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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거래가 된 지금 … " vs "인성도 학원에 맡길텐가"

[중앙일보] 입력 2013.09.25 00:44 / 수정 2013.09.25 01:30

스승이 되고 싶은 최 교사
"성적순으로 학생 차별 안 해
자주 만나 대화 … 마음 열어"

직업인으로 사는 김 교사
"인성교육 현실 모르는 소리 나조차도 바르게 못 사는데"


“인성교육? 웃기고 있네.”

 김 교사는 참고서를 펼치며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성적보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어이 오늘 아침 교무회의에서 다음 주부터 아침 조회시간에 명상시간을 갖자고 한다.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 평온한 학교를 또 휘저을 모양이다. 학부모한테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항의전화를 받거나, 아이들한테 ‘선생님, 빨리 끝내주세요. 학원 가야 해요’라는 면박을 당해 봐야 현실을 깨닫게 될 거다.


 인성을 강조하지 않은 시대도 없지만, 인성을 제대로 교육한 적도 없다. 이런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늘 떠들썩하게 장이 서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유행처럼 왔다가 곧 사그라질 거품 같은 거다. 이유는 뻔하다. 좋은 고등학교 가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얻는 게 최고라고 외치는 사회여서다.

 교장이 시켜서 조사해 봤더니 반 애들 중에서 매일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이 열에 하나다. 밥상 앞에서 나누는 얘기도 ‘공부 잘하고 있느냐’가 주요 주제다. 심각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뒤처지면 도태되고 꼭대기 한 자리를 빼면 다 패자로 몰리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질주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이미 적당한 거리 유지가 세상살이에서 최고의 처세술이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화가 나면 게임으로 풀고, 자기한테 주어진 일만 하고 타인의 일엔 무심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서기 위해 보습학원, 영재학원, 영어학원, 논술학원을 전전했던 아이들이다.

 오늘도 교문 밖엔 학원버스가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학생들을 빨리 넘기라고 윽박지르는 듯하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살풍경이다. 어젯밤엔 집에 가다가 학원 앞에서 전교 1등 하는 영민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학원은 더 이상 부끄럽거나 몰래 가는 곳이 아니다. 학교와 학원은 이제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관계가 됐다. 오후 수업 들어가려는데 영민이 엄마한테서 학원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숙제를 그렇게 많이 내주면 어떡하느냐는 전화를 받은 게 겹쳤다. 영민이의 1등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 만들어주는 거였다.
 
 김 교사도 대학 시절, 그 누구한테서도 배움의 스승이 되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정의를 위한 실천을 해본 적도 없고 정직한 행동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모나지 않은 처신과 적절한 시간 배분이 생존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기간제 교사로 전전하지 않기 위해 1학년 때부터 한눈 안 팔고 임용시험 준비만 했다.

 그 어디에서도 ‘남을 도와라’ ‘정의롭게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하지 않았다. ‘남을 이기라’가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 아닌가? 그런 현실을 모른 체하고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웃기는 소리다. 실력이 없으면 정직도 없다. 생존하지 못하면서 예의나 염치는 호사일 뿐이다.

 이제 ‘배움’은 교사가 지식을 제공하고 학생이 대가를 지불해 성립되는 ‘거래’가 됐다. 자판기처럼 동전만 넣으면 ‘성적’과 ‘졸업장’이 튀어나온다. 학원 자판기가 제공하는 지식이 학교 자판기보다 맛있다면 거기에 동전을 넣는 게 당연하다. 교사도 바르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학생을 위하는 길인가? 오늘도 김 교사는 교과서와 출석부를 챙겨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간다.

스승이 되고 싶은 최 교사
"성적순으로 학생 차별 안 해 … 자주 만나 대화 … 마음 열어"


최 교사는 새 학기 처음 만난 학생들에게 ‘실력보다 인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쳇’ ‘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자신을 가다듬는 게 왜 필요한지 몰랐다. 생활습관과 자기규율을 익혀 나가는 것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하기가 만만찮았다. 집에서도 배우지 않았고, 마을이 키워주지도 않았고, 학교도 방기했다.

 쉬는 시간에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누워 자는 애, 문제집을 푸는 애, 게임을 하는 애, 거울 보는 애, 주먹과 욕으로 친구를 윽박지르는 애,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먹고 있는 애 등 자기 궤도만을 도는 행성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친구가 없어 점심시간마다 누워 자는 민수를 깨웠다. ‘넌 왜 친구가 없느냐?’고 물으니, ‘흥미가 없다’고 한다. 나와 다르지 않은 너. 궁금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은 타인! 학교는 ‘나와 똑같은 너’가 끝없이 나열돼 있을 뿐이다. ‘학교-학원-집’이라는 쳇바퀴는 민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 지루함을 달래줄 게임의 종목만 달랐다.

 돌이켜보건대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학교는 친구를 사귀고 서로 돕고 함께 놀고 생각을 나누고 갈등을 푸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아직도 학교는 인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목표를 깃발처럼 걸어두기는 한다. 그런데 학교도 공부만 하는 곳으로 자신들을 규정해 왔다. 학교와 학원은 경쟁했고 학원이 승리했다. 교사들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오는 줄 안다.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좀 어려운 과목은 학원에라도 가서 배워 오라고 권한다. 그게 피차 편하다. ‘학원이 인성마저 가르쳐준다’고 광고를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면 입맛이 쓰다.

 최 교사는 그걸 깨고 싶었다. 우선 성적순으로 학생을 차별하지 않았다. 성적대로 앉히거나 성적 순으로 분반을 하지 않았다. 인성교육을 특정한 시간에만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생활로 익히기 위해 아이들을 자주 만났다. 교사보다 바쁜 아이들 상황에 맞게 쉬는 시간이나 청소시간, 학원 안 가는 날을 확인해 대화를 나눴다. 교과 얘기보다는 집안 얘기, 생활 상담, 역할극, 탐방, 자치회의 등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려고 했다.

부모들에게도 호소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으라고, 공부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나눠보라고. 청소년은 공부기계가 아니라 방황, 반항, 우정, 연애로 흔들리는 존재라고.

 아이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부임 초반 교실에 들어갔는데 쓰레기가 바로 옆에 떨어져 있어 좀 주우라고 하면 “내가 안 버렸는데요?” 하며 쳐다보던 아이들이었다. 이제는 자기 공간에 대한 애정이 생겼는지 곧잘 줍는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제법 진지한 얘기도 나눈다. 자기 생활을 자기가 살피고, 자기 기운에 맞는 습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궁금해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세계 앞에 정의롭고자 했다.

 인간에게는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측은함, 자율적 책임감과 의식의 독립, 공동체를 향한 헌신하는 자세. 하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인성을 배우지 못하는 사회에선 이런 것들은 언젠가 휴지 조각처럼 버려질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이 그립다.

◆특별취재팀=성시윤·윤석만·이한길·김혜미·이서준 기자
◆경희대 연구팀=정진영(정치학)·김중백(사회학)·김병찬(교육행정)·성열관(교육과정)·지은림(교육평가)·이문재(현대문학)·김진해(국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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