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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와 한국의 미래

마을지기 2016.04.16 10:07 조회 수 : 442

[임마누엘 칼럼] 효도와 한국의 미래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나는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쓸 때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서 어느 부분이 한국의 미래 발전에서 청사진 구실을 하게 될지 가늠해 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미래에서 효도(孝道)가 차지하게 될 가치에 대해 한 장(章)을 쓰기로 하고 개요를 작성했다. 결국에는 그만뒀다. 한국 친구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효도가 의무라고 말하면서도 딱히 효도에 대한 열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효도는 어떤 ‘진기한(quaint)’ 습관이 아니었다.

효는 추상적인 도덕과 구체적인 실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윤리체제의 핵심이었다. 효도는 또한 개인 영역과 공공 영역을 한데 묶어 지속 가능한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18세기 중국인들은 한국의 효도를 높이 평가했다. 중국인들은 연장자와 조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공경심을 문명 사회의 징표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때 효도를 빼려는 생각은 틀렸다.

나는 안동에 있는 유교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디오라마(diorama) 장치들이 웅장한 유교랜드 건물을 가득 채웠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해 유교적 가치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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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미지
이 테마파크형 전시체험관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교적 덕성의 함양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관람객 유치가 목표인 것으로 보였다. 12세 이상의 사람들을 끌어모을 만한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효도라는 의미에 내재한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은 이제 자식들이 노부모를 내다 버리는 일까지 발생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마찬가지로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나머지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 젊은이도 나오고 있다.

효도는 반드시 부흥시켜야 할 한국의 전통이다. 하지만 효도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효도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효도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효도를 만들어 내려면 상상력을 동원하는 게 필요하다. 효도의 전통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려면 예술가와 작가, 그리고 보통 시민들과 같이 작업하는 지식인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은 어떤 ‘브랜드 추진위원회’라든가 홍보 컨설턴트들이 수행할 수 없다.

우선 효도는 여성에 대한 모든 편견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유교 전통은 성 중립적(gender neutral)으로 바뀌어야 한다.

선례가 있다. 그러한 개혁의 사례가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서도 다수 발견된다. 후손들이 추앙해야 할 조상에는 여성이 포함돼야 하며 여성은 제사 등 유교 의식에 남성과 동등한 방식으로 참가해야 한다. 전통을 개혁하는 데 실패하면 결과는 그 전통 자체의 소멸이다.

또한 효도는 도덕적인 의무뿐만 아니라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에 이르는 과정으로도 이해해야 한다.

효도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정체성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조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리는 조상들의 공헌이 낳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효도의 전통을 부흥시키려면 스토리텔링을 활용해야 한다. 부모는 조상에 대해 자녀에게 말해줌으로써 그들의 생각이나 몸의 생김새 그리고 경험이 어떻게 지난 세대의 조상들과 연결되는지 자녀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효도는 프로이트적 접근법과 유사하다. 하지만 효도는 보다 건설적인 심리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효도를 통해 자녀의 삶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추상적인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어버이-자녀 관계의 긍정적인 것들을 강화하는 매일매일의 실천을 통해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1920년 베이징에서 한 해 동안 체류하며 강연 활동을 했다. 그는 22년 출간된 『중국의 문제(The Problem of China)』에서 서구 국가에서 “어떤 개인의 충성심을 전투부대로 유도하는 애국주의”보다 유교의 효도가 정부를 운영하는 데 훨씬 바람직한 체제라고 지적했다.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효도는 개인의 영역과 국가를 연결하는 통합적인 철학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효도 철학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념’이 아니며 군국주의로 쉽게 변질될 수 있는 ‘애국주의’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19세기에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가족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바로 효도가 한국이 제국주의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막았으며 한국이 인간애가 넘치는 통치제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게 만들었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출처: 중앙일보] [임마누엘 칼럼] 효도와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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