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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내 아이, 제대로 된 물건 만드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14.10.04 00:29 / 수정 2014.10.04 03:38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풍경1 : 저녁 모임이었습니다. 한 증권사 부사장이 리더십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었다. 주로 자료를 복사하고, 심부름하고, 그 다음에는 문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직책이 점점 올라갈수록 내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 바뀌더라.” 나중에 임원이 됐을 때는 곰곰이 짚어봤다고 합니다. 자신이 실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 어떤 건지.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을 알겠더라. 위로 올라갈수록 내게 필요한 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할 때 배운 게 아니었다. 회의할 때 부하 직원들과 소통하는 법,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법, 사업상 처음 만난 사람과 사귀는 법. 그런 게 가장 중요하더라. 그건 책상 앞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들과 놀고 어울리면서 익힌 것들이었다.”

 다들 놀랐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이런 말을 던집니다. “밖에 나가서 놀지만 말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 좀 해! 제~발.” 돌아오는 길,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독립해서 필요로 하는 힘은 뭘까. 그건 어떤 근육일까.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왼팔로만 매달리는 턱걸이를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입시라는 무게감에 부모가 먼저 겁을 먹고서. 사회에 나가면 오른팔의 근육도 필요하고, 두 다리의 근육도 필요하고, 배와 등의 근육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우선 입시부터 해결하자, 나머지는 대학 가서 다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핑계 반, 위안 반으로 위장한 채 말입니다.

 #풍경2 : 최재천(국립생태원장) 교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흥미로웠습니다. 한마디로 ‘방목’입니다. 무작정 풀어놓는 방목은 아니었습니다. 긴 끈의 한쪽 끝을 따뜻하게 잡고 있는 방목이었습니다. 최 교수는 아이들을 ‘제품’에 비유했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로 마구 찍혀나오는 제품을 만들려면 기존의 방식으로 키워라. 그런데 정말 제대로 된 ‘물건’을 한번 만들어보려는 생각이 있다면 방목하라.” 그런 방목을 그는 ‘아름다운 방목’이라고 불렀습니다.

 생각해 봤습니다. 책상에서도 배울 건 많습니다. 들판에서도 배울 건 많습니다. 그럼 어떤 교육법이 가장 지혜로운 걸까요. 두 마리 양이 있습니다. 한 마리는 주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합니다. 다른 한 마리는 목장이란 울타리 안에서 마음 가는 대로 뛰어다닙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저는 그게 ‘내 안에서 올라오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하게 하는가?’라고 봅니다.

 들판에서 친구와 놀고, 싸우고, 어울리면서도 숱한 물음이 자기 안에서 올라옵니다. 그게 무슨 물음일까요. 자신의 생활에서 부닥치는 문제들, 그걸 풀기 위한 물음들입니다. 친구가 화났을 때 어떻게 풀까, 전학 온 친구와 어떻게 사귈까, 사과를 할 때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이 모두가 결혼 생활, 직장 생활, 사회생활의 문제를 푸는 근육입니다. 그런 물음에 스스로 답할 때 아이들은 사회생활의 리더십을 미리 갖추게 됩니다. 울타리 안에서 자유로운 양이 울타리 밖에서도 자유로우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의 안목이 참 중요합니다. 책상에 앉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증권사 부사장은 회사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책상의 리더십’이 아니라 ‘들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최 교수는 “닭장에서 사육한 닭은 고기 맛이 퍽퍽하다. 반면 방목한 닭은 쫄깃쫄깃한 고기 맛이 끝내준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의 인생에서 책상의 근육이 전부일까요. 들판의 근육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 아이를 ‘제대로 된 물건’으로 키우고 싶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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