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힘이다 글쓰기가 경쟁력 ② [중앙일보]

언어가 힘이다 <12> 글쓰기가 경쟁력 ② [중앙일보]

한 가지 주제의, 곁가지 없는 글이 눈에 쏙쏙 들어오지요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정해 놓고도 실제로 쓰려고 하면 또 막연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대강의 내용은 정해졌으나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쓸 것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주제를 좁혀야 한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글의 범위를 좁혀야 비로소 글을 써 나갈 수 있다. 주제를 좁히지 않고서는 범위가 넓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쓴다고 해도 이것저것 일반적인 얘기로 헤매게 된다. 주제를 좁히면 좁힐수록 쓰기가 쉬워진다.

배상복 기자

주제 넓게 잡으면 횡설수설하다 글 끝내기 십상

주제를 좁히지 않고는 글쓰기가 어렵다. 막연하게 범위를 잡아서는 쓸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쓴다고 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벗어나기 어렵다.

일상적인 글은 대부분 주제에 해당하는 대략의 제목이 정해진다. 이런 경우 되도록 중심 내용을 구체적이고 좁은 범위로 한정해 써야 한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정해져도 막상 쓰려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주제가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주제가 넓으면 글을 구체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뻔한 내용을 되풀이하기 쉽다.

글의 초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도 주제를 좁혀야 한다. 어떤 글이든 중심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할 때도 주제가 분명해야 알맹이 있는 대화가 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듯이 글에서도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 범위를 넓게 잡으면 주제와 별 관계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열해 글의 초점이 없어지거나 무슨 얘기인지 횡설수설하다 글을 끝내기 십상이다.

막연한 주제는 사실 그 누구도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가 잘 알거나 경험이 있는 부분, 또는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쓰기도 쉽고 읽는 사람에게 호소력도 있다. 주제를 좁히는 것을 터득해야 무슨 글이든 잘 쓸 수 있다.

#사례1 부서 체육대회

부서 체육대회가 끝난 뒤 사보에 글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막상 쓰려고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막연하다. 만약 체육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것저것 모두 나열한다면 어느 체육대회에서나 있음 직한 뻔한 이야기로 재미가 없다. 이럴 때는 가장 재미있었던 일이나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을 끄집어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고, 읽는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을 것이다.

#사례2 해외 시찰

기업체에서 해외 시찰을 다녀와 보고서를 쓰는 경우에도 자기 회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항이나 관심사를 집중적으로 쓴 뒤 나머지는 간단하게 언급하면 된다. 만약 시찰에서 본 것을 모두 쓴다면 지나치게 양이 길어진다. 전체 내용을 줄여 쓴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식의 글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를 다루면 읽는 사람에게 별반 구체적으로 와 닿는 내용 없이 그저 그런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사례3 신입사원 소감

무엇에 대해 써 달라고 원고 청탁을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입사원으로서 느낀 점을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신입사원으로서 받은 교육이나 그동안 있었던 과정을 다 쓸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에피소드를 끄집어내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서술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신입사원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사례4 직장생활의 보람

직장생활의 보람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하나 써서 올릴 경우 업무·월급·승진·대인관계 등 직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으로 범위를 넓게 잡는다면 복잡하고 막연해진다. 그렇게 써 봐야 별 재미도 없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로 주제를 좁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가지고 생생하게 서술하면 쓰기 쉬우면서도 누구에게나 와 닿는 글이 된다.

#사례5 환경오염에 대한 논술

논술시험에서 어떤 주제를 주고 그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라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범위를 좁혀 자신이 잘 알거나 주변에서 벌어진 일을 예로 들며 써 나가야지 넓은 범위에서 모두 다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환경오염에 대해 서술하라고 하면 수질오염 등 주변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를 들어 가며 실감나게 적어 나가는 것이 가장 쓰기 쉽고 읽는 사람에게 호소력도 있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빼라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아야 한다. 주제는 글의 초점이므로 한 가지로 집약돼야 한다. 하나의 글에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밝히려 한다면 글의 초점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제는 한 가지로 명확해야 한다. 하나의 주장을 펼쳐 가다 거기에서 파생된 지엽적인 문제를 거론한다면 앞에서 제시한 논리 구조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주장을 펼치는 데 방해가 되는 부차적인 문제는 가능하면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주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내용의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통일성은 주제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기초적 형식을 이룬다. 문장과 문장이 통일성을 가지고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주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나 소재도 주제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선택해 긴밀한 상관성을 지니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글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즉 주제가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일관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야 한다. 

