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통배짱 엄마’가 되는 그날까지 –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취업맘’ 자책은 금물, 뻔뻔하고 대범해져야
약간 방임하는 것도 아이에겐 藥…
21세기 최고 경쟁력은’헝그리 정신’

새 학년이 시작된 3월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담임입니다. 아무개가 아직 구구단을 외지 못합니다. 구구단은 2학년 때 배우는 과정입니다. 수업에 지장이 많사오니 가정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마녀’,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 아무개 엄마입니다. 저는 성실히 세금 납부하여 선생님 월급을 드리고 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선생님의 의무지 저의 의무가 아닙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터인데 왜 제게 책임을 물으시는지요? 아무개가 구구단을 제대로 욀 때까지 A/S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보수집’차 엄마들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이프’라는 사이트에 들어간 영란씨. 저 해괴한 글을 발견하고 한밤중 컴퓨터 앞에서 혼자 배꼽을 쥐었다. 세상에 이런 통배짱 엄마가 있었어? ‘마녀들의 수다’라는 문패가 붙은 코너에는 이 글 말고도 불순한 엄마들의 목소리가 와글와글했다. ‘엄마, 아이 캔 스픽 잉글리시가 뭔 뜻이야?’ 묻는 중1 딸에게 ‘영어 못하는 것도 대한민국에선 개성이지’ 하고 낄낄대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이번 시험에 낙제했으니 부진아 학습을 시키겠다’고 통지해온 선생님께 ‘우리 애는 명문대학 갈 의사가 전혀 없사오니 그냥 집에 보내달라’며 호기를 부리는 엄마도 있다. 황당해진 담임, 아이를 불러 ‘니네 엄마 계모니?’ 했다는 대목에서 또 깔깔 웃은 영란씨는, ‘계모’도 좋고 ‘마녀’도 좋으니, 나도 통배짱 엄마 되어 이 험난한 교육 전장(戰場)을 뚫고 나가리라 다짐하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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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통배짱이 시험대에 섰다. 반찬 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출산 전 다니던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나가 일하는 영란씨. 한 달에 기십만원 하는 학원비가 벅차 겨울방학 동안 학교가 시행한 방과후수업에 3학년 아들 녀석을 등록했던 것인데, 하필 영어는 오전에, 수학은 오후에 있어 도시락을 싸서 보내게 되었다. 한데 퇴근길 동네 수퍼에 들렀더니 같은 학교 학부형인 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찬다. “에이그, 우리 애 데리러 학교에 갔더니 그 댁 아들이 차가운 학교 계단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습디다.” “진짜요?” 사실 확인차 집으로 뛰었다. 아들내미 왈, 도시락 먹으러 제 교실로 갔더니 자물쇠로 잠겨 있고 다시 영어 수업했던 교실로 돌아오니 그 사이 문이 잠겼더라고 했다. 그래서 계단에 앉아….

