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와 권력자의 차이

시대도 몰랐고 은퇴도 몰랐던 노회한 박쥐

리더는 추종자가 많고 권력자는 복종자가 많다. 리더는 추종자를 살피며 일하지만 복종자는 권력자를 살피며 일한다. 그래서 설사 일이
실패하더라도 리더에겐 동지가 남지만, 권력자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칭기스칸과 몽골제국의 리더 자리를 놓고 싸웠던 두 명의 경쟁자들을 통해
패배한 리더의 역설적 리더십을 찾아보자.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에 실린 옹칸 사진. 동양화가 김호석이 그린 그림이다)

먼저 옹칸, 그는 칭기스칸 아버지의 동지였고, 고원의 최강 집단인 케레이트의 족장이었다. 훗날 고아나 다름없는 칭기스칸이 아내를 되찾기
위해 옹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연합을 맺은 관계이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이다. 옹칸은 시대를 몰랐고, 은퇴할 줄도
몰랐던 노회한 박쥐였다. 그는 13세기형 디지털 시대를 알지 못했다. 옹칸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이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한 사람이었다. 리더에게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없다. 스스로 대안이어야 하고,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안티는 리더의
일이 아니다.

옹칸은 균형이란 이름으로 배신과 연합을 번갈아가면서 한다. 사람을 바꿔가면서 음모와 술수로 자신의 성과를 만든다. 칭기스칸을 이용해
자모카를 견제하려고 했으나 칭기스칸의 힘이 커지자 오히려 자모카와 연합해 칭기스칸을 배신한다. 옹칸은 한편으로는 처세를 잘하는 인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단히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옹칸이라는 호칭는 적대관계에 있을 법한 금나라가 하사한 왕이라는 칭호에 북방의 군주를 뜻하는 칸이라는
호칭이 결합된 이름이다. 그는 노회한 술수로 주변의 강한 자를 동맹자로 삼아 자신의 안위를 지켜갔다. 그는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게임을 즐겼고,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했던 몽골고원에서 그의 상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그가 노회하고, 음흉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그런 변화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힘의
균형이란 언제나 몸을 움직일수 있지 않으면 깨어지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옹칸은 시대의 변화에 자신의 몸을 바꿀 수는 없는 지도자, 자신의 시대를 끝까지 고집하는 지도자였다. 젊은 지도자인 칭기스칸은 그에게서
현실감각을 익혔는데 반해, 옹칸은 과거의 묵은 때를 씻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1206년 테무진이 칭기스칸으로 옹립되었을 때, 옹칸은 새로운
권력자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했어야 했다. 테무진은 어제까지의 신하가 아닌 자신과 대등한 세력의 지도자로 성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옹칸은
상상력도 없고 우유부단한 2류 지도자였으며, 이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옹칸은 변화와 개혁의 중심에 서 있지 않은 자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을 증명한 인물에 다름 아니다.

그는 언제든 자신의 마지막 지점을 판단해야 했고, 은퇴를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권력에의 집착은 눈을 멀게 했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결국 옹칸은 은퇴가 아닌 시대에 의한 강제퇴출을 당하게 된다. 원칙이 없는 기회주의자, 분열의 화신이 겪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테무진이
칭기스칸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누구보다도 필요했던 인물 옹칸. 몽골고원 최대의 실력자 옹칸은 테무진과의 동맹과 반목, 동지와 질시 사이를 오가는
데스게임에서 패배의 쓴잔으로 마심으로써 역사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았던 노회하고 간교했던 자. 그는 세상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특히나 디지털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유목의 마인드는
전혀 없었던 유목민이었다. 그런 존재는 평온한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역동적인 세상에서는 금새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안주하고자 하였으나
세상을 향해 튀어나가려던 칭기스칸과 자모카의 세상으로 바뀌었기에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칭기스칸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자모카. 칭기스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하지 못했다면 다음 주인은 틀림없이 자모카였을 것이다. 칭기스칸과
동년배이자 안다였던 자모카는 성공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던 유목민이었다. 그에게는 질주의 정신도 있었고,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칭기스칸과 패러다임이 달랐다.

옹칸이여!
나는 텃새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철새이다.
그는
언젠가 떠날 것이다.

옹칸에게 자모카가 던진 말이다. 그러나 그는 철새의 가치를 몰랐다. 철새야말로 대륙을 넘나드는 용기와 도전정신, 위대한 꿈과 희망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 아닌가? 자모카는 디지털 시대를 읽었으되 디지털적으로 살지 않았기에 최종적인 승자가 되지 못했다.

