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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지도하자 ‘수학 포기자’ 성적 28% 올랐다

학습혁명
최근 많은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혁신생태계를 조성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태계가 좋아도 여기에서 혁신을 일으킬 인재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세계는 학습혁명에 주목한다. 드디어 교육을 혁명적으로 바꿀 때가 왔다.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큰 방향도 서 있다. 어느 나라가, 누가 먼저 하느냐가 남아있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의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차세대의 미래도 판가름날 것이다.
 

미 ASU, AI·빅데이터로 맞춤 교육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 제공
수포자는 수학 흥미 가지게 하고
우수 학생에겐 수준 맞는 문제 내

4차 산업혁명은 학습혁명에 달려
에듀테크와 학습과학 결합하면
학생에게 특화된 전인교육 가능
한국을 학습혁명 허브로 만들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에서는 이미 6만5000명의 학생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적응학습(adaptive learning)을 통해 수학·생물학·물리·경제학 등 기초과목을 학습했다. 2016년 이 시스템이 도입된 기초수학의 경우 고교 때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의 성적이 평균 28% 향상됐다. 생물학의 경우 교육 기업인 코그북스(CogBooks)가 개발한 적응학습을 2015년 도입한 결과 봄학기 20%였던 탈락률이 1.5%로 줄었고, C 학점 미만의 비율이 28%에서 6%로 감소했다. 미시경제학도 2017년 적응학습을 도입한 결과 첫 시험에서 C 학점 미만 학생 비율이 38%에서 11%로 낮아졌다.
 
이는 학생 개개인에게 맞춘 학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학 과목의 경우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수업이 있다고 하면, 수요일 수업에서는 AI·빅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을 통하여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 경로를 제공한다. 수학에 소질이 있고 기초가 되어 있는 학생에게는 난이도를 빠르게 높여가며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수학이 약한 학생에게는 난이도를 완만하게 높이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도록 전혀 다른 유형의 문제를 학습하게 한다.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 교육
 

학습혁명

학습혁명

교수가 교실의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강의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는 재미가 없다. 반대로 수학을 못 하는 학생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흥미를 잃는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강의의 근본적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한다. 그렇다고 교수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ASU의 수학 수업에서 매주 월요일 교수는 강의 중심의 역할에서 벗어나 학생끼리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현실과 관련된 문제들을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학습하도록 지원하는 등 새로운 역할을 한다. AI의 적응 학습 체제가 교수의 강의 부담을 줄이면서 교수는 프로젝트 학습과 같은 ‘하이터치 학습’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심리학자 블룸(Bloom)의 분류를 적용하면 학생의 암기와 이해 역량을 키워주기 위하여서는 적응 학습과 같이 ‘하이테크 학습’을 도입한다. 반면 적용·분석·평가·창조와 같이 보다 고차원적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학생이 소규모 그룹으로 프로젝트를 하거나 학생에게 질문과 토론을 장려하는 하이터치 학습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습혁명은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학습을 결합하여 대량 맞춤의 전인적이고 개별화된 평생학습 체제를 실현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사이버 공간에서 AI와 빅데이터 등으로 개개인의 특성과 기호에 맞는 최적의 상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한 후 모바일과 3D 프린터 등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저렴하게 제공하는 ‘대량 맞춤(mass customization)’이 가능하다. 이러한 대량 맞춤 체제가 교육에서도 학생들 개개인의 잠재력과 소질에 맞춘 전인적이고 개별화된 교육을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학습혁명 없인 미래 대비 못 해
 
