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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미래 마케팅은 휴대폰 네트워크 활용이 중요"
네트워크 이론가 바라바시 교수
구글, 정보를 쉽게 찾으려는 네티즌들 요구부터 접근
결국 최강 검색엔진을 무기로‘인터넷 허브’로 등극
기업이 신제품 출시할 때, 입소문 잘내는 고객 찾아
집중적으로 마케팅 활동하면 성공 가능성 훨씬 높아
이제호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김현진 산업부 기자 born@chosun.com
 

마릴린 먼로와 영화배우 신구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

도무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은 놀랍게도 ‘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다. 마릴린 먼로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 둘의 만남은 운명처럼 성사됐을지 모른다.

마릴린 먼로는 ‘왕자와 무희(The Prince and the Showgirl·1957년 작)’에 로렌스 올리비에란 배우와 함께 출연했다. 올리비에는 1981년, 남궁원과 함께 ‘오!인천’이란 작품을 함께 한 사이다. 남궁원과 신구는 ‘황홀(1974년 작)’이란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지구 반대편의 두 배우가, 올리비에와 남궁원을 거치면 생사라는 벽을 훌쩍 뛰어 넘어 만나는 것이다.

세계를 읽는 방법이 변했다. 더 이상 세계는 쪼개진 개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관계로 얽혀진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지구 반대편의 두 사람과 우리 두뇌 속의 두 신경세포, 우리 몸 속의 어떤 두 화학 물질 간에도 연결 경로는 반드시 존재한다.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Alb ert-Laszlo Barabasi) 미(美)노스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는 바로 이 ‘네트워크’의 비밀을 파헤쳐 세계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사람이다.


■ 네트워크로 생각하라

바라바시는 21세기 신개념 과학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스케일 프리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 이론을 새롭게 분석, 죽은 개념에 새로운 날개를 단 혁명적 과학자로도 불린다. 그의 이론을 다룬 저서 ‘링크(Linked)’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스케일 프리 네트워크’란 성장하는 조직을 보면, 반드시 연결이 몰리는 ‘허브’가 존재해 관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평균값에 사람이 많이 몰려있을 것 같은 전통의 관념을 부숴버린 그의 발견은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경제, 인터넷, 세포, 질병까지 바로 이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마케팅을 찾아 골몰하는 마케터라면 바로 고객들의 허브를 공략해야 한다. 그는 기업들에게 허브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의 휴대폰을 파헤치라”고 조언한다. “미래 마케팅의 열쇠는 바로 휴대폰에 있습니다. 휴대폰 고객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구축해 이들의 연결망 자료를 분석하면 아주 손쉽게 허브를 찾아낼 수 있어요. 이 방법은 모두에게 사랑 받는 스타들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죠.”

에이즈가 만연한 아프리카에서도 그의 이론은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한다. 에이즈를 퍼뜨리는 바람둥이 허브를 찾아내 집중치료하면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누가 바람둥이 허브인지 알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스스로 떠들고 다니지 않을 텐데….

“바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에이즈 치료제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 사람에게 이 약을 전달해 투약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사람이라도 치료제를 허브에 전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 백수에게도 그의 이론이 적용될까. 그는 일자리를 찾으려면 매일 보는 친한 사람말고 잘 모르는 ‘약한 유대(weak tie)’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한다. 매일 보는 ‘강한 유대(strong tie)’의 사람들은 비슷한 정보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취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Weekly BIZ는 지난 7일 오전 4시 카이스트 경영대학과 공동으로 바라바시 박사와 화상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카이스트 경영대학 ‘최고 경영자 과정’ 초청강연을 위해 11월말 방한할 예정이다.

▲ 마릴린 먼로와 신구의 네트워크
■ 모든 네트워크의 허브를 찾아라

―경제, 세포, 인터넷 등의 구조가 서로 ‘비슷하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언뜻 들으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경제, 세포, 인터넷은 그 구성요소가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이들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연구한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이 세 가지 요소의 구조적 형태(map)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죠.”

―어떻게 유사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옛날 과학자들은 이들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어요. 1960년대엔 이들이 무작위적(random)으로 연결된 것으로 간주했었죠. 예를 들어, 인터넷의 어떤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연결될 때 일정한 패턴이 없이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떠한 연결 관계를 분석할 때, ‘무작위적으로 연결돼 있다’라고 하는 것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흔히 물리학이나 수학에서 복잡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임시방편적인 가정으로 ‘무작위’란 개념을 도입하거든요.”