이튿날 열일 제쳐놓고 학교로 달려갔다. 교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당직 선생님 앉아 계신다. “어쩐 일이세요?” 나이 오십줄에 밝게 웃는 여교사와 눈이 마주치자 영란씨 잠시 흔들렸지만 애써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아이가 찬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을 때 선생님들은 뭘 하고 계셨습니까. 그렇잖아도 다른 애들처럼 풍족하게 뒷바라지 못해 피눈물이 나는데요, 흐억….” 설움에 북받친 영란씨,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쏟아부을 태세인데, 선생님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일단 앉으시지요, 추운데 차 한 잔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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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수업 없는 교실들은 문이 잠겼을 테고 당직 서는 교사들 한둘뿐이니 미처 못 봤을 테지요. 보았다면 그렇게 놔둘 리 없지요. 저희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서운하다는 겁니다. 솔직히 일하는 엄마 애들은 뒷전이고 찬밥 아닌가요? 남편 월급만 갖고 살 수 있다면 저도 학교 봉사 열심히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아이 손에 열쇠 쥐여주고 집 나서는 심정, 선생님은 모르시잖아요.” “재미난 얘기 해 드릴까요? 30년 교직에 있어도 우리 애 선생님 뵈러 갈 땐 심호흡을 했지요. 담임이 까마득한 20대 후배교사인데도 허리 굽혀 인사하게 되데요. 저도 죄 많은 취업맘 아닙니까.” “……” “아이 몸에 열이 펄펄 끓어도 학교로 나서야 하는 날엔 남의 집 아이들 잘 키우려고 내 아이를 이렇게 버려둬도 되나 하는 죄책감에 눈물 뚝뚝 흘리며 등교했지요.” “……” “재미난 얘기 또 해 드릴까요? 5학년 딸아이가 구구단을 못 외니 그 책임을 선생에게 엄중히 묻는 어떤 어머님 글이 인터넷에 떴더라고요. 뜨끔하고도 통쾌했지요. 우리 딸도 4학년 되도록 구구단 못 외웠거든요. 흐흐!” “…근데, 그 따님 대학은 갔나요?” “가다마다요. 엄마 믿었다간 밥 굶고 대학도 못 간다 싶었는지 알아서 밥 차려 먹고, 알아서 병원 가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사윗감 물어오고. 그러니까 돈 워리(Don’t worry)! 21세기 최고의 경쟁력은 ‘헝그리 정신’인 거 아시죠? 그거 하나는 제대로 길러준 셈이에요, 하하!”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sion@chosun.com

