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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우리 일상은 온통 전자공학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일과만 보아도 전자공학의 선물인 각종 가전제품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핸드폰, MP3 플레이어, 게임기, 컴퓨터 등등. 이들 기기에 들어가는 아주 작은 전자칩, 전자회로 등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 생활은 어떠했을까? 기본적으로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의 운동에 토대를 두고 있는 전자공학의 발달이 가져다준 일상의 변화를 일일이 열거하기란 어렵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전자공학의 혁명이 현대 사회를 낳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전자공학의 혁명을 있기까지는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그 지난한 과정을 한번 되돌아보자.

 

극소 전자혁명의 시작, 트랜지스터가 탄생하기까지.

 

 

전자공학 시대를 알리는 서곡, 오디온


1906년 미국인 발명가 리 디 포리스트(리 드 포레스트, Lee de Forest)는 라디오파를 검출하는 수신 장치로 쓸 수도 있고 전자파를 증폭하는 증폭기로도 쓸 수 있는 ‘오디온’ 개발에 성공한다. 필라멘트와 플레이트, 그리고 그리드로 구성되어 삼극 진공관이라 불리는 오디온 발명으로 인류는 처음으로 기계적인 조작 없이 전류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정한 주파수로 들어오는 교류는 오디온을 통과하면서 한 방향의 직류로 ‘정류’되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정류 장치는 사실 전류의 흐름에 관계하던 전화, 전신 등에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핵심부품으로, 전자공학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그러나 발명가 포리스트는 이 발명품을 자신이 구상하던 라디오 방송 사업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외롭게 발명 작업을 계속하던 중 머리를 식힐 겸 오페라 극장을 가곤 했는데, 돈이 없어 입석 자리표만을 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에게 돈 많은 이들에게만 좋은 좌석이 돌아가는 오페라 극장의 시스템은 정당해 보이지 않았다. 음악을 사랑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오페라 공연을 집으로 전송해서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고민으로부터 포리스트는 자신이 개발한 오디온으로 라디오폰을 만들어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08년 포리스트는 포노그래프 음악을 에펠탑 송신기를 통해 그곳에서 550마일 떨어진 마르세유까지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포리스트의 라디오 전화는 전송되는 음악이 중간에 끊기기 일쑤였고 음질이 깨끗하지도 않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방송 실험은 라디오폰의 기술적인 결함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고, 포리스트의 회사 Radio Telephone & Telegraph Company도 파산에 이르고야 말았다. 하지만, 1914년에 AT&T 사에서 포리스트 오디온에 대한 특허권을 획득하여, 이를 장거리 전화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1906년 미국인 발명가 디 포리스트가 개발한 최초의 삼극진공관 ‘오디온’. <출처: (CC) Gregory F. Maxwell at Wikipedia.org>

 

 

에디슨이 놓친 아이디어

오디온의 탄생에 영감을 준 이극 진공관, 플래밍 밸브.


오디온은 포리스트 개인의 뛰어난 영감이 빚어낸 산물만은 아니었다. 포리스트의 삼극 진공관은 사실 영국인 존 플레밍(John A. Fleming)이 1904년에 특허를 획득한 이극 진공관, 즉 플레밍 밸브를 개선한 것이었다. 플레밍은 에디슨 조명회사에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1883년에 발견된 에디슨 효과에 주목하였다.

 

에디슨 효과는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 후, 전구에 추가 전극을 넣는 실험을 하면서 발견한 현상이었다. 필라멘트에 연결시키지 않은 전극 하나를 전구에 추가하고, 이 전극을 전기 회로 양극에 연결하면, 필라멘트로 흘러들어 가던 전류 일부가 이 전극으로 흘러들어 간다. 반대로 전극을 음극에 연결하면 전류는 흐르지 않는다. 에디슨은 이 새로운 전구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면서 이것을 전류 측정 장치로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플레밍은 에디슨이 주목하지 못한 이 현상의 응용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 이 에디슨 전구를 활용하여 교류를 정류할 수 있는 플레밍 밸브를 발명한 것이다. 플레밍 밸브는 쉽게 말해 실린더형의 플레이트와 필라멘트가 전구 안에 위치해 있는 형태를 띤 이극 진공관이다. 플레밍은 자신의 이극관이 교류를 정류하는 장치로서 라디오파 수신기로 작동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포리스트의 삼극 진공관은 플레밍 밸브에 그리드라는 제 삼의 극을 추가한 것이기 때문에 플레밍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리스트의 오디온은 플레밍 밸브와 달리 수신 장치로서만이 아니라 증폭 장치로서 구상한 것이어서 다른 발명품임은 분명하다.