(칭기스칸의 동년배였고, 가장 강한 라이벌이었던 자모카 인물도. 김호석 그림)

자모카의 실패 원인 중 핵심은 그가 명분에 얽매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을 도와줄 때도 명분 때문이었고, 칭기스칸과 헤어질때도
명분을 내세웠다. 칭기스칸만큼 리더십도 있고 성공의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통제력이 없어서 패배한 것이다. 칭기스칸이 세력을 얻기
위해 주르킨씨족을 희생양으로 남긴 일이 있었다. 자모카는 이들을 전쟁포로로 생각하고, 모두를 삶어서 죽인다. 이로 인해 민심이 떠나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부하에게 끌려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멋있는 최후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
역시 명분에 의한 것이다. 패자의 변이 멋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조직을 책임진 리더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모카는 ‘열린 귀를 갖지 않았다’는 측면에서도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칭기스칸은 옹칸, 자모카, 또는 다른 모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자모카는 그 부분이 약했다. 그는 남자로서 볼 때 매우 멋있는 캐릭터이고, 칭기스칸의 쌍둥이라 여겨질 만했다.
그러나 열린 귀를 갖지 않은 리더에게는 동지가 많을 수 없다. 칭기스칸과 헤어질 때 그는 칭기스칸에게 “내가 너에게 진 것은 버르테와 같은
아내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칭기스칸은 버르테의 말을 들은 것이고 그는 여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도 분명
여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에서 여자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가 여자들의 역할을 두지 않아서가
아닐까?

[서소문 포럼]요즘 40대 이상의 학부모들의 고민- 차라리 전두환 시절이 낫다고?

[서소문 포럼] 차라리 전두환 시절이 낫다고?

[중앙일보] 입력 2012.08.17 00:47 / 수정 2012.08.17 00:47

강홍준 논설위원

 

중·고생을 둔 학부모라면 미욱한 자식을 보며 하루에도 참을 인(忍)자 세 번을 마음에 쓴다. 생각해 보면 성질이 날 만하다. “나는 그래도 번듯한 대학 나와 남에게 꿇리지 않고 이렇게 버티며 살고 있는데 넌 도대체 뭐냐”고 묻고 싶기도 하겠다. 가장 허탈한 땐 과외다 뭐다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올라갈 줄 모르는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볼 때 아닐까.

 요즘 40대 이상의 학부모들 사이에 과외 금지·학력고사로 대표되는 ‘전두환 시대’를 희구하는 심리가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차라리 그때가 낫다”는 말은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보수 신문 칼럼조차 대권 후보들은 전두환에게 한 수 배우라며 그 시대의 단순 무식함을 조언하기도 한다.

 1980년 하루 아침에 학원 수강과 과외가 금지됐고, 대학은 본고사 또는 학력고사, 내신으로 단순하게 선발했다. 지금처럼 복잡한 3000여 개 대입 전형은 그때 분명 없었다. 머리 좋은 애들은 부모 도움 없어도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대학에 척척 붙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 좀 괜찮다는 대학 나온 부모들은 그 시대가 그리울 것이다. 어떨 때는 “나는 되는데, 내 몸에서 나온 아이는 왜 안 되는데”라며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런 단순 무식함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가능하지 않으며,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부모인 나는 SKY 갔는데 자식은 왜 안 되는지 답을 알고 싶다면 과거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때 고교 교사는 한 학급 60명 중에 몇 명을 데리고 수업을 했었나. 공부는 아예 포기하고 잠 자는 아이가 절반을 넘었다. 지금은 어떤가. 학습 부진아도 학원은 다 간다.

 

 지금부터 12년 전인 2000학년도만 하더라도 서울대 정원이 4959명이었고, 지금보다 1609명 많았다. 고려대·연세대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갈수록 들어가는 문은 좁아지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더 몰리니 지금 아이들은 과거 부모 때보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피 말리는 경쟁 속에 놓여 있는 게 분명하다. 명문대 간판 단 부모를 매일 봐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경쟁이 치열하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남보다 앞서겠다는 욕망,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경쟁적 상황이 단칼에 해결될 수 있을까. 부모가 그 시절을 희구한다면 “자, 이제 부모들은 사교육 몰빵 그만하고, 아이들끼리 실력으로 경쟁하게 합시다”라는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내 힘으로 안 되니 제2의 전두환이라도 나와서 아이가 처한 경쟁적 상황까지 치워달라는 간절한 바람인가. 한마디로 고통 속에 잠들다 꾸게 된 꿈에 불과하다.

 대입 경쟁은 전두환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4년제 대학에서 6년 이상 다니며 벌어지는 스펙·학점 경쟁, 졸업을 앞두고 취업 경쟁까지도 그분이 해결해줘야 하나.

