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토’ 연착륙, 기업도 나서라

‘놀토’ 연착륙, 기업도 나서라

신헌철 SK 부산·대구행복한학교재단 이사장
봄방학을 한 주간 남기고 시작된 ‘새 학년 맞이 특별 새벽기도회’에 예년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교회당을 꽉 메웠다. 긴 겨울방학에 이은 봄방학도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새 학년 새 학기의 학교 생활을 앞두고 무언가 차분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을 깨우며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지난해 초등학생 수는 53만6000명으로, 1972년의 118만4000명에 비해 반 이상 줄었다. 65년 이래 최저 인원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19대 총선을 앞두고 조사한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학교폭력(95%), 일자리(93%), 인성교육(92%), 서민경제(92%), 양극화와 사회안전망(81%), 공교육(80%)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 분야가 1·3·6위로 등재된 사실에서 대부분의 학부모가 바라는 우선 과제는 최근 각 정당과 정치인이 요란하게 외치는 자유무역협정(FTA)·재벌규제·부자증세·복지확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일부터 전국 1만1000개의 초·중·고교에서 720만 명의 학생이 일제히 주 5일제 수업에 들어갔다. 98년부터 단계적이면서 실험적으로 시작된 ‘놀토’가 이제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적용됨에 따라 학교·가정뿐 아니라 교육단체·학원, 심지어 종교단체 주일학교까지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됐다. 그동안 정부와 교육 당국이 많은 준비를 해 왔지만 전면적 실시에 따른 시행착오와 문제점을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해 정상화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서울·부산·대구·울산 등의 지방자치단체·교육청과 더불어 저소득층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를 관민 합작의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느덧 이번 새 학기부터는 550명의 강사와 함께 1만5000명의 초등학생이 매일 정규 수업을 마친 뒤 오후 2시부터 저렴한 수업료를 내고 각종 학습·인성·스포츠·컴퓨터 등을 배우고 있다. 짧지만 2년 동안의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운영 경험에 비춰 보면 전면적 ‘놀토’ 시행에 따른 효과가 빨리 나타나기 위해서는 ‘놀토’가 오히려 ‘멍에’가 된 저소득층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해결해 줘야 한다.

 첫째, 준비가 부족한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물론이고 맞벌이를 해도 ‘놀토’를 갖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집에서 혼자 맴돌게 될 자녀 생각에 답답하기만 하다. 전국 720만 명의 학생 가운데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자녀는 75만 명이며 이 중 37만 명이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이들 중 상당한 학생이 별다른 대책이 없으면 ‘놀토’마다 TV·게임·PC방·길거리 배회에 더 많이 치우칠 수밖에 없다.

 둘째, ‘놀토’가 학습·인성·체험교육으로 활용되므로 사교육비가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교육 영향력은 그만큼 커지게 되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벌써 토요학습반 학원 수강생이 20~30% 늘고 있고 토요심화반도 생기고 있다. 가정형편이 좋은 아이들이야 ‘놀토’에서 영어·수학·피아노·농구·태권도 등에 월 100만원이 지불되더라도 장래 투자로 여길 수 있지만 저소득계층에서의 교육비 증가는 그야말로 ‘멍에’가 된다.

 셋째, 전면적 ‘놀토’ 시행이 지역 간,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국민소득 상위 20% 계층은 하위 20% 계층에 비해 학원교육비(월 30만9000원)가 8.1배 많으며 소득 중 교육비 비중(15%)도 2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놀토’가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의 교육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거나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면 결국 소득불평등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는 꼴이 될 것이다.

 미국 뉴욕시의 123개 ‘작은학교’가 공립학교의 새 모델로 소개됐다. 이는 블룸버그 시장이 히스패닉과 흑인 등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 온 결과다. 여기에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기금(5120만 달러)이 씨앗이 됐다고 한다. ‘놀토’가 우리 교육의 새로운 성공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교육 당국이 특히 저소득층의 ‘멍에’를 벗기는 일에 소매를 걷어야 한다. 여기에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몇몇 기업 외에 더 많은 기업이 스스로 한두 가지씩 기업 역량을 보태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가 곧 기업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신헌철 SK 부산·대구행복한학교재단 이사장

‘놀토’에 놀면 안 되는 거니?

 ‘놀토’에 놀면 안 되는 거니?  –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매주 이틀을 놀게 됐다. 학창 시절 가장 바랐던 게 ‘토요일에 학교가 쉬었으면’ 하는 거였는데, 이제라도 그런 날을 보게 돼 기쁘다. 한데 ‘놀토’를 맞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엄마는 “놀토를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스케줄 짜느라 골치가 다 아프다”고 했다. 그의 중학생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학원에 다녀야죠” 한다. 강남 엄마들은 벌써부터 토요일 팀 과외 일정 짜기에 분주하다.

 대한민국 학원의 경쟁력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이달 주5일제 수업 시작에 학교와 지역 사회는 ‘놀토’ 대비가 됐느니 안 됐느니 말이 많은데 학원가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 학원가엔 토요일 오전 강좌 스케줄이 빼곡히 잡혔고, 금요일 저녁에 입소해 일요일 밤에 퇴소하는 2박3일제 기숙학원도 등장했다. 일단 입소하면 나갈 수도 없고, 밤 12시 전에는 재우지 않는 스파르타식 학원을 표방한다.

