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있는 권투선수. 기원전 330년 전에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청동 조각. 몇 분 후 자신의 육체가 느낄 아픔과 고통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김대식 KAIST 교수
그렇다. 인생 대부분은 싸움이고 전쟁이다. 힘들고 치사하고 고통스럽고 자존심 상한다. 기쁨과 행복 사이에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굴욕 사이 아주 가끔 조금 덜 불행한 날들이 허락된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권투 선수같이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상처투성이의 몸과 마음을 달래며 오늘도 직장으로, 학교로,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왜 내 인생만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 왜 나만 어렵게 사는 것일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잘 사는 방법을 왜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농구에서 좋은 행동이 축구에선 나쁜 행동
영국의 극작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도 나오듯, 대다수의 지구인들은 우습게도 거의 똑같은 질문을 하며 산다. “왜 나만일까?”라고. 하지만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나만 나 자신이기에 나의 질문을 누구보다 더 잘 느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동의도, 허락도 없이 태어났고 또 대부분 허락도, 동의도 없이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사실 하나뿐이다. 탄생과 죽음이란 변치 않는 두 점들 사이에 매달려 있는 ‘인생’이란 실을 어떻게 감아야 할까? 물론 인생을 꼭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할 논리적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산 인생보다는 제대로 산 인생을 선호할 것이란 가정 아래 어떤 삶을 선호해야 하는지는 물어볼 수 있겠다. 공을 손으로 잡아야 이길 수 있는 ‘농구’란 게임에서의 ‘좋은’ 행동이, ‘축구’란 게임에선 ‘나쁜’ 행동이 되듯 ‘좋은 삶’과 ‘나쁜 삶’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우리가 살아야 할 우주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태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6가지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치킨가게 열고 조금 더 사는 한국인
① 대한민국 이야기: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우연히 태어난 가족의 경제적 조건 아래 자란다. 우연히 한국어를 모국어로 갖고, 우연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란 멜로디를 들으면 가슴이 찡하다. 일본은 괜히 싫고, 막연히 중산층이란 믿음을 갖고 산다.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에 시달리고 하늘은 대부분 회색이다. 영어·수학·국어·태권도·피아노·검도·줄넘기·그림·웅변·논설…. 많은 것들을 배우지만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없다.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했으니 결혼한다. 결혼했으니 아이를 갖고 아이를 가지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차 엔진 출력과 아파트 평수는 더 커져야 한다. 왜냐고? 그냥 그렇다. 철학을 전공하든 기계학과를 졸업하든 결국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일을 하다 대부분은 60살이 되기 전에 치킨집을 연다. 그리고 조금 더 살다 죽는다.
▶현실성: 매우 높음. ▶특징: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남들을 따라 살면 된다. ▶바람직함: 매우 낮음.
지친 영혼들이 그리워하는 인생
② 길가메시 이야기: ‘대한민국 이야기’에 지친 영혼들이 그리워하는 이야기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자신도 언젠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 수메르 왕국의 길가메시 왕은 질문한다. 금·노예·큰 엔진의 외제차·평수 넓은 강남 아파트…. 어차피 죽어 구더기 먹이가 된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기 있나? 죽지 않기로 결심한 길가메시는 많은 모험 후 우트나피슈팀이란 늙은이로부터 영생(永生)의 약초를 선물 받지만 방심하다 약초를 도난당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말을 듣고 좌절하는 길가메시에게 우트나피슈팀은 이야기해준다. 슬퍼한다고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 재미있는 일을 하며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거라. 여름이 되면 친구들이랑 야외에서 삼겹살 구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겨울엔 사랑하는 애인과 첫눈을 구경하거라. 인생엔 더 이상의 의미도, 더 이하의 비밀도 없단다.
▶현실성: 낮음. ▶특징: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바람직함: 매우 높음.
왕국을 잃고 화형당할 위험에 처한 고대 그리스의 최고 갑부 크로이소스 왕.
