즉, 합리성과 이성적 판단을 가장한 사이비 이념과, 진보와 보수 혹은 좌와 우의 대립 구조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을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는 흑백이념이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진 교육감 후보의 정치 성향에 대한 보도가 어떻게 그들의 교육철학과 이념, 그리고 정책을 소개하는 것보다 앞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기사는 후보들의 교육철학의 건전성과 경험자산의 타당성을 근거로 하지 말고, 진보와 보수의 선호로 투표에 임하라는 압력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탈이념’ 주장의 확산을 보며 우리 사회 전체가 자칫 이념이라는 것에 무관심해지고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개인의 욕망과 감성만으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갈등과 고민의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는 이 시대적 트렌드를 ‘탈이념논쟁’이 가속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본능과 느낌만 판치는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은 건강한 이성과 신념을, 그리고 사회는 성숙한 이념을 가져야 한다. 이념을 외면하거나 이념논쟁을 피하기보다는 건강한 상식과 건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진짜 논쟁이 펼쳐지는 정치의 장(場)을 기대해 본다.

성영신 고려대 교수·심리학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이는 ‘74세’”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이는 ‘74세’”



파릇파릇한 10대, 꽃다운 20대, 성숙한 30대 등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최근 해외의 한 과학자들이 ‘가장 행복한 나이는 몇 살?’이라는 주제로 조사한 결과, ’74세’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독일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10대부터 70대까지의 남녀 2만1000명에게 1~7점의 보기 중 자신의 행복지수를 체크하게 했다.



그 결과 10대 후반은 평균 5.5점, 40세는 평균 5점을 매겼으며, 70대 중에서도 특히 74세의 조사대상자가 5.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1세부터 40세 까지는 행복지수가 꾸준히 하락하다가, 46세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74세에 정점을 기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상태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불안정한 20대와 30대보다 안정적인 집과 가정이 있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도 74세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영국의 사회지표조사저널( journal Social Indicators Research)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데일리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법정 스님 주요 어록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은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 여러 권의 산문집과 법문을 통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주옥같은 말을 남겼다.

특히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말은 스님이 설파하던 ’무소유’의 정신을 압축한다.

1997년 길상사 창건 당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로 시작하는 창건 법문도 이러한 무소유 정신과 맞물려 널리 회자됐다.

그런가 하면 말년인 지난 2008년 낸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마지막 모습까지 귀감이 되기도 했다.

다음은 법정스님의 주요 어록.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산방한담’ 중)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버리고 떠나기’ 중)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홀로 사는 즐거움’ 중)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있으면 합니다.(1997년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아름다운 마무리’ 중)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아름다운 마무리’ 중)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

언어가 힘이다 글쓰기가 경쟁력 ⑪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글의 격이 달라진다. 특히 상투적인 표현이 나오면 글의 맛이 뚝 떨어진다. 상투적인 표현이란 판에 박은 듯한 말투나 흔해 빠진 표현을 말한다. 옛날부터 늘 써 온 표현으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말을 가리킨다. 이런 것은 자주 들어 온 말이라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또 자기 생각 없이 누구나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늘어놓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글=배상복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상투적 표현 피하세요, 글 늘어지고 읽는 맛 뚝 떨어집니다

‘~라 아니할 수 없다’ 같은 낡고 낡은 표현

‘~를 연출했다’ ‘~라 아니할 수 없다’ ‘~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가 주목된다’ 등이 대표적으로 쓰이는 상투적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너도 나도 너무나 자주 쓰기 때문에 신선감이나 독창성이 없어 진부하게 들리기 쉽다. 또 글을 늘어지게 함으로써 읽는 사람을 싫증나게 만든다.

[예문]

솔직한 대화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정]

솔직한 대화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예문]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안이한 행정의 표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수정]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안이한 행정의 표본이다.

[예문]

월드컵 4강 신화는 우리 자신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정]

월드컵 4강 신화는 우리 자신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쾌거다.

‘~에 다름 아니다’ 따위의 번역투 표현

일러스트=강일구

상투적 표현 가운데는 외국어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것도 적지 않다. ‘~에 다름 아니다’ ‘~을 요한다’ ‘~에 가름한다’ ‘~에 값한다’ ‘~에 틀림없다’ 등은 일본식 표현일 뿐 아니라 말을 늘어뜨려 읽는 맛을 없앤다. ‘~을 필요로 한다’ ‘~이 요구된다’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도 영어식 표현에서 온 고리타분한 말이다.