 그러므로 생각이 있는 부모라면 오히려 이제라도 자식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우선 투자수익률이다. 모두가 돈을 쏟아부으며 경쟁하는 상황에서 대학 입학·졸업에 따른 기대수익률은 갈수록 낮아질 것이다. 그래도 인생 노후자금까지 털어 아이를 밀어줄 것인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했듯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아이의 성장이다. 부모와 아이의 인생은 분명히 다르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도록 조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아이의 모든 일을 쥐락펴락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들은 교육 당국에 할 말을 해야 한다. 대입 제도는 좀 더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운영하고, 대학 이외의 다양한 진로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우회로도 많이 만들고, 안내 표지판도 달라는 당당한 요구다. 세상사가 답답하니 단칼에 모든 것을 해결해줄 위인을 고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알게 된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분수대] 꽃은 흔들리며 피는 것 안 흔들렸다고 감추는 게 과연 교육적인가-중앙일보

[분수대] 꽃은 흔들리며 피는 것 안 흔들렸다고 감추는 게 과연 교육적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2.08.17 00:33 / 수정 2012.08.17 00:33

1980년대 중반에 잠시 고교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2학년 담임도 맡았다. K 학생이 사고를 친 건 내가 학교에 부임하기 직전이었다. 이미 정학 조치를 받았고,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된 상태였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K는 소년원에 가야 하지만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안 갈 수도 있다고 검사가 그러는데, 담임이 서류에 서명하고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제도였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겠다고 했다. 당사자보다 가난에 찌든 그의 홀어머니가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후 K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무척 순수한 아이였다. 졸업 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다. 지금 40대 초반일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읊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라고 했다(시 ‘흔들리며 피는 꽃’). 나도 부모나 교사,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100% 순종하며 마치 깎아놓은 밤처럼, 기름 바른 미꾸라지처럼 자란 사람은 어딘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쪽이다. 성장기, 특히 사춘기의 일탈은 생물학적 견지에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줄 필요가 있다. 단, 교육적으로 부추길 것은 부추기고 가지를 칠 것은 쳐주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되지 자칫하면 흔들리다 꽃도 못 피우고 꺾인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느냐 여부를 놓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일부 교육감·전교조가 대립하고 있다. 몇몇 교육감과 전교조는 학생부 기재가 가해 학생에게 ‘낙인’을 찍는 일이고 인격권·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과정도 기록하고 안 흔들리게끔, 또는 이왕이면 멋지게 흔들리게끔 가르쳐야지 아예 ‘흔들린 사실 없음’이라며 감추고 눈감자고? 전혀 교육적인 발상이 아니다. 성장 단계마다 자기 행동에 상응하는 책임을 깨닫고 개선하도록 적절한 장치를 두어야 한다. 폭력행위도 마찬가지다. 낙인효과가 걱정이라면 학생부를 대하는 대학당국과 사회의 시각부터 바로잡도록 유도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과 폭력 억제 효과를 떠올려보라. 무엇보다 학생부라는 문서의 정직성·신뢰성을 생각하면 가해 사실 은폐는 답이 아니다. 안 그래도 학생부 윤색(潤色)에 자기소개서 대필 풍조까지 성행하는 판이다.

 빗나간 사랑, 동심(童心)천사주의는 오히려 아이들 장래를 망친다. 학교가 폭력 제재에 손을 놓으면 상대적으로 다수인 피해자군(群)이 그냥 당하고 있을까. 외부의 도움을 구할 것이다. 앞으로 학교가 경찰·변호사들로 북적댈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흔들리며 큰다. 뻔히 흔들리는데 안 흔들린다고 적는 건 위선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중앙시평] 올림픽 소고[중앙일보]-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중앙시평] 올림픽 소고[중앙일보] 입력 2012.08.18 00:05 / 수정 2012.08.18 00:05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우리 국민들을 잠 못 자게 하고 열광케 했던 17일간의 런던 올림픽 드라마는 끝났다. 유난히도 덥고, 짜증났던 이번 여름 날씨를 국민들은 연일 터져 나오는 메달 소식으로 견딜 수 있었다. 종합순위 5위. 한국이 이뤄낸 놀라운 성적이다.

 이제 열광과 환호를 식히고 우리가 어떻게 이런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지 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경제력 15위, 인구 25위인 한국이 어떻게 이런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가? 한국인의 체력이 우수해서? 한국인이 특별히 우수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서? 아니면 스포츠가 한국민의 일상생활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이 모두에 쉽게 고개가 끄떡여지지 않는다.

 실제로 스포츠의 생활화라는 면에서 우리 국민은 크게 뒤진다. 유럽과 미국의 청소년들이 매일 운동장에서, 체육관에서 쏟는 땀과 시간에 비해 우리의 청소년들이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턱없이 짧고, 평균 체력은 크게 떨어진다. 한참 뛰어놀고 체력을 쌓아야 할 때에 온갖 과외공부로 주눅이 들고 중·고등학교의 운동장은 텅 비어 있기 일쑤다.