③ 크로이소스 이야기: 고대 그리스 최고 재벌에 건장한 여러 아들을 둔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지혜롭기로 유명한 솔론(Solon)에게 질문한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행복하냐고? 당연히 ‘리디아의 크로이소스’란 답을 기대한 그에게 솔론은 대답한다. 아테네 변두리에 사는 어느 늙은 농부가 가장 행복하다고. 왜냐고? 농부는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을 잘 키웠고 손자까지 본 후 평온하게 숨졌으니 말이다. 반대로 크로이수스의 삶은 지금까지 행복했을지 모르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결국 행복한 삶은 행복한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는 훗날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당한 크로이소스가 왕국·부(富)·아들을 모두 잃고 화형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현실성: 보통. ▶특징: 평생 불행하다 마지막 하루가 행복한 삶이, 평생 행복하다 단 하루 불행하게 끝낸 인생보다 더 좋은 걸까? 물론 아니다. 우리는 단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이미 지나간 과거보다 더 두려워할 뿐이다. 만약 죽은 후-불가능하겠지만-인생 전체를 되돌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과거·현재·미래와 상관없이 행복한 날들이 가장 많은 인생을 선호할 것이다. ▶바람직함: 높음.
왼쪽부터 영국 옥스퍼드 대학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교수,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미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Kellog Lewis).
④ 보스트롬 이야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교수는 언젠가 인류는 우주를 완벽히 시뮬레이션(simulation)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우리 후손들의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본은 단 하나지만 복제는 무한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태어난 지금 이 세상이 단 하나뿐인 원본이기보다 무한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더 높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가 만든 생체·도시·환경·우주 시뮬레이션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반복되거나 의미 없거나 배울 것이 없거나 재미없는 시뮬레이션은 시간 낭비다. 끄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정답이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세상이 만약 타인의 시뮬레이션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된, 나만의 특징을 가진 재미있고 의미 있으며 흥미로운 인생을 살면 되겠다.
▶현실성: 낮음. ▶특징: 신기하게도 보스트롬 이야기의 결론은 길가메시 이야기와 같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와 최첨단 과학기술이 제시한 결론이 동일하다는 말이다. ▶바람직함: 매우 높음.
신을 믿을 것인가 부인할 것인가
⑤ 파스칼 이야기: 우주를 창조하고, 은하수 변두리에 사는 지구인들의 시시콜콜한 인생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전능한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신을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면?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의 통계학적 추천은 명쾌하다. 신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신이 존재하는데 믿지 않는다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생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신을 믿는다고 인생에 손해 볼 일은 별로 없다. 대신 존재하는 신을 믿었던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생이란 무한의 보상을 받는다. 결국 종교적 믿음은 무한의 보상과 무한의 벌 사이의 통계학적 위험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보험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성: 매우 낮음. ▶특징: 만약 ‘신의 존재’란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능한 조건이 진정으로 수용된다면 인생을 신의 뜻에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겠다. 하지만 단순히 보험 차원으로 받아들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일지에 대한 의심을 가져볼 수 있다. ▶바람직함: 높음.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있다면
⑥ 루이스 이야기: 미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Kellog Lewis·1941∼2001)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모든 조합들은 서로 독립적인 평행우주들을 통해 현실화된다는 ?양상 실재론(modal realism)?을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무한의 우주 중 하나이며, ‘나’ 역시 무한의 ‘나들’ 중 하나이고, 지금 이 순간 나와 단 원자 몇 개 차이로 닮은 무한의 ‘나’들이 웃고 울고 일하고 죽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질문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존재들의 모든 조합들이 존재한다면 내 인생 역시 이미 모든 조합으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성: 높음. ▶특징: ‘급(急)팽창(cosmic inflation)’을 통해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최근 물리학 이론들 덕분에 다시 각광을 받은 주장이다. 하지만 평행우주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무한의 ‘나들’의 무한의 삶들이 지금 이 순간 찌질한 삶을 살고 있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바람직함: 매우 낮음.
김대식 KAIST 교수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