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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도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김세웅의 공기반, 먼지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입력 2020-03-09 03:00수정 2020-03-09 03: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내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인문사회계열로 입학한 학생에게 졸업 때까지 과학교양과목을 3가지 이상 이수할 것을 요구한다. 대학에 오면 지긋지긋한 수학, 과학은 이제 끝이라는 기대가 깨져 불만이 가득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배우는 그들만큼이나 가르치는 나에게도 고역이다. 한편에선 대학교육은 안정적인 커리어를 위한 실용교육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런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헤쳐 나가는 사회인이 되기 전에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대학 때 배워두는 것 또한 직접적인 직업교육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교양수업은 합리화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하면 세상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일들이나 듣기에는 번드르르한 말들의 진위를 생각 외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그럴듯한 말들에 대한 일차적인 판단을 위해 간단하게 해보는 검증을 ‘연습장 계산(back of the envelope calculation)’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하게 벌어지던 핵무기 개발사업에 큰 공을 세운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특히 이러한 간단한 계산을 즐기던 과학자였다. 그는 핵실험 당시 자신의 연구실 바닥에 작은 종이 한 조각을 두고 그 종잇조각이 핵폭탄 폭발의 충격으로 어느 정도 이동이 됐는지를 바탕으로 역산을 하여 대략적인 핵폭탄의 위력을 계산하곤 하였다. 레이저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공로로 196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찰스 타운스 박사는 그의 연구가 공원에 앉아 주머니에 있던 편지봉투에 적고 계산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우리가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일반인에게 과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정량적인 방식으로 생활 속의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을 체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러한 접근법으로 대중들 사이에 실효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미세먼지 비상 저감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초미세먼지가 아주 극심한 날, 즉 농도가 m³당 100μg(마이크로그램)인 날을 가정해보자. 지상에서 1km 정도의 상공까지는 공기가 잘 섞여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상당 부분 일정함을 고려하여 수도권(1만1851km²) 전체에 존재하고 있는 초미세먼지의 무게를 계산하면 약 1200t으로 산정된다. 물론 초미세먼지는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며 또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대략 초속 2m의 바람이 분다고 가정하고 서해안을 따라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초미세먼지가 m³당 100μg의 농도로 유입된다면 시간당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양은 약 50t이다. 작년 3월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살수차나 높은 건물에서 물을 뿌려 위의 미세먼지를 없애보겠다거나, 야외 공기청정기를 설치하자는 제안들은 막대한 미세먼지의 양을 생각할 때 효과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막대한 양의 미세먼지를 우리가 기술적인 수단으로 ‘저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직접적인 미세먼지 배출원이나 미세먼지를 대기 중에서 만드는 물질들의 배출을 강력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세먼지 비상 저감대책’은 ‘미세먼지 유발 물질 배출 저감대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점점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거리가 나타난다. 작년과 올해 우리 사회뿐 아니라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가는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려면 정량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 필수적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과학적 분석으로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부분에는 정치적 혹은 외교적인 고려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자명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해법에 정치적 외교적 셈법을 적용할 경우 문제의 해결은 점점 멀어지고 사회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는 영웅적인 과학자가 나와서 우리에게 노벨상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과학적인 사고체계를 존중하고 우리가 모르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토양이 구축될 때 노벨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도 뿌려질 수 있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