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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⑤ '지혜의 보고' 신화 …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3.09.10 00:21 / 수정 2013.09.10 00:49

남의 눈물 닦아준 적 있나 … 약육강식이 다는 아니다
이타적 유전자가 인간의 조건
『일리아드』『꾸란』『공통된 가르침』남의 아픔 느낄 때 신성 드러나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상대방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 … 죽음 앞둔 할머니도 희망의 존재

배철현 교수는 대중과 소통하는 종교학자다. “서양 전통에서 대화 자체에 답이 있는 건 아니다. 대화를 통해 내가 변화할 준비를 하는 거다. 내가 변화하기 위해서 상대를 만나는 거다”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신화는 문화의 뿌리다.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알면 서양 문명과 종교가 보인다. 가령 그리스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흙으로 아담을 빚은 성경 속 이야기와 통한다.

 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배철현(51·종교학) 교수를 만났다. 그의 전공은 서양신화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샘족어(히브리어·아람어·페니키아어·고대 페르시아어 등)를 공부했다. 신화와 고대 언어, 그 뿌리를 훑으며 그는 인간을 들여다봤다. 아픔과 행복에 대한 오래된 메시지가 그 안에 있었다.

 배 교수는 한때 목사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3년간 시골에서 목회도 했다. 교회 신자 중에 98세의 할머니가 있었다. 에버린 젠넬. 그는 70년간 그 교회에 출석했다. 늘 교회 맨 뒷자리에 앉았다. 빈 자리만 보여도 누가 왜 안 왔는지 꿰고 있었다. 그는 젠넬과 함께 심방(목회자가 교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다녔다. 매주 목요일 양로원을 찾았다.

 하루는 전화가 왔다. 젠넬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달려갔더니 젠넬은 “가족은 다 나가고 배 목사만 남으라”고 했다. “내 심장은 100년간 뛰었다. 이제 멈출 때가 됐다. 나는 이대로 죽고 싶다. 그런데 가족이 심장조영술을 하자고 한다. 나는 정말 싫다. 나가서 내 자식들을 설득해달라.”

 배 목사는 난감했다. 98세라 심장에 관을 넣는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못하겠다”고 말하곤 병원을 나왔다. 뜬 눈으로 밤을 샜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심방을 다니면서 쭉 지켜봤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양로원 할머니들을 위해 존재하더라. 그들을 위한 삶, 그게 당신의 행복이더라. 수술을 받으면 좋겠다.”

 그말을 듣고 젠넬은 기꺼이 수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02세까지 4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을 뜬 배 교수는 “이게 바로 ‘이타(利他)적 유전자’”라고 말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했던 ‘이기적 유전자’를 그는 정면에서 반박했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은 분명한 과학적 성과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 다윈은 삶이 전쟁터라고 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그게 왜 문제인가.

 “말이 새끼를 낳으면 30분 만에 걷는다. 인간은 1년이 걸린다. 왜 그런지 아나. 1년 먼저 태어나기 때문이다. 70만 년 전에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뇌가 엄청나게 커졌다. 600㏄에서 1300㏄가 됐다. 인간의 뇌가 커져서 어머니의 자궁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자, 미리 나오는 거다.”

 - 그만큼 미숙한 건가.

 “원숭이를 보라. 갓 태어난 새끼도 어미 원숭이의 털을 붙들고 혼자서 젖을 먹는다. 그런데 인간은 미숙한데다 털도 없다. 어머니가 자나깨나 안아서 젖을 먹여야 한다. 모든 인간의 생존은, 날 위해서 목숨을 바친 다른 어떤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다. 그게 우리 몸 속에 흐르는 이타적 유전자다. 이게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한다.”

 배 교수는 고대 언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전문가다. 그는 아랍어로 짧은 문구를 낭송했다. “비스밀라~히르 라흐마니 라힘” 이슬람 경전 『꾸란』의 114장이었다.

 - 무슨 뜻인가.

 “‘자비가 넘치고 항상 자비로운 알라(하느님)의 이름으로’란 뜻이다. 꾸란 114장이 모두 이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자비’가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다. 어머니가 뭔가. 두 살짜리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면 자기도 아픈 거다.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아는 거다. ‘꾸란’에서 말하는 신의 특징이 뭔지 아나. 인간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아는 신만이 유일하다는 거다. 그걸 유일신이라고 불렀다. 그게 모세가 발견한 신이고, 무함마드(모하메트)가 발견한 신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이 신만 섬겨라’가 아니다.”

