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는 문화의 뿌리다.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알면 서양 문명과 종교가 보인다. 가령 그리스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흙으로 아담을 빚은 성경 속 이야기와 통한다.
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배철현(51·종교학) 교수를 만났다. 그의 전공은 서양신화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샘족어(히브리어·아람어·페니키아어·고대 페르시아어 등)를 공부했다. 신화와 고대 언어, 그 뿌리를 훑으며 그는 인간을 들여다봤다. 아픔과 행복에 대한 오래된 메시지가 그 안에 있었다.
배 교수는 한때 목사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3년간 시골에서 목회도 했다. 교회 신자 중에 98세의 할머니가 있었다. 에버린 젠넬. 그는 70년간 그 교회에 출석했다. 늘 교회 맨 뒷자리에 앉았다. 빈 자리만 보여도 누가 왜 안 왔는지 꿰고 있었다. 그는 젠넬과 함께 심방(목회자가 교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다녔다. 매주 목요일 양로원을 찾았다.
하루는 전화가 왔다. 젠넬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달려갔더니 젠넬은 “가족은 다 나가고 배 목사만 남으라”고 했다. “내 심장은 100년간 뛰었다. 이제 멈출 때가 됐다. 나는 이대로 죽고 싶다. 그런데 가족이 심장조영술을 하자고 한다. 나는 정말 싫다. 나가서 내 자식들을 설득해달라.”
배 목사는 난감했다. 98세라 심장에 관을 넣는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못하겠다”고 말하곤 병원을 나왔다. 뜬 눈으로 밤을 샜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심방을 다니면서 쭉 지켜봤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양로원 할머니들을 위해 존재하더라. 그들을 위한 삶, 그게 당신의 행복이더라. 수술을 받으면 좋겠다.”
그말을 듣고 젠넬은 기꺼이 수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02세까지 4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을 뜬 배 교수는 “이게 바로 ‘이타(利他)적 유전자’”라고 말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했던 ‘이기적 유전자’를 그는 정면에서 반박했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은 분명한 과학적 성과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 다윈은 삶이 전쟁터라고 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그게 왜 문제인가.
“말이 새끼를 낳으면 30분 만에 걷는다. 인간은 1년이 걸린다. 왜 그런지 아나. 1년 먼저 태어나기 때문이다. 70만 년 전에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뇌가 엄청나게 커졌다. 600㏄에서 1300㏄가 됐다. 인간의 뇌가 커져서 어머니의 자궁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자, 미리 나오는 거다.”
- 그만큼 미숙한 건가.
“원숭이를 보라. 갓 태어난 새끼도 어미 원숭이의 털을 붙들고 혼자서 젖을 먹는다. 그런데 인간은 미숙한데다 털도 없다. 어머니가 자나깨나 안아서 젖을 먹여야 한다. 모든 인간의 생존은, 날 위해서 목숨을 바친 다른 어떤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다. 그게 우리 몸 속에 흐르는 이타적 유전자다. 이게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한다.”
배 교수는 고대 언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전문가다. 그는 아랍어로 짧은 문구를 낭송했다. “비스밀라~히르 라흐마니 라힘” 이슬람 경전 『꾸란』의 114장이었다.
- 무슨 뜻인가.
“‘자비가 넘치고 항상 자비로운 알라(하느님)의 이름으로’란 뜻이다. 꾸란 114장이 모두 이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자비’가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다. 어머니가 뭔가. 두 살짜리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자기도 아픈 거다.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아는 거다. ‘꾸란’에서 말하는 신의 특징이 뭔지 아나. 인간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아는 신만이 유일하다는 거다. 그걸 유일신이라고 불렀다. 그게 모세가 발견한 신이고, 무함마드(모하메트)가 발견한 신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이 신만 섬겨라’가 아니다.”
- 남의 아픔을 아는 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자아라는 박스에 갇혀서 살아간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그 박스가 깨진다. 왜 그럴까. 자아의 확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확장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진다. 그래서 고전 속의 성인과 현자들은 하나같이 ‘박스에서 나오라(Think out of the box)’고 말한다.”
