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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단독] “인류 5번 걸쳐 대륙간 대이동,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

[중앙일보] 입력 2016.09.22 02:30   수정 2016.09.22 16:10

하와이대팀, 네이처에 새 학설 제시
10만년 전 아라비아 반도 정착 땐
사막 줄고 수온 올라 식물 번성
유라시아로 갈 땐 빙하기 끝나
유럽 간 일부는 아프리카 U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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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저서 『호모 노마드(Homme Nomade)』에서 인류를 “정처 없이 유랑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인류가 미지의 세계를 찾아 유랑하는 건 500만 년 동안 유전자에 기록된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주로 언제 대이동(migration)을 감행했을까. 이들은 왜 안전한 주거지를 버렸고,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액슬 티머먼 미국 하와이대 해양학과 교수팀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했다.

특히 이 논문은 인류가 최초로 유럽에 정착한 시점을 기존 6만 년 전에서 8만~9만 년 전으로 수정했다. 또 인류의 확산 경로에 대한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인류가 단일 방향(아프리카→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으로만 이동했다는 가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일부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되돌아왔다는 학설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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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먼 교수

놀라운 것은 이렇게 컴퓨터가 추정한 이동 경로가 그간의 지구과학적 증거와 고고학적 사료, 그리고 유전자분석 결과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기후변화 모델을 적용해 인류의 분포(인구밀도)를 추론하고 인류의 이동 과정을 연도별로 복원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미국 유전학자들은 유전자(DNA) 연구로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아프리카에서 살던 인류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밝히기 위해 하와이대 연구팀은 ‘기후학 모델’을 도입했다. 기상청이 수퍼컴퓨터에 변수를 입력해 날씨를 예측하듯, 연구팀도 이 모델에 다양한 변수를 대입했다. 주요 변수는 인간이 수렵·채집할 수 있는 식량과 수자원, 기온 등이다. 예컨대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 이베리아 반도의 강수량과 습도 데이터를 입력하면 식량이 어느 정도 존재했는지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요인이 충분한 지역은 인구밀도가 증가하고, 반대로 이런 요인이 부족하면 인구밀도가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이런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의 조상(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구밀도를 정량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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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결과,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는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대이동을 감행했다. 첫 번째는 12만5000년 전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벌어졌다. 10만 년 전엔 처음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했고, 8만~9만 년 전에는 남부 유럽과 남중국에 진출했다. 인류가 유럽에 최초로 정착한 시점은 6만 년 전이라는 기존 학설이 뒤집힌 순간이다. 네 번째 대이동은 약 6만 년 전에 벌어졌다. 이때 인류는 최초로 오세아니아 대륙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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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처녀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에는 약 1만4000년 전에 본격 진출했다. 특히 세 번째 이동 당시 호모 사피엔스 일부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되돌아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동저자인 토비어스 프리드리히는 네이처에서 “인류가 단일 방향(아프리카→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으로만 이동했다는 고고학의 가설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처가 이 논문을 게재한 건 바로 연구팀의 결과가 지질학적 증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문이 주장하는 인류 대이동 다섯 번의 시점엔 공통적으로 급격한 지질학적 변화의 증거들이 있다. 다섯 번 모두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비율이 급감했고, 수온이 상승했으며, 이주를 쉽게 하는 식물 분포가 급격히 증가했다.

빙하 이동 시점과도 일치한다. 예컨대 1만2000년 전엔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됐다. 빙하가 녹으면 평균기온이 2~3도 상승하고 열대·아열대 지역 식물이 급격히 번식한다. 당시 이집트 북부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 바다에 식물들이 번성했다는 증거를 화석이나 고고학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번 분석은 딱 그 시점에 인류가 유라시아 반도로 건너갔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편 이번 연구를 수행한 액슬 티머먼 교수는 내년 1월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연구단장은 자율적으로 연구 과제를 선정해 20억~11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는 등 파격적 권한을 갖는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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