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일수록 돈 냄새를 잘 맡는다. 올여름 부자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대한상공회의소는 정재승 KAIST 교수를 초청해 제주에서 뇌공학을 공부했다. 정 교수는 “20~30년 안에 인공지능(AI)이 완성될 것”이라며 “AI가 잘하는 영어와 수학 공부는 제발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대신 “멍 때리거나 산책하면서 불현듯 창의가 샘솟는 ‘유레카 모멘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CEO 회원들도 강원도 평창에서 박명순 SK텔레콤 미래기술원장의 AI 강의를 들었다. 박 원장은 “2020년이면 AI 혁명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장 눈여겨볼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그는 지난 6월 호암상 공학상을 받은 오준호 KAIST 교수에게 심상찮은 질문들을 던졌다. 오 교수는 인간형 로봇 ‘휴보’의 아버지다. “AI가 언제쯤 인간을 따라잡을까요?” “하느님이 인간을 고칠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을 가장 고치고 싶어 할까요?”…. 7월에는 이 부회장이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IBM의 지니 로메티 CEO와 나란히 걷는 사진이 공개됐다. 팀 쿡 애플 CEO, 래리 페이지 구글 CEO 등 그가 해마다 이 모임에서 만난 인물들은 화제를 모았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IBM과의 접촉은 AI 때문”이라고 전했다. 반도체·바이오에 이어 이 부회장이 AI에 푹 빠진 것이다. 현재 AI의 최고봉은 구글의 알파고가 아니라 IBM의 왓슨이다. IBM은 2005년 과감히 PC 사업을 접고 왓슨에 집중하고 있다. 왓슨은 금융·유통·교육·의료 분야로 뻗어가고 있는데, 특히 의료 분야가 돋보인다. 2013년 60만 건의 진단서와 200만 쪽의 의학서적을 학습한 왓슨은 주요 병원에 투입돼 놀라운 기적을 이뤄냈다.
미 종양학회는 “전문의들의 암 진단 정확도는 약 80%인데 왓슨은 대장암 98%, 방광암 91%, 췌장암 94%, 자궁경부암은 100%를 기록했다”고 인정했다. 폐암 진단의 정확성도 의사들이 50%인 반면 왓슨은 90%까지 올라갔다. 미국에서 400만 명이 앓는 당뇨성 망막증은 초기 진단을 놓치면 실명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딥러닝을 거친 AI는 이 병에 대해 84.9%의 초기 진단 성공률을 기록해 전문의(정확도 83%)를 뛰어넘었다.
AI 전문가들은 “지금 절대 의대에는 가지 말라”며 “10년 뒤 인턴·레지던트까지 마치면 아마 정신과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AI에 의해 마취→영상의학→병리학 순으로 퇴출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취 로봇인 세더시스는 이미 의료비용을 90%나 줄였다. 2000달러였던 미국 수면내시경 비용을 150~200달러로 낮춘 것이다. 하지만 평균 연봉 3억원이 넘는 미 마취 전문의들의 결사 반대로 1년 만에 병원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현장 취재 결과 세더시스가 마취 전문의보다 더 엄격한 기준 아래 작동됐다”며 곧 복권을 점치고 있다.
최근 미 타임지는 “구글이 죽음을 해결할 수 있을까”를 표지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왜 병원이나 제약회사가 아니라 구글에 생명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까. 바로 AI 때문이다. 요즘 미 대학의 AI 연구팀은 구글·페이스북·아마존·IBM으로 옮겨가고 있다. 높은 연봉 때문만이 아니다. 첨단 AI 연구에는 강력한 컴퓨팅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대학 연구실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구글은 100만 대 이상, 아마존과 페이스북도 50만 대 이상의 서버를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 AI의 선구자인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AI는 이미 예측이 아니라 대비의 대상이다. 미 스탠퍼드대는 매년 660명(공대생의 44%)의 컴퓨터과학 전공자를 쏟아낸다. 반면 서울대는 55명(공대생의 7%)만 배출할 뿐이다. 또 미국·영국은 초등학교부터 필수과목이 소프트웨어다. 우리는 교사들의 반발로 간신히 기술·가정 교과군에 포함됐을 정도로 한심하다.” 그만큼 한국 AI의 미래는 어둡다. 다행히 기업 CEO들이라도 AI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 부자들을 눈여겨볼 때다. 그들이 AI에서 미리 돈 냄새를 맡고 있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