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리대학교 경영학과 유진 새들러-스미스 교수의 저서 『직관』에 따르면, 서구 사회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직관을 칭송하는 관행이 1980년대까지 매우 이례적인 행동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근 ‘합리적 의사결정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도록 직관도 활용해야 한다’는 반대급부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직관에만 의존하는 기업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선 이런 움직임이 ‘그래, 우리가 틀린 게 아니었어!’로 읽히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우리 뇌는 심사숙고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해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 두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며 상호 보완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상황에 맞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이 두 시스템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는데, 이때 딜레마가 생긴다. 무엇을 따를 것인가?
칼럼니스트 맬컴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블링크』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지는 빠른 상황 판단이 매우 유용할 때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심사숙고의 결과물보다 더 우수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문제에 따라 다를 뿐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직관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내리는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과학자들도 아직 잘 모른다. 논문검색엔진으로 ‘직관’에 관한 심리학적·신경과학적 연구를 찾아보니, 지금까지 겨우 800여 편의 논문이 출간됐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직업병이 있긴 하지만, 결코 직관의 중요성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진리를 향한 도약과 전진, 그리고 무지에 대한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고 말한 프랑스 미생물학자 샤를 니콜에게 과학자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직관에 대한 지나친 숭배자가 아니었던가!
기업 내에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직관을 더 많이 사용하며, 더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직관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실제로 사용되며, 많이 의존하고 있다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직관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업 환경을 바꾸는 일일지 모른다. 직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직관적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직관은 고정관념에 더 많이 영향을 받으며, 강렬하게 경험된다고 해서 더 정확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 그 강렬한 경험에 이끌려 앞뒤 안 가리고 결정하지 말고, ‘직관과 분석 중 어떤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주는 문제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직관은 선호 혹은 도덕적 판단에 유용한 반면, 분석은 우열 판단에 더
유익하다.
업무 환경에서 ‘직관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일 처리 방식을 수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업무 보고서들을 살펴보라. 따분하게 나열돼 있는 그 장표들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데이터의 숲에서 직관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보고서가 직관적인 리더들에겐 절실하다.
파워포인트 발표와 수많은 수치들, 그리고 그래프와 표. 정작 리더들은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이런 것들을 직원들에게 요구하지 말고, 시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직원들과 난상토론을 하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직관은 ‘왠지 끌리는 답’을 순식간에 보여주지만, 통찰력은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빛을 선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찰력이다. 그것이 분석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든, 직관에 의해 도달한 것이든. 직관적인 리더가 더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가진 리더가 결국 성취한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
업무 환경에서 ‘직관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일 처리 방식을 수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업무 보고서들을 살펴보라. 따분하게 나열돼 있는 그 장표들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데이터의 숲에서 직관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보고서가 직관적인 리더들에겐 절실하다.
파워포인트 발표와 수많은 수치들, 그리고 그래프와 표. 정작 리더들은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이런 것들을 직원들에게 요구하지 말고, 시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직원들과 난상토론을 하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직관은 ‘왠지 끌리는 답’을 순식간에 보여주지만, 통찰력은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빛을 선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찰력이다. 그것이 분석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든, 직관에 의해 도달한 것이든. 직관적인 리더가 더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가진 리더가 결국 성취한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