―그렇다면 경제, 세포, 인터넷의 구조가 무작위적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갖고 연결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연결망을 ‘수학적’으로 접근해 봤죠. 무작위적 연결망의 경우엔 ‘하나의 구성인자가 몇 개의 다른 구성인자와 연결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분포를 만들 경우, 대충 비슷한 수치로 수렴돼야 합니다. 즉, 모든 구성인자가 전체적으로 비슷한 숫자의 구성인자들과 연결돼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실제 경제, 세포, 인터넷 연결구조 연구결과, 무작위적 연결망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특성을 발견했어요. 대부분의 구성인자는 적은 숫자의 다른 구성인자와 연결된 반면, 소수의 어떤 구성인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다른 구성인자들과 연결돼 있었죠. 이토록 많은 구성인자들과 연결돼 있는 인자들을 일컬어 우리는 그 네트워크의 허브(hub)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다면 허브가 나타나는 네트워크와 무작위적 연결망의 구체적인 차이점은 뭔가요?

“모든 구성요소들이 비슷하게 얽혀 있는 무작위적인 연결망을 연결성의 관점에서 ‘평등한 시스템’으로 본다면, 허브가 지배하는 네트워크는 ‘귀족’이 존재하는 불평등한 시스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세포, 경제의 많은 네트워크가 바로 허브가 지배하는, 즉 불평등한 시스템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결국 경제학자 파레토가 주장한 ‘80대20법칙’과 같이 시스템도 양극화(polarization)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꼭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맞아 떨어집니다. 양극화가 생기게 되는 예를 들어보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수의 어떤 사람은 매우 인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반면, 어떤 다른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에서 불평등이 생기는 거죠.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런 시스템에선 작은 구성인자라도, 무언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경우 허브로 등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왕따(Billy no mates)’라고 해서, ‘만년 왕따’가 되란 법은 없으니까요. (웃음)”
▲ 바라바시 박사와의 인터뷰는 7일 새벽 4시(미국 현지시각 6일 오후 2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컨퍼런스룸에서 화상을 통해 한 시간 반 동안 이뤄졌다. 사진 왼쪽부터 카이스트 경영대학 이지환 교수, Weekly BIZ 박종세 에디터, 김현진 기자, 카이스트 경영대학 이제호 교수. /주완중기자 wjjoo@chosun.com
■ 허브가 걸리면,
모두가 걸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속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예를 든다면 어떤 기업이 있을까요?

“구글이 좋은 예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불평등한 네트워크에선, 기본적으로 경쟁에 있어 선발업체가 유리해요. 특히, 진입장벽이 있는 경우엔 후발업체가 선발업체와 경쟁을 하기가 더욱 어렵죠. 선발 업체가 이미 허브가 돼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구글은 ‘검색엔진’이라는 간단한 원리를 통해, 순식간에 네티즌을 자신의 웹 사이트로 끌어들이며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 만들었죠.”

―구글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람들이 왜 인터넷에 접속하나요? 가장 큰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결국 이 부분에서 경쟁우위를 가져야 하겠죠. 구글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는 네티즌들의 특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파고 들었어요. 몇몇 단어를 치면 10억 개에 가까운 페이지를 볼 수 있도록 ‘링크해 놓은’ 시스템은 ‘빠르고 쉽게 정보에 접근하고 싶다’는 네티즌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줬어요. 마치 커피숍에 홀로 앉아 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의 명함을 받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시원하게 다리를 놔 준 것과 같은 원리였죠. 구글을 통해 네티즌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들까지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네트워크 이론으로 질병의 확산도 설명할 수 있나요?

“전염병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해서 확산됩니다. 생각해보세요. 감기, 사스(SARS), 에이즈(AIDS)까지…. 이 질병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파된다는 점입니다. 즉, ‘누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 혹은 ‘누구와 자주 접촉하는가’가 전염병의 확산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물론, 단순히 부딪쳐서 전파되는 감기와 사스보다, 에이즈는 훨씬 ‘친밀한’ 관계, 즉 성관계 네트워크를 통해서 확산돼요. 에이즈는 수많은 링커(linker)들이 없으면 전파되기 힘들죠.”

―그렇다면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염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개인들의 상호접촉이 별로 없는 경우 전염병은 확산되지 않고 도태된다’고 주장했어요. 따라서 이들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상호접촉을 ‘차단’하면 전염병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죠. 따라서 감기에 걸리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감기나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했죠. 하지만 놀랍게도 허브가 존재하는 네트워크에선, 이런 방법이 안 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설령 네트워크를 이루는 각 개인 간 접촉을 막는다고 해도, 일단 허브가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되면 무서운 속도로 네트워크를 타고 확산됐기 때문이죠.”

■ “허브가 누군지 몰라도 허브에게로 통하는 길은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뭔가요?