 - 남의 아픔을 아는 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자아라는 박스에 갇혀서 살아간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그 박스가 깨진다. 왜 그럴까. 자아의 확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확장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진다. 그래서 고전 속의 성인과 현자들은 하나같이 ‘박스에서 나오라(Think out of the box)’고 말한다.”

 배 교수는 그리스 신화를 하나 꺼냈다. “내게 서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다. 450년간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다. 모두 6음절로 된 노래, 일종의 서양 판소리다. 그 중에서도 ‘일리아드 24장’이 압권 중의 압권이다.”

 일리아드 24장은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담이다. “아킬레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였다. 시신을 마차에 매단 채 달리며 찢어버렸다. 사건은 밤에 일어났다. 아들을 잃은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목숨을 내걸고 아킬레스의 숙소로 들어왔다. 깜짝 놀란 아킬레스에게 그는 말한다. ‘내겐 5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49명이 죽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이 헥토르였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네가 죽여버렸다. 오~나는 불행하다. 고향 땅에 있는 너의 아버지도 네가 살아있다는 소식 때문에 기뻐할 거다. 내게는 이제 그런 아들이 없다. 시신이라도 돌려다오.’그 말을 들은 아킬레스의 반응이 포인트다.”

 - 아킬레스가 어떻게 했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기 아버지가 생각난 거다. 만약 자기가 죽었다면 자신의 아버지도 똑같이 했을 거라는 거다. 그 장면이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스와 프리아모스가) 상대를 보며 서로 신처럼 여겼다’고 기록돼 있다.”

 - 그게 왜 신처럼 여기는 건가.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됐으니까. 그때 우리 안에 숨겨진 신성(神性)이 드러나는 거다. 이게 행복의 열쇠다. 결국 아킬레스는 시신을 돌려줬다. 당시에는 장례식 때 시신이 없으면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이건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통틀어 최고의 장면이다. 이게 바로 ‘컴패션(Compassion·연민)’이다.”

 - 이 신화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전쟁의 승자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승자가 진정 누구인가를 묻는 거다.”

 - 그럼 누가 인생의 승자인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승자가 아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거다.”

 - 자신의 아픔만 해도 벅차다. 어떻게 남의 아픔까지 감당하나.

 “그게 우리의 착각이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고통이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아니다. 오히려 나의 아픔이 치유된다. 상대방의 아픔을 직시할수록 나의 아픔을 직시하는 힘이 더 강해진다.”

 - 그 힘이 강해지면.

 “그럼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 자신이 사는 섬만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다르다’고 부르지 않고 ‘틀렸다’고 본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기독교인인가. 우리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라서다. 만약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면 난 이슬람 신자가 됐을 거다.”

 배 교수는 ‘다름’을 강조했다. “서양 전통에선 ‘다름’을 신(神)이라고 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이웃은 사실 적(敵)을 의미했다. 나와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거라 했다.”

 - 어떨 때 그게 가능한가.

 “자아의 박스가 깨질 때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출세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공부는 그런 게 아니다.”

 - 그럼 어떤 게 공부인가.

 “공부는 다른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게 식물학이다. 코끼리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 그게 동물학이다. 내가 왜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나. 그를 통해 나를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나를 볼 때 자아의 박스가 깨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

배철현 교수의 추천서

“1000년간 베스트셀러를 고전이라 부른다. 고전 1만권 중에서 10권 정도가 경전이다. 그걸 갖고 종교를 만들었다. 그럼 경전이 왜 위대한가. 문자 사이의 행간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배철현 교수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에도 적극적이다. 그가 추천한 책들도 제도화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평소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자비를 말하다(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돋을새김)=현존 최고의 종교·문명 비평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인류 최고의 가치를 자비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자비를 실천 할 수 있는 12단계를 감동적으로 안내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지음, 소나무)=인간은 남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평생 허둥대다가 삶을 마치기 쉽다. 철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을 일러준다.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욕망은 무엇인가.

◆명묵(明默)의 건축: 한국 전통의 명건축 24선(김개천 지음, 관조 사진, 컬처그라퍼)=우리도 모르는 한국인의 위대함을 한국 전통 건축 24선을 통해 발견하는 책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전통 건축에 투영된 우리 자신의 지적 통찰을 아름답게 소개한다. 우리에게 숨겨진 한국인의 예술적 DNA(유전자)를 확인하면 감격하게 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철현 교수=연세대 신학과 졸업. 하버드대에서 고대근동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대언어를 바탕으로 서양의 신화와 종교 원전을 연구했다. 저서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신들이 꽃피운 최초의 문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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