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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형 교육에 대한 세 가지 미신[중앙일보] 입력 2014.02.28 00:01 / 수정 2014.02.28 00:01
강홍준 논설위원
 
교육에서 말하는 융합이란 칸칸이 나눠놓은 학문 간 장벽을 트는 작업이다. 전공이나 학과가 각개약진하듯 가르치는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기르겠다는 게 융합형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목표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일, 문제는 복합적인 것이어서 이를 풀어내는 대안을 찾기 위해선 하나의 학문 분야만의 지식으론 부족하다.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 과학이나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을 키우겠다는 실용적인 목적이 융합형 교육과정에 담겨 있다.

 정부가 올해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는 융합형 교육과정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 이하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1학년도부터 문·이과 통합 수능을 도입하기로 한 것도 융합형 교육과정에 따른 것이다. 모든 학생이 문·이과로 구분되지 않는 교과서를 가지고 배운다. 수학 과목 하나만 보더라도 반복적인 문제풀이 위주의 교육보다는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스토리텔링 교육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까지 보면 융합의 취지는 썩 괜찮아 보인다. 문·이과로 나눠 가르치는 나라가 선진국 중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것도 융합형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학문 간 벽을 무너뜨리는 연구로 잘 알려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미디어랩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융합이란 그럴싸한 외피(外皮)만 보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 건너온 융합형 교육엔 몇 가지 미신이 깔려 있다.

 문·이과로 나누어진 과목들을 한꺼번에 모아 가르치면 교습자의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융합이 된다는 미신이 첫 번째다. 음식점이 한·중·일식을 뷔페식으로 골고루 제공하면 먹는 사람이 알아서 섞어 먹을 것이라는 미신 말이다. 우리나라 몇몇 대학이나 중·고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융합교육과정은 다양한 전공 교수, 또는 다양한 교과 교사들의 강의를 접하게 한다. 여기엔 여러 분야의 학문을 한꺼번에 배운다는 장점은 물론 있다. 하지만 학과 벽을 터놓고 다양한 전공자들을 모아놨을 뿐이다. 융합형 교육과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가르치는 교수 또는 교사들이 서로 치열한 토론을 해 학생에게 뭘,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 고민했어야 하나, 그런 과정이 생략돼 있다. 그냥 다양한 강의를 나열했다는 정도인 게 우리의 융합형 교육과정이다. 융합의 몫이 철저히 학생에게 있다.

 융합형 교육은 기존의 교수나 교사에게 맡겨놔도 가능하다는 미신도 있다. 연구와 교육을 함께 하는 대학에선 이게 가능할지 모른다. 외부 과제를 따와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다양한 전공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대학에선 흔하다. 하지만 중·고교는 그렇지 못하다. 중·고교 교사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이들은 새롭게 도입되는 융합형 교육과정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인 데다 단순히 몇 시간 동안 연수받아서 때우기엔 한계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욕 있는 젊은 교사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교사가 되기 위해 철저히 학과별로 나누어진 교원임용시험을 수년 간 준비한 사람들이다.

 마지막 미신은 융합형 교육이 창의력 있는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게 가장 강력하다. 아주 우수한 학생은 그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학습수준이 천차만별인 학교에 융합형 교육과정을 적용할 때는 다른 문제가 벌어진다. 보통의 학생들은 우선 배워야 할 범위가 확 늘어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나마 학문 분야별로 나누어져 있을 때 교사가 줄 수 있었던 최소한의 지식마저 융합형 교육에 휩쓸려 실종될까 걱정스럽다. 어찌 보면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융합형 인재가 공교육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의 전기를 읽어봐도 그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의 수혜자는 아니었다.
 
 단순히 교과의 벽을 부수는 게 융합형 교육은 아니다. 벽을 무너뜨린 빈터에 무엇을 지을지 철학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강홍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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