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추방? 공문부터 추방하라
[중앙일보] 입력 2012년 02월 17일
강홍준
논설위원
학교폭력 근절이란 해묵은 과제가 이번엔 풀릴까. 이달 초 국무총리를 비롯해 4개 부처 장관이 합동으로 종합대책을 내놓은 뒤 이런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마당에 찬물 끼얹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단언코자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이번 대책 역시 필패(必敗)다. 국무총리가 매달 학교를 찾아가 점검한다고 했는데도 그럴까. 물론 가해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됐으며, 경찰이 적극 이 문제에 개입하기로 해 폭력 발생이 수그러드는 반짝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약효는 떨어질 것이다. 반감기는 1년쯤 될 것이다.
이런 음울한 예측을 하는 이유가 있다. 정책 결정자의 열의가 부족해서? 그렇지 않다. 1995년 이후 정부가 여러 차례 종합 대책을 내놨으나 실패했던 이유와 같다. 정책집행 단계에서 교육청·교육지원청·학교로 이어지는 행정 조직은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상황은 이렇다. 학교폭력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조직 상층에서 하층으로 향하는 압력은 아주 강해졌다. 그 결과 교육행정조직의 말단인 학교는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지시를 받고 있다. 대책에 담긴 90여 건의 과제는 공문으로 학교에 투하될 것이다. 발신 교육청 또는 교육지원청, 수신 학교장이라고 적힌 공문엔 ‘몇 월 며칠까지 학교 자체 계획을 세워 제출하시오’ ‘실적을 보고하시오’라는 요구 사항이 달려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 말고도 지시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중간에 걸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어나 바닥을 채우는 형국이다.
교장은 자신의 인사 및 평가권자인 교육청 등에서 내려온 이런 지시에 신경 끄고 살 수 없다. 일반 교사들은 “교육청은 공문 생산 공장이냐”며 불만을 터뜨리면서 시간을 쪼개 보고서를 만든다. 보고를 위한 보고서 작성, 실적을 뽑기 위한 통계 산출 과정에서 폭력 발생 건수는 줄고, 예방 활동 건수는 늘어난다. 이러다 보면 곪은 상처는 수치 뒤로 꼭꼭 숨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실패의 순환 고리에 점점 빠져든다.
학교폭력 근절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관료가 아니다. 열쇠는 아이들 사이에 폭력의 징후가 있지나 않은지 부단히 챙기고 관심을 놓치지 않는 교사에게 있다. 어차피 교사는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도덕적으로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실패의 순환고리를 깨려면 무엇보다 교육청, 교육지원청부터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학교에 발송 당일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부터 당장 중단해야 한다. 학교에 당일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공문이 전체의 60.4%라는 경기도교육청의 조사도 있다. 실적을 취합하라는 공문도 20% 이상 줄여야 한다. 그 대신 교육지원청에 있는 장학관·장학사, 일반 관료들이 움직여야 한다. 지시만 하지 말고,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발 벗고 나서라는 말이다.
학교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담임 맡는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에 더 시간을 쓰게 하고, 비담임 교사는 행정업무처리에 시간을 더 배정하도록 업무를 다시 나눠야 한다. 교장과 교감은 업무 배분을 잘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집중하게 해야 한다. 감포(교감되기를 포기한 고령 교사)도 이번엔 불구경하듯 뒷짐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온갖 궂은 일은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에게 떠넘기는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교육청이나 학교 모두 “안 돼~” “사람 불러야 돼”란 말 좀 그만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 학생당 교직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에 미치지 못해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니 돈이나 사람이 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다음에야 움직이겠다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스스로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돈과 사람 탓만 하다간 개그콘서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기고자 : 강홍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