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도 몰랐고 은퇴도 몰랐던 노회한 박쥐
리더는 추종자가 많고 권력자는 복종자가 많다. 리더는 추종자를 살피며 일하지만 복종자는 권력자를 살피며 일한다. 그래서 설사 일이 실패하더라도 리더에겐 동지가 남지만, 권력자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칭기스칸과 몽골제국의 리더 자리를 놓고 싸웠던 두 명의 경쟁자들을 통해 패배한 리더의 역설적 리더십을 찾아보자.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에 실린 옹칸 사진. 동양화가 김호석이 그린 그림이다)
먼저 옹칸, 그는 칭기스칸 아버지의 동지였고, 고원의 최강 집단인 케레이트의 족장이었다. 훗날 고아나 다름없는 칭기스칸이 아내를 되찾기 위해 옹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연합을 맺은 관계이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이다. 옹칸은 시대를 몰랐고, 은퇴할 줄도 몰랐던 노회한 박쥐였다. 그는 13세기형 디지털 시대를 알지 못했다. 옹칸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이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한 사람이었다. 리더에게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없다. 스스로 대안이어야 하고,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안티는 리더의 일이 아니다.
옹칸은 균형이란 이름으로 배신과 연합을 번갈아가면서 한다. 사람을 바꿔가면서 음모와 술수로 자신의 성과를 만든다. 칭기스칸을 이용해 자모카를 견제하려고 했으나 칭기스칸의 힘이 커지자 오히려 자모카와 연합해 칭기스칸을 배신한다. 옹칸은 한편으로는 처세를 잘하는 인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단히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옹칸이라는 호칭는 적대관계에 있을 법한 금나라가 하사한 왕이라는 칭호에 북방의 군주를 뜻하는 칸이라는 호칭이 결합된 이름이다. 그는 노회한 술수로 주변의 강한 자를 동맹자로 삼아 자신의 안위를 지켜갔다. 그는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게임을 즐겼고,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했던 몽골고원에서 그의 상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그가 노회하고, 음흉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그런 변화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힘의 균형이란 언제나 몸을 움직일수 있지 않으면 깨어지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옹칸은 시대의 변화에 자신의 몸을 바꿀 수는 없는 지도자, 자신의 시대를 끝까지 고집하는 지도자였다. 젊은 지도자인 칭기스칸은 그에게서 현실감각을 익혔는데 반해, 옹칸은 과거의 묵은 때를 씻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1206년 테무진이 칭기스칸으로 옹립되었을 때, 옹칸은 새로운 권력자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했어야 했다. 테무진은 어제까지의 신하가 아닌 자신과 대등한 세력의 지도자로 성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옹칸은 상상력도 없고 우유부단한 2류 지도자였으며, 이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옹칸은 변화와 개혁의 중심에 서 있지 않은 자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을 증명한 인물에 다름 아니다.
그는 언제든 자신의 마지막 지점을 판단해야 했고, 은퇴를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권력에의 집착은 눈을 멀게 했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결국 옹칸은 은퇴가 아닌 시대에 의한 강제퇴출을 당하게 된다. 원칙이 없는 기회주의자, 분열의 화신이 겪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테무진이 칭기스칸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누구보다도 필요했던 인물 옹칸. 몽골고원 최대의 실력자 옹칸은 테무진과의 동맹과 반목, 동지와 질시 사이를 오가는 데스게임에서 패배의 쓴잔으로 마심으로써 역사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았던 노회하고 간교했던 자. 그는 세상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특히나 디지털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유목의 마인드는 전혀 없었던 유목민이었다. 그런 존재는 평온한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역동적인 세상에서는 금새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안주하고자 하였으나 세상을 향해 튀어나가려던 칭기스칸과 자모카의 세상으로 바뀌었기에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다음은 칭기스칸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자모카. 칭기스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하지 못했다면 다음 주인은 틀림없이 자모카였을 것이다. 칭기스칸과 동년배이자 안다였던 자모카는 성공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던 유목민이었다. 그에게는 질주의 정신도 있었고,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칭기스칸과 패러다임이 달랐다.
옹칸이여!
나는 텃새이다. 그러나 테무진은 철새이다.
그는
언젠가 떠날 것이다.
옹칸에게 자모카가 던진 말이다. 그러나 그는 철새의 가치를 몰랐다. 철새야말로 대륙을 넘나드는 용기와 도전정신, 위대한 꿈과 희망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 아닌가? 자모카는 디지털 시대를 읽었으되 디지털적으로 살지 않았기에 최종적인 승자가 되지 못했다.
(칭기스칸의 동년배였고, 가장 강한 라이벌이었던 자모카 인물도. 김호석 그림)
자모카의 실패 원인 중 핵심은 그가 명분에 얽매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을 도와줄 때도 명분 때문이었고, 칭기스칸과 헤어질때도 명분을 내세웠다. 칭기스칸만큼 리더십도 있고 성공의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통제력이 없어서 패배한 것이다. 칭기스칸이 세력을 얻기 위해 주르킨씨족을 희생양으로 남긴 일이 있었다. 자모카는 이들을 전쟁포로로 생각하고, 모두를 삶어서 죽인다. 이로 인해 민심이 떠나가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부하에게 끌려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멋있는 최후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 역시 명분에 의한 것이다. 패자의 변이 멋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조직을 책임진 리더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모카는 ‘열린 귀를 갖지 않았다’는 측면에서도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칭기스칸은 옹칸, 자모카, 또는 다른 모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자모카는 그 부분이 약했다. 그는 남자로서 볼 때 매우 멋있는 캐릭터이고, 칭기스칸의 쌍둥이라 여겨질 만했다. 그러나 열린 귀를 갖지 않은 리더에게는 동지가 많을 수 없다. 칭기스칸과 헤어질 때 그는 칭기스칸에게 “내가 너에게 진 것은 버르테와 같은 아내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칭기스칸은 버르테의 말을 들은 것이고 그는 여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도 분명 여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에서 여자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가 여자들의 역할을 두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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