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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6.01.31 11:20
라제시 찬디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핵심 고객 재정의가 혁신의 기본"
 라제시 찬디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한때 세계 1위 사진 필름 회사였던 코닥은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물결 속에 무너졌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고도 말이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연 회사가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망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얘기다.라제시 찬디(Chandy·47)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흔히 코닥이 디지털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정상에서 추락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코닥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회사의 핵심 고객을 잘못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코닥이 생각한 주 고객은 디지털 사진을 찍을 개인이 아니라,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사진 현상소였습니다. 현상소들은 코닥이 디지털과 관련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큰돈 들여 기계를 샀는데 누구 사업 말아먹게 할 일 있냐'며 반발했습니다. 코닥은 주력해야 하는 고객군이 달라졌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개인용 디지털 카메라를 팔아야 했습니다. 핵심 고객을 재(再)정의하지 않고 기존 시장에 안주한 게 코닥의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찬디 교수는 2013년 '최고의 경영 사상가 50인(Thinkers 50)'에 이름을 올린 경영 이론가다. 기업 혁신, 마케팅, 기업가 정신 등을 주로 연구했으며, 3M, 마이크로소프트, 필립스, 도이체텔레콤 등 글로벌 기업에서 혁신 전략에 대해 강의해왔다. 2006~2008년에는 미국 상무부 산하 혁신평가자문위원회에서 미국 경제의 혁신 수준을 평가하는 작업을 맡았다.찬디 교수는 "내 고객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혁신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기업은 사업 환경 변화에 따라 회사가 집중해야 하는 핵심 고객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핵심 고객을 끊임없이 재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런던비즈니스스쿨 연구실에서 찬디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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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고객 재정의가 혁신의 기본은행이 돈 안되는 대상으로 볼때엠페사는 빈곤층도 거대한 소비층으로 정의해 성공코닥이 망한 것은개인을 핵심 고객으로 못 보고사진 현상소만 바라본 게 실수
―핵심 고객을 재정의하는 것을 혁신의 중점으로 보셨습니다."한국에서 저에게 돈을 보낸다고 합시다. 보통 어떻게 하나요? 우선 은행을 통해야 할 겁니다. 인터넷 뱅킹이든 모바일 뱅킹이든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죠. 아프리카 케냐에는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 머니 서비스가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돈을 주고받는 서비스입니다. 은행 계좌는 필요 없습니다.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해 간단히 상대방에게 돈을 보낼 수 있습니다. 2007년 서비스 출시 이후 현재 케냐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엠페사를 쓰고 있죠. 보통 인터넷 송금 서비스는 은행을 고객으로 생각해 이들과 제휴하려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엠페사를 출시한 케냐 통신사 사파리콤과 영국 보다폰은 엠페사의 고객을 케냐 국민 전체로 정의했습니다. 사실상 대다수 케냐 국민이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케냐인들은 돈을 집 안에 보관하고 다른 지역에 송금할 때는 버스 운전사에게 부탁하곤 했습니다. 사파리콤과 보다폰은 기본적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었던 케냐 국민의 절실함을 꿰뚫어봤습니다. 당시 케냐의 은행은 이들을 '금융 소비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돈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로만 봤죠."―그렇다면 빈곤층이 주 고객이란 얘긴데 수익은 나나요?"빈곤 국가라고 해서 기부나 원조 대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빈곤층에 속한 개인은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전체로 보면 거대한 소비자층이 됩니다. 엠페사 서비스는 2009년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작년엔 매출을 약 3800억원 올렸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엠페사는 은행이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습니다."―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던 빈곤층을 주력 고객으로 재정의해 혁신에 성공한 것이군요."그렇습니다. 혁신(innovation)은 발명(invention)과 다릅니다. 발명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것이고 혁신은 새 아이디어를 소비자의 생활 깊숙이 침투시키는 것입니다. 흔히 혁신이라고 하면 새로운 것, 새로운 방식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동시에 상업화까지 이뤄져야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파리콤과 보다폰은 모바일 송금이란 새 아이디어와 기술을 활용해 은행을 대상으로 돈을 벌려 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을 이용할 수 없던 사람 모두를 고객으로 삼았습니다."―고객을 재정의하려면 고객이 바뀌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경영자가 새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소비자와 산업의 빠른 변화 속도에 뒤처지면 안 됩니다. 경영자 스스로가 모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어느 곳을 보고, 누구에게 어떤 조언을 받을지를 알면 됩니다. 인내심도 있어야 합니다.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개발·출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4D 카메라를 개발했더라도 소비자가 당장 원하지 않고 기꺼이 돈을 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죠. 