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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미국 대선을 드라마나 스포츠 보듯 열심히 지켜보는 친구들이 있다. 최근 저녁식사에서 화제는 '왜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저렇게 밀리는가'였다. 그날 나온 분석은 이랬다.

힐러리가 약점 보완에 너무 치중한 것이 문제였다. 미국 언론은 수년 전부터 힐러리가 넘어야 할 최대 장애물로 '여성'과 '혐오자들의 극렬한 반대'를 꼽았다. 힐러리는 그 장애물을 넘는 데 주력했다. 퍼스트 레이디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상원 의원에 당선된 후 군사·안보문제를 주로 다뤘다. 강인하고 유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위해서였다.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그러자 기존의 백인 남자 후보들과 다를 게 없어졌다. 그래도 에드워즈 상원 의원 같은 '재래식 후보'와 맞섰다면 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흑인 오바마가 나타나자 차별성이 느껴지기는커녕 힐러리에게서 기성세대의 묵은 냄새가 났다.

유능한 대통령이 되는 법을 너무 많이 예습한 것도 약점이었다. 국정 운영에 깊이 관여한 퍼스트 레이디 8년은 분명 유익한 공부였다. 힐러리는 복잡한 대통령직을 세련되게 수행할 준비가 됐음을 과시하곤 했다.

반면 오바마는 대통령직을 효율적인 국정 운영 기술을 넘어서 큰 비전이 필요한 일로 규정했다. 오바마 캠프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유권자를 만나 공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왜 자신이 오바마를 지지하게 됐는지 말하라고 했다. '영감을 불어넣는 지도자'를 추구한 것이다. 그러자 힐러리는 대통령이 되는 기술만 익힌 정치인처럼 보였다.

최대의 자산이었던 전직 대통령 남편도 짐이 되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부인 미셸은 남편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클린턴은 늘 부인을 두둔하기만 했다. 힐러리에게서 남편에 의존하는 듯한 허약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힐러리의 눈물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힐러리는 지난달 유권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 직후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다. 몇명은 그땐 약이었지만 이후엔 독이 됐다고 비판했고, 나머진 눈물도 효과적인 전술이라고 지지했다. 그때 누군가 중요한 건 '눈물'이 아니라 '목소리'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목소리 연구 학자에 따르면 성공한 여자들일수록 목소리가 낮고 굵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늘고 높은 여성적인 목소리보다 남성적인 목소리에 더 신뢰감을 느끼기 때문에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살아남고 인정받기 위해 목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총리가 된 후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고 한다.

정치적 야심으로 똘똘 뭉쳤던 힐러리의 목소리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변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눈물이 북받치는 순간 훈련된 목소리 대신 본래의 목소리가 드러났고 그때 스며 나온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힐러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사실 군사문제를 이해하는지 여부, 배우자의 유세 스타일 등은 부수적인 문제다. 안정된 나라에선 대통령이 바뀐다고 정부의 입장이 180도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들은 '사람'을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만큼 중요한 경쟁력도 없다.

힐러리는 타인의 비판에 지나치게 귀 기울이고 타인의 성공방식을 너무 열심히 배우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건 야심이고,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다. 이것이 그날 우리가 위기에 처한 힐러리에게 배운 교훈이었다.

                      

▲ 강인선 논설위원(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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