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하나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부터 시작합니다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한 개의 별이
바다의 배를 인도 할 수 있고,


한 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 수 있습니다.


 한 송이 꽂이
꿈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삶이
세상의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좋은글 중에서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광고 카피)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

부모를 스승으로, 학부모를 교사로 바꾸면 어떨까? 스승과 교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부모의 또 다른 이름은 스승입니다.

꿈, 그것은 희망, 그리고 행복의 가교입니다

꿈, 그것은 희망, 그리고 행복의 가교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보다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가 더 아름답습니다.
지금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꿈을 간직한 이가 더 아름답습니다.
숱한 역경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꽃피우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원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어두운 시대에 문지기를 자청했던 김구 선생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젊고 나약하기만 했던 간디도 인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두 귀가 먼 절망의 늪에서도 베토벤은 위대한 교향곡을 꿈꾸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가 더 행복합니다.
글을 잘 쓰는 작가보다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사는 이가 더 아름답습니다.

꿈은 인간의 생각을 평범한 것을 위로 끌어올려 주는 날개입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있으면 오늘의 좌절과 절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비극은 꿈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절망과 고독이 자신을 에워쌀지라도 원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꿈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노력을 담은 그릇입니다.
노력은 자신의 원대한 꿈을 현실에서 열매 맺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원대한 꿈과 희망으로 넘쳐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밀고 나가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먼저 차지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친구도, 가족도, 사랑하는 이도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을 원합니다.
자신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꿈을 잘 가꾸고 사랑하십시오.
언젠가는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당신은 꿈이 있어 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념 없는 사회, 신념 없는 개인 [중앙일보]

 


이념 없는 사회, 신념 없는 개인 [중앙일보]


요사이 부쩍 TV나 신문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가 있다. 이념 논쟁, 이념 초월, 이념 분열, 이념 잣대…. 언론사나 노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념’에 관한 논쟁이 한창인 듯싶다. 꽃피는 춘삼월이건만 아직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동장군같이, ‘이념’이란 단어는 국민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념’을 언급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인지 언론에서 자주 보고 들음에도 불구하고 친근감이 생기기는커녕 심리적 거리감만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대통령은 3·1절 기념 축사에서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지양하고 민생 향상을 위해 생산적인 실천방법을 찾는 중도실용주의를 강조했고, 야당 대표는 “진보·보수 좌우의 이념논쟁을 초월해 국민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면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월례회의에서는 정치권을 향해 “이념 대결의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정책 대결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 나왔다. 얼마 전에는 정치적·이념적 투쟁을 접고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탈(脫)이념’을 주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이념 논쟁, 투쟁, 갈등에 대해 국민들이 식상해 하고 짜증내고 있다고 생각한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태도와 무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외치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혹은, 하나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어떤 주장이 다른 견해와 충돌하고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 사회 발전에 무익하거나 위해가 된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근거로 ‘탈이념’을 주장하든 그 내용에 동의하기 힘들다.

이념을 기반으로 한 논쟁과 그로 인해 유발된 갈등, 그리고 해결 등 일련의 과정 자체를 국민들이 식상해 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이 바로 ‘정치’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국가의 앞날에 영향을 줄 정책 결정에 있어, 그 타당성이나 논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없이 선무당이 사람 잡듯 얼렁뚱땅 결정함으로써 야기될 손해를 반길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국민들이 혐오하는 것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분노와 공격성 같은 집단정서를 교묘히 이념과 정책으로 포장하는 정치행위다. 서로 앙숙으로 유명한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소속 정당의 이념을 주장하는 듯싶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적 분노, 좌절 그리고 공격성이 숨겨져 있는 경우를 TV 토론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논제에 대한 찬성·반대가 너무나 분명해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토론 내내 자신의 생각만을 되풀이하는 이념주의자들이 싫을 뿐이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타인과 어울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 세상과 사회가 어떤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적절한지, 또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공존할지 등에 관해 개개인이 갖는 신념과 가치관을 조합한 것이 한 사회의 이념이다. 의식을 하든 못 하든 일상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과 행동은 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기초로 하는 것이며, 한 사회의 정책과 제도에는 이념이 배태(胚胎)되어 있다. 즉, 신념이나 이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질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념논쟁이 빈번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 문제라기보다는, 이념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의견이 문제다. 즉, 합리성과 이성적 판단을 가장한 사이비 이념과, 진보와 보수 혹은 좌와 우의 대립 구조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을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는 흑백이념이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진 교육감 후보의 정치 성향에 대한 보도가 어떻게 그들의 교육철학과 이념, 그리고 정책을 소개하는 것보다 앞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기사는 후보들의 교육철학의 건전성과 경험자산의 타당성을 근거로 하지 말고, 진보와 보수의 선호로 투표에 임하라는 압력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탈이념’ 주장의 확산을 보며 우리 사회 전체가 자칫 이념이라는 것에 무관심해지고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개인의 욕망과 감성만으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갈등과 고민의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는 이 시대적 트렌드를 ‘탈이념논쟁’이 가속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본능과 느낌만 판치는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은 건강한 이성과 신념을, 그리고 사회는 성숙한 이념을 가져야 한다. 이념을 외면하거나 이념논쟁을 피하기보다는 건강한 상식과 건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진짜 논쟁이 펼쳐지는 정치의 장(場)을 기대해 본다.

성영신 고려대 교수·심리학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이는 ‘74세’”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이는 ‘74세’”



파릇파릇한 10대, 꽃다운 20대, 성숙한 30대 등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최근 해외의 한 과학자들이 ‘가장 행복한 나이는 몇 살?’이라는 주제로 조사한 결과, ’74세’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독일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10대부터 70대까지의 남녀 2만1000명에게 1~7점의 보기 중 자신의 행복지수를 체크하게 했다.



그 결과 10대 후반은 평균 5.5점, 40세는 평균 5점을 매겼으며, 70대 중에서도 특히 74세의 조사대상자가 5.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1세부터 40세 까지는 행복지수가 꾸준히 하락하다가, 46세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74세에 정점을 기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상태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불안정한 20대와 30대보다 안정적인 집과 가정이 있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도 74세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영국의 사회지표조사저널( journal Social Indicators Research)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데일리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법정 스님 주요 어록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은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 여러 권의 산문집과 법문을 통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주옥같은 말을 남겼다.

특히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는 말은 스님이 설파하던 ’무소유’의 정신을 압축한다.

1997년 길상사 창건 당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로 시작하는 창건 법문도 이러한 무소유 정신과 맞물려 널리 회자됐다.

그런가 하면 말년인 지난 2008년 낸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마지막 모습까지 귀감이 되기도 했다.

다음은 법정스님의 주요 어록.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무소유’ 중)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산방한담’ 중)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버리고 떠나기’ 중)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홀로 사는 즐거움’ 중)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산에는 꽃이 피네’ 중)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있으면 합니다.(1997년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아름다운 마무리’ 중)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아름다운 마무리’ 중)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