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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통로의 리더십

마을지기 2009.10.14 06:54 조회 수 : 7463

중앙일보  2009.10 . 14.
대학교 3학년 홍명보에겐 ‘우상’이 있었다. 이탈리아 빗장 수비의 간판이었던 프랑코 바레시다. 이유는 하나. 바레시의 “영리한 플레이가 좋아서”였다. 홍명보는 그를 독일 축구의 전설적인 리베로 베켄바우어에 견줬다. 홍명보는 바레시를 ‘축구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그런 나침반을 안고 홍명보는 달렸다. 결국 명선수가 됐고, 다시 명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유명한 선수도 없었다며? 그런데 어떻게 20세 이하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8강까지 올랐지?” “카메룬전에서 패했을 때는 주전을 5명이나 교체했다며?” “홍명보는 선수 때도 잘하고 감독 때도 잘하네. 비결이 뭐지?” 그래서 궁금해진다. 홍명보 선수가 말한 ‘영리한 플레이’의 핵심이 뭘까. 그 나침반의 정체는 뭘까.

#풍경1 : 2002년 월드컵 때 홍명보 선수에게 누군가 물었다. “히딩크 감독과 국내 감독들의 차이점이 뭔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하프 타임 때 국내 감독들은 부족한 선수를 향해 질타를 한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말이다. 히딩크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개인이 아닌 팀 전체에 대해 지적했다. 그렇게만 해도 국가대표 선수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프 타임 때 질타를 당한 선수는 후반전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풍경2 : 이번 대회에서 홍명보 감독은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선수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호칭도 “여러분”이라고 불렀다. 한국 축구계를 아는 사람들은 “충격이자 파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홍명보의 존댓말’에는 깊디 깊은 이유가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끄집어내고자 한 건 ‘단순한 존중’이 아니었다. 그 존중 너머에서 꿈틀대는 에너지였다. 강압적 지시에 의한 기계적 움직임이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창조적인 에너지였다.

#풍경3 : 홍명보 감독은 주전과 비주전 간 경계를 허물었다. 청소년대표팀에는 영원한 주전도 없었고, 영원한 비주전도 없었다. 그렇게 ‘홍명보 호’는 경쟁에 대해 열려 있었다. 그건 기회에 대한 열림이었다. 그 기회 앞에서 ‘내 안의 에너지’를 아끼는 선수는 없었다.

리더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로의 리더십’이고, 또 하나는 ‘장벽의 리더십’이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뭔가. 구성원이 자기 안의 에너지를 마음껏 끄집어 내고, 마음껏 쓸 수 있게 하는 ‘온전한 통로’가 되는 거다. 그게 바로 통로의 리더십이다. 잠자는 에너지는 깨워주고, 깨어난 에너지는 격려하고, 달리는 에너지엔 길을 터주는 거다. 그런데 오히려 선수들의 에너지를 가두고, 식히고, 짓누른다면 장벽의 리더십이 되고 만다.

홍명보 감독의 나침반은 ‘생각하는 축구’ ‘창조적인 축구’다. 대학생 홍명보가 반했던 바레시의 영리한 플레이, 그 뿌리도 실은 창조성(creativity)이다. 홍 감독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그걸 위한 통로다. 그래서 ‘선수 홍명보’ 못지않게 ‘감독 홍명보’가 기대된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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