[예문]

구조조정이란 그럴싸한 말에 감춰진 또 다른 의미의 대량해고에 다름 아니다.

[수정]

구조조정이란 그럴싸한 말에 감춰진 또 다른 의미의 대량해고나 다름없다.

[수정]

구조조정이란 그럴싸한 말에 감춰진 또 다른 의미의 대량해고다.

[예문]

이 영화는 한국 영상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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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한국 영상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문]

남보다 앞선 투자로 경쟁자들에게 추격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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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앞선 투자로 경쟁자들에게 추격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하였다’ 등 진부한 느낌의 문어체 표현

‘~하여’ ‘~하였다’ 또는 ‘~되어’ ‘~되었다’ 등 말로는 요즘 거의 쓰이지 않는 문어체적 표현도 글을 늘어뜨리고 진부한 느낌을 준다. 법률·공문서·논문 등이 대부분 이런 투로 작성돼 있다. 일반 글에서도 이 같은 표현을 즐겨 쓰는 사람이 많다. 글에 무게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나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형태인 ‘~해’ ‘~했다’, ‘~돼’ ‘~됐다’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문]

현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지를 논의하였다.

[수정]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논의했다.

[예문]

피고의 상고가 기각되어 항소심 판결이 확정 되었다.

[수정]

피고의 상고가 기각돼 항소심 판결이 확정 됐다.

[예문]

이달 매출은 지난달에 비해 다소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두 자릿 수 증가세를 유지하였다.

[수정]

이달 매출은 지난달에 비해 다소 축소됐지만, 여전히 두 자릿 수 증가세를 유지했다.

‘~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같은 글머리 표현

글의 첫머리에서 자주 나오는 ‘~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에 대해 고찰해 보자’ ‘~에 대해 서술하겠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등의 표현도 진부해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을 떨어뜨린다. 글의 첫 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서두에서 틀에 박힌 표현이 나오면 읽는 이가 싫증을 내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면 이런 표현 없이 다음 문장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예문]

가정은 사회를 존속케 하는 기본 단위로 따뜻한 보금자리로서 안식처 기능을 하며, 유년기에 기본적 인성을 형성시키는 기능을 한다.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예문]

영어 조기교육이 유치원생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국어는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조기에 영어를 가르치면 국어 교육이 부실해진다는 등 반대도 만만치 않다. 조기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서술하겠다.

‘~것이다’처럼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

‘~것이다’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글의 내용을 강조하거나 무게를 주는 것으로 생각해 마구 쓰다 보니 입버릇처럼 몸에 뱄기 때문이다. ‘~것이다’가 어쩔 수 없이 쓰일 때가 있지만 불필요하게 사용하면 글이 늘어지고 어설퍼 보인다. 따라서 내용상 꼭 필요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 ‘~한다’ ‘~된다’ ‘있다’ 등으로 끝내도 될 자리에서는 ‘~것이다’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문]

‘사오정’ ‘오륙도’ 등의 말은 직장인들의 고용환경이 얼마나 불안한가를 대변해 주는 씁쓸한 유행어라 할 것이다.

[수정]

‘사오정’ ‘오륙도’ 등의 말은 직장인들의 고용환경이 얼마나 불안한가를 대변해 주는 씁쓸한 유행어다.

[예문]

수출입 기업들은 위안화의 평가절상 여부나 절상 폭이 어떻든지 사전에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수정]

수출입 기업들은 위안화의 평가절상 여부나 절상 폭이 어떻든지 사전에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다시 듣는 국어 수업 – ‘의’를 줄여 써라

우리말에선 원래 조사 ‘~의’가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가리키는 ‘나, 너, 저’를 예로 들면 조사 ‘ㅣ’가 붙어 ‘내, 네, 제’로만 사용됐다고 한다. ‘내 사랑’ ‘네 물건’ ‘제 자식’ 등 현재도 그대로 쓰이고 있는 형태다.