“일단, 왜 루머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지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허브’ 역할을 하는 몇몇 사람이 알게 되면 소문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겠죠. 또, 마케팅이 필요한 기업의 입장에선 허브를 활용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다 빨리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죠. 선진 기업들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미 이를 감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의 네트워크 이론은 이들이 ‘감(感)’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한 것이죠. 다시 말해, 고객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제품에 대한 좋은 소문을 무서운 속도로 퍼트릴 수 있는 허브를 찾아내,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허브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엔 어떻게 허브를 공략할 수 있을까요?

“허브의 신원을 모르고도 허브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아주 흥미롭죠. 에이즈가 심각한 문제인 아프리카의 예를 들면 이해가 쉽게 갈 거예요. 에이즈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이 대륙의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에이즈 치료제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에이즈 치료제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이를 선택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허브에게 치료제를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럴 경우엔 선뜻 아무도 ‘내가 허브야, 내가 여기서 제일 복잡한 성관계를 맺고 있어’라고 나서지 않죠. 따라서 도대체 누가, 성 접촉 네트워크의 허브인지 쉽게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이럴 때 효과적으로 먹힐 수 있는 방법은 이렇죠. 바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에이즈 치료제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 사람에게 이 약을 전달해 투약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사람이라도 치료제를 허브에게 전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허브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의해 지목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죠. 실제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게 바로 허브의 정체를 파악하지 않고도 허브를 공략하는 방법이에요.”

―기업들 입장에서 봤을 때, 허브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품별로 허브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조금 어려운 질문인데요. 일단, 선진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선 각 제품에 대해 누가 허브인지 대충 감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가 우리 제품을 샀을 때,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어요. 정교한 방법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소비자들이 누구를 따라서 제품을 사게 되는지 면밀히 관찰해 왔죠. 하지만 이런 방법만 해도 이젠 ‘전통적인 마케팅 방법’에 속합니다. 이젠 이 분야에서도 아주 획기적인 문이 열리고 있죠.”

■ 고객의 휴대전화 속에 21세기 마케팅 혁명의 비밀이 있다

―획기적인 문이라…. 결국 여기에 뭔가 미래의 마케팅을 이끌어 갈 답이 있을 듯한데요.

“미래 마케팅의 열쇠는 바로 휴대폰에 있습니다! 휴대폰 고객의 데이터베이스(database)를 구축해 이들의 연결망 자료를 분석하면 아주 손쉽게 허브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찾아낸 허브를 마케팅에 활용하는게 스타를 이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죠. 보통 사람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 톰 크루즈 말을 믿을까요, 아니면 내가 신뢰하는 친구의 말을 믿을까요? 톰 크루즈에게 아무리 빠져 있는 팬이라도 자동차를 구입할 땐, 내 옆의 신뢰가 가는 사람을 믿겠죠.”

―결국 스타 마케팅이 ‘허브’ 마케팅으로 변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스타가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허브로 하여금 이 제품을 수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게 바로 고객이 구매 결정을 내리는 데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미래의 마케팅 분야엔 휴대폰 네트워크의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을 통해 고객의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겁니다.”

―흥미로운 지적이신데요. 최근 휴대전화 사용자 네트워크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휴대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전형적으로 허브가 지배하는 네트워크입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선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매우 다양해요. 한국의 경우를 한 번 들어보죠. 하루 중 누군가와 의사 소통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거죠! 이 같이 휴대폰이 많이 보급된 선진국에선 누가 누구를 알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를 대변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바로 휴대폰 네트워크입니다. 과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이 네트워크를 분석한다면, 인적 네트워크 구조 역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에서는 허브의 역할이 다른 네트워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나요?

“사실, 인적 네크워크에선 허브의 역할이 다른 분야보다는 덜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유는 허브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허브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물리학 교수를 한 명 소개 받아야 한다고 할 때, 곧바로 대학 총장이나 물리학과 학장을 찾아가 ‘물리학 교수 한 명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죠. 이들이 명백한 허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바쁠 거야’란 생각에 대신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따라서 허브는 이런 대안이 없을 경우, ‘최후의 대안’으로 쓰는 경우 많아요.”