투자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도 진전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는 계속 일어납니다. 혁신은 흥분, 공포 등이 모두 나타나는 긴 과정입니다. 시장이 준비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기존 사업이 잘될수록 고객이 재정의되는 변화에 무뎌지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그런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면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회사가 잘나갈수록 오만함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는 데 신경 쓰기보다는 늘 그다음을 생각해야 하죠. 지금 잘 팔리는 제품보다는 앞으로 어떤 걸 팔아야 할지를 얘기하는 겁니다. 미래 소비자는 어떨지, 지금과 어떻게 다를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애플의 음악 파일 플레이어 '아이팟'은 출시 후 바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시장을 평정하는 데 몇 년이 걸렸죠. 아이팟은 한때 애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누가 퇴출시켰을까요? 바로 애플 스스로입니다. 애플은 기존 제품 잠식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키웠습니다. 아이팟의 목적인 음악 듣기 기능은 아이폰에 흡수됐습니다. 아이폰 고객은 아이팟 시장의 고객보다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합니다.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어도 새로운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제 케냐에서는 엠페사 모바일 머니 서비스를 이용해 휴대전화로 돈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됐다. / 블룸버그
-지키기보다 미래를 생각하라'아이팟' 퇴출시킨 건 애플 자신잘 나가던 상품 대신아이폰으로 광범위한 고객 잡아1980년대 컴퓨터 제조사 DEC는"집에서 누가 컴퓨터 쓰겠나"개인 고객 공략 실패
―핵심 고객 재정의에 성공한 회사보다는 실패한 회사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리더 역할이 중요합니다.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혁신을 묵살해 회사의 미래를 망친 경영자가 다수입니다. 1980년대 DEC(디지털 이큅먼트 코퍼레이션)는 컴퓨터 제조업체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후 사세가 기울어 1998년 컴팩에 팔렸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당시 컴퓨터 산업은 개인용 컴퓨터(PC)로 시장 중심이 빠르게 옮아가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공략해야 할 핵심 고객도 바뀌고 있었다는 뜻이죠. 그러나 켄 올슨 DEC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집에서 컴퓨터를 쓰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죠. 그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PC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찬디 교수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회사의 혁신에 CEO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성공적 변신을 이끄는 CEO와 그러지 못하는 CEO는 뭐가 다를까? 그는 "평소에 얼마나 미래를 생각하는지가 큰 차이를 만든다"고 말한다."CEO는 회사 방향을 정하고 이끌어가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흔히 CEO가 앞날을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낼 거란 인식이 있죠. 그러나 연구 결과 실제로 CEO가 장기 전략에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은 아주 적었습니다. 임원들에게 CEO가 미래 고객과 경쟁자, 유망 기술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만 물어봐도 CEO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앞날을 생각하는 CEO의 말에서는 '미래, 예상, ~하겠다' 같은 미래형 단어가 자주 들립니다. CEO가 과거 어떤 부서에서 근무했는지도 미래를 생각하는 정도에 영향을 줬습니다. 회계 등 지나간 일을 더 들여다보는 부서보다는 마케팅이나 연구개발(R&D) 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CEO가 앞일을 계획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평소에 미래를 생각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를 확인해보세요. 생각보다 적을 겁니다. 매일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더라도 늘 미래를 생각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무시하고 결국 회사를 몰락의 길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일부러라도 생각할 시간을 만드세요.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영할 당시 1년에 두 번 '생각하는 주'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숲 속 오두막에 틀어박혀 회사의 미래 전략을 구상했죠."―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족하지는 않을 텐데,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까요."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을 간파하고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 소비자가 원하게 될 것을 눈앞에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고급차 소비자 중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테슬라는 서비스 센터 바닥을 과감하게 흰색으로 꾸몄습니다. 전기차는 바닥에 기름이나 이물질이 새는 일이 없다는 걸 은연중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기존 딜러망도 없앴습니다. 테슬라의 '모델 S' 전기차는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은 후 제작됩니다. 테슬라는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 온라인 검색부터 해보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직접 차를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쇼핑몰에 임시 전시장을 설치하죠. 이곳 직원은 테슬라 전문가이긴 해도 차를 팔지는 못합니다. 이전과 다른 생태계를 창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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