‘~의’가 붙은 ‘나의, 너의, 저의’ 형태는 조선 후기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 개화기에는 흔히 쓰이게 됐다고 한다. 이는 일본어에서 여러 가지 문장성분으로 두루 쓰이는 조사 ‘の’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침실로’(이상화의 시), ‘나의 살던 고향’(이원수의 ‘고향의 봄’ 중)에서 ‘나의 침실’은 ‘내 침실’, ‘나의 살던 고향’은 ‘내가 살던 고향’이 이전부터 내려온 우리말 어법이다.

일본어에선 또 명사를 나열할 때 반드시 우리의 ‘의’에 해당하는 ‘노(の)’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우리말에선 ‘의’가 없어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절제해야 한다. ‘의’가 많으면 읽기 불편하고 쓸데없이 문장이 늘어짐으로써 간결한 맛이 떨어진다.

일본어에선 ‘~과의’ ‘~와의’ ‘~에의’ ‘~에서의’ ‘~에로의’ 등처럼 부사어에도 ‘의’를 마구 붙이는 습성이 있다. 이들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우리도 흔히 사용하고 있으나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우리식 표현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문]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해야 한다.

[수정]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개발해야 한다.

[예문]

국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수정]

국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예문]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나라가 곧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 믿고 있다.

[수정]

대부분 사람은 우리나라가 곧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 믿고 있다.

[예문]

가정에서의 스트레스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보다 해결하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수정]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해결하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예문]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마련해 다른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정]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마련해 다른 유통업체와 벌이는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언어가 힘이다 글쓰기가 경쟁력 ⑩

글을 쓰는 목적은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 지식 등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해 상대가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읽는 사람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글은 쓰나 마나다. 재미있게 풀어 나감으로써 읽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거나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정도가 돼야 글을 쓰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설사 대단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게끔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배상복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라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보여 주면 공감을 얻기 쉽다. 대학생의 경우라면 취업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대학생이면 누구나 취업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으므로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예문]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일절(31세면 취업 길이 막혀 절망한다), 화백(화려한 백수), 대5(졸업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는 대학 5년생),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취업이 어려운 졸업예정자), 강의노마드족(영어·취업강좌 등을 찾아 헤매는 학생), 토폐인(토익 폐인), 캠퍼스 더블 라이프족(학업과 창업을 동시에 하는 학생),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젊은이들에겐 남의 얘기가 아니다. 최악의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신조어가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태백’은 이제 옛말이고 요즘은 ‘이구백’이 유행하고 있다. 20대의 90%가 백수라는 얘기다. 십오야(15세만 되면 앞이 캄캄해진다)에 이어 ‘십장생’이란 말도 유행하고 있다. 10대를 향한 20대의 경고로 ‘10대들도 장차 백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통적인 체험에 호소한다

교통 문제, 자녀 교육 문제, 집 장만 등 우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일이라면 상대가 공감하기 쉬우므로 호소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특히 자식의 교육과 관련한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부닥치고 고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기가 수월하다.

[예문]

부모는 누구나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녀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키우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막상 ‘잘 키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 영아나 유아 때는 대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크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그러다 아동기로 접어들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언어나 행동이 좀 더 명민하기를 바라며 은연중에 남과 비교하기도 한다.

능숙한 수사법을 동원한다

‘차갑다’ ‘뜨겁다’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표현보다 ‘얼음장과 같다’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는 식으로 비유하는 것이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즉 ‘경제가 나쁘다’ ‘체감지수가 낮다’고 하는 것보다 ‘경제가 얼음장과 같다’ ‘체감경기가 한겨울 날씨처럼 영하권 밑으로 떨어져 있다’고 하는 것이 상대의 공감을 얻기 쉽다.