빌 게이츠-Bill Gates on mosquitos, malaria and education

http://www.ted.com/talks/lang/eng/bill_gates_unplugged.html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사업문제 관련 건으로 워렌 버핏에게 편지를 쓸 일이 있었습니다. 워렌 버핏씨께서 조언하시더군요. 굴러가는 일 안굴러가는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일년에 한번쯤을 꼭 가져 보라구요. 최근 재단에 관한 저의 화두는 “사람”을 더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이란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시장논리의 한계 때문이랄까요, 시장은 과학자, 철학자, 정부 등등이 “옳은 일”을 하도록 유인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문제들은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 없이는, 열정을 가지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능있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자리에서 저는 두가지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먼저 제가 낙관주의자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결국엔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제 과거가 저한테 그렇게 말해주더군요. 지난 한세기간, 인류의 평균 수명은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또다른 통계가 있는데요, 바로 유아 사망률 통계입니다. 1960년대쯤, 1억1천만명의 어린이들이 태어났고, 5세가 되기 전에 죽은 어린이가 2천만명이었던 것에 비해, 2005년에는 1억3천5백만의 어린이가 태어났고, 1천만명의 어린이가 5세가 되기 전에 죽은 것이죠. 출생은 늘고 사망을 줄었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줄어든 것이죠. 놀라운 현상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목숨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주요한 이유는 소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혁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신의 확산이 그 예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역은 4백만명의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40만 이하죠. 이게 의미하는 것은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다음 목표는 1천만이라는 숫자를 다시 반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20년안에 이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된 사망원인으로 꼽히는 병의 종류는 사실 몇 가지가 안되기 때문이죠. 이질(설사병), 폐렴, 말라리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가지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군요. 첫번째 질문입니다.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을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의 역사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도록 하죠. 수천년간 이 “모기 병”은 인류의 목숨을 위협해 왔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런 모기병에 대해 내성을 갖는 방향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이렇게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에서밖에 없죠. 사망률은 1930년대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5백만을 좀 넘는 숫자였죠. 정말 엄청난 숫자였죠. 전 세계에서 창궐했습니다. 미국,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끔찍한 병이었죠. 사실 사람들은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유를 몰랐습니다. 영국의 한 군인이 그게 모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냈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 모기병은 그야말로 사방 천지에 있었죠. 이에대해 두가지 해결책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DDT로 모기를 박멸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키니네라는 약을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대책으로 실제 사망률이 많이 줄어들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벌어진 일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온대지역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이 있는 곳에서 말입니다. 1900년대를 보시면 예외가 없습니다. 어디에나 있죠. 1945년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지역에 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1990년대입니다. 북반구 대부분 지역은 이제 깨끗합니다. 이젠 지구 전체를 통틀어 적도 주위에밖엔 없습니다. 여기가 바로 역설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병이 이제 가난한 나라에만 있으니까요. 충분한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발모제에 들어가는 돈이 말라리아 퇴치에 투입되는 돈보다 많습니다. 네..끔찍하죠. 대머리. 쉽지 않습니다. (웃음) 이제 가진 사람이 고민할 차례입니다. 우선순위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일년에 100만명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감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이 엄청나게 과소평가 되고 있습니다. 2억명이 넘는 인구가 살면서 한번쯤은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습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곳에서는 경제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말라리아가 될일을 안되게 뒤로 잡아 끌기 때문입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입니다. 여기 제가 모기를 좀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겪어보시라고요. 잠깐 좀 풀어놔 보도록 하죠. (웃음) 가난한 사람만 말라리아로 고생하란 법은 없습니다. (웃음)(박수) 지금 제가 푼 모기들은 깨끗하니 걱정 마세요. 그래서 몇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봤습니다. 모기장이죠. 꽤 좋은 도구죠. 엄마와 아이가 밤에 모기장 안에서 자면 모기도 별 수가 없으니까요. 집 안에서 DDT를 뿌리고 모기장을 이용한다면, 사망률을 다시 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이죠. 하지만 안심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말라이아와 기생충도 진화를 하니까요. 지금 먹히는 해결책들도 언젠간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 때가 오는 것이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두가지의 선택입니다. 들어맞는 계획과 수단을 가지고 용감하게 현장에 뛰어들어, 열심히 퇴치 활동을 벌여서 실제로 그 지역에서 말라리아와 “끝장을 보는 것”이 첫째입니다. 사실 이 방식이 말라리아를 지도에서 많이 몰아냈죠. 아니면, 독한 각오 없이 적당한 마음으로 가서 한동안 말라리아로 인한 부담을 줄이는 정도로 만족하다가 다시 사망률이 올라오는 걸 보는 것이 둘째입니다. 같은 대책이 영원히 먹혀들진 않으니까요. 세계는 지금까지 두번째 것을 선택해 왔습니다. 어느정도 적당히 하다가 관둬버린 것이죠. 사망률이 다시 치고 올라옵니다. 모기장 펀드가 있습니다. 신약개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재단은 몇달 안으로 3단계에 실험에 들어가는 백신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있다면 2/3이상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걸 잘 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런 모기병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돈을 끌어모을 사람도 필요하고, 투명성을 제고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나중에 성공담을 얘기하려면 말이죠. 