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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리우 올림픽 중계가 불편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6.08.22 00:40   수정 2016.08.22 00:57

졌다고 울먹이고 성차별 발언도

애국주의와 금메달 집착 지나쳐
이젠 결과와 과정 함께 즐길 때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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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

‘스포츠는 스토리다’. 스포츠의 의미를 이처럼 적확하고 시원하게 전달하는 문장도 드물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중앙일보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적어도 스포츠에서 감동을 찾고자 하는 한 수정의 여지가 없다. 스포츠의 감동은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한다. 거기서 희로애락의 보편적 감정이 선수의 몸을 통해 날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 리우 올림픽은 이 감동의 양과 질이 예전 같지 않다. 금메달 개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시상대의 가장 높이 게양되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불러오는 즉물적인 감정은 감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스포츠의 감동은 경기의 전 과정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의 몸을 통해 전달된다. 긴장과 흥분, 안도와 불안, 자신감과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의 교차, 이런 미묘한 감정이 모두 선수의 움직임에 뒤엉켜 있다. 그래서 선수의 몸은 현존재를 드러내는 실존의 기호가 되며, 이런 까닭에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올림픽 중계는 늘 이 이야기의 전달에 실패해 왔다. 대부분의 금메달은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각성의 시청자들에게 주입된 것은 민족과 국가의 자긍심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시청자가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엄숙한 애국주의와 금메달 수의 자랑뿐이라면 불행하다. 금메달과 국민의 행복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스웨덴과 핀란드는 행복하지 않거나 애국심이 부족한 국가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나라들이 더 편하게 올림픽을 즐길지 모른다. 국격이란 차분히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정도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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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우 올림픽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상파의 애국주의 경쟁과 정제되지 못한 감정적 중계방송이 영 편치 못한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온두라스와의 축구 8강전에서 모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울먹이며 패배의 소식을 전하더니, 펜싱의 중계진은 경기와 무관한 여성 선수의 신체를 지적하는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오죽했으면 막말이 편집될 정도까지 이르렀을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해설가의 도를 넘은 감정이입이다. 선수의 실수를 지적하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와 승리를 재촉하는 내용 없는 해설은 열대야의 짜증을 한층 부채질했다.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돌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잘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아니죠. 물러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정신력의 승부입니다.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자동재생기처럼 반복되는 이런 멘트들은 해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응원에 가깝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후배이거나 제자이기도 한 선수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때로 편파적이고 가족적인 해설은 애국의 감정을 고취하는 흥분제이기도 했다. 적어도 ‘빳데루 아저씨’의 시절은 그랬다.

그러나 어느새 국민은 그런 해설에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4년마다 모든 지상파가 메달 사냥의 현장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전달한 덕분에 이제 국민도 효자 종목의 경기 형식과 전략, 심지어 선수의 당일 컨디션까지 파악하는 눈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세계의 톱 레벨과의 거리와 탈락의 지점까지 짐작하는 감식안마저 갖게 되었다. 행운과 불운, 실력과 중과부적, 전략의 부재까지 분간할 줄 아는 국민에게 흥분과 장탄식으로 일관하는 시대착오적인 해설은 이제 사양하고 싶어진다.

스포츠와 현실의 경계는 명확하다. 스포츠는 다만 신체적 탁월성을 겨루는 문화의 한 장르일 뿐이다. 이런 구분이 흐릴수록 민족주의의 즉물적 자극이 준동한다.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다양함과 경이로움을 즐기는 인류의 축제다. 언제 우리가 우사인 볼트와 마이클 펠프스, 손연재와 박인비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인간의 신체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해설가는 그 아름다움을 깨우쳐 주는 조언자에 불과하다. 감추어진 해당 종목의 매력을 설명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해설가의 몫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 유려한 말솜씨가 갖춰져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기준은 철저하다. 영국의 BBC가 미국의 마이클 존슨에게 육상의 해설을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로 해설가의 멘트가 방해로 작용하는 종목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의 단독 진행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그게 훨씬 경기의 몰입을 돕는다. 가까운 일본은 상업방송의 호들갑과 공영방송의 차분함으로 양극화돼 있지만 NHK의 해설은 객관적이고 차분하며 분석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해설은 시청자를 앞질러 가지 않는다. 그래야 편안히 경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편안하게 올림픽을 즐기자.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소치의 김연아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해설가의 멘트가 거슬리면 ‘음소거’를 누르고 김연아를 보듯 세계적 스포츠 축제의 퍼포먼스를 감상하자. 어깨의 힘을 빼고.

김정효 서울대 체육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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