[예문]

경제가 얼음장과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조기 극복한 저력은 어디 갔는지 경제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국내외 경제 예측 기관의 올해 한국 경제 전망은 한결같이 비관적이다. 기업·소비자 등 경제 주체들의 체감지수는 더욱 차갑다. 특히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한겨울 날씨처럼 영하권 밑으로 떨어져 있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운을 남긴다

쓰고 싶은 것을 모조리 쓰지 말고 어느 정도 여운을 남겨 읽는 사람의 상상력에 호소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읽는 사람에게 물음을 던져도 된다. 아래 글은 ‘된장녀라 부르지 마라’는 단순한 서술 대신 물음을 던지는 형태로 글을 마무리함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읽는 이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예문]

‘된장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추장남’이란 말도 생겼다. 경제적 능력이 없고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성을 일컫는다. ‘된장녀’와 달리 유행이 지난 가방을 들고 다니고 돈이 아까워 싸구려 식당만 찾아다니는 남자를 뜻한다. 또 하나의 고유 음식인 고추장까지 비하하는 말로 이어진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된장녀’와 ‘고추장남’이 만나면 ‘쌈장(남녀)’이 된다고도 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말인 듯하지만 우리 전통음식인 장류를 깡그리 비하하는 결과를 낳았다.

‘똥녀’와 ‘된장녀’는 다르다. ‘똥녀’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말이지만 ‘된장녀’는 ‘된장’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부여한 것이다. 사치와 허영에 가득 찬 여성을 지칭한다면 ‘사치녀’나 ‘허영녀’라 해도 될 것을 하필이면 고유 음식인 된장에 스스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부여하고 불특정 다수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극소수 일본인이나 서양인이 한국인을 비하할 때 곧잘 쓰는 말이 ‘된장’이다. 그래도 계속 ‘된장녀’라 부를 것인가?

재미있게 얘기한다

읽는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면 글이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독자가 흥미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으며 공감하기도 쉽다. 특히 요즘은 재미가 없으면 글을 잘 읽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에피소드나 유머 등을 삽입해 흥미를 유발하면 공감을 얻기가 더욱 수월하다.

[예문]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있다. 사실일까? 잠을 많이 자면 미인이 되는 걸까? 틀린 말은 아니다. ‘얼짱’이 되려면 잠을 많이 자야 한다. 실제로 충분한 수면은 피부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면은 피부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해 주고 피부 조직을 회복시켜 준다. 심신의 원기를 회복하는 데도 수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건강한 피부와 젊음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탄력 있고 아름다운 피부를 유지하려면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인은 잠꾸러기’인 셈이다.

반복 어법을 구사한다

주장하고 싶은 것을 문장 속에서 적당히 반복하면 독자는 그에 익숙해진다. 익숙하도록 함으로써 공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이다. 아래 글은 중간집단이 중요(필요)하다는 내용의 언급을 적당히 반복함으로써 그에 익숙하게 해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예문]

현대 대중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중간집단이 중요하다. 양극화된 두 계층 사이에서 민주적인 압력집단의 구실을 자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전체 사회를 장기적으로 조화시켜 가는 중간집단이 필요하다. 이처럼 없어서는 안 될 중간집단의 주역은 정치적·경제적 엘리트가 아니라 합리적 비판 능력을 생명으로 여기는 주체적 존재다.


다시 듣는 국어수업

복수에 ‘들’자 꼬박꼬박 붙이면
문장이 고장난 차처럼 들들거려요

우리말에서는 이야기의 앞뒤 흐름으로 복수임을 짐작할 수 있거나 문장 속에 있는 다른 어휘로 복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우 ‘들’을 붙이지 않는다. 복수에 꼬박꼬박 ‘들’을 붙여 쓰는 것은 영어식 표현이다.

‘들’자는 특히 군더더기로 문장을 늘어뜨리고 읽기 불편하게 만든다. ‘들’자가 많으면 고장 난 자동차처럼 문장이 들들거리면서 굴러간다. 영어를 배우면서 몸에 밴 복수 개념 때문에 요즘 ‘들’을 남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예문]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간다.

[해설]

‘대부분’이 복수 개념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학생들’에서 ‘들’은 불필요하다.

[수정]

대부분의 학생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간다.


[예문]

소득이 감소함으로써 자녀들의 학자금을 대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해설]

‘늘고 있다’가 있으므로 ‘자녀들’ ‘부모들’을 ‘자녀’ ‘부모’로 하는 것이 낫다.

[수정]

소득이 감소함으로써 자녀의 학자금을 대주지 못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예문]

먹자골목에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으며, 저녁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해설]

‘늘어서 있으며’와 ‘많은’이 복수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음식점들’과 ‘사람들’의 ‘들’은 없어도 된다.

[수정]

먹자골목에는 음식점이 늘어서 있으며, 저녁마다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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