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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처음이자 마지막 배움터

마을지기 2012.05.27 20:13 조회 수 : 1737

가정, 처음이자 마지막 배움터[중앙일보] 입력 2012.05.21 00:00 / 수정 2012.05.21 00:02

이우근법무법인 충정 대표

 

공교육의 파행(跛行)이 심각하다. 스승의 권위는 일진회의 주먹 앞에서 도통 맥을 못 추고, 학교폭력에 상처 입은 어린 영혼들은 속절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교사가 제자를 성희롱의 노리개로 삼는가 하면, 어린 학생이 스승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 절박한 위기 속에서도, 정치색에 물든 교육자치는 교실을 정치투쟁의 실습장으로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전인격’을 지향하는 고전적 교육목표는 헌신짝만큼도 여기지 않는 세태다. 유난히 학벌에 집착하는 우리네의 허영심, 교육의 본질에 투철하지 못한 정책당국의 태만, 상업자본주의에 영혼을 팔아넘긴 얄팍한 시대정신 따위가 이처럼 서글픈 ‘교육의 카오스 시대’를 초래했다.

 미래세대의 삶과 직결된 공교육의 파탄은 정치의 난맥보다 더 깊고 무거운 국가적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나 제도교육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가정교육이다. 치솟는 이혼율, 가정폭력, 서민경제의 파탄 등 갖가지 사유로 수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어 가는 현실에서는 튼실한 가정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아들딸 구별 없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 아래 모두들 아이를 하나씩만 낳아 기르다 보니, 형제자매들의 부대낌 속에서 스스로 절제하며 서로의 갈등을 조절해 가는 지혜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고 말았다.

 ‘인류의 교사’로 불리는 페스탈로치의 말처럼 ‘가정은 도덕교육의 터전’이다. 올바른 인성(人性)과 반듯한 삶의 자세는 교사의 입이 아니라 부모의 품에서부터 배워 가는 것이다. 저마다 왕자로, 공주로 자라난 아이들이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해 가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자들에게는 그나마 공동생활의 마지막 훈련 기회인 군복무마저 이리저리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렇듯 독불장군으로 혼자 커 온 아이들이 무슨 재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윤리를 배울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내 아이를 먼저 야단치는 것이 우리네의 오랜 관습이었다. 상대방 아이의 부모에게는 “제가 잘못 가르친 탓이지요”라며 먼저 머리를 조아렸다. 위선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다. 요즘에는 아이들 싸움이 곧잘 부모의 싸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누가 감히 내 아이를…’ 하는 오기(傲氣)가 살벌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기를 살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당당하되 양보할 줄 아는 인격, 비굴하지 않되 넉넉히 참아낼 줄 아는 품성을 길러주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상생(相生)의 덕목이다.
 걸핏하면 자녀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아버지, 정직하기보다 일등 하기만을 바라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심성(心性)이란 생각만 해도 안쓰럽다. 여리고 불안정한 인격을 학교에 내던지듯 맡겨놓고 공교육을 탓하는 것은 부모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학교와 교사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학부모일수록 스스로 가정교육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맥아더 장군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이런 기도를 드렸다. “정직한 패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승리했을 때 겸손하며, 실패한 이들에게 관대하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게 하소서.”

 젊은 세대의 인격과 품성에 관한 한, 학교는 제1차적인 책임의 주체가 아니다. 오직 가정만이 그 값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바탕자리다. 가정은 유치원보다 먼저 입학해서 대학원보다 늦게 졸업하는 평생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아니, 가정에는 졸업이라는 제도가 아예 없다.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해 연면히 이어져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삶의 배움터’다.

 어버이는 첫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이다. 아버지는 살아 있는 역사요 평생의 멘토(mentor)이며, 어머니는 정신의 고향이자 태아 시절부터의 담임선생님이다.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은 어머니라는 인격, 그 최초의 여성이기에.

 아버지는 집을 짓고, 어머니는 가정을 만든다. 아버지가 가장(家長)이라면, 어머니는 가정의 중심 곧 가심(家心)이다. 아버지들이 산과 들판을 휘저으며 먹잇감을 찾아 생명의 피를 흘리고 생태계에 상처를 입힐 때, 어머니들은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텃밭에서 채소를 경작하며 생명과 자연을 보듬어 안았다. 그래서일까, 조병화 시인은 “어머님은 속삭이는 조국/ 속삭이는 고향…/ 가득히 이끌어 주시는/ 속삭이는 종교”라고 읊었다.

 가정과 스승의 달 5월을 맞아 학교로서의 가정, 스승으로서의 어버이, 가심으로서의 어머니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꿈이 더욱 절실해진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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