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이 발표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자율화라는 기본 방향은 옳다. 그러나 ‘자율’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밝은 빛도 가지고 있어서 그 빛에 현혹되기도 쉽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가사유상처럼 반개(半開)한 눈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율화가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 효과가 정말로 나타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획일화된 것은 국가정책보다는 수능과 대입 성적을 중시하는 사회적 기대 탓이 더 크다. 따라서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화는 그나마 제공하고 있던 다양한 교과목 시수를 지키기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일부가 주장하듯이 정부가 내심 기대하는 것이 다양성이 아니라 ‘학교의 학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라면 이는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경쟁의 덫에 빠져 있는 우리 학교 상황에 비춰 바람직한 처방도 아니다.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이 기대하는 효과를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범학교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시키면서 문제점을 보완하고, 자율의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은 국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공통적인 역량을 길러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요구할 사항이 있고, 국가의 요구를 자유롭고 경쟁적으로 잘 달성할 수 있도록 단위학교에 부여할 자율권이 따로 있을 것이다.
단위학교 자율권을 확대할 때 또 하나 유념할 것은 자율권 확대가 가져올 부작용이다. 부작용은 자율권 확대로 인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강점이 사라지는 경우와, 지금까지는 없었던 문제점이 생겨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다. 학교·지역단위 교원 임용 제도 도입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학교정책 중에서 다른 나라에 수출할 만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교원 순환근무제다. “도서벽지 근무와 학교장 역량과는 무관하다”는 대도시 중심의 단순논리를 가지고 우수 교사들이 소외지역에 근무할 필요가 없게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원하는 교사를 따로 채용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국가가 원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진이 중단된 농어촌교육특별지원법을 마련해 유인을 제공하거나 소외지역 학교 근무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자치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자치가 보장되지 않는 속에서 추진되는 자율권 확대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주로 교장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도록 교장의 자율권만 확대하는 것은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학교조직의 특성과 책무성 주체를 감안할 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책임을 물어 학교장을 바꾸거나 행정·재정적 불이익을 준다고 해서 책무성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최종적인 피해는 해당 학교 재학생과 학부모가 받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원을 그 학교로 보낸 국가가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할 때 궁극적인 책무성이 확보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가의 이런 책임을 줄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학생·학부모 포함)의 자치권을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학교자치를 확대하기 전에 열악한 지역에 대해서는 자치가 가능하도록 기본 여건을 국가 차원에서 갖춰주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학교 자율화 추진 방안을 검토할 때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지방이나 학교에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국민이 보기에 원래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인데 국가가 지방이나 단위학교에 책임을 전가했을 경우에는 아무리 권한이 이양됐다고 강조해도 결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