사회과학자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70%라는 지금의 모기장 사용률을 90%까지 올릴 수 있을지 알아내려면 말입니다. 수학자가 필요합니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려면 말입니다. 제약회사들 경험도 중요한 밑천입니다. 부자나라들이 관대함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한 데 모인다면 가능합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라리아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좀 해보죠. 완전히 다른 얘기지만, 똑같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훌륭한 선생님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대단히 많습니다. 또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글쎄요, 사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 보도록 하죠. 여러분중 대부분은 한명쯤 좋은 선생님을 가져 보셨을 겁니다. 대부분이 아주 좋은 교육을 받으셨죠.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기도 하고, 여러분이 대체로 성공하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도 대학중퇴자이지만 성공했죠. 좋은 선생님이 있었으니까요. 사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지금까지 제법 잘 굴러가 왔습니다. 소수의 학교에 국한되긴 하지만, 어쨌든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죠. 그래서 상위 20%의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상위의 20%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죠. 다른 나라의 상위 20%와 비교한다면 말입니다. 이 학생들은 소프트웨어와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혁명을 일구러 갔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최 선두에 서게 만들었죠. 그런데 이 20%학생들을 가능하게 했던 우리 교육의 강점들이 상대적으로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교육의 균형문제 혹은 양극화 문제도 점차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미 약했던 것들이 더더욱 약해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굴러가는 걸 보세요. 이젠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기회를 갖기조차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동등한 기회를 가질수 있도록 바꿔야 합니다.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면 바꿔야 합니다. 수학과 과학처럼 고등교육이 필요한 분야에서의 우위를 유지하려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통계 자료를 첨 봤을때가 생각나는군요.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해서 꽤 놀랐습니다. 30%가 넘는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동안 말입니다. 통계에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고교 중퇴율이 고3 진학생 숫자와 고3 졸업생 숫자만으로 집계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3이전 중퇴는 통계에서 빠져 있었던 거죠. 실제로 대부분의 중퇴와 낙제는 고3이 되기도 전에 발생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중퇴율 집계가 끝나자마자 숫자를 바꿔야 했습니다. 30%도 넘게 말이죠. 소외계층에서는 50%가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장을 딴다고 하더라도, 소득수준이 낮으면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25%도 안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미국의 저소득층이라면,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딸 획률보다 감옥에 갈 확률이 높습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죠. 그래서 다시, “어떻게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희 재단에서는 지난 9년간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적지 않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골몰하고 있죠. 작은 학교 지원사업도 펼쳤고, 장학사업도 했고, 도서관 사업도 했습니다. 대부분 좋은 결실을 맺었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답이 뻔해지더군요. 좋은 선생님이 관건이라는 게 말입니다. 교육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얘길 해봤습니다. 선생님들간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차이는 또 얼마나 되는지, 한 학교 안에서의 차이는 얼마나 되고 또 여러 학교간에서는 어떤지. 이 격차의 실상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이더군요. 한명의 훌륭한 선생님이 한 학급의 성적을 한명의 훌륭한 선생님이 한 학급의 성적을 단 1년만에 10%나 올립니다. 이게 뭘 의미하죠? 2년동안만 나라 전체가 이런 선생님을 가질 수 있다면 공부 잘하는 아시아와 미국의 격차가 사라져버릴겁니다. 4년이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육 강국이 되겠죠. 간단합니다. 좋은 선생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생각하시겠죠. “좋은 교사들을 잡아두려면 처우를 개선해야하지 않을까” “좋은 교사들이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는지 좀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들은 실제로는 전혀 실천이 안되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 좋은 선생님의 자질은 뭘까? 어떻게 생겼을까? 아마도 경험이 많은 나이 많은 선생님을 떠오르시겠죠. 하지만 답은 “노”입니다. 가르치는 기술이 느는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 첫 3년입니다. 그 이후론 유지죠. 3년차 이후의 차이는 아주아주 작습니다. 그럼 석사학위정도는 있는 교사들이 잘 하는건가? 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가서 교육학 석사학위 받아온 사람들. 이 차트는 교육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네 가지 변수를 보여줍니다. 저기 맨 밑에 있는 것은,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단 뜻입니다. 교육학 석사학위죠. 교사 임금제도를 볼까요? 두가지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경력입니다. 연차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고 연금이 쌓입니다. 두번째는 “교육학 석사학위” 소지여부입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죠. 한마디로 미국교육제도는, 살짝 쓸만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전공자가 수학선생님이 되는 것엔 측정가능한 효과가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한 짬밥이라는게 있으니까요. 어딜가나 그 분야에서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을 잘 활용하지 못했어요. 한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자기가 가진 지식을 교실에 전파해서 평균 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한다거나, 또 그런 시스템에 안착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거죠. 그럼 “좋은 교사는 남고, 나쁜 교사는 떠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조금 좋은 교사”들이 교육계를 떠납니다. 이게 교육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큽니다. 