■ 취업 정보를 얻으려면?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가라

―휴대전화 사용자 네트워크에서 ‘약한 유대(weak tie)’의 중요성을 발견하셨는데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1970년대 하버드대 교수 그래노베터(Granovetter)는 사람들이 어떻게 구직을 하게 됐는지 설문조사를 했어요. 놀랍게도 다수의 응답자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고 어쩌다 한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구직과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고 답했죠. 즉 평소에 자주 만나는 강한 유대(strong tie) 관계보다 자주 못 보는 약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도움이 됐다는 거예요. 언뜻 보면 놀랍지만, 이유는 간단해요. 강한 유대의 문제는 평소에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친하긴 해도 정보획득 면에선 도움이 안되죠.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뻔하니까요. 반면 약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은 내가 듣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

―이런 점을 기업의 마케팅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마케팅 입장에서 보면 약한 유대는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단점으로 꼽혀요. 하지만 정보를 좀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휴대전화 사용자 네트워크에서 나타난 실제 인적 네트워크엔 서로 친한 사람들, 즉 강한 유대들이 이루는 그룹들이 무수히 많이 나타났어요. 이 수많은 그룹들은 다시 약한 유대를 통해 서로 연결된 형태를 보였습니다. 마케팅을 하려면, 이 약한 유대에 집중하는 게 매우 중요해집니다. 화장품 기업을 예로 들어 볼까요? 똑같은 마케팅 비용을 들인다고 한다면 한 그룹에 여러 개의 샘플을 뿌리는 것보다, 약한 유대로 연결된 각각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샘플을 하나씩 뿌리는 게 이득이겠죠. 어차피 한 그룹에서 누군가가 샘플을 쓰게 되면,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해당 그룹의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전파되는 건 시간 문제니까요.”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기업들의 예가 있다면?

“구글은 아까 말했듯이,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10억 개에 달하는 웹페이지(web page)들과 연결시켜 주기 때문에 강한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마이스페이스(My Space), 페이스북(Face Book)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평소 자주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사이트들은 개개인이 자신이 속한 그룹을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그게 마력(魔力)이고, 성공 비결이에요.” 

▲ 세계적인 과학자 바라바시의 점심 메뉴는 햄버거와 다이어트 콜라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철저한 시간 관리로 그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늘“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라바시 박사 제공

내가 만난 바라바시 박사


시간관리 철저한 아침형 인간
연구결과 잘 알리는 능력 갖춰


정하웅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학교나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하다 보면 같은 분야의 학자에게 ‘새치기’를 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열심히 연구하고 있던 문제를 다른 학자가 한발 먼저 풀어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일을 당하곤 한다. 필자가 바라바시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그랬다. 1992년 어느 날 필자가 박사과정 중 1년 넘게 열심히 연구하던 프랙탈(fractal) 표면의 연구 주제를 다른 사람이 한발 먼저 논문으로 발표한 것을 발견하곤 망연자실한 적이 있다. 억울한 마음에 어떤 사람인가 뒷조사를 해보니 미국 보스턴 대학의 바라바시라는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다행히 연구주제의 절반만을 푼 것으로 밝혀졌고 필자는 연구를 계속해 1993년 나머지 반쪽을 풀어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인연으로 1998년 여름 바라바시가 조교수로 부임한 미국 노트르담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고, 1999년 네트워크과학에 대한 연구를 함께 시작했다.

내가 아는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올빼미족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바라바시 교수는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었다. 사실 이렇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연구자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은 꽤나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장점을 살려, 필자가 한밤중에 일한 결과를 새벽에 바라바시에게 전달하고, 바라바시는 아침에 일어나 필자에게 받은 결과를 검토 보완한 후, 오후에 함께 연구실에서 만나 토론했다. 24시간 풀가동 연구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단기간에 5편의 네이처(Nature)지 게재 논문을 포함해 다수의 연구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바라바시는 활동적인 사람이다. 동료교수들은 그런 바라바시교수를 보고 “빠르다(fast)”고 말한다. 연구실의 학생들은 모 건전지광고에 나오는 토끼에 바라바시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연구실 문 앞에 붙여놓곤 했다.

그는 시간관리가 아주 철저하다. 점심은 보통 혼자 카페테리아에서 과학잡지를 읽으며 햄버거와 다이어트 콜라, 또는 샐러드를 주로 먹었다. 또 글솜씨가 뛰어나고, 연구결과를 아주 잘 파는 능력을 갖췄다.

그는 한국사람과 인연이 깊다. 내가 노트르담 대학에 있을 때 바라바시 교수를 포함해 8명의 연구그룹 멤버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는 당시 우스갯소리로 그룹미팅을 한국어로 해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도 2명의 한국인 박사후 과정 학생이 그 그룹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1967년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태생으로, 30대 중반에 이미 노트르담 대학 물리학과에서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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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⑦ 동양신화의 재발견 -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마을지기 2013.10.29 1163
43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⑨ 자연의 순리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마을지기 2013.10.29 1106
42 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③ 심리학의 역설 -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마을지기 2013.10.29 1072
41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② 뇌과학의 메시지-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마을지기 2013.10.29 1050
4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⑥ 천문학의 지혜 -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 마을지기 2013.10.29 1032
39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① 공자·노자의 자기혁신 마을지기 2013.10.29 1027
38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⑧ 역사의 울림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마을지기 2013.10.29 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