 한편에선 학교 놀토 프로그램이 빈곤하다며 질책이 쏟아진다. 학생 참여도 적고, 지도 강사와 내용도 부실하고, 어느 학교는 그저 영화만 틀어줬고, 도서실에서 빈둥거리도록 방치해 시간낭비가 많았다는 등이다. 그런가 하면 ‘좋은 부모’들은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유익한 시간을 보낼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첫 놀토를 맞은 3일 에버랜드 입장객이 지난해 격주 놀토보다 30%나 늘었단다. 중1 아들을 둔 모씨는 부자간 정도 쌓고 아들의 호연지기를 길러주기 위해 토요일마다 백두대간에 오르는 산행을 아들에게 제안했단다. 나름대로 상당한 희생과 귀찮음을 각오한 것인데, 정작 아들은 “아빠,그거 꼭 해야겠어요?”라며 시큰둥하단다.

 완전 놀토를 맞은 우리 사회의 관심은 이렇게 토요일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익하게, 시간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보낼지에 집중되고 있다. 당장 입시전쟁이 코앞인 고등학생들은 학원 프로그램에 가위눌리고,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놀토에도 학원으로 내몰린다. 초등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부모는 아이들을 눈에서 놓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고, 다른 애들이 하는 건 다 하게 하려고 안달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휴일을 꼭 그렇게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보내야만 하는지. 놀토는 말 그대로 노는 날인데, 그냥 좀 잘 놀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꼭 부모와 함께 놀아야 할 필요도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초등학생 때 부모와 놀지 않았다. 놀자고 하면 오히려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론 ‘과외금지령’이 있던 5공 시절 학교에 다닌 덕분에 학원 문전에도 못 가보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에 가끔은 친구들과 놀고, 대부분은 방에서 뒹굴며 ‘허송세월’을 했다. 한데 그런 심심한 시간 속에서 공상도 하고, 낙서도 하고, 소설도 읽고, 글도 쓰면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게 지금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던 게 다행이긴 했다.

 “고독은 창의성의 열쇠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렸던 지식축제 TED콘퍼런스에서 미국 작가 수전 케인이 한 말이다. 흔히 세상은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외향적이 되라고 강요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꾼 지도자와 창의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자신을 고독하게 놔둘 줄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가르치고 주입한다고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지식이 되진 않는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놔두고, 무념무상으로 뛰어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창의성을 기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은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 운동장·공원과 도서실 등 아이들이 노는 공간을 마련하고, 물리적 안전은 섬세하게 지키고, 기다려 주는 일이 어른들이 할 몫이다. 우리 아이들이 놀토에 부모의 간섭과 인터넷·SNS의 정보 폭주와 같은 외적 자극에서 벗어나 심심하게 뒹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없이 산 애는 독해서 안 돼” 오래전 사모님 말씀 이제 와 답하고 싶은 건

“없이 산 애는 독해서 안 돼” 오래전 사모님 말씀 이제 와 답하고 싶은 건 …[중앙일보] 입력 2012.03.05 00:36 / 수정 2012.03.05 00:36

 
벌써 한참 전 이야기다. 큰 도움을 여러 차례 받은 먼 친척 어른이 계셨다. 어머니는 명절이면 나와 여동생을 깔끔히 차려입혀 그 댁으로 보냈다. 소소한 심부름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저택은 늘 사람들과 선물들로 북적댔다. 때론 그 댁 언니·오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럴 때면 왠지 안간힘을 쓰는 듯한 기분이 돼버렸다. 햄버거를 처음 먹은 것도 그 댁에서였다.

 대학 입학하던 해 그 댁 안주인으로부터 “큰아들 여자친구를 좀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떤 아가씨를 원하느냐 물으니 “너무 없는 집 아이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그런 애들은 독하고 베풀 줄 모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모멸감이 들었지만 일견 수긍했다. 안 그래도 그 즈음, 내 타고난 인간적 단점들이 팍팍한 현실로 인해 악화될 수 있겠다는 자각을 한 터였다.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자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훗날 기자가 돼서야 내 ‘초년 고생’이 갖는 가치에 새삼 눈떴다. 뉴스의 이면, 사람의 속내를 파헤치는 것이 기자 일이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감성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다양한 위기를 경험해본 쪽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실력도 노력도 턱없이 부족한 내가 그나마 이제껏 펜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지 싶다. 비슷한 연유로 나는 교육자나 법조인 또한 가능하면 다양한 내적·외적 경험을 쌓은 이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한데 며칠 전 신문을 보다 그만 “음…” 하는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올 국가장학금 신청 대학생 가정의 소득 수준을 분석한 기사였다. 상위 10% 가정의 자녀가 가장 많이 다니는 학교는 이화여대(43.8%), 그 다음이 서울교대(38.3%)였다.

