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태 입력 2017.05.07. 19:25 댓글 179개
글로벌 기술경쟁 후끈
건물 전체를 한꺼번에 3D 프린팅..현장서 바로 '찍어내는' 방식 대세
미국, 지름 14m 돔 13시간만에 완성
중국, 한 채당 4800달러 집도 등장
국내 3D 프린팅 건설은 걸음마..소형주택 2020년쯤에나 가능할 듯
[ 박근태 기자 ]
세계 인구는 늘고 있지만 거주 공간은 한정돼 있다. 1인 가정이 늘면서 주거 건물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는 3차원(3D) 프린팅에서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집채만 한 3D 프린터 하나면 소형 주택 여러 가구를 불과 몇 시간 안에 뚝딱 ‘출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2020년께면 개인 주택 건설 현장에 3D 프린터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중국에선 3D 프린터로 하루 만에 집을 지어 파는 사업이 주목 받고 있다.
○설계도만 있으면 하루 만에 집 뚝딱
건설용 3D 프린터 원리는 일반 프린터와 비슷하다. 일반 프린터 헤드가 잉크로 종이 위에 그림을 출력하듯 크레인에 매달린 헤드가 건물 설계도에 맞춰 왔다 갔다 하면서 콘크리트나 건축 재료를 쌓아 올리는 원리다. 3D 프린팅 건설 기술이 주목 받는 이유는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로 건물을 지으면 사람이 짓는 것보다 공사 기간을 최대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건축 자재를 공사 현장으로 옮기고 현장에서 가공하는 기존 방식보다 공정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3D 프린팅 건축 부문에선 시간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지난달 말 자유롭게 움직이는 긴 형태의 로봇팔을 개발해 13시간30분 만에 지름 14.6m, 높이 3.7m 돔 구조를 제작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콘크리트 거품을 분사할 수 있게 설계된 로봇팔은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한층 한층 콘크리트를 쌓아 올린다. 지금까지 단일 로봇이 지은 3D 프린팅 건축물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중국의 건축회사 윈선은 이미 3D 건축 분야에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 대형 크레인에 달린 3D 프린터를 이용해 하루에 길이 32m, 높이 10m짜리 주택 10가구를 지었다. 재료는 주로 산업폐기물에서 얻기 때문에 주택 한 가구 가격은 4800달러에 머문다. 지난 3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용 3D 프린터 100대를 빌려주는 15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현장서 출력하는 일체형 방식 대세
건설에서 사용되는 3D 프린팅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공장에서 3D프린터로 건물의 주요 구조물을 출력해 현장으로 가져가 조립하는 ‘모듈형 출력 방식’이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 방식은 조립한 부분을 통해 물이 새거나 강도가 약하고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는 지적이 있다.
대안으로 공사 현장에 3D 프린터를 직접 설치하고 건물 전체를 한꺼번에 찍어내는 일체형 출력방식이 주목 받고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국도 이 분야를 주목하고 곳곳에 전용 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러시아 건설벤처인 아피스코어는 올 2월 모스크바 스투핀스키구에 실증 단지를 만들고 건설용 3D 프린터로 넓이 38㎡ 규모의 1층짜리 단독주택을 지었다. 콘크리트 혼합물로 벽과 지붕을 먼저 짓고 공사 인부를 투입해 문과 창틀을 달아 완성하는 데 24시간이 걸렸다. 회사 측은 “러시아에서 연중 가장 추운 날 지은 이 집의 수명은 175년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싸고 환경친화적인 소재 개발이 관건
3D 프린팅 건설 기술에서 온도와 습도에 잘 견디는 재료를 발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도가 높은 티타늄을 출력하는 기술을 포함해 건물 대들보로도 사용할 수 있는 항공기용 알루미늄 날개를 출력하는 서비스가 이미 시작됐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진은 향후 3D프린터에 사용할 목적으로 자가 보수·치유 능력이 있는 바이오콘크리트를 개발했다. 일반 콘크리트보다 네 배 단단한 이 콘크리트는 최대 수명이 100년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론 공사 현장에서 쉽게 조달하거나 버려진 산업폐기물을 3D 프린터용 건축 재료로 쓰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의 3D 프린팅 건설기술을 주도하는 윈선사는 중국 100곳에서 건설폐기물을 수집해 변환시키는 공장을 중국 전역에 짓고 있다.
유엔은 2030년 세계 곳곳에서 30억명 이상이 자기가 살 집을 구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제조 강국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3D 프린팅 건설기술을 주목하는 이유다.
반면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해 가로·세로 10m, 높이 3m의 소형 건축물을 찍어내는 기술을 2020년까지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세계 건설 시장에서 자유로운 곡선이 강조되는 비정형 빌딩이 주목 받으면서 안전하고 비정형인 공법을 확보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며 “3D 프린팅 기술도 이런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