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차라리 전두환 시절이 낫다고?
[중앙일보] 입력 2012.08.17 00:47 / 수정 2012.08.17 00:47
중·고생을 둔 학부모라면 미욱한 자식을 보며 하루에도 참을 인(忍)자 세 번을 마음에 쓴다. 생각해 보면 성질이 날 만하다. “나는 그래도 번듯한 대학 나와 남에게 꿇리지 않고 이렇게 버티며 살고 있는데 넌 도대체 뭐냐”고 묻고 싶기도 하겠다. 가장 허탈한 땐 과외다 뭐다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올라갈 줄 모르는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볼 때 아닐까.
요즘 40대 이상의 학부모들 사이에 과외 금지·학력고사로 대표되는 ‘전두환 시대’를 희구하는 심리가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차라리 그때가 낫다”는 말은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보수 신문 칼럼조차 대권 후보들은 전두환에게 한 수 배우라며 그 시대의 단순 무식함을 조언하기도 한다.
1980년 하루 아침에 학원 수강과 과외가 금지됐고, 대학은 본고사 또는 학력고사, 내신으로 단순하게 선발했다. 지금처럼 복잡한 3000여 개 대입 전형은 그때 분명 없었다. 머리 좋은 애들은 부모 도움 없어도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대학에 척척 붙기도 했다. 그러니 당시 좀 괜찮다는 대학 나온 부모들은 그 시대가 그리울 것이다. 어떨 때는 “나는 되는데, 내 몸에서 나온 아이는 왜 안 되는데”라며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런 단순 무식함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가능하지 않으며,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부모인 나는 SKY 갔는데 자식은 왜 안 되는지 답을 알고 싶다면 과거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때 고교 교사는 한 학급 60명 중에 몇 명을 데리고 수업을 했었나. 공부는 아예 포기하고 잠 자는 아이가 절반을 넘었다. 지금은 어떤가. 학습 부진아도 학원은 다 간다.
지금부터 12년 전인 2000학년도만 하더라도 서울대 정원이 4959명이었고, 지금보다 1609명 많았다. 고려대·연세대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갈수록 들어가는 문은 좁아지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더 몰리니 지금 아이들은 과거 부모 때보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피 말리는 경쟁 속에 놓여 있는 게 분명하다. 명문대 간판 단 부모를 매일 봐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경쟁이 치열하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남보다 앞서겠다는 욕망,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경쟁적 상황이 단칼에 해결될 수 있을까. 부모가 그 시절을 희구한다면 “자, 이제 부모들은 사교육 몰빵 그만하고, 아이들끼리 실력으로 경쟁하게 합시다”라는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내 힘으로 안 되니 제2의 전두환이라도 나와서 아이가 처한 경쟁적 상황까지 치워달라는 간절한 바람인가. 한마디로 고통 속에 잠들다 꾸게 된 꿈에 불과하다.
대입 경쟁은 전두환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4년제 대학에서 6년 이상 다니며 벌어지는 스펙·학점 경쟁, 졸업을 앞두고 취업 경쟁까지도 그분이 해결해줘야 하나.
그러므로 생각이 있는 부모라면 오히려 이제라도 자식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우선 투자수익률이다. 모두가 돈을 쏟아부으며 경쟁하는 상황에서 대학 입학·졸업에 따른 기대수익률은 갈수록 낮아질 것이다. 그래도 인생 노후자금까지 털어 아이를 밀어줄 것인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했듯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아이의 성장이다. 부모와 아이의 인생은 분명히 다르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도록 조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아이의 모든 일을 쥐락펴락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들은 교육 당국에 할 말을 해야 한다. 대입 제도는 좀 더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운영하고, 대학 이외의 다양한 진로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우회로도 많이 만들고, 안내 표지판도 달라는 당당한 요구다. 세상사가 답답하니 단칼에 모든 것을 해결해줄 위인을 고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알게 된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