 교대 졸업생들이 훗날 맡을 학생의 상당수는 중산층 이하 가정 자녀다. 빈부 격차 심화는 교육 현장에도 큰 도전이다. 경제적·정신적 좌절에 익숙지 않은 교사들이 이 난제를 현명히 헤쳐갈 수 있을까. 법조·정치계도 마찬가지다. 외고 출신 ‘엄친아’는 이미 사법부의 대세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모든 법적 판단의 배경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부유한 환경은 둘째 치고, 부모가 가라는 길로만 걸어온 친구가 많아 큰 걱정”이라고 했다. 정치권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법부를 가장 안정적 인재 풀로 친다. 이른바 ‘엘리트 공천’ 이슈의 핵심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의 영향력 큰 자리는 대개 시험 성적으로 그 주인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교사·법조인, 기자나 공무원을 뽑을 땐 좀 다른 잣대를 들이댔으면 한다. 그가 겪지 않아도 될 불편과 고난을 자초한 적 있는지, 그를 통해 자기 삶을 구체적·실질적으로 변화시킨 측면이 있는지. 여론 주도층에 다양한 목소리가 합류할 길을 여는 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다.

이나리 논설위원

“찍어도 되느냐 ?”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찍어도 되느냐 ?”

[중앙일보] 입력 2012.03.03 00:28 / 수정 2012.03.03 00:28

# 지난 삼일절이었다. 독특하기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나무 찍는 사진작업을 보여주겠다며 중랑천 뚝방길에서 만나자고 해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JTBC 정진홍의 휴먼파워’(매주 토 오전 8시) 삼월 둘째 주 녹화분을 찍기 위해서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김 작가는 나를 자신의 포르셰 자동차에 태우더니 ‘가람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왕복 2차로 뚝방 도로 위로 올라섰다. 그러곤 이내 ‘○○환경’이란 간판을 내건 ‘건설 폐기물’ 처리업체들이 줄지어 있는 길 한쪽에 차를 세웠다. 그나마 살수차가 지나가며 도로 위로 물을 뿌려댔지만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마른 먼지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대했던 봄기운 넘실대는 그런 중랑천 뚝방길이 전혀 아니었다.

 #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 없는 독특한 옷차림을 한 김 작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가에 드문드문 서 있는 앙상한 가지의 볼품 없는 나무들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에서 잠시 눈을 떼고 나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그의 눈은 번뜩거리며 그 나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러 해 전 서울 강북의 전농동에 사는 김 작가는 강남 청담동의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 이 길을 지나다가 나무 하나에 눈이 꽂혔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나무에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단다. 물론 나무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과 영혼으로 소통하던 그 나무가 사진 찍기를 허락한 다음부터 그는 이곳에 와 그 나무를 찍었다. 처음에는 그 한 그루만 찍고 말 생각이었지만 결국 그 주변의 나무들과 잡풀마저 몽땅 찍게 되었다. 자그마치 4년 동안 4만 장을!

 # 김 작가는 처음 “찍어도 되느냐?”고 말 걸었던 그 나무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앙상한 그 나무는 거의 모든 가지가 생명의 흔적을 상실한 듯 보였다. 언젠가 ‘곤파스’라는 이름의 태풍이 휩쓸고 갔을 때 주변 나무들이 모두 쓰러질 때도 그 나무는 버티고 살아남았지만 새로 맞을 봄에는 다시 새순을 틔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김 작가는 그 나무를 한참 응시하다 마음먹었다는 듯이 어렵게 셔터를 눌렀다. 나 같은 범인의 눈에는 도저히 찍을 만한 것이라곤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나무는 촌스러운 녹색의 쓰레기처리 컨테이너에 겹겹이 포위당한 채, 하늘로 제멋대로 솟은 가지들마저 볼썽사납게 뻗친 전신주와 그 사이에 이리저리 걸쳐진 전깃줄에 포박당한 모습이었다. 정작 사람이라면 단 한 시간도 그렇게 서 있을 수 없을 거기에 그 나무는 그냥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서 있었다.

 # 그런데 김 작가가 그 나무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었다. 김 작가의 눈이 담긴 카메라 렌즈와 새의 깃듦, 그리고 은근한 햇살이 포개어진 그 나뭇가지에 잔잔한 생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유독 거기만 살아있었다. 순간 김 작가가 4년 넘게 이곳에서의 촬영을 손 놓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 듯도 싶었다. 어쩌면 그 나무는 김중만의 카메라 렌즈를 통한 눈길만큼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서 키우는 나무도 눈길 주고 얘기 건네면 살아난다 하지 않던가.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 봄은 온다. 기어이 온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에 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봄은 생명이요 기운이다. 생명을 깨우고 기운을 차리게 하려면 눈길을 줘야 한다. 말을 걸어야 한다. 그 눈맞춤과 입맞춤이 너와 나 우리를 살게 한다. 삼월이라 봄은 온다지만 세상은 온통 선거다, 경선이다 하며 날만 서있다. 남남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도 눈맞춤 한 번 하고 말 한 번 제대로 걸기 힘든 세태다. 이럴 때일수록 소소하지만 따뜻한 눈길이 아쉽고 누군가 날 서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건네는 말 한마디가 그리운 게다. 그 눈길에 죽던 사람도 살 수 있고,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의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