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만에 드디어 복지국가의 자랑인 ‘무상복지’ 개념이 한국에 출현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만, 그것도 잠시, 마음이 심란해진다. 부실한 사회보험을 외면하고 부자 국가들의 쟁점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상복지엔 납세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은 ‘평등과 연대’를 내걸고 국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법인세 60%, 소득세 40%에 달하는 세금폭탄을 납세자들은 사회통합을 위해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총 16조원이 소요된다는 민주당의 무상복지안엔 정작 세금 얘기가 빠졌다. 소모성 사업예산을 전용하고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충분하다는 논리인데, 한두 번이야 가능하겠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다. 50조원으로 추정되는 실제비용은 도리 없이 납세자의 몫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무상복지안은 ‘세금 50조원 더 내주실래요?’다. 유럽처럼 납세자들이 의기투합해 표를 주면 논란은 끝난다. 그런데 어림잡아 가구당 400만원, 경제활동인구 1인당 250만원씩을 더 내라면, 물러설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사회보험이 부실한 한국에서 ‘무상’은 여전히 성급한 꿈이다. 공짜 밥은 별로 시급하지 않고, 공짜 의료와 보육은 중요하나 더 절박한 문제가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절대빈곤층 250만 명, 근로빈곤층 410만 명, 저소득층 400만 명, 줄잡아 1000만 명이 가난·질병·실직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 말이다. 인구의 20%,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아 연금은 물론 고용보험, 산재 혜택도 받지 못한다. 국민기본권이 없다. 이들에겐 무상복지보다 사회보험이 더 절실한 것은 물론이다. 1000만 명 빈자(貧者)를 버려두고 부자(富者)에게도 준다는 무상복지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어쩐지 한심스러워 보인다. 반갑지만 심란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무상급식을 주민투표로 결판내야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을지 모르겠다. 좀 우스꽝스럽다. 차라리 의무교육인 중등교육에 등록금을 없애는 게 순서 아닐까? 1조3000억원 적자에 빠진 건강보험에 무상의료를 무작정 떠넘기는 것은 무모하고, 먹고살기에 지친 하위 소득계층에 대학등록금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생뚱맞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인구의 급감 추세를 생각하면 제일 그럴듯한 게 무상보육이다. 무상복지가 산의 9부 능선에 있는 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겨우 3부 능선쯤에서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기왕 복지에 달려들었으니 우리의 처지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 달라.
송호근 서울대 교수·
사회보험이 부실한 한국에서 ‘무상’은 여전히 성급한 꿈이다. 공짜 밥은 별로 시급하지 않고, 공짜 의료와 보육은 중요하나 더 절박한 문제가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절대빈곤층 250만 명, 근로빈곤층 410만 명, 저소득층 400만 명, 줄잡아 1000만 명이 가난·질병·실직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 말이다. 인구의 20%,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아 연금은 물론 고용보험, 산재 혜택도 받지 못한다. 국민기본권이 없다. 이들에겐 무상복지보다 사회보험이 더 절실한 것은 물론이다. 1000만 명 빈자(貧者)를 버려두고 부자(富者)에게도 준다는 무상복지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어쩐지 한심스러워 보인다. 반갑지만 심란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무상급식을 주민투표로 결판내야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을지 모르겠다. 좀 우스꽝스럽다. 차라리 의무교육인 중등교육에 등록금을 없애는 게 순서 아닐까? 1조3000억원 적자에 빠진 건강보험에 무상의료를 무작정 떠넘기는 것은 무모하고, 먹고살기에 지친 하위 소득계층에 대학등록금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생뚱맞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인구의 급감 추세를 생각하면 제일 그럴듯한 게 무상보육이다. 무상복지가 산의 9부 능선에 있는 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겨우 3부 능선쯤에서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기왕 복지에 달려들었으니 우리의 처지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 달라.
송호근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