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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올림픽 소고[중앙일보] 입력 2012.08.18 00:05 / 수정 2012.08.18 00:05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우리 국민들을 잠 못 자게 하고 열광케 했던 17일간의 런던 올림픽 드라마는 끝났다. 유난히도 덥고, 짜증났던 이번 여름 날씨를 국민들은 연일 터져 나오는 메달 소식으로 견딜 수 있었다. 종합순위 5위. 한국이 이뤄낸 놀라운 성적이다.

 이제 열광과 환호를 식히고 우리가 어떻게 이런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지 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경제력 15위, 인구 25위인 한국이 어떻게 이런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가? 한국인의 체력이 우수해서? 한국인이 특별히 우수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서? 아니면 스포츠가 한국민의 일상생활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이 모두에 쉽게 고개가 끄떡여지지 않는다.

 실제로 스포츠의 생활화라는 면에서 우리 국민은 크게 뒤진다. 유럽과 미국의 청소년들이 매일 운동장에서, 체육관에서 쏟는 땀과 시간에 비해 우리의 청소년들이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턱없이 짧고, 평균 체력은 크게 떨어진다. 한참 뛰어놀고 체력을 쌓아야 할 때에 온갖 과외공부로 주눅이 들고 중·고등학교의 운동장은 텅 비어 있기 일쑤다.

 우리의 올림픽메달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태릉선수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메달 획득을 위해 전략적 계획을 세우고 강력한 유인체계를 선수들에게 제공해 왔다. 포상금, 연금, 병역면제 등이 그것이다. 펜싱, 양궁, 사격 등은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분야에서 많은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메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선수를 양성하고 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올림픽을 순수 스포츠정신으로 접근했던 것이 아니다. 국가의 위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어쨌든 좋다. 올림픽 5위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땀 흘려 쌓았던 기량을 있는 힘을 다해 발휘해준 우리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선사한 기쁨과 행복감, 자긍심을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다시 분명히 확인한 중요한 사실은 바로 국가와 사회가 제공한 보상, 유인체계에 따라 우리는 다른 모습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 사회모습이 있으면 이를 유도할 수 있는 보상, 유인체계를 제공하여 이를 일관되게 집행하면 국민들은 반드시 이에 반응하고 결국 그 목표대로 움직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태릉선수촌 설립과 올림픽메달 포상제도가 바로 오늘날의 성과를 가져왔듯이.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문제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된 보상, 유인체계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해 내고 이를 어떻게 바꾸어 놓아야 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높은 경제력 집중, 널리 퍼진 부패, 지나친 과외 열기, 배금주의, 무질서한 주차질서, 양극화의 심화, 불법 시위의 일상화 등은 결국 모두 그동안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보상, 유인체계가 낳은 결과다. 주민들이 반발한다고 불법주차를 단속하지 않고, 민심을 고려해 불법시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무질서한 주차, 불법시위의 만연으로 시민 모두가 불편한 삶을 살게 된다.

 학벌이 사회에서의 출세와 성공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한 어떤 입시제도를 도입하든 과외 열기는 식지 않을 것이다. 세제와 복지제도가 부와 가난을 대물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면 계층의 고착화와 양극화는 점점 심해질 것이다. 국가가 직업관료제도를 채택하며 지나치게 낮은 보수를 제공하면 이들이 기업의 유혹과 각종 이권에 더 취약하게 노출되게 한다. 법조인, 정치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삶은 현실이니 이들의 작은 부패를 일일이 다스릴 수도 없으며 전관예우, 스폰서, 떡값이 사회의 관행으로 되어버리면 정의와 공정성은 자주 뒤로 밀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자리잡게 된다. 돈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으로부터 변해야 한다면 지금의 모습을 가져오게 된 보상, 유인체계를 먼저 바꾸고 이를 일관되게 시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정치가 중요하다. 정치가 제도와 법을 바꾸고, 거기에 따라 우리 사회의 보상, 유인체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런 실질적 변화를 위해 후보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모호한 구호들과 세 과시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지금의 보상, 유인체계를 바꾸어야 미래의 우리 사회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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