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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교육에 미래 달렸다 <상> 한 발 늦은 공교육
지난 7월 서울 대치동의 한 컴퓨터 학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는 최모(16)군이 어머니와 함께 “속성으로 코딩(Coding)을 배우고 싶다”며 학원을 찾았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월스트리트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할 거예요. 그러려면 컴퓨터공학 복수 전공이 필수예요. 요즘은 투자도 다 인공지능(AI)이 하잖아요.”
서울 대치동의 한 컴퓨터 학원에서 원장(오른쪽)이 중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이 학원은 1년 전보다 여름방학 수강생이 5배 정도 늘었다. 학원장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에 학부모 문의가 크게 늘었다. 해외에서 코딩 교육 바람이 세다 보니 국제고를 다니는 학생도 꽤 많다”고 설명했다.
SW도 부의 대물림…‘코딩 푸어’우려
4년 뒤 컴퓨터 직업 55% 늘어
빈곤층 자녀 PC방서 게임할 때
부유층은 게임 만드는 법 배워
중학교 SW교육, 경기 48% 울산 2%
관련 직종 여성 비중도 13% 그쳐
“컴퓨터·인터넷망 예산 전액 지원을”
강원도 원주의 문과생 윤모(18)군은 자타 공인 게임 마니아다. 하루에 보통 5시간 이상 컴퓨터 게임을 한다. 컴퓨터 앞에서 살다시피 하지만 게임 말고는 컴퓨터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코딩을 배워 게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코딩이 뭐냐”고 되물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학교에 컴퓨터 수업도 없고 이 동네엔 학원도 없고요.” 윤군의 장래 희망은 “안정적이니까 공무원”이다.
공교육을 믿지 못하니 찾을 곳은 사교육 시장이다.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코딩 사교육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제는 여건이 안 돼 코딩 사교육 시장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다. 사교육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격차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코딩 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이 미래 일자리 시장에서 차별받는 ‘코딩 푸어(Coding Poor)’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코딩이 미래 사회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힐 거란 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컴퓨터 관련 직업 자체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의 코딩 교육 단체 코드닷오알지(Code.org)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선 컴퓨터 관련 직업이 140만 개로 지금(90만 개)보다 55% 늘어난다. 그러나 같은 해 배출될 컴퓨터 전공자는 40만 명에 불과할 걸로 예측된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이들만 코딩을 배우는 게 아니다. 꼭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더라도 소프트웨어 만드는 법을 알면 여러 업무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이민석 국민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코딩을 아는 변호사나 의사는 자기 업무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도움이 될지, 이를 어떻게 설계해 도움을 받을지를 떠올릴 수 있다”며 “프로그래밍을 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체계를 갖춘 컴퓨터적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사교육은 서민이 접근하기엔 너무 비싸다. 서울 강남구의 한 유치원은 만 3세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월 수강료 100만원이 넘는 수업을 실시한다. 기자가 방문한 대치동의 학원은 방학 속성 교육이 3시간에 40만원. 원장은 “보통 16회 정도를 기본으로 수강한다”고 말했다. 보름 남짓한 수업에 640만원을 내는 것이다.
지역별 격차도 심하다. 본지가 전국 3204개 중학교의 지난해 정보·컴퓨터 과목 선택 비율을 조사해 보니 경기도(47.5%)와 대구(41.9%)는 절반 가까운 학교가 컴퓨터 교육을 이미 실시하고 있었지만 울산(1.6%)과 대전(5.7%), 강원도(8.0%)는 학교 열 곳에 한 곳도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지 않았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교육학과 교수는 “운이 좋아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배운 학생들은 디지털 경제에선 더 유리한 입장에 놓일 확률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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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와이파이 안 되는 SW시범학교 “컴퓨터 없어 칠판 수업”
성별 격차도 컴퓨터 교육학계의 큰 숙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 컴퓨터·통신 관련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 2만1429명 중 여학생은 5799명(27.1%)에 불과하다. 성균관대가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코딩 교육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야 놀자’의 지원자 역시 남녀 비율이 8대 2 정도다. 지난해 한국의 소프트웨어 관련 직종에서 여성 인력은 12.5%로 미국(22.9%)과 영국(19.1%) 등에 크게 못 미쳤다.
전문가들은 민관이 힘을 합쳐 코딩 교육을 전담 지원할 조직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국회가 나서 수업 시수(時數)와 시설 관련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수업 시수는 최소한 지금의 두 배로 확보하고 컴퓨터와 인터넷망 관련 예산은 학교 운영비와 상관없이 충분히 밀어줘야 한다”며 “교육 현장에 전문성 있는 교사가 부족한 문제는 컴퓨터를 전공한 젊은 학생들에게 교직 이수의 기회를 늘려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