몇군데 안되지만, 진짜 휼륭한 교사들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KIPP라고 하는 차터스쿨(독자운영 공립학교연합)이 그 예가 될 수 있겠군요. KIPP는 “아는것이 힘이다(Kowledge Is Power)”의 약자입니다. 이게 참 엄청난데요. 66개 학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 중학교고, 고등학교도 좀 있습니다. 여기 교육의 질이 아주 좋습니다. 최고 가난한 학생들을 뽑아다가, 그중 96%를 4년제 대학에 보냅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교의 정신과 태도가 다른 일반 공립학교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팀티칭을 해요. 계속해서 선생님의 질을 향상시키죠. 시험성적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모아다, 교사에게 피드백을 주는거죠. “선생님, 성과가 이만큼 좋아졌네요.” 선생님들은 강의의 질을 높이는데 더 열중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실제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면 첨엔 조금 황당할겁니다. 저도 교실에 앉아서는 생각했습니다. “뭐지??” 선생님들이 교실 안에서 뛰어다니질않나, 교실치고는 너무 활기에 넘쳤죠. 이건 뭐 이어달리기도 아니고.. 뭐야 이거? 했죠. 선생님들은 돌아다니면서 애들이 집중하고 있는지, 지겨워하고 있진 않은지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애들 이름을 계속 부르고, 칠판에 뭔가 쓰고 하면서 말이죠. 교실이 대단히 다이내믹 하더군요. 특히 중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애들에게 계속해서 참여를 유도하고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중요한거죠. 그런 분위기에 냉소하거나, 교실에 더이상 있기 싫은 아이들이 안 생기도록 말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다 참여해야 된단 겁니다. 이게 KIPP가 하는 일입니다. 다른 일반적인 학교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일반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피드백을 거의 못받습니다. 데이터가 없으니까요. 교사 고용 계약서를 보면, 교장이 교실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있어습니다. 일년에 한번 내지 몇번 쯤으로요. 그것도 교장이 미리 통지를 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공장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여러분이 공장장이고, 일꾼이 있는데 그중 일부가 일을 제대로 안합니다. 일꾼이 관리자에게 말합니다. “당신 여기 1년에 한 번 밖에 못 오는거 알죠?, 또 오려면 미리 알려주셔야 해요.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알고, 그 잠시동안 열심히 하는 척 할 수 있으니까” 좋은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점수 등등 데이터가 없으니까요. 선생님이 정보를 좀 봐야겠는데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이 너무 많은거죠. 예를들어 뉴욕에서 법안이 하나 통과되었는데요 교사들의 실적이 공개되어, 이게 종신재직권(테뉴어) 심사에 근거로 쓰여선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반대로 가는 거죠. 하지만 전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첫째, 교사들의 퍼포먼스를 측적할 수 있는 시험을 늘려서 우리의 현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잘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불러내다가 교수방법을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하도록 하는거죠. 이제 동영상 하나쯤 만드는덴 돈도 안듭니다. 교실에 카메라 몇 대 설치하고 수업을 녹화하는 것을 정규화 하는 거죠. 대다수의 공립학교에 아주 유용한 방안이 될겁니다. 아마 몇주에 한번쯤 하는 식으로 선생님들이 모임을 가질 수도 있겠죠. “제가 이렇게 가르쳐보니까 아주 잘 먹히던데요” “이렇게 하니까 하나도 안먹히더군요” “애들이 이럴땐 어떻게 하시나요?” 하는 식으로,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노하우와 테크닉을 공유할 수 있는 겁니다. 분야별로 최고의 선생님들의 노하우를 동영상 등 기록물로 만들면 모두가 보고 누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수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는거죠. 애들도 물리학 강의가 듣고 싶으면 최고라 소문난 수업을 그냥 비디오로 보는겁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조금 뒤쳐진다면 아마 그 동영상을 보면서 개념을 복습하도록 시킬 수 있을겁니다. 그분야 최고의 선생 최고의 강의를 비단 인터넷뿐이 아니라 DVD플레이어가 있는 곳에서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도록 DVD로 구워다 배급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개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걸 지금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습니다. KIPP 이런 일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책도 이미 나왔습니다. 제이 매튜스라는 리포터가 쓴 <열심이 일하고 착하게 살아라>라는 책이죠. 정말 훌륭하더군요. 좋은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인지를 알려줍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공짜로 한권씩 드리도록 하죠. (박수) 우리는 이미 교육에 아주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로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게 있습니다. 돈이 투입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교사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예산안이 있었는데, 의회에서 물려버렸습니다. 이 안으로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도 낙관합니다. 사람들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눈치 채 가고 있으니까요. 이 일이 제대로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이 두 문제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써왔습니다. 이 비슷한 문제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에이즈, 폐렴 등등. 여러분들이 이런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귀가 쫑긋 서는 것이 제 눈에 보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레 해결되는 그런 부류의 문제가 아니죠. 정부의 힘만으로는 적절한 자원을 적절한 장소에 배치할 수 없습니다. 경제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민간 부문도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여러분과 같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더 많은 사람을 끌여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뭔가 아주 훌륭한 결과가 나타나리라 맏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일사일언] ‘너무’가 너무합니다 정재환 방송사회자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지나친 것을 의미한다. ‘너무 늦었잖아요’라는 노래 제목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 그 노래 너무 좋아”라고 하면 좀 이상하다.’너무’는 ‘너무 뻗은 팔은 어깨로 찢긴다’라는 속담처럼 부정적인 문맥에 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겨서 너무 좋아”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또 그놈의 ‘너무’냐고 짜증을 내시는 분도 있겠지만, ‘너무’가 우리말을 잘못 쓰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랫동안 지적됐다. 이 사실은 우리가 그만큼 오랫동안 이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유가 뭘까? 첫째, ‘너무’의 뜻을 모른다. 둘째, 알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뜻이고 뭐고 강조할 때는 ‘너무’가 최고다….