배 교수는 그리스 신화를 하나 꺼냈다. “내게 서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다. 450년간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다. 모두 6음절로 된 노래, 일종의 서양 판소리다. 그 중에서도 ‘일리아드 24장’이 압권 중의 압권이다.”
일리아드 24장은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담이다. “아킬레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였다. 시신을 마차에 매단 채 달리며 찢어버렸다. 사건은 밤에 일어났다. 아들을 잃은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목숨을 내걸고 아킬레스의 숙소로 들어왔다. 깜짝 놀란 아킬레스에게 그는 말한다. ‘내겐 5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49명이 죽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이 헥토르였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네가 죽여버렸다. 오~나는 불행하다. 고향 땅에 있는 너의 아버지도 네가 살아있다는 소식 때문에 기뻐할 거다. 내게는 이제 그런 아들이 없다. 시신이라도 돌려다오.’그 말을 들은 아킬레스의 반응이 포인트다.”
- 아킬레스가 어떻게 했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기 아버지가 생각난 거다. 만약 자기가 죽었다면 자신의 아버지도 똑같이 했을 거라는 거다. 그 장면이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스와 프리아모스가) 상대를 보며 서로 신처럼 여겼다’고 기록돼 있다.”
- 그게 왜 신처럼 여기는 건가.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됐으니까. 그때 우리 안에 숨겨진 신성(神性)이 드러나는 거다. 이게 행복의 열쇠다. 결국 아킬레스는 시신을 돌려줬다. 당시에는 장례식 때 시신이 없으면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이건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통틀어 최고의 장면이다. 이게 바로 ‘컴패션(Compassion·연민)’이다.”
- 이 신화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전쟁의 승자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승자가 진정 누구인가를 묻는 거다.”
- 그럼 누가 인생의 승자인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승자가 아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거다.”
- 자신의 아픔만 해도 벅차다. 어떻게 남의 아픔까지 감당하나.
“그게 우리의 착각이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고통이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아니다. 오히려 나의 아픔이 치유된다. 상대방의 아픔을 직시할수록 나의 아픔을 직시하는 힘이 더 강해진다.”
- 그 힘이 강해지면.
“그럼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 자신이 사는 섬만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다르다’고 부르지 않고 ‘틀렸다’고 본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기독교인인가. 우리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라서다. 만약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면 난 이슬람 신자가 됐을 거다.”
배 교수는 ‘다름’을 강조했다. “서양 전통에선 ‘다름’을 신(神)이라고 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이웃은 사실 적(敵)을 의미했다. 나와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거라 했다.”
- 어떨 때 그게 가능한가.
“자아의 박스가 깨질 때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출세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공부는 그런 게 아니다.”
- 그럼 어떤 게 공부인가.
“공부는 다른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게 식물학이다. 코끼리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게 동물학이다. 내가 왜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나. 그를 통해 나를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나를 볼 때 자아의 박스가 깨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
배철현 교수의 추천서

배철현 교수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에도 적극적이다. 그가 추천한 책들도 제도화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평소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자비를 말하다(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돋을새김)=현존 최고의 종교·문명 비평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인류 최고의 가치를 자비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자비를 실천 할 수 있는 12단계를 감동적으로 안내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지음, 소나무)=인간은 남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평생 허둥대다가 삶을 마치기 쉽다. 철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을 일러준다.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욕망은 무엇인가.
◆명묵(明默)의 건축: 한국 전통의 명건축 24선(김개천 지음, 관조 사진, 컬처그라퍼)=우리도 모르는 한국인의 위대함을 한국 전통 건축 24선을 통해 발견하는 책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전통 건축에 투영된 우리 자신의 지적 통찰을 아름답게 소개한다. 우리에게 숨겨진 한국인의 예술적 DNA(유전자)를 확인하면 감격하게 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