쉽게 쓸 수 있는 주제를 골라라

주제는 쉬울수록 좋다. 쓰는 사람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주제를 설정해야 자신 있게 써 내려갈 수 있고 읽는 사람에게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다. 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면 알맞은 주제가 될 수 없다. 정보나 자료가 불충분한 내용은 누구나 헤맬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쉬운 것으로 주제를 설정해야 한다.

주제는 또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제가 참신해야 한다. 그러나 참신한 주제를 찾는 일이란 그리 쉽지가 않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고 보며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주제를 피해 가는 것이 좋다. 그저 그런 주제로는 읽는 사람의 흥미를 끌 수 없다. 주제가 참신하려면 소재와 시각의 독창성이 필요하다. 

주제·소재·제재 등의 구분

●주제(主題) 무엇에 대해 글을 쓸 때 ‘무엇’에 해당하는 것, 즉 논의하고자 하는 중심 문제. 글쓴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 또는 제목.

●소재(素材)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구제적인 재료, 즉 얘깃거리. 구체적인 재료의 본디 모습(아무런 설명이나 해석이 가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 환경, 사람들의 생활·행동·감정 등이 모두 소재가 될 수 있음.

●제재(題材) 글의 중심이 되는 재료. 소재가 가진 여러 가지 속성과 측면 중에서 글쓴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중심적인 측면이나 속성.

●과제(課題)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 논술에서는 문제를 파악한 뒤 요구하는 대로 논술문을 쓰는 일을 과제라 할 수 있음.

●화제(話題) 이야기의 제목이나 이야깃거리. 글쓰기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주제와 거의 같은 뜻임.

다시 듣는 국어 수업

주제의 종류

가주제(잠정적 주제)

글의 중심 내용으로 범위가 넓으며, 포괄적이고 막연한 주제. 글의 대체적인 내용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글쓴이가 지니는 일반적인 문제의식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아직 글쓴이의 핵심적인 주장이나 견해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제목을 연상하면 된다.

참주제(구체적 주제)

대상에 대한 주장이나 관점으로 집약된 주제. 생각의 범위가 좁혀지고 어떤 대상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나 관점으로 집약된 한정된 주제를 말한다. 글을 쓸 때에는 일반적으로 가주제로부터 참주제로 사고의 방향을 다듬는다.

주제문

주제를 보다 명확하게 완결된 문장으로 서술한 것. 이것을 통해 쓰는 사람의 의견이나 신념 등이 드러난다. 주제문은 참주제를 주어부로 하고 자신의 구체적 견해를 서술부에 놓는 방식으로 작성하면 된다. 글을 쓰기 전에 주제문을 작성해 본 뒤 글 속에서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가주제 생산성 향상

참주제 비용 절감, 품질 경쟁력 향상, 회사 이윤의 극대화

주제문 비용 절감과 제품의 질적 경쟁력 향상으로 회사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

주제를 잡는 방법

시·수필·감상문 등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글은 대개 소재→제재→주제의 순서로 주제(테마)를 잡아 나간다. 즉 소재를 찾아 그에 의미를 부여하고 글의 주제를 이끌어 내는 순으로 생각을 다듬어 나간다.

그러나 일상적인 글은 주제가 미리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와는 반대로 주제를 좁히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 나가야 한다.

기획서·보고서 등을 쓰거나 무엇에 대해 써 달라고 원고 청탁을 받는다면 대부분 주제에 해당하는 대략의 제목이 정해진다. 이때는 가주제로부터 참주제로 생각을 좁혀 나가야 한다. 즉 가주제→참주제→주제문 작성→서술의 과정을 거친다. 종이에 대고 써 보거나 머릿속으로 이렇게 구성해 나가면 된다. 