늦었지만 반갑게도 최근 방송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출연자는 “너무 신나고 너무 행복했어요”라고 말했지만, 자막에는 “정말 신나고 아주 행복했어요”라고 썼다. 출연자의 말을 함부로 바꾸긴 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노력이 오히려 ‘너무’를 왜곡하기도 한다. “너무 아팠어요” “너무 슬펐지요”라는 출연자의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정말 아팠어요” “매우 슬펐지요”라고 고치는 것이 그 예다. 이렇게 되면 ‘너무’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점점 더 종잡을 수 없게 된다.

 

  • 정재환 방송사회자,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조선일보)

[아침논단] “바보야,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권이야!”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학교 교육은 부실하고 사교육비에 허리 휘는데
전교조와 非전교조 학교 학생·학부모에 선택권 주고
학생 수에 따라 예산 지원해 경쟁 유도하면 어떨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면 곧잘 한국을 모범 사례로 소개한다. 최근에도 지난 1월의 국정연설 등에서 “한국에선 교사가 국가 건설자로 알려져 있다”며 우수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제 한국의 우수 교사는 공교육을 떠나 사교육시장으로 갔다는 것을.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의 공교육은 체벌(體罰) 금지 때문에 더욱 부실해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새뮤얼 크레이머(Kramer) 교수의 저서 ‘역사는 수메르(Sumer)에서 시작되었다’를 보면 체벌의 역사는 오래됐다. 4000여년 전 수메르의 한 학생이 학교에서 회초리로 맞았다고 기록한 점토판이 발견됐다니 말이다. 그랬던 체벌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여기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같은 좌파 교육자들의 공헌이 크다. 그렇다면 체벌이 사라진 우리의 교육 현장은 학생들의 천국이 됐을까? 그래서 학부모들은 행복할까?

