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좋은 글마당

오늘:
224
어제:
202
전체:
1,606,213
Since 1999/07/09

평범한 선생님은 말을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준다

[마음읽기]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다를 때

                
      

잘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가치 둘수록 행복감 높아
성장과 유능함보다 자율성을 격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되풀이되는 실존적 고민이다. 어떤 일을 좋아하면 잘할 가능성이 높고, 잘하면 좋아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둘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특별히 못 하는 일은 아니지만 전혀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고뇌와 갈등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일이건만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서 힘들어해 본 적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이 둘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실존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일을 택하면 평생 하루도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는 말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권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위대한 성취를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좋아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좋아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자율성’을 만족시키는 통로이니 크게 공감이 가는 조언들이다.
 
다른 한편, 인간은 어떤 일을 잘했을 때 동반되는 ‘유능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지니고 있다. 열등감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수많은 증거들이 축적돼왔다. 따라서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반대편의 이야기에도 수긍이 간다.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 않더라도 당장 어떤 일이든 있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젊은이들에게는 당장은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둘 사이의 줄다리기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딜레마이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행복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들의 선택 기준에서 어떤 힌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 일련의 연구들을 수행한 적이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대학생 참가자들에게 어느 일자리를 소개하면서 그 일이 참가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후에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어느 정도나 중요한지를 물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그 일이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물었다. 흥미롭게도, 두 경우 모두에서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이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보다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일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애초부터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그 일자리가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이 자신의 결정에 어느 정도나 중요한지를 물었을 때 나타났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이 경우에도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했지만,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했다.
 
사람들이 일상적 활동에서 얻는 행복감이 그 활동을 좋아하는 정도와 그 활동을 잘하는 정도에 의해서 얼마나 결정되는지도 알아보았다. 하루에 몇 차례씩 모바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설문을 작성하는 그 순간에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느끼고 있는 즐거움과 의미의 정도를 보고하게 했다. 분석 결과 역시 앞선 연구 결과를 지지해주었다. 회의, 대화, 운동과 같은 일상적 경험을 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훨씬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어떤 일을 잘하는지 여부가 행복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행복의 다이나믹 듀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성적, 성취를 중시해온 우리 사회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사치로 치부하면서,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끊임없이 가르쳐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거나 독특한 사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혹은 먹고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봐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좀 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마다,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자기만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것이 자기다움의 삶과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마음읽기]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다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