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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의 시시각각] 리더십보다 ‘캐처십’이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벤처기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두 잣대가 있다. 증시 상장과 고가 매각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나온 매각 성공 사례는 아쉽게도 단 두 건이었다. 가을께 티켓몬스터가 미국 소셜커머스업체 리빙소셜에 팔린 것, 동영상검색업체 엔써즈가 지난달 KT에 인수된 것이다. 벤처업계에 밝은 이라면 “역시 꼬날!” 하며 무릎을 쳤을 게다. ‘행운의 여신’ 꼬날이 또 ‘대박’을 몰고 온 것이다.

 꼬날은 아블라컴퍼니 이미나(41) 팀장의 온라인 별명이다. PC통신 시절부터 필명을 날려온 유명인사다. 그가 2005년 이후 몸담았거나 관여한 벤처 5개 중 4개가 모두 수백억원대 차익 실현에 성공했다. 검색업체 첫눈은 NHN이 인수했다. 블로깅기술기업 태터앤컴퍼니는 구글이 산 최초의 한국 기업이 됐다. 꼬날은 첫눈·태터앤컴퍼니·엔써즈 모두 직원이 예닐곱 명이던 시절 합류해 회사를 키웠다. 티몬엔 아예 창업 전부터 멘토 역할을 했다. 감식안이 뛰어난 걸까, 능력이 워낙 출중한 걸까. 야구영화 ‘퍼펙트 게임’을 보다가 그의 역량을 설명하기 맞춤한 포지션을 발견했다. 포수, 즉 캐처(catcher)다.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1987년 맞대결을 그린 이 영화에서 포수는 분명 들러리다. 한데 등장 횟수는 만만찮다. 포수 없는 투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팀에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포수는 팀의 어머니다. 87년 당시 최동원과 호흡을 맞췄던 포수 한문연은 현재 엔씨 다이노스의 배터리 코치다. 그는 “투수를 깊이 이해하면 그가 지금 뭘 던지고 싶어하는지 감이 온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투수가 원하는 사인을 보내면 더욱 힘있는 공이 날아온다. 투수에게 ‘어떤 공을 던지든 다 받아낼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걱정을 잊고 맘껏 던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상대 타자나 벤치의 분위기를 읽고, 적절한 메시지로 팀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도 그의 일이다.

 유명 벤처 창업자들이 꼬날을 신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태터앤컴퍼니와 아블라컴퍼니 창업자인 노정석은 “꼬날은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모두 안 된다는 일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조직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꼬날은 5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그 위기도 특유의 낙천성으로 수월히 넘겼다. 대표든 인턴사원이든 ‘~님’으로 부르며, 속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운다.

 포수는 전체 야수들을 바라보며 경기하는 유일한 포지션이다. 넓은 시야가 필수다. 꼬날 또한 규모 작은 회사를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비결은 평소 온라인에서 엮어온 다양한 관계망이다. 이를 통해 인재와 고객을 모으고 브랜드를 알린다. 포수가 감독의 메시지를 그라운드에 구현하듯, 꼬날도 창업자의 철학을 세상에 퍼뜨린다. 리더의 평소 발언을 촘촘히 받아 적고 수시로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든다. 덕분에 “꼬날과 보스의 싱크로율은 100%”란 평을 듣는다. 포수는 빛이 나는 자리가 아니다. 육체적으로도 가장 고단한 포지션이다. 무거운 보호구를 두르고 경기 내내 앉았다 섰다, 달리고 몸 던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꼬날 역시 94년 벤처업계에 발 들인 이래 한 번도 임원 배지를 달지 않았다. 그럴 기회가 없지 않았지만 현장이 좋고, 누군가를 보좌하거나 대변하는 일이 즐거워 팀장 이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떤 조직에나 꼬날 같은, 야구의 포수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헌신적 수하(手下) 혹은 리더를 꿈꾸는 2인자와는 또 다르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진 힘을 ‘캐처십’이라고 하자.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곁에 캐처 역할을 하는 이가 없으면 그 조직은 불안하다. 캐처십의 핵심은 자발적 희생과 충성심이다. 이를 끌어낼 수 없다면 반쪽 리더십일 뿐이다. 요즘 우리 국민은 매일 이처럼 ‘캐처십 실종된 리더십’을 본다. 정치권의 돈봉투 전당대회 문제가 그렇고, 행정부를 휘감은 레임덕 기류가 그렇다. 청와대와 각 정당 수뇌부들에게 특히 꼬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이유다.


[출처: 중앙일보] [이나리의 시시각각] 리더십보다 ‘캐처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