서울 서래초등학교 김영화 교사의 현장 증언을 들어보자. “6학년 한 반에 문제학생들은 10% 정도다. 교사가 보는 앞에서 친구를 때리고, 교사에게 욕설을 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체벌이 금기시되기 때문에 교사들이 문제학생을 그냥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나머지 학생들도 나쁜 쪽으로 변해간다.” 좌파 교육감과 전교조의 희망과는 달리 체벌 금지가 ‘교실 붕괴’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10% 문제학생들이 나머지 90%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경제학에서는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ies)’라고 부른다. 이 부정적 외부효과 때문에 90% 학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이처럼 부실해지니 학부모들은 그 대체재(substitutes)인 사교육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학생들의 부정적 외부효과를 바로잡는 수단으로 전교조 교사들은 ‘인성(人性)교육 강화’를, 비(非)전교조 교사들은 ‘체벌 재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들 중에서 선택할 자유가 없다. 좌파 교육감이 관할하는 지역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문제학생들이 인성 교육에 감화돼 부정적 외부효과 발생을 중단할 때까지 계속 고통받는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줘야 한다. 기존의 학교들을 전교조 교사 중심의 가칭 ‘사랑의 학교’와 비전교조 교사 중심의 ‘정의의 학교’로 재편해 교육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 방법이다. 두 종류 학교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려면 정부 예산을 재학생 수에 비례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학교든 학생이 줄어들면 그만큼 예산 지원을 축소해 교사 숫자를 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전제하에서라면 곽노현 교육감 뜻대로 전교조 교사 중심의 ‘사랑의 학교'(또는 ‘혁신학교’)를 설립해 체벌을 금지하고 교원 평가를 거부해도 좋다.

다음으로 ‘정의의 학교’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체벌 규정집’을 만들어야 한다. 규정집은 친구를 때리면 회초리 몇 대, 선생님께 욕하면 몇 대 등 체벌 수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그리고 체벌은 반드시 학교 내 상벌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실시한다. 그래야 “손바닥으로 맞으면 학생들이 장풍(掌風)을 맞은 듯 나가떨어진다”고 해서 ‘오장풍’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런 폭력 교사에 의한 ‘감정의 매’를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교원 평가를 실시하고 그에 따라 교사의 연봉 수준과 재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에릭 하누셰크(Hanushek) 교수는 미국 초·중·고의 바닥권 교사 5∼8%를 평균적 교사로만 대체해도 현재 OECD 하위권인 미국 학생들의 수학·과학 국제 순위가 최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최근 연구에서 밝혔다. 그만큼 교사의 질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교원 평가를 제도화해서 무능 교사를 퇴출시킨다면 공교육만으로도 현재 상위권인 수학·과학 국제 순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교원 평가 도입 시늉만 내며 전교조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부모들은 교실 붕괴로 인한 공교육 부실화와 그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패러디해 우리 학부모들의 심정을 표현해보자. “바보야,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이야!”

 

  •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조선일보)

가장 두려워 하는 건 흥분, 일본인들이 차분한 이유

[3·11 일본 대지진] 조직을 개인보다 앞세워… ‘和’ 깨뜨리는 감정표현 금기시

 

[日국민, 왜 차분한가] 수많은 자연재해에 내성… “통곡하느니 내일을 대비”

 

‘거듭된 자연재해로 재난에 대한 내성(耐性)이 생긴 일본인’, ‘조직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체질화된 국민성’.

 

이번 대지진 사태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방식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가운데 국내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의 문화·역사적 배경을 짚어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거듭된 자연재해가 일본인들에게 재난에 대한 내성을 길러줬다는 것이 일차적인 분석이다. ‘일본 문화 읽기’, ‘일본인의 논리구조’ 등의 책을 쓴 정형(58) 단국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일본인들은 에도 시대부터 주기적으로 큰 지진을 겪어왔다”면서 “일본인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느니 마음을 비우고 다음 위기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모든 걸 물에 흘려보낸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면서 “기왕 일어난 일은 하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일본적 사고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했다.

 

조직의 안위를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 하는 일본인이 조직의 평형을 깨뜨릴까 봐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억제한다는 분석도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임경택(51)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일본인은 남 앞에서 노골적인 감정 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데, 개인적인 감정 표출이 조직의 평형상태인 ‘화(和)’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금의 일본은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평형(social equilibrium)을 유지하기 위해 극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이런 팽팽한 긴장이 외부에서 볼 때는 아름다운 질서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 전문가로 일본 사회 분석서 ‘일본재발견’을 쓴 이우광(59)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은 2차대전 직후 GDP(국내총생산)가 전쟁 전의 30%로 추락한 상황에서도 일치단결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저력이 있다”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어왔던 일본이지만 단결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