 

 

트랜지스터의 탄생


포리스트의 오디온이 장거리 전화에 활용되면서 마침내 트랜지스터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AT&T사는 1907년 이래로 장거리전화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다. AT&T사는 포리스트의 오디온을 증폭기로 활용하면 장거리 전화에 적합한 신호증폭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1914년 포리스트가 파산을 하자, AT&T사 소속의 벨연구소가 이 삼극 진공관의 개량에 매달리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벨 연구소장을 맡게 된 머빈 켈리는 반도체 물질을 활용하면 신호 증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전쟁 기간 중에 이뤄진 레이더 연구를 통해 반도체 결정 정류기가 전파신호처리에 훌륭하게 이용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확신을 얻은 켈리는 1945년 8월 반도체 증폭기 개발 연구팀을 조직했다. 켈리의 연구팀에는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와 실험 물리학자 월터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 이론 물리학자 존 바딘(John Bardeen)이 합류했다.

 

그런데 연구팀의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인 쇼클리는 연구팀이 조직되기 전인 1945년 봄에 이미 반도체 증폭기를 직접 디자인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증폭기를 실제로 만들었을 때는 증폭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해 8월 연구팀이 구성되자 쇼클리는 자신의 안을 바딘과 브래튼에게 주면서 증폭기 실험을 하도록 하고 자신은 이론 연구에만 매달렸다.

 

실험 기법 개발에 뛰어났던 브래튼과 세심하고 꼼꼼한 작업으로 이론 개발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바딘은 쇼클리의 요청에 따라 밤낮으로 실험에 몰두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바딘과 브래튼은 쇼클리의 증폭기 디자인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디자인 자체를 변경해가며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47년 11월 어느 날, 브래튼은 새로 고안한 규소 반도체 증폭기를 우연히 물통에다 넣고 실험하다가 이 증폭기가 작동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자들이 결정 표면에 일종의 장벽을 형성해 신호 증폭을 막고 있었는데, 브래튼이 증폭기를 물에 넣자 이 전자 장벽이 제거되면서 신호 증폭이 가능했던 것이다.


최초의 트랜지스터 샘플.

 

이 결과를 바탕으로 바딘은 증류수에 담근 규소기판에 종이 두께 정도의 가느다란 금속 선을 심어 접촉점을 이루게 하는 새로운 반도체 증폭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증폭기가 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만족할 만한 증폭률에 도달하기까지 규소 대신 게르마늄, 이산화 게르마늄 등으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야 했다. 마침내 12월, 브래튼과 바딘은 게르마늄 평판에 금 박편을 접촉시킨 접점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최초의 트랜지스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특허 경쟁이 낳은 노벨상

트랜지스터의 발명을 낳은 바딘, 쇼클리, 브래튼(왼쪽부터)


바딘과 브래튼은 수많은 실험을 거쳐 처음 디자인과 전혀 다른 증폭기를 개발했으나, 쇼클리는 자신이 처음에 증폭기의 디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들어 특허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벨연구소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쇼클리는 자신만의 새 증폭기 개발에 매달렸다. 

 

4주를 꼬박 작업에 매달린 쇼클리는 1948년 1월, 접촉 트랜지스터(일명 샌드위치 트랜지스터)를 고안해냈다.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는 전자가 반도체 결정 표면으로 이동하는 바딘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전류가 결정을 통과해 흐르는 원리에 기반해 만든 트랜지스터였다. 결국, 한 연구팀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셈이다. 1956년 이 세 사람은 노벨상 공동수상자로 나란히 수상했다. 과학기술역사가 중에는 이런 성과를 특허 경쟁이 낳은 성과로 보는 이도 있다.

 

삼극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는 극소 전자혁명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었으나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1948년 6월 26일에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으나 이 기사는 6월 30일에 <뉴욕타임스>의 6줄 단신기사로 등장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소자는 지금까지 유리로 만든 진공관이 교류를 직류로 만들고, 전파를 걸러내 수신하고, 그 수신된 전파를 증폭해 소리나 영상으로 전환하던 기능을 대신할 터였다.

 

현재 이 작은 소자가 컴퓨터, 라디오, 텔레비전과 가전제품의 발달을 낳으며 현대 문명 혁신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IT 산업계의 황제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가장 가 보고 싶은 과거”로 트랜지스터가 개발된 순간을 꼽기도 했다.

 

트랜지스터에서 시작된 전자공학의 혁명은 트랜지스터와 초고밀도 집적회로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삽화는 컴퓨터 칩 한 개당 트랜지스터 수의 변화를 나타낸 도표.

 

 

진공관에서 시작한 전자공학의 혁명은 트랜지스터와 초고밀도 집적회로의 발명으로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지금까지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단일 분자를 이용한 분자 트랜지스터를 개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박진희 /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자료제공:사이언스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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