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글이 수많은 논란에 그저 그런 주장 하나를 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 한 번은 발언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세종시 문제’다. 세종시 논란은 지난주 월요일 정부가 수정안을 발표함으로써 이제 정점에 도달했다. 세종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정치적·정책적 쟁점이 혼재돼 있고, 중앙과 지방 간 갈등이라는 또 다른 쟁점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건 사회갈등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이익갈등’과 ‘가치관갈등’이 그것이다. 노사갈등처럼 서로 다른 경제적 이익이 맞서는 게 이익갈등이라면, 환경갈등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 및 세계관이 충돌하는 게 가치관갈등이다. 세종시 논란에는 개발 이익에 따른 이익갈등과 국가의 미래에 관한 가치관갈등이 결합돼 있다. 이익이 엇갈리고 가치관이 충돌하는 ‘복합갈등’이기 때문에 그만큼 문제 해법을 찾기 어렵다.
복합갈등 측면에서 세종시 문제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 공존한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그것들을 나는 이렇게 이름 짓고 싶다. 첫째는 세종시의 경제학이다. 이 관점은 무엇보다 국정의 비효율성을 주목한다. 9부2처2청을 옮길 경우 행정의 효율성이 감소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는 논리다.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 관점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세종시의 정치학이다. 이 관점은 무엇보다 정치적 원칙과 신뢰를 우선시한다. 2005년 국회에서 여야가 숱한 논의 끝에 결정한 만큼 국민과의 신뢰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논리다. 국민과의 약속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 관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학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셋째는 세종시의 사회학이다. 이 관점은 무엇보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강조한다. 중앙과 지방 간의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집중은 완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행정부처 이전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전체 사회의 균형발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 관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회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세종시 논란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치관갈등의 관점에서 국정의 효율성, 원칙과 신뢰, 국토 균형발전이 충돌하고 있다면 이익갈등의 관점에서는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수도권과 충청권, 충청권과 다른 지방권 간 차별 및 역차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세종시 논란에는 ‘과거 권력’, ‘현재 권력’, ‘미래 권력’ 간의 미묘한 갈등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긴장이 더해지고 있다. 정책적 사안이 정치적 전략과 결합함으로써 복잡한 셈법이 등장하고, 이 셈법은 다가온 6월 지방선거는 물론 2년 뒤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서도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 역시 이 복잡다단한 퍼즐을 풀 묘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무현의 사회학, 이명박의 경제학, 박근혜의 정치학 가운데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범 답안은 없다는 사실이다. 균형발전의 가치를 누가 훼손할 수 있고, 국정의 효율성을 누가 거부할 수 있으며, 정치적 원칙과 신뢰를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어쩌면 지금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봐야 할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가 제기된 만큼 토론은 충분히 하되 갈등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최종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일부 부처의 이전을 제안하는 일각의 절충론이 최선의 해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무릇 많은 사회갈등이 그러하듯 여러 기준을 고려해 합리적 선택을 취하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는 점이다. 먼저 자신의 견해부터 밝히자면, 세종시 문제만은 경제학적 관점보다는 정치학적·사회학적 관점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판단일 뿐 다른 이들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
세종시의 미래는 국민투표에 회부하지 않는 한 결국 국회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종시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왜 존재하고 필요한 것인가를 증거할 기회일 수도 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정략적 시각에서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지 말자. 대한민국의 진정한 백년대계를 고려하자. 무엇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기본을 다시 한번 숙고하자. 이익과 이념을 떠나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은 바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