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부각되며 인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이어 터진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인성의 문제가 더 이상 방치돼선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해결하려는 제도권의 움직임이 법제화로 이어져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 21일 시행됐다. 인성과 관련된 사회적 덕목을 교육체계 안에서 키우기 위한 계획을 세워 집행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성은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의미한다. 사회적 환경, 가정, 제도교육이 인성 형성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가정과 사회가 인성교육의 주 무대가 돼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법과 제도가 인성 함양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정치를 보면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대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는 일이 빈번하다.
언론에 비춰진 사회지도층의 모습을 보면 인성 함양이 사회적 성공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을 갖게 된다. 공부는 안 하고 왜 문학책을 읽느냐고 자식을 나무라고, 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가정의 문화 속에서 긍정적 인성이 자라날 여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인성 함양의 시대적 요청을 환기시키고 긍정적 인성을 가정과 사회로 확산시키기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둘째,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 주려 해서는 안 된다. 특정 주제에 대한 교육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를 담당하는 별도의 교과목·교과과정을 만든 후 성취도를 수치화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의 편성 운영(10조 3항),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관련된 인증제 시행(11조, 12조), 교사 양성 관련 대학들 내에 인성 관련 교과목 필수화(17조 2항), 인성교육의 추진성과 및 활동에 대한 매년 평가(16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과목들이 학교 교육과정에 설치될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치활동, 재량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이 자유학기제와 더불어 인성 함양을 목표로 하여 이미 시행돼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별도의 인성 함양 범주가 교육과정에 도입되면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적자생존의 반인성적인 틀에서 운영되는 기존 교과목을 그대로 놓아 둔 채 인성을 위한 별도 범주를 도입하는 것은 전시행정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법안은 기존의 교육과정을 인성 함양의 관점에서 평가·강화·정비하는 방향으로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국가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지식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인성교육 강화가 지식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교과목 교육과 인성교육이 서로 독립적인 것이라면 하나를 강화하는 게 다른 것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이 따로따로라는 생각은, 지식은 정보를 습득하고 문제를 푸는 능력이라는 구시대적인 지식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계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창조경제로 이행했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기술 관련 정보가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인간 친화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핵심을 차지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생각들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공동 연구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보여지듯이 점차 개인지성에서 집단지성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위해서는 상호 존중에 기반한 소통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이 서로 보완하며 시너지를 산출하는 것이 요구된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이해에 닻을 내리고 교과·비교과활동을 인성의 축으로 아우를 때 교육 따로, 인성 따로라는 불필요한 비판을 뚫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인성은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의미한다. 사회적 환경, 가정, 제도교육이 인성 형성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가정과 사회가 인성교육의 주 무대가 돼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법과 제도가 인성 함양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정치를 보면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대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는 일이 빈번하다.
언론에 비춰진 사회지도층의 모습을 보면 인성 함양이 사회적 성공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을 갖게 된다. 공부는 안 하고 왜 문학책을 읽느냐고 자식을 나무라고, 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가정의 문화 속에서 긍정적 인성이 자라날 여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인성 함양의 시대적 요청을 환기시키고 긍정적 인성을 가정과 사회로 확산시키기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강제적 장치를 통해 인성을 육성하는 시도에서 주의할 점들이 있다. 첫째, 제도적 인성교육은 성급하게 특정 가치를 주입하려는 유혹을 넘어서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봤듯이 특정 가치관 주입을 일차적 목표로 한 인성교육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 인성교육은 절차적 덕성을 함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절차적 덕성이란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에 기반해 합리적 대화를 하며, 우월한 의견에 승복할 줄 알고, 이견이 드러날 때 합의를 도출하는 등 절차와 관련된 능력이다. 제도적 인성교육은 절차적 덕성 함양에 초점을 두고 출발할 때 순항할 수 있다. 절차적 토양이 우리 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아야만 그 토대 위에서 우리를 결속시키는 건강한 공동체적 이념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 주려 해서는 안 된다. 특정 주제에 대한 교육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를 담당하는 별도의 교과목·교과과정을 만든 후 성취도를 수치화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의 편성 운영(10조 3항),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관련된 인증제 시행(11조, 12조), 교사 양성 관련 대학들 내에 인성 관련 교과목 필수화(17조 2항), 인성교육의 추진성과 및 활동에 대한 매년 평가(16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과목들이 학교 교육과정에 설치될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치활동, 재량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이 자유학기제와 더불어 인성 함양을 목표로 하여 이미 시행돼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별도의 인성 함양 범주가 교육과정에 도입되면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적자생존의 반인성적인 틀에서 운영되는 기존 교과목을 그대로 놓아 둔 채 인성을 위한 별도 범주를 도입하는 것은 전시행정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법안은 기존의 교육과정을 인성 함양의 관점에서 평가·강화·정비하는 방향으로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국가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지식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인성교육 강화가 지식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교과목 교육과 인성교육이 서로 독립적인 것이라면 하나를 강화하는 게 다른 것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이 따로따로라는 생각은, 지식은 정보를 습득하고 문제를 푸는 능력이라는 구시대적인 지식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계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창조경제로 이행했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기술 관련 정보가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인간 친화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핵심을 차지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생각들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공동 연구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보여지듯이 점차 개인지성에서 집단지성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위해서는 상호 존중에 기반한 소통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이 서로 보완하며 시너지를 산출하는 것이 요구된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이해에 닻을 내리고 교과·비교과활동을 인성의 축으로 아우를 때 교육 따로, 인성 따로라는 불필요한 비판을 뚫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