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전국 유명 철새 도래지에 가면 가창오리·큰기러기 같은 겨울 철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이동할 때 수십 마리씩 V자(字) 대형(隊形)을 이룬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행동이란 게 그동안의 추정이었다. 예컨대 펠리컨은 혼자 날 때보다 V자 대형을 이뤄 날 때 심장 박동과 날갯짓 횟수가 11~14% 감소한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편대 비행을 하면 연료 소모가 최대 18%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새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공기역학적 원리를 이용해 V자 비행을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왕립수의대 스티븐 포르투갈 박사팀은 15일 붉은볼따오기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그 비밀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또 새들이 V자 비행을 할 때 뒤따라가는 새가 앞서가는 새의 ‘박자’에 맞춰 날갯짓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저명한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서다. 새들의 V자 비행의 비밀을 이론이 아닌 실제 실험을 통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붉은볼따오기는 황새목 저어새과에 속하는 멸종위기종이다. 몸 길이는 70~80㎝, 날개 폭은 120㎝ 안팎이다. 아프리카·중동 등지에 산다. 특히 중동 시리아에 사는 새의 일부는 겨울에 홍해를 따라 아프리카 북부로 옮겨간다.
연구팀은 오스트리아 빈의 동물원에서 무리 비행 훈련을 받고 있는 어린 붉은볼따오기 14마리를 이용해 실험했다. 새들에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관성측정장비를 채운 뒤 소형 비행기를 타고 함께 날며 비행 대형 속 위치, 속도, 날갯짓 횟수 등을 기록했다. 그 결과 새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V자 비행을 할 것이란 그동안의 추정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따오기들은 약 45분간 비행하는 동안 때론 V자를 만들고, 때론 앞뒤 일렬로 줄지어 서서 날았다. V자 대형을 이룰 땐 앞서가는 새와 평균 45도 각도, 0.49~1.49m 거리 간격을 뒀다. 날개 끝단의 위치는 서로 약 0.115m씩 겹쳤다.
새가 날 때 날개 양 끝단에는 위아래의 공기 흐름 차이로 인해 소용돌이(Tip vortex)가 생긴다. 이 소용돌이는 뒤쪽으로 튜브 형태로 늘어지며 난류(亂流)를 형성한다. 이 기류는 아래쪽을 향하다 중간쯤부터 위쪽으로 흐름을 바꾼다. 선두를 뒤따르는 새가 이 위치에서 날갯짓을 하면 추가 양력(揚力·유체 속을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 방향과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을 받아 더 쉽게 날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붉은볼따오기들은 비행 내내 이 같은 ‘최적의 위치’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또 앞서가는 새의 날갯짓 ‘박자’에 맞춰 날개를 움직였다. 앞선 새의 날갯짓에 따라 상하로 요동치는 난류 흐름을 타기 위해서다. 반면 앞뒤 일렬로 서서 비행을 할 땐 달랐다. 뒤따르는 새는 앞서가는 새와 ‘엇박자’로 날갯짓을 했다. 앞서가는 새가 만든 하강기류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새들이 옆에서 비행하는 동료가 만드는 난류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김한별 기자
김한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