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28회 세계전기자동차전시회(EVS28). 자동차 메이커가 대부분인 행사장에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로 유명한 정보기술(IT) 업체 퀄컴이 새로운 충전 기술을 선보였다.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았는데 전기차가 저절로 충전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무선 방식으로 3~4시간이면 완충된다. 2~3년 내 실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선(電線) 없는 세상’이 더욱 확장되고 있다. 삼성의 새 스마트폰 갤럭시S6에 채택돼 화제가 된 ‘무선 전력 전송(Wireless Power Transfer)’ 기술이 전기차 충전에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무선 인터넷(Wi-Fi·와이파이)에 빗대 ‘와이파워(Wi-Power)’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은 조만간 의료기기, 교통수단 등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무선충전 원리는=삼성 스마트폰과 퀄컴 전기차의 무선충전 원리는 같은 걸까. 결론적으로 같지 않다. 스마트폰 무선충전은 자기유도(MI) 방식인 반면 전기차는 자기공진(MR) 방식이다.
MI 방식은 중학교 물리 수업 시간에도 나온다. 둘둘 감은 코일에 교류 전기를 흘려 자기장을 만들면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코일에 전기가 유도되는 원리를 말한다. 물기 많은 욕실에서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무선충전 전동칫솔이나 금속 냄비를 올려놨을 때만 가열되는 인덕션레인지가 이 원리를 이용한다. 갤럭시S6도 마찬가지다. 충전패드와 본체에 송수신 코일이 들어 있어 서로 전력을 주고받는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박세호 수석연구원은 “두 종류의 국제 표준(WPC·PMA)을 만족시키는 코일을 내장하고도 디자인을 슬림하게 유지하기 위해 부품의 구조·소재를 혁신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MI 방식은 전력을 거의 고스란히(이론상 최대 90%) 무선으로 보낼 수 있는 반면 전송 거리가 짧다. 고작 몇 ㎜다. 송수신 코일이 거의 맞닿아 있어야 충전이 된다.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MR 방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머린 솔랴치치 교수가 2007년 개발했다. MR을 이해하려면 먼저 진동을 알아야 한다. 모든 물체는 자기만의 진동수를 갖고 있다. 진동수가 같은 힘이 외부에서 가해지면 진폭이 커지고 에너지가 증가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소리굽쇠를 때려 진동시킬 때 이 소리굽쇠와 진동수가 정확히 일치하는 다른 소리굽쇠는 때리지 않아도 진동한다. 이를 공진(共振) 현상이라고 한다.
MR 방식은 코일에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만드는 것까지는 MI 방식과 같다. 자기장 주파수와 수신 코일의 진동수를 맞춰 먼 거리에서 강한 전기를 유도하는 게 차이다. MI 방식에 비해 전송효율은 떨어지지만 전송 거리는 수m로 훨씬 길다. 같은 공진 주파수를 갖는 여러 단말기를 동시에 충전할 수도 있다.
솔랴치치 교수가 설립한 와이트리시티란 벤처기업은 이런 방식의 충전기를 천장·벽·바닥 등에 삽입해 실내 전체를 무선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성공하면 가전 제품의 전선을 모두 없앨 수 있다. 방전된 스마트폰은 방에 들고 들어가기만 해도 저절로 충전이 된다.
MR 방식은 의료기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보청기는 크기가 작아 고령자들이 배터리를 갈기 힘들다. 한국전기연구원 융복합의료기기연구센터는 이에 착안해 무선충전식 스마트 보청기를 만들고 있다. 박영진 센터장은 “잠자리에 들 때 보청기를 빼 그릇 모양의 충전기에 담아두면 MR로 전원이 공급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박 센터장은 “무선충전 심박조율기(페이스메이커)도 수년 내 상용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는 환자들이 몇 년에 한 번씩 페이스메이커를 몸 밖으로 빼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달리는 전기차·열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조동호 교수팀이 개발한 올레브(OLEV) 전기버스가 대표적인 예다. 차고지·종점·정류장 바닥에 무선 송전 장치를 묻어둬 전기버스가 달리면서 저절로 충전이 된다. 이 버스는 현재 경북 구미에서 운행 중이며 다음달 세종시에도 도입된다. 조 교수팀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해 차세대 KTX(해무)에 버스보다 더 큰 전력을 무선으로 공급해 시속 3~4㎞로 움직이는 데도 성공했다.
◆우주에서도 가능하다=수㎞ 이상 떨어진 곳에 전력을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주파수가 ㎓(1㎓=1000㎒=100만㎑) 이상인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면 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1975년 이 방식으로 약 1.6㎞ 떨어진 곳에 30㎾의 전력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마이크로파 방식은 미래 ‘우주 발전소’의 핵심 기술로도 꼽힌다. 우주는 태양복사에너지가 지상의 10배쯤 된다. 낮과 밤, 계절, 날씨의 변화도 없다. 이 때문에 지구정지궤도(지상 3만6000㎞)에 태양광발전위성(SPS)을 띄우면 전력을 대량 생산할 수 있고, 이 전력은 마이크로파로 지구에 무선 전송할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윤용식 박사는 “워낙 발전량이 커 전송 효율이 좀 떨어져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020년까지 10~100㎿급, 2030년까지 1GW(1GW=1000㎿)급 태양광발전위성을 우주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1GW는 원자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 발전용량이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와이파워(Wi-Power)=네트워크 케이블 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와이파이(Wi-Fi) 기술처럼 전선 없이 전력을 공급받는 기술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