언어가 힘이다 글쓰기가 경쟁력 ① [중앙일보]

언어가 힘이다 <10> 글쓰기가 경쟁력 ① [중앙일보]

2009.05.13 00:09 입력 / 2009.05.13 08:22 수정

‘잘 쓰자’ 는 부담 버리세요, 일단 써놓은 뒤 다듬고 또 다듬으세요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는 게 글쓰기다. 무엇에 대해 써 보려고 하면 두려움이 앞서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다. 글을 쓸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자기소개서, 보고서, e-메일 작성 등 살아 가면서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할 때가 적지 않다. 글을 쉽게 쓰는 요령은 없을까. 문학적인 글쓰기와 달리 일상적인 글쓰기는 몇 가지 방법만 익히면 누구나 충분히 가능하다. 몇 회로 나누어 일반인이 손쉽게 글을 쓰는 요령을 다룬다.

배상복 기자

주입식 교육으론 글쓰기 실력 못 키워

나는 왜 이렇게 글쓰기가 안 될까. 이런 한탄을 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소위 주입식·암기식 교육이 낳은 병폐다.

초·중·고교에서는 주요 입시 과목을 우선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글쓰기 교육은 소홀히 하고 있다. 작문 시간에 가르치는 것도 대부분 이론 위주여서 실제 글쓰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쓰기 지도의 핵심이 첨삭이지만 사실상 그럴 만한 시간도 능력도 부족하다.

대학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글쓰기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이전보다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우리의 대학 교육 역시 지식을 주입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졸자들이 자기소개서 하나 올바로 쓰지 못하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기획서·보고서 등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재교육을 받는 실정이다.

구양수·톨스토이도 자기 글 고치기 거듭

가장 쓰기 힘든 글이 무엇일까. 연애편지다. 본능적으로 처음부터 잘 쓰려고 매달리다 보니 몇 줄을 이어 가기 어렵다.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3박4일을 고민해도 한 장을 쓰기가 힘들다. 잘 쓰려고 하면 할수록 글은 더욱 써지지 않게 마련이다. 이처럼 대부분 사람이 잘 써야 한다는 부담에 사로잡혀 글을 제대로 이어 가지 못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스트레스로 몇 날을 지새우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두렵게 느껴진다. 글쓰기 초보자들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문제다.

글쓰기의 두려움에서 헤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멋있는 단어나 표현을 동원해 거창하고 무게 있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일반인이 전문가처럼 수준 높은 글이나 명문을 쓸 수는 없으며, 누구도 이를 기대하지 않는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수록 글은 더욱 막히게 돼 있다.

지나치게 잘 쓰려는 생각을 버리고 떠오르는 대로 줄줄 써 내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잘 쓰든 못 쓰든 신경 쓰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대충 적어 내려가야 한다. 원하는 양의 두세 배를 써 내려간 뒤 다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글을 완벽하게 쓸 수는 없다. 문필가라고 해서 한 번에 글을 완벽하게 쓰는 것이 아니다.

당송(唐宋) 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글쓰기의 기초인 3다(多讀·多作·多商量)를 설파한 구양수(歐陽脩)는 시를 쓴 뒤 벽에 붙여 놓고 방을 드나들 때마다 고쳤다고 한다. 얼마나 고쳤던지 어떤 시는 원래 쓴 글에서 단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톨스토이도 ‘부활’과 ‘전쟁과 평화’를 써 놓고는 수십 번을 수정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면서 무려 400번 이상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문필가들도 이럴진대 일반인이 어떻게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겠는가. 글은 원래 써 놓고 다듬는 것이다.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이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고 봐야 한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한 꼭지에 매달리다 보면 글을 이어 가기 힘들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음 줄로 넘어가는 식으로 계속 써 내려가야 한다.

