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칼럼을 쓰면서 자제해 온 것 가운데 하나는 대학에 대한 발언이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대해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따라서 발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은 대학 현실을 돌아보고 그 앞날을 고민하게 한다.
내 시선을 잡아 끈 사건은 세 가지다. 첫째, 얼마 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며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씨의 경우다.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고, 불의에 대한 저항을 꿈꿀 수도 없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걸 직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그녀의 용기를 마음 놓고 칭찬할 수도 없었지만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는 그녀의 비판을 철없는 객기로만 생각하는 것은 내가 공부해 온 사회학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정말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온라인매체 프레시안에 실린 한 고등학교 검정고시 졸업자의 발언이다. “그녀가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그놈의 대학에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는 그의 말은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그래도 김예슬씨는 무한경쟁의 트랙에서 앞서 달려가던 친구였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불평등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10대 후반 한번 획득한 문화자본인 학벌은 패자부활전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중앙대 사건 또한 그대로 지나치기 어렵다. 최근 중앙대는 실용학문 중심의 학제 개편을 추진함으로써 상당한 학내 진통을 겪고 있다. 며칠 전엔 학생 2명이 한강대교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다. 우리 대학이 시험을 위해 스펙 쌓기에만 급급한 그런 학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한 학생의 절규는 마음을 시리게 했다. 그 학생의 주장이 다수 의견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의 본령은 다수든 소수든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는 데 있지 않는가.
셋째, 얼마 전 연합뉴스 모 기자와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대학문화에 대해 통화한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조교에게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하니 조교의 답변이 의미심장했다. 불안해서란다. 도서관을 벗어나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가능한 한 도서관에 머문다고 한다. 자발성은 불안감의 또 다른 이름이며, 이 불안이 캠퍼스 곳곳에 떠돌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 세대가 ‘퇴출의 공포’를 안고 산다면, 자녀 세대는 ‘진입의 불안’ 앞에 서성거리는 게 대학 사회의 정직한 자화상이다.
시선을 잠시 밖으로 돌려보면, 이런 풍경이 물론 우리 사회만의 것은 아니다. 5년간 공부했던 독일대학의 경우 최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다. 자본주의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독일 대학의 평준화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신자유주의가 정말 세긴 세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2년간 연구했던 미국 대학은 본래 경쟁에 익숙한 제도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엔 더욱 경쟁력을 배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오늘날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사실 지구적 추세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 대학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을 포함한 기초학문을 홀대하지는 않는다. 경쟁력 제고라는 시대적 요구와 진리 탐구라는 본연의 역할은 이중적 과제이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는 이런 나의 주장을 절충적이라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기초학문에 기반하지 않은 실용학문은 이내 한계를 드러낼 것이며, 실용적 가치를 외면한 진리 탐구는 결국 대학의 사회적 고립화를 가져올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학의 탄생은 서양 중세 후기에 기원한다. 당시 대학은 교황도 국왕도 치외법권을 인정한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를 보면 주인공 바우돌리노는 신학과 철학의 중심을 이룬 파리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만물박사답게 에코는 강의실, 도서관, 선술집, 그리고 매혹과 절망의 연애에 이르기까지 당시 대학 생활을 생생히 묘사한다.
대학은 불변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식 또한 사회 속에 위치한 것인 만큼 지식의 내용과 방법은 사회변동에 부응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이란 말에 담긴 진리, 자유, 공동체의 가치가 적어도 대학 안에서는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개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정작 자유로운 진리 탐구가 소외되는 것을 더 이상 놓아둬서는 안 된다. 올바른 대학개혁을 위한 전 사회적 공론화를 요청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