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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만 늘어놓는 비전문가의 함정

마을지기 2011.08.08 22:53 조회 수 : 5058

총론만 늘어놓는 비전문가의 함정[중앙일보]

 

지난해 개최된 한 콘퍼런스에서 겪은 일이다. 필자는 이 콘퍼런스의 기조 연설자로 초대됐다. 기조 연설은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그래서 청중에게 유익한 메시지가 되도록 정성을 다해 발표를 준비했다. 당일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예정된 시각에 행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 보니 축사를 하기로 한 어느 정치인이 도착하지 않아서였다. 그분은 15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그분이 할 5분 정도의 축사를 듣기 위해 참석자 수백 명이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최 측은 필자에게 발표 시간을 반으로 줄여달라고 했다. 모 정치인이 시간을 지키지 않은 파장이 필자의 발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30분 길이로 준비한 내용을 반으로 줄인다는 건 청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안 할 순 없어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 발표를 마쳤다. 현장 전문가의 메시지보다 의전이 더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우리나라 심포지엄이나 콘퍼런스에 참여해 보면 개회식에만 과도하게 이목이 집중되는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정작 행사의 꽃인 세미나 발표 현장은 썰렁하다. 행사의 내실보다 격식이나 형식에 얽매이는 것은 한국적인 고질병이다. 국외 콘퍼런스의 경우, 보통 기조 연설은 아침 8시쯤에 첫 순서로 진행된다. 이른 시각이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데도 서둘러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청중이 꽉 들어찬다. 시대의 변화에 대한 리더의 생각이 어떤지, 어떤 비전으로 사업을 하는지 듣고 싶어서다. 격려사와 축사 같은 의전 행사는 아예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나 복잡한 사안들로 가득 차 있다. 평범한 과거의 지식과 이론만으로는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만큼 현장 경험에 바탕을 둔 전문가의 통찰력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문성에 기반한 치열한 토론보다 격식을 차린 추상적 논의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특정 전문 분야의 토론회가 열릴 경우,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인사가 태연히 참석해 주의·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극히 상식적인 총론만 나오고 각론이 나오지 않는다. 각론이 없으니 실천 방안 도출은 더 먼 얘기다.
 과거 우리나라는 사농공상에 따른 계급 구분이 뚜렷해 현장에 밝은 전문가가 대우받기 힘들었다. 반면 이웃 일본은 신분과 관련 없이 자기 분야에 전문성이 있으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독특한 장인 정신이 꽃핀 배경이다. 격식에 얽매이고 지배 체제가 고착화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 이민자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장에서 마음껏 도전하길 즐기는 실용 정신 때문이었다.

 전문가의 능력은 현장에서 나온다. 학력에 비례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벤치마킹이나 모방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끊임없는 탐구로 기술 개발에 몰두하거나,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거나,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전문가로서의 깊이가 생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경영일지에 ‘업무를 체험하고 시장 상황을 실감하는 것은 의학에 비유하자면 기초의학이 아닌 임상의학이다. 나는 모든 직원을 현장 감각이 있는 임상 전문의로 키우고 싶다’고 적었다. 현장을 꿰뚫고 있어야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 감각에 따른 전문성은 기업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보화·개방화로 개인의 힘이 날로 커져가는 지금으로선 탄탄한 실력을 쌓은 사람만이 생존 가능하다. 적당한 학력이나 인적 네트워크에 기대온 사람이라면 어려움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반면 도전을 추구해온 전문가들에겐 새 기회가 생겼다. 격식이나 형식보다 문제의 본질에 충실한, 현장에 뿌리박은 프로들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 아닌가.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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