넉넉하게 적어 내려간 뒤 분량을 조절하고, 단락을 재배치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고치면 남에게 충분히 읽힐 만한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내용을 보충하면서 부드럽게 흘러갈 때까지 요리조리 다듬다 보면 결국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온다. 일반인의 경우 글을 쓰는 범위가 생활과 밀착돼 있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리 큰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글을 쉽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쓰는 방법은 생각나는 대로 대충 적어 내려간 뒤 다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다시 듣는 국어 수업
재외동포-교포-교민은 같은 말

독자께서 동포·교포·교민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해왔다.

동포(同胞)는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로, 국내에 살건 국외에 살건 동일한 민족 의식을 가진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포’는 ‘국내동포’와 ‘재외동포’로 나눌 수 있다.

‘교포(僑胞)’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로, 본국과 거주국의 법적 지위를 동시에 갖는 사람이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동포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동포 가운데 재외동포가 교포인 셈이다. ‘재미동포’ ‘재미교포’ ‘재일동포’ ‘재일교포’ 모두 가능한 표현이다.

교민(僑民) 역시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자기 나라 사람으로, 교포와 같은 개념이다. 쉽게 얘기하면 ‘재외동포=교포=교민’이 성립한다. 여기에서 외국에 임시로 나가 있느냐 아니냐, 외국의 국적이 있느냐 없느냐는 구분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나가 있으면 국적에 관계없이 재외동포·교포·교민 어느 용어로도 부를 수 있다. 이것이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이고 일반적으로 이렇게 사용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재외동포 또는 교포·교민으로 적당히 호칭하고 있다.

다만 위키백과사전은 교포가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를 가리키는 다른 말이라면서 ‘떠돌아다닌다는 의미의 교(僑)자를 사용, 그 어원에 멸시의 뜻이 있어 쓰기를 꺼리기도 한다’고 언급돼 있다. 교민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 아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 그 땅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한민족들을 가리키기에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고 적고 있다. 독자의 지적과 비슷한 내용이다.

그러나 위키백과사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위키백과는 누구나 편집과 관리에 참여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글을 고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견이 반영될 소지가 적지 않다. 위키백과의 풀이처럼 실제로 교포와 교민이라는 용어를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예는 거의 없다.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을 국적이 있느냐 없느냐 일일이 따져 지칭하기도 쉽지 않다. 집합적 개념일 경우엔 구분이 더욱 어려워진다. 위키백과사전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우선할 수는 없으므로 교포·교민이란 용어는 재외동포와 같은 뜻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법률적으로는 특별히 교포나 교민의 개념이 없다. ‘재외동포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재외 국민 등록법’ 등 법률에는 재외동포나 재외국민(이중국적자를 포함한 한국 국적 보유자)이란 용어만 나올 뿐이다. 외교부(현 외교통상부)가 교민과(1961), 영사교민국(1974), 재외국민영사국(1998), 재외동포영사국(2005) 등으로 관련 기구의 명칭을 변경해 왔다는 점은 좀 특이하다. 정부가 통일된 이름을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이들 용어의 혼란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재외동포·교포·교민뿐 아니라 요즘은 한인이라는 용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함으로써 용어를 명확하게 구분하거나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같은 사람을 두고 언론마다 부르는 게 달라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동포회’ ‘교포회’ ‘교민회’ ‘한인회’ 등 현지 단체 이름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어원이 어찌 됐건 표준국어대사전이 ‘재외동포=교포=교민’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이들 용어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달리 구분해 사용하기는 어렵다.

중앙일보는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재미동포’ ‘재일동포’ 등처럼 가급적 교포·교민이란 말보다 동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재외동포·교포·교민이 같은 뜻으로 사전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개념이므로 상황에 따라 교포·교민이란 말도 제한적으로 쓰기로 했다. 우리말 어휘의 다양성을 스스로 제약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교포사회’ ‘교민간담회’ 등 거주지가 강조되는 표현을 ‘동포사회’ ‘동포간담회’로 바꾸어 쓰기에는 어색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잡습니다 5월 6일자 ‘한자어와 순우리말’ 표 가운데 ‘加計’는 ‘家計’, ‘見齒’는 ‘犬齒’, ‘陰聲’은 ‘音聲’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