 우리의 올림픽메달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태릉선수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메달 획득을 위해 전략적 계획을 세우고 강력한 유인체계를 선수들에게 제공해 왔다. 포상금, 연금, 병역면제 등이 그것이다. 펜싱, 양궁, 사격 등은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분야에서 많은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메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수를 양성하고 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올림픽을 순수 스포츠정신으로 접근했던 것이 아니다. 국가의 위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어쨌든 좋다. 올림픽 5위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땀 흘려 쌓았던 기량을 있는 힘을 다해 발휘해준 우리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선사한 기쁨과 행복감, 자긍심을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다시 분명히 확인한 중요한 사실은 바로 국가와 사회가 제공한 보상, 유인체계에 따라 우리는 다른 모습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 사회모습이 있으면 이를 유도할 수 있는 보상, 유인체계를 제공하여 이를 일관되게 집행하면 국민들은 반드시 이에 반응하고 결국 그 목표대로 움직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태릉선수촌 설립과 올림픽메달 포상제도가 바로 오늘날의 성과를 가져왔듯이.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문제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된 보상, 유인체계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해 내고 이를 어떻게 바꾸어 놓아야 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력 집중, 널리 퍼진 부패, 지나친 과외 열기, 배금주의, 무질서한 주차질서, 양극화의 심화, 불법 시위의 일상화 등은 결국 모두 그동안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보상, 유인체계가 낳은 결과다. 주민들이 반발한다고 불법주차를 단속하지 않고, 민심을 고려해 불법시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무질서한 주차, 불법시위의 만연으로 시민 모두가 불편한 삶을 살게 된다.

 학벌이 사회에서의 출세와 성공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한 어떤 입시제도를 도입하든 과외 열기는 식지 않을 것이다. 세제와 복지제도가 부와 가난을 대물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면 계층의 고착화와 양극화는 점점 심해질 것이다. 국가가 직업관료제도를 채택하며 지나치게 낮은 보수를 제공하면 이들이 기업의 유혹과 각종 이권에 더 취약하게 노출되게 한다. 법조인, 정치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삶은 현실이니 이들의 작은 부패를 일일이 다스릴 수도 없으며 전관예우, 스폰서, 떡값이 사회의 관행으로 되어버리면 정의와 공정성은 자주 뒤로 밀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자리잡게 된다. 돈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으로부터 변해야 한다면 지금의 모습을 가져오게 된 보상, 유인체계를 먼저 바꾸고 이를 일관되게 시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정치가 중요하다. 정치가 제도와 법을 바꾸고, 거기에 따라 우리 사회의 보상, 유인체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런 실질적 변화를 위해 후보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모호한 구호들과 세 과시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지금의 보상, 유인체계를 바꾸어야 미래의 우리 사회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2009개정교육과정의 변천사(2009-2012년까지)

2009개정교육과정이 나온 이후로도 교육과정이 수시로 개정되고 있네요.

처음 나온 2009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변경된 내용을 총론과 변경된 교과 중심으로 모아 봤습니다.

 

 

 

자료 출처 :http://www.ncic.re.kr/nation.kri.org4.inventoryList.do

 http://www.textbook114.com/portal.jsp?req_PAGE=content&menu=2&sub=2&sidemenu=1&sidesub=1

 

2009교육과정 적용 일정.png

 

01-[별책 1]-2012-07-[2009 개정 2012] 초중등학교+교육과정+총론.pdf

01-[별책+1]-2012-12-초중등학교+교육과정+총론(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2-31호).hwp

03-[별책 5]-2012-07-국어과+교육과정(최종수정).hwp

04-[별책 6]-2012-07-도덕과+교육과정(최종수정).hwp

05-[별책 7]-2012-07-사회과+교육과정(최종수정).hwp

06-[별책8]-2011-08-수학과+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hwp

07-[별책9]-2011-08-과학과+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hwp

08-[별책10]-2011-08-실과(기술가정)+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hwp

09-[별책11]-2011-08-체육과+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hwp

10-[별책12]-2011-08-음악과+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1213).hwp

11-[별책13]-2011-08-미술과+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hwp

12-[별책14]-2011-08-영어과+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hwp

13-[별책15]-2011-08-바른+생활+슬기로운+생활+즐거운+생활+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hwp

14-[별책26]-2011-08-창의적 체험활동+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고시+제2011-361호)(최종수정).hwp

15-[별책27]-2012-07-한국어+교육과정(최종수정).hwp

 

111-2009_개정_교육과정(총론)-2009년 12월(최초 고시문).hwp

112-2009_개정_교육과정에_따른_초중고_창의적_체험활동_교육과정_해설-2009년 12월.pdf

113-2009_개정_교육과정에_따른_초등학교_교육과정_총론-해설-2009년 12월.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