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영국 초등생의 코딩 교육이 무서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6.10.07 00:20 수정 2016.10.07 07:09
사실 진짜 문제는 코딩(Coding·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아니다. 세계의 코딩 교육 열풍, 그리고 한국 코딩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한 본지 시리즈 ‘코딩 교육에 미래 달렸다’를 취재하며 자주 든 생각이다. 컴퓨터 교육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얘기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코딩을 가르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면서도 “진짜 중요한 건 코딩이 아니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시리즈 1회에 소개된 영국 6학년 학생의 코딩 교육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 수 있다. 정인기 춘천교대 교수팀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 6학년 학생은 1년 내내 모바일 앱을 만든다. 이미 다섯 살 때부터 250시간이 넘게 코딩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다. 앱 만들기 교육과정은 6단계로 나뉜다. 첫째, 앱 기획으로 어떤 앱을 만들고 왜 만드는가. 둘째, 프로젝트 관리로 우리 팀에선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셋째, 시장조사 단계로 비슷한 앱은 어떤 게 있고 우리는 어떻게 앱을 차별화할 것인가. 넷째, 앱의 메뉴는 어떻게 나누며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다섯째, 어떻게 프로그래밍해 앱을 완성할 것인가. 끝으로 어떤 마케팅을 해 시장에 앱을 퍼뜨릴 것인가.
영국 아이들은 각 단계를 매주 1시간씩 6주 동안 탐구한다. 어떤 앱을 만들지 토론하고 왜 이 앱이 사회에 필요한지 발표하고 친구들의 지적을 받아 구상을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으로 자료 수집하는 법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발표하는 법을 함께 배운다. 더불어 그들이 사는 사회와 시장을 배운다. 이 사회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가, 나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 사회 전체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붙잡고 가야 할 질문이다. 온 세상이 소프트웨어로 연결되고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움직이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 말이다. 그 질문을 던지는 법을 영국의 학생들은 다섯 살 때부터 배우고 있다. 컴퓨터 교육계가 우려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는가.
“산업혁명의 동력은 수학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선 코딩이 수학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2014년 초·중·고교에 코딩 공교육을 도입하며 당시 영국의 교육부 장관이 한 말이다.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은 다음 혁명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과 프랑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은 적어도 우리보다는 앞서있다. 이 흐름에 한발 뒤처진 한국이 언제까지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수식어를 유지할 수 있을까. 혁명이 오면 기존 질서는 순식간에 바뀌는데 말이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