미국 고교에서도 학습혁명을 시작한 곳이 있다. 필자가 ‘뉴텍하이스쿨(New-Tech High School)’을 방문하였을 때 한 교실에 두 명의 교사가 있는 것에 놀라고, 두 교사가 모두 강의를 하지 않는 것에 더 놀랐다. 이 학교는 모든 수업을 두 개 이상의 교과목을 융합한 프로젝트 학습으로 전환하였다. 예를 들어 역사 과목과 영어 과목을 융합하여 문학에서 묘사된 역사적 사실에 관하여 학생들이 팀별로 주도적으로 주제도 정하고 주제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에세이를 작성하고 발표하도록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뉴텍하이스쿨은 1995년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서 게이츠 재단과 같은 민간 재단의 지원에 힘입어 개교했다. 이후 계속 수가 늘어나 현재 170개가 넘는 학교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프로젝트 학습 경험을 축적한 교사가 후배 교사를 교육하는 한편 새로운 프로젝트 학습 방식을 지속해서 디자인하고 있다. 필자가 최근 방문한 뉴욕의 한 사립학교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이어받아 3세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거의 모든 수업을 프로젝트 학습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ASU나 뉴텍하이스쿨과 같은 곳에서 시작된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를 결합하는 학습혁명을 지구상의 모든 아이가 누릴 수 있도록 확산시킬 수 있을까? 필자가 위원(Commissioner)으로 활동하는 유엔 산하 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는 각 나라가 학습혁명을 하지 못하고 지금의 추세대로 간다면 16억 명에 달하는 세계 청소년 중 절반이 넘는 8억 이상이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성인이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세계적으로 ‘학습 위기’의 시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나서서 학습혁명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도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는 최근 교직개혁위원회(EWI)를 발족하고 필자에게 의장직을 맡겼다. 미래 학교에서는 교사가 의사처럼 학습과학(Learning Science)과 에듀테크(edu-tech)를 기반으로 하이테크 및 하이터치 학습을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서는 최근 MBE (Mind, Brain, and Education) 박사 과정을 개설하여 교육을 심리학은 물론 뇌과학 및 컴퓨터공학과 연계하여 연구하는 학습과학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교직과 학교, 혁명적으로 변화해야
 
교사를 학습에 관한 첨단 과학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이다. 병원에서 다양한 전문가가 의사를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교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하여 다양한 전문가에게  학교를 개방해 교사가 전인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이러한 비전은 교직과 학교의 혁명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특히 교총과 전교조를 포함한 각국의 교원노조가 가입한 국제교원노조(Education International)의 수장인 수전 햅굿(Susan Hapgood) 여사가 EWI  부의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교원노조가 교육의 변화에 저항한 중요한 이유는 교직을 의사와 같이 파격적으로 전문화하기 위한 과감한 변혁을 정부가 시도하지 못한 탓도 있다. 사실 많은 교사가 프로젝트 학습과 같은 하이터치 학습을 원하지만, 막상 교육과정에 따라서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부담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에듀테크와 학습과학을 과감히 적용한 하이터치 학습을 통하여 그동안 막연히 이상적으로만 여겨졌던 모든 아이에게 개별화된 전인교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큰 물결은 그동안 변화를 막아 왔던 교육 갈등을 해소하고 교육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기회의 창을 열어줄 것이다.
 
한국을 학습혁명 허브로
 
대한민국은 과연 학습혁명의 허브가 될 수 있을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학생들이 대학 입시에 모든 학습의 초점을 맞춰 대학에 진학하면 안주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과거에는 이러한 대입 중심 체제가 학생들을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드는 이점이 있었을지 몰라도 빠른 기술의 변화와 인간 수명의 연장으로 대학 졸업 이후 평생학습을 지속하여야 하는 시대에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내가 만난 많은 세계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부러워하는 두 가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국민이 교육의 힘을 믿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이고, 미국·캐나다·일본에 각각 세 번째로 많은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이다. 국민이 교육에 대한 개방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둘째, 가장 우수한 학생이 교사가 되는 나라이다. 최근 필자가 수행한 연구에서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 상위 5% 학생 중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교직은 학교에서 중위권 이하 성적의 학생들이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해서 갖는 직업이다.
 
만약 우리가 다시 한번 국력을 교육에 집중하여 학습혁명을 선도한다면 대한민국은 과거 2차 산업혁명 시기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던 것과는 달리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세계 인재들을 유치하고 세계 교육기관들에 하이테크 및 하이터치의 새로운 학습법을 전파함으로써 세계에 기여하는 학습혁명 허브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학습혁명의 허브가 된다면 전 세계 많은 아이에게 희망을 줄 것이고, 동시에 학습혁명의 엄청난 산업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고 속에서 표류하지 않고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전진하기 위한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바로 대한민국을 학습혁명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리셋 코리아 교육분과장


[출처: 중앙일보]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AI가 지도하자 ‘